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만은 ‘갈짓자’를 면했다
등록 : 2005-05-18 00:00 수정 :
[부동산 대책]
“대통령이 부동산 정책 직접 챙긴다”는 의지 굳혀… 공급 확대보다는 수요 통제에 중점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지난해 8월11일은 참여정부 안에서 부동산 정책의 중심 축이 이동한 날로 기록돼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날 국민경제자문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앞으로 부동산 정책을 종합적으로 점검하고 일관성 있게 추진하라”며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위원장 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가 맡던 부동산 대책 창구를 국민경제자문회의로 옮기라고 지시했다(국민경제자문회의는 그 뒤 세 차례에 걸친 부동산 정책회의를 열어 올 5월 2주택자 양도소득세 실거래값 과세를 비롯한 이른바 ‘5·4 대책’을 내놓기에 이른다).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대체로 일정한 방향성을 띠었다는 평이다. 국세청 투기 단속반의 활동 모습. (사진/ 한겨레 김진수 기자)
중장기 일정표 제시해 차별화
당시 언론에선 경제정책의 축이 개혁주의자인 이정우 위원장에서 시장주의자인 이헌재 당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으로 옮아간 것이라고 입방아를 찧었지만, 빗나간 해석이었다. 재경부쪽에서 솔솔 피어오른 종합부동산세 연기를 비롯한 부동산 정책의 후퇴 목소리가 결국 관철되지 못한 데서 이를 엿볼 수 있다. 5·4 대책이 이정우 위원장(당시 정책실장) 주도의 10·29 대책(2003)과 맥을 같이한다는 평이 여기에 덧붙는다.
참여정부 초기부터 부동산 정책 실무를 주도적으로 이끌어온 청와대 관계자는 “부동산 대책 창구를 국민경제자문회의로 옮긴 것은 대통령이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으며, 한편으로는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이정우 위원장의 짐을 덜어준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부동산 대책 창구 이관 훨씬 전부터 부동산 정책만큼은 직접 챙긴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취임 직후인 2003년 4월2일 국회 국정연설에서 “집값·전셋값은 반드시 안정시키겠다. 직접 챙기겠다”고 말한 게 대표적인 예다. 2004년 8월23일 국무회의에선 “주택가격 안정정책은 다른 어떤 정책적 이익을 희생하더라도 최우선 과제로 대통령이 직접 챙기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부동산 대책 창구를 옮긴 것은 기조 변화의 낌새와는 무관하며 ‘직접 챙긴다’는 의지를 더욱 굳힌 조처였던 셈이다.
사실 부동산 정책을 청와대쪽에서 주도한 것은 과거 정부라고 다르지 않았다. 워낙 민심과 직결된 사안이었기 때문에 대통령의 손을 떠날 수 없었다. 부동산 보유세 인상은 김영삼 정권의 선거공약이었고, 김대중 정권에서도 출범 초기 대통령의 주요 지시사항일 정도로 막중한 과제였다. 그렇지만 두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경기 활성화 과제에 밀려 모두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노무현 정부 들어 과거와 다른 점이라면 중장기 일정표(로드맵)를 제시했다는 점이다. 지난 2003년 36% 수준이던 토지 과표 현실화율을 해마다 3%씩 올려 임기 말 50%까지 올릴 것이라고 예고했으며, 이번 5·4 대책에서도 이런 대목이 눈에 띈다. 보유세(재산세 및 종합부동산세)의 실효세율을 2005년 0.15%에서 2008년 0.24%, 2013년 0.5%, 2017년 1.0%로 단계적으로 높인다는 방안을 포함하고 있다. 이런 시간표 제시는 사전 예고로 조세 저항 완화를 꾀하는 동시에 지켜야 할 약속을 미리 제시함으로써 정책 후퇴의 통로를 스스로 차단하는 효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찔끔찔끔 내놓는 대책으로는 효과를 거둘 수 없고, 장기 계획을 내놓고 국민적 토론을 거쳐 방향을 잡아야 힘있게 추진할 수 있다”며 시간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공급 늘려도 투기 수요 넘쳐난다
그 때문이었을까. 참여정부의 전반적인 경제 정책을 두고는 ‘왔다갔다 갈지자’니 ‘왼쪽 깜빡이에 오른쪽 통행’이라는 비아냥이 무성하게 따라다닌 반면, 부동산 정책만큼은 비교적 일관성을 띠었다는 평이 많다. 전강수 교수는 “지난해 조금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전반적인 기조를 지키려 노력한 것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현 정부 부동산 정책에 비판적 견해를 드러낸 하성규 중앙대 교수도 “역대 정부와 비교해보면 애를 많이 쓴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고, 김윤상 경북대 교수는 “과거 정권에 견줘 의지가 확실하고 방향을 잘 잡고 있다”고 평가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부동산 문제는 직접 챙기겠다는 뜻을 강하게 드러냈다. (사진/ 한겨레 탁기형 기자)
청와대쪽은 이상적인 부동산 정책 모델로 ‘통제된 수요 속의 공급 확대’를 드는데, 지금까지 펴온 정책을 보면 ‘공급 확대’보다는 ‘수요 통제’에 중점을 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의 대표 격인 10·29 대책에서 이 특징이 잘 드러난다. 10·29 대책은 임대주택 확대 등 공급을 늘리는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으나, 기본적으로 보유세의 점진적 인상과 주택 과다 보유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강화가 두 축을 이룬다. 집을 보유하는 데 따른 세 부담을 늘리고 투기적 거래로 얻은 불로소득을 환수하겠다는 것으로, 집에 대한 투기적 수요를 억제한다는 게 기본인 셈이다. 이런 기조는 그 뒤 부동산 정책에 그대로 이어진다.
참여정부가 공급 확대보다는 수요 통제에 역점을 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경제원론대로라면 수요 통제 못지않게 공급 확대도 가격 안정에 필수적이지 않은가?
“일반적으로 공급을 늘리면 물건값이 떨어지지만,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은 그런 작동원리가 통하지 않습니다. 공급을 늘리면 도리어 수요가 폭발합니다.”(김수현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 기획운영실장)
왜 그럴까?
“막대한 부동자금이 대기하고 있는데다 초저금리 상태여서 부동산의 기대이익이 워낙 커 시장의 수요가 실수요를 반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건 바로 수요를 적절하게 조절할 제도가 갖춰지지 않은 데서 비롯됩니다.” 주택의 보유(재산세 및 토지세)·거래(양도세) 관련 세제망에 구멍이 뚫려 있는데다 불로소득 성격의 개발이익을 환수할 장치가 없다 보니 ‘거주의 필요’와 무관한 ‘투자(또는 투기)의 필요’에 따른 수요가 넘쳐난다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공급을 늘려봐야 부동산 시장 안정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투기 기회만 늘려준다는 게 청와대쪽의 진단이다.
5·4 대책이 끝은 아니다
이런 태도를 두고 일각에선 공급을 늘리지 않으면서 세금으로만 잡으려고 해봐야 ‘풍선 효과’(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으로 불거지는)로 결국 장기적으로는 값이 오를 수밖에 없다고 맞선다. 이른바 ‘시장을 이길 정부는 없다’는 논리다.
청와대쪽은 이에 대해 공급 실태를 제대로 살피지 않은 ‘비판을 위한 비판’이거나 ‘세제 강화에 딴지를 걸기 위한 기득권층 논리’라고 일축한다. 참여정부 들어 수요 통제만 해온 게 아니라 적정한 수준의 공급이 꾸준히 이어져왔다는 것이다. 주택보급률이 100%에 이른 상태에서도 연간 주택 공급 규모를 50만~60만호 수준으로 유지해온 것과 수도권에 8개 신도시를 건설 중인 것을 예로 든다. 김수현 실장은 “수요가 많은 분당·과천·목동 등을 보면, 실수요를 반영하는 전셋값은 그대로이거나 하락세라는 점에 비춰 거주 수요보다는 투자(또는 투기) 수요라고 볼 수 있다”며 ‘강남 대체 수요를 위주로 한 공급 확대 주장’의 허구성을 반박한다. 여기에 주택거래 신고 실적을 보면, 대부분 외지인의 인수라는 측면에서 볼 때도 투기 수요가 여전히 팽배해 있다는 설명이 덧붙는다.
청와대쪽은 5·4 대책으로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사실상 완결된 상태로 여기는 분위기다. 청와대 관계자는 “나올 만한 건 거의 다 나왔고, 이제 확실한 정착과 운영의 문제만 남았다”고 말한다. 이 관계자는 “5·4 대책을 완결형으로 여기는 것은 효과를 자신하기 때문”이라며 “‘이걸로도 안 잡히면 더 하라’는 게 대통령의 뜻이어서 경우에 따라선 추가 조처가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2008년 2월 만료)를 감안할 때 부동산 대책도 이제 ‘정치적 한계’에 이르러 더 이상 써먹을 카드가 없을 것이라는 일각의 해석은 오산이란 주장이다. 부동산 시장 안정만큼은 양보하지 않겠다는 참여정부의 의지가 시장에서 어떻게 관철될지 주목된다.
정부의 부동산 투기 단속에는 경찰까지 동원되고 있다. 재건축 비리와 관련해 압수된 계좌들. (사진/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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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 속의 ‘1가구 1주택 비과세’현행 부동산 세제가 안고 있는 약점의 핵심고리는 1가구 1주택 양도소득세 비과세 제도다.
1억원짜리 집 2채를 갖고 있다면 양도세 과세 대상이나 6억원짜리(6억원 이상은 과세 대상)라도 1채만 보유할 때는 매매 차익을 얻더라도 원칙적으로 세금을 물지 않는 현행 제도는 형평성 문제를 넘어 세제상 중대한 허점을 드러낸다. 집을 사는 쪽과 파는 쪽이 짜고 값을 거짓으로 신고할 강력한 욕구(인센티브)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매수자는 1주택이든 아니든 지방자치단체에 취득·등록세(지방세)를 물게 되지만, 파는 쪽은 1주택이면 원칙적으로 국세청에 신고하는 절차조차 없이 세금을 한푼도 물지 않는다. 이에 따라 취득·등록세를 아끼려는 매수자쪽에서 매도자와 짜고 이중계약서를 만들어 집값을 실제보다 훨씬 낮게 신고하는 것이다. 과세당국이 실거래값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건 여기서 비롯된 바 크다.
실거래값의 70~80%에 이른 국세청 기준시가가 고시되고 있어 실거래값을 매수자쪽에서 턱없이 낮게 신고할 수 없다고 하나, 대개 1년에 한두번 고시되는 기준시가로는 역동적인 실거래값을 제대로 반영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조세 전문가들은 1가구 1주택에 대해 소득공제 등을 통해 세금을 면해주더라도 세무당국에 신고는 하게 함으로써 과세 자료를 축적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왔다. 그래야 2주택 이상에 대한 실거래값 과세의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당국도 이런 지적에 공감을 표시하고 있으며, 김진표 부총리 시절 재정경제부는 이런 방침을 공식적으로 밝히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1가구 1주택 비과세제는 지금껏 성사되지 않고 있으며,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의 완결판으로 꼽히는 5·4 대책에서도 끝내 빠지고 말았다. 이는 정치적 부담 때문으로 풀이된다. 1가구 1주택에 대한 비과세제 폐지는 그 속내용과 달리 ‘집 1채 가진 서민층에게까지 양도세를 물리려 한다’는 것으로 잘못 읽혀지기 십상이기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 시장이 다시 불안해지면 주택 공급 문제와 함께 1세대 1주택 비과세제는 언제든 거론될 개연성이 높다.
노영훈 조세연구원 연구위원은 “일시적인 2주택자나 더 큰 집으로 옮겨가는 경우 등 실수요에 따른 양도 차익에는 과세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명백히 함으로써 제도의 취지를 제대로 알린다면 못할 게 없다”고 말했다. 노 위원은 “1주택이라도 고가이면 과세하겠다는 태도보다는 비과세제 폐지로 실거래값을 전반적으로 노출시킨다는 접근법을 써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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