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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참여정부는 승기를 잡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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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1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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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대책]

핵폭탄급 한두개 빼고 쓸 만한 부동산 대책 다 선보여… 급등세는 진정됐으나 시장은 효과 의심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참여정부 들어 지금껏 시장에 출시된 부동산 대책들은, ‘1가구1주택 양도세 부과’나 ‘금리 인상’ 같은 핵폭탄급 한두개만 빼고 쓸 만한 카드는 이미 다 선보였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많은 부동산 대책들을 쏟아낸 건 전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카드를 다 써버려서 그런지 이제 “강남 재건축 승인이 이미 났더라도 재검토해서 유보할 수 있다”는 초강수까지 두고 있다. 경찰을 동원한 대대적인 ‘재건축 조합 비리 조사’, 세무당국을 동원한 ‘재건축 분양가 세무조사’ ‘안전진단 직권조사’ 등 강남 재건축 아파트값을 틀어막기 위한 전방위 압박을 구사하고 있다.

시장 한쪽에서는 “참여정부가 ‘조폭’ 스타일로 사유재산권을 침해하는 수단까지 동원하면서 광기를 보이고 있다”고 노골적으로 비판하기도 한다. 이에 맞서 노무현 대통령은 “아무리 어렵더라도 부동산을 통해 경기를 살리는 노력은 하지 않겠다”고 다시 한번 천명했다. 참여정부의 부동산시장 안정 의지에 대한 의구심이 ‘시장’에서 고개를 들 때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고삐를 죄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국가의 제도적 개입’과 ‘시장’ 사이의 한판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 개입이 그동안 시장 흐름을 얼마나 어디까지 꺾어놓았는지는 딱 부러지게 말하기 어렵다. 최근 부동산 세금대책이 또 나오고, 판교지역 분양도 10월로 연기된 것을 두고 “이는 싸움에서 정부 대책이 일단 코너로 몰렸음을 보여준 것”이라는 평가도 들린다. 힘에 겨운 정부가 일단 시간을 버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는 얘기다. 2003년 10·29 부동산안정 대책 이후 시장은 정부 대책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과연 참여정부는 부동산값을 안정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는 것일까?


최근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재건축을 둘러싼 집값 상승을 막는 데 집중돼 있다. 잠실지역 재건축 상담 장면. (사진/ 한겨레 김정효 기자)

#1. 과연 집값은 안정되고 있는가?

참여정부가 강력한 부동산 대책을 펴겠다고 선언했을 때, 시장에서는 “한국에서 부동산은 그 어떤 정책이라도 시장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고 말해왔다. 현실의 부동산 시장은 ‘의지’만으로 다스릴 수 없다는 건데, 단순화하면 ‘부동산 불패 신화’다. 한술 더 떠 “정부 대책이 오히려 시장의 내성만 더 키워서 집값을 되레 올려놓을 것”이라는 전망까지 심심찮게 들렸다. 그러나 간혹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아파트값이 큰 폭으로 올랐지만, 급등하던 집값은 진정됐다.

그런데 부동산 시장 ‘안정’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집값 폭등이 시작되기 이전인 2001년 수준으로 집값을 다시 떨어뜨리는 것이 안정인가, 아니면 현 수준에서 동결하거나 집값 오름세를 물가상승률 이내 수준으로 줄이는 것이 안정일까? 참여정부가 명쾌하게 안정이란 이런 뜻, 이라면서 ‘정책 목표’를 밝힌 적은 없다. 건설산업연구원 김현아 연구위원은 “경제성장률을 감안할 때 집값을 2001년 수준으로 원위치하려면 50% 이상 폭락해야 하는데, 그러면 아파트값이 반토막날 것이고 외환위기 때와 같은 쇼크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참여정부가 건설경기 후퇴를 감수하면서까지 부동산값 안정을 추구하고 있는 건 아니다. 삼성경제연구소 박재룡 연구위원은 “참여정부가 내세우는 안정의 목표가 모호하지만, 경제에 파장을 일으키고 금융시장 혼란으로 이어질 정도의 폭락은 원하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다. 가격 하락을 유도했지만 전국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크게 떨어지는 것을 유도했던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소폭 하락 또는 현 수준에 머무는 정도를 안정의 목표로 삼았을 것이란 얘기다.

집값 안정 여부는 현재로서는 점치기 어렵고, 앞으로 1∼2년 안에 뚜렷하게 판명될 공산이 크다. 촘촘한 세금망을 비롯해 그동안 나온 수많은 부동산 정책들이 다 함께 가동되면서 연쇄 효과를 얼마나 낼 것이냐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최근 “부동산 정책은 부동산 투기로는 이익을 얻지 못하도록 모든 제도와 정책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나중에 자신이 직접 아파트를 사고팔면서 보유세와 종합부동산세를 내고 실거래 가격으로 양도세 및 취득·등록세를 내고 나니 “시세차익이고 뭐고 따져보면 남는 게 거의 없더라”는 생각을 많은 사람들이 갖게 된다면 시장과의 싸움에서 정부가 승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박재룡 연구위원은 “제도적 틀은 일단 거의 갖춰졌다. 문제는 체감 정도다. 시장에 큰 충격을 줄 정도인지, 아니면 별것 아니군 하고 말 것인지 시장 참여자들의 체감 수준이 올해와 내년 안에 판가름날 것”이라고 말했다.

#2. 시장은 아직도 참여정부의 집값 안정 의지를 의심하고 있는가?

잠실 주공 3단지 재건축 현장. (사진/ 한겨레 김정효 기자)

물론 참여정부는 부동산 규제의 고삐를 전혀 늦추지 않고 있다. 그러나 내놓는 대책이 수백 가지에 이른다 해도 대책의 수가 곧바로 ‘집값 안정 의지’를 확인시켜주는 건 아니다. 참여정부의 부동산 전쟁은 ‘시장의 의심’과의 싸움이자 ‘심리적으로’ 시장을 제압하는 싸움이기도 했다. 그러나 안명숙 우리은행 PB사업단 부동산팀장은 “부동산투기에 대한 자금출처 조사를 봐도 늘 나오는 것이라서 그런지 예전과 달리 시장에 별다른 충격을 던져주지 못한다”며 “시장이 정책에 대해 신뢰하지 못하니까 정부가 자꾸 출처 조사를 꺼내들고, 시장에서는 ‘또 말로만 끝날 것’이라는 반응이 나온다”고 말했다. RE멤버스 고종완 대표는 “정부가 대책들을 한꺼번에 내놓지 않고 시장 상황을 봐가면서 집값이 들썩거리면 그때마다 찔끔질끔 내놓았는데, 그래서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게 된 점도 있다”고 말했다. 경기 부양과 규제 사이에서 정부가 왔다갔다 하는구나, 강력한 규제보다는 생색내기 아니냐는 의심이 시장에 퍼지도록 정부 스스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사실 재건축 개발이익환수제(임대주택 건설 의무화)도 한다 안 한다 갈팡질팡하다가 여론에 밀려서 결국 오는 5월19일부터 시행하게 됐다. 부동산 실거래값 신고에 관한 법률도 애초 올해 7월에 시행될 예정이었다가 내년 1월로 미뤄졌다.

시장의 의심은 특히 참여정부가 ‘행정중심복합도시’ ‘기업도시’ 등 각종 개발 프로젝트를 전국적으로 벌여놓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서울과 수도권 중심으로 아파트값 잡기에 나서면서 다른 쪽에서는 개발을 부추겨 집값·땅값 상승을 초래하는 이중적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물론 정부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종합부동산세 등 각종 대책들을 촘촘히 짰기 때문에 전국에 걸쳐 투기 수요가 기웃거릴 여지를 상당히 줄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삼성경제연구소 박재룡 연구위원은 “정부가 주도한 기업도시와 행정복합도시들이 부동산값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개발정책이 병행되면서 부동산 안정대책의 강도가 시장에서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부동산 거래 위축과 경기 회복이 지체되면 더 두고 볼 수 없어서 정부가 어쩔 수 없이 규제 완화로 돌아설 것”이라거나 “금리를 인상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대책도 무력할 것”이라는 말이 여전히 나돌고 있다.

#3. 정부 정책은 ‘강남 집값 잡기’에만 쏠릴 것인가?

최근 정부 정책은 강남지역만 집중적으로 때려잡는 쪽으로 가고 있는데, 바꿔 말하면 ‘재건축발 집값 상승’ 불길을 막는 데 맞춰졌다. 이에 대해 건설산업연구원 김현아 연구위원은 “강남 수요자들은 자식한테 집 하나 사주려는 게 상당수다. 따라서 금방 되팔 생각으로 보유하는 사람들도 아니고 단기간에 집값이 오르는 것에도 큰 관심이 없다. 또 여윳돈으로 집을 사는 사람들이고 세금 부담도 그들한테는 큰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특히 정부가 재건축 압박을 통해 분양을 지연시키고 사업을 늦춰온 결과 공교롭게 최근 대규모 재건축 단지의 사업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집값 상승을 초래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삼성경제연구소 박재룡 연구위원은 “저층 재건축에 이어 앞으로는 강남권 중층 아파트들이 참여정부를 괴롭히는 대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압구정동·잠원동 등지의 10층 안팎의 중층 아파트들은 초고층 재건축 붐이 불고 있는데, 안전진단을 통과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데도 초고층 소문이 퍼지면서 투기 수요가 몰리고 있다. 김현아 연구위원은 “지방에서 각종 개발 호재를 타고 분양가와 땅값이 급등하는 양상”이라며 “개발에 따른 토지 보상에서 나온 막대한 뭉칫돈들이 주변 부동산 시장으로 다시 몰려들면서 부동산 가격을 들쑤시고 있다. 땅값 동향은 데이터가 없어서 이슈화가 안 되고 있을 뿐이지 상승 추세가 강남 재건축 못지않게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국토가 투기판으로 변해갈 판인데, 강남 재건축만 옥죌 것이 아니라 지방 아파트 시장과 토지 시장으로 정부가 눈을 돌려야 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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