최연소 사시 합격 등 화려한 이력의 박병무 뉴브리지캐피탈코리아 사장
외국계 자본 대변하며 마음고생 “제일은행 매매차익은 위험에 대한 보상”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박병무(44) 사장 인터뷰를 앞두고는 두 가지 상반된 느낌이 교차했다. 언론에 나서기를 극도로 꺼리는 그를 만나게 된 기대감 한편으로, 솔직히 ‘좀 얄밉다’는 생각이 꼬물꼬물 피어올랐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미리 밝혀두자면, 사실 그건 제일은행 매매 과정에서 막대한 차익을 남긴 미국계 사모펀드의 한국 전초기지 수장이란 사실과는 전혀 무관한 감정이고, 도무지 ‘좌절’이란 걸 찾아보기 어려운 그의 이력 때문이었다. 서울대 수석입학, 아버지를 퇴직시키다?
박 사장은 한국 사회에서 출세의 보증수표쯤으로 통하는 서울대(법학과)를 수석입학(1980년)한 데 이어 대학 3학년 때는 최연소로 사법시험(24회)에 합격함으로써 학창 시절부터 ‘뉴스메이커’가 됐다. ‘보통 사람들’의 질시를 자아내기 딱 좋은 경력을 일찌감치 쌓은 것이다. 1994년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법학대학원) 졸업과 함께 미국 뉴욕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뒤에도 화려한 이력은 계속된다. 국내 최대 로펌인 김&장법률사무소에서 굵직굵직한 인수·합병(M&A)건을 맡음으로써 화제를 뿌린다. 대상(옛 미원)의 라이신(사료첨가 발육물질) 사업부 매각(인수자 독일계 바스프), 미국계 사모펀드 H&Q의 쌍용증권 인수, 뉴브리지캐피탈의 제일은행 인수, 한일·상업은행 합병, 동방페리그린의 미도파 인수, 한화종금 경영권 다툼…. 외환위기를 앞뒤로 터져나온 대형 인수·합병건은 거의 다 그의 손을 거쳤다. M&A 전문가라는 평이 나오는 게 무리가 아닌 셈이다.
이번 인터뷰는 두어번의 일정 조정 끝에 5월31일 오후 서울 공평동 제일은행 본점 12층 뉴브리지캐피탈코리아 회의실에서 이뤄졌다. 바닥 곳곳에 서류 더미가 잔뜩 널려 있는 사장실을 빠져나와 회의실로 들어선 박 사장의 표정은 밝아 보였다.
서울대 수석입학에 사법고시 최연소 합격이라… 본인 생각에 자신은 천재형인가, 노력형인가.
“운이 좋았다”는 답변에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자, 그는 설명을 이어갔다. “당시는 본고사를 볼 때였는데, 수학이 유난히 어렵게 출제됐다. 공대생인 형(박병완 GM대우자동차 R&D담당 임원)한테 수학을 많이 배운 터여서 상대적으로 유리했던 것 같다.” 그 시절 다른 이들처럼 그 또한 국·영·수 과외를 받았다는 사실은 수석입학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솔직히 털어놓은 바 있다. ‘학교 공부만 열심히 했다’는 모범답안 대신 과외받은 일을 드러낸 순진함(?)은 그를 또 한번 화제의 인물로 부각시킨 동시에 뜻밖의 불행을 안겨준 빌미였다. 한국전력에 근무하던 그의 아버지가 퇴직 압박을 받아 결국 회사를 떠나야 했던 것이다. ‘공기업 다니는 사람이 어떻게 아들 과외를 시킬 수 있느냐’는 게 퇴직 압력의 이유였단다. 때는 바야흐로 서슬 퍼런 전두환 정권의 초창기였다. 그렇게 직장을 그만둔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죽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해 사시 최연소 합격을 이뤄냈다고 하니, ‘새옹지마’라고 해야 할까? 김&장 법률사무소에서 M&A전문가로 1980년대 암울했던 시대 상황을 떠올리면 그의 화려한 이력은 곧 곱지만은 않은 ‘범생이’ 이미지로 이어지는데, 사법고시 합격 뒤 그의 행보는 예상을 조금 벗어난다. 지금이나 그때나 성적 좋은 이들이 선택하는 판·검사의 길 대신 기업 경영쪽으로 관심을 돌린 것이다. 대학 졸업과 함께 연세대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마친 그는 군(해군 법무관) 제대 뒤 김&장법률사무소에 둥지를 튼다. 맡은 일은 주로 증권사와 자본시장 관련 업무였다. “대학 졸업 무렵만 해도 (주)대우, 삼성물산 같은 종합무역상사가 인기였고, 난 해외시장 개척이나 매니지먼트(기업 경영)에 관심을 두고 있던 터였다.” 법대에 입학한 사실과 잘 안 맞는 것 같다.
“법대로 가는 게 선택할 길이 많다고 봤다. 그렇게 권유하는 이들도 많았고…. 실제 당시에도 법대 나온 이들이 경제부처나 기업체에 많이들 있었다. 판·검사로 갈 생각을 아주 안 해본 건 아니고, 내게 더 맞는 게 경영쪽이라고 여겨 ‘김&장’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렇게 해서 들어간 김&장법률사무소는 그를 M&A 전문가로 키워준 터전이었다. “프로(전문가) 집단이 모여 있는 곳으로, 인적 구조가 좋아 아주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그가 미국계 사모펀드인 뉴브리지캐피탈과 인연을 맺고 한국 법인의 최고경영자 자리에까지 오른 것도 김&장법률사무소를 통해서였다. 1999년 뉴브리지의 제일은행 인수 때 자문 변호사로 1년 동안 활동하게 됐고, 이때 그를 눈여겨본 뉴브리지쪽에서 한국법인 최고경영자로 영입(2003년 6월)했던 것이다. 뉴브리지가 제일은행을 인수했다가 되파는 과정에서 1조원을 웃도는 차익을 거둔 배경 곳곳에 그의 땀방울이 배어 있는 셈이다.
뉴브리지의 제일은행 매매를 두고는 비판적 견해도 많다. 론스타 등 외국계 투기자본에 대한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계기로 뉴브리지의 차익에 대해서도 과세를 해야한다는 주장이 만만치 않고….
“뉴브리지가 제일은행을 인수하던 때는 한국 경제가 (외환위기 충격으로) 최악의 상태였다. 외국자본 유치를 절실히 필요로 할 때였다. 제일은행을 인수한다는 건 굉장한 ‘리스크 테이킹’(위험부담)이었다. 한국 경제의 앞날에 대한 확신 없이는 내리기 어려운 결정이었다.” 그래도 한국 정부가 다급하고 절실한 처지에 빠진 것을 이용해 과도한 차익을 남겼다는 반감이 적지 않은데….
“당시 한국 정부는 뉴브리지 외 전세계 주요 투자기관들에 모두 초청장을 보냈다. 리스크를 안고 들어온 데가 저희뿐이었다. (제일은행 매매 과정에서 얻은) 차익은 그 위험부담에 대한 보상이라고 봐야 한다. 공적자금 투입과 관련한 논란도 많은데, 그건 뉴브리지 인수 이전의 일이었다. 사실 제일은행을 당시 곧바로 파산시켰다면 15조원가량을 부담했어야 한다는 추정도 있다. 뉴브리지를 통한 회생으로 공적자금 부담이 4조원 미만으로 낮아졌다. 세무조사와 관련한 사항에 대해선 ‘노코멘트’다.” 이처럼 뉴브리지의 투자 행위에 대해 적극적인 변호에 나서는 그에게서도 외국계 자본을 대변하면서 겪은 마음고생의 흔적은 언뜻언뜻 배어났다. “김&장에 있을 때는 ‘매판자본의 앞잡이’란 소리를 들었는데, 요새는 ‘투기자본의 앞잡이’라고 한다. (웃음) 외국자본을 무슨 ‘도깨비 뿔’ 달린 것처럼 보니…. 사실, 외국계 투자기관한테서 아직 배울 점이 많이 있다. 특히 금융 부문에서 그렇다. 그런 배움의 과정을 통해 사회가 성숙돼가는 거라고 본다.” 추가 투자 활동으로 화제 몰고 다닐 듯 박 사장의 뉴브리지캐피탈은 한국에서 추가적인 투자 활동에 나설 태세여서 앞으로도 화제를 몰고 다닐 것으로 보인다. 컨소시엄을 형성해 국내 2위의 초고속 인터넷망 사업자인 하나로텔레콤을 인수한 데 이어 금융, 통신, 정보기술(IT), 의료 부문을 중심으로 추가 투자 대상을 물색 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제 막 생겨나고 있는 국내 사모펀드와 연계하는 방안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박 사장은 밝혔다. “한국 시장은 대단히 역동적이어서 앞날이 밝다고 본다. 기업들의 기술 수준이 높아졌고, 금융회사들도 많아 좋아졌다. 이런 추세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선 정부 정책의 확실성, 예측 가능성이 높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외국계 자본 대변하며 마음고생 “제일은행 매매차익은 위험에 대한 보상”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박병무(44) 사장 인터뷰를 앞두고는 두 가지 상반된 느낌이 교차했다. 언론에 나서기를 극도로 꺼리는 그를 만나게 된 기대감 한편으로, 솔직히 ‘좀 얄밉다’는 생각이 꼬물꼬물 피어올랐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미리 밝혀두자면, 사실 그건 제일은행 매매 과정에서 막대한 차익을 남긴 미국계 사모펀드의 한국 전초기지 수장이란 사실과는 전혀 무관한 감정이고, 도무지 ‘좌절’이란 걸 찾아보기 어려운 그의 이력 때문이었다. 서울대 수석입학, 아버지를 퇴직시키다?
박 사장은 한국 사회에서 출세의 보증수표쯤으로 통하는 서울대(법학과)를 수석입학(1980년)한 데 이어 대학 3학년 때는 최연소로 사법시험(24회)에 합격함으로써 학창 시절부터 ‘뉴스메이커’가 됐다. ‘보통 사람들’의 질시를 자아내기 딱 좋은 경력을 일찌감치 쌓은 것이다. 1994년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법학대학원) 졸업과 함께 미국 뉴욕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뒤에도 화려한 이력은 계속된다. 국내 최대 로펌인 김&장법률사무소에서 굵직굵직한 인수·합병(M&A)건을 맡음으로써 화제를 뿌린다. 대상(옛 미원)의 라이신(사료첨가 발육물질) 사업부 매각(인수자 독일계 바스프), 미국계 사모펀드 H&Q의 쌍용증권 인수, 뉴브리지캐피탈의 제일은행 인수, 한일·상업은행 합병, 동방페리그린의 미도파 인수, 한화종금 경영권 다툼…. 외환위기를 앞뒤로 터져나온 대형 인수·합병건은 거의 다 그의 손을 거쳤다. M&A 전문가라는 평이 나오는 게 무리가 아닌 셈이다.

서울대 수석입학과 최연소 사법시험 합격 등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박병무 사장. 외환위기의 앞뒤로 터져나온 대형 인수, 합병 건은 거의 다 그의 손을 거쳤다. (사진/ 박승화 기자)
“운이 좋았다”는 답변에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자, 그는 설명을 이어갔다. “당시는 본고사를 볼 때였는데, 수학이 유난히 어렵게 출제됐다. 공대생인 형(박병완 GM대우자동차 R&D담당 임원)한테 수학을 많이 배운 터여서 상대적으로 유리했던 것 같다.” 그 시절 다른 이들처럼 그 또한 국·영·수 과외를 받았다는 사실은 수석입학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솔직히 털어놓은 바 있다. ‘학교 공부만 열심히 했다’는 모범답안 대신 과외받은 일을 드러낸 순진함(?)은 그를 또 한번 화제의 인물로 부각시킨 동시에 뜻밖의 불행을 안겨준 빌미였다. 한국전력에 근무하던 그의 아버지가 퇴직 압박을 받아 결국 회사를 떠나야 했던 것이다. ‘공기업 다니는 사람이 어떻게 아들 과외를 시킬 수 있느냐’는 게 퇴직 압력의 이유였단다. 때는 바야흐로 서슬 퍼런 전두환 정권의 초창기였다. 그렇게 직장을 그만둔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죽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해 사시 최연소 합격을 이뤄냈다고 하니, ‘새옹지마’라고 해야 할까? 김&장 법률사무소에서 M&A전문가로 1980년대 암울했던 시대 상황을 떠올리면 그의 화려한 이력은 곧 곱지만은 않은 ‘범생이’ 이미지로 이어지는데, 사법고시 합격 뒤 그의 행보는 예상을 조금 벗어난다. 지금이나 그때나 성적 좋은 이들이 선택하는 판·검사의 길 대신 기업 경영쪽으로 관심을 돌린 것이다. 대학 졸업과 함께 연세대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마친 그는 군(해군 법무관) 제대 뒤 김&장법률사무소에 둥지를 튼다. 맡은 일은 주로 증권사와 자본시장 관련 업무였다. “대학 졸업 무렵만 해도 (주)대우, 삼성물산 같은 종합무역상사가 인기였고, 난 해외시장 개척이나 매니지먼트(기업 경영)에 관심을 두고 있던 터였다.” 법대에 입학한 사실과 잘 안 맞는 것 같다.
“법대로 가는 게 선택할 길이 많다고 봤다. 그렇게 권유하는 이들도 많았고…. 실제 당시에도 법대 나온 이들이 경제부처나 기업체에 많이들 있었다. 판·검사로 갈 생각을 아주 안 해본 건 아니고, 내게 더 맞는 게 경영쪽이라고 여겨 ‘김&장’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렇게 해서 들어간 김&장법률사무소는 그를 M&A 전문가로 키워준 터전이었다. “프로(전문가) 집단이 모여 있는 곳으로, 인적 구조가 좋아 아주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박병무 사장은 한국이 외국 자본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4월20일 뉴브리지캐피탈의 사회공헌기금 기증식에 참석한 박 사장(맨 왼쪽). (사진/ 연합)
“뉴브리지가 제일은행을 인수하던 때는 한국 경제가 (외환위기 충격으로) 최악의 상태였다. 외국자본 유치를 절실히 필요로 할 때였다. 제일은행을 인수한다는 건 굉장한 ‘리스크 테이킹’(위험부담)이었다. 한국 경제의 앞날에 대한 확신 없이는 내리기 어려운 결정이었다.” 그래도 한국 정부가 다급하고 절실한 처지에 빠진 것을 이용해 과도한 차익을 남겼다는 반감이 적지 않은데….
“당시 한국 정부는 뉴브리지 외 전세계 주요 투자기관들에 모두 초청장을 보냈다. 리스크를 안고 들어온 데가 저희뿐이었다. (제일은행 매매 과정에서 얻은) 차익은 그 위험부담에 대한 보상이라고 봐야 한다. 공적자금 투입과 관련한 논란도 많은데, 그건 뉴브리지 인수 이전의 일이었다. 사실 제일은행을 당시 곧바로 파산시켰다면 15조원가량을 부담했어야 한다는 추정도 있다. 뉴브리지를 통한 회생으로 공적자금 부담이 4조원 미만으로 낮아졌다. 세무조사와 관련한 사항에 대해선 ‘노코멘트’다.” 이처럼 뉴브리지의 투자 행위에 대해 적극적인 변호에 나서는 그에게서도 외국계 자본을 대변하면서 겪은 마음고생의 흔적은 언뜻언뜻 배어났다. “김&장에 있을 때는 ‘매판자본의 앞잡이’란 소리를 들었는데, 요새는 ‘투기자본의 앞잡이’라고 한다. (웃음) 외국자본을 무슨 ‘도깨비 뿔’ 달린 것처럼 보니…. 사실, 외국계 투자기관한테서 아직 배울 점이 많이 있다. 특히 금융 부문에서 그렇다. 그런 배움의 과정을 통해 사회가 성숙돼가는 거라고 본다.” 추가 투자 활동으로 화제 몰고 다닐 듯 박 사장의 뉴브리지캐피탈은 한국에서 추가적인 투자 활동에 나설 태세여서 앞으로도 화제를 몰고 다닐 것으로 보인다. 컨소시엄을 형성해 국내 2위의 초고속 인터넷망 사업자인 하나로텔레콤을 인수한 데 이어 금융, 통신, 정보기술(IT), 의료 부문을 중심으로 추가 투자 대상을 물색 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제 막 생겨나고 있는 국내 사모펀드와 연계하는 방안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박 사장은 밝혔다. “한국 시장은 대단히 역동적이어서 앞날이 밝다고 본다. 기업들의 기술 수준이 높아졌고, 금융회사들도 많아 좋아졌다. 이런 추세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선 정부 정책의 확실성, 예측 가능성이 높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