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과 노조의 경영권 둘러싼 정면 충돌… 치명적 타격의 해결 실마리 보이지 않아  
   
  ‘데이콤을 사수하자!’ 
  데이콤 내부의 목소리가 아니다. 데이콤 노동조합 파업이 45일째를 맞던 지난 12월22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경제5단체장 회의에서 나온 말이다. 이날 경제5단체장 회의는 은행 파업사태를 주요의제로 삼아 ‘정부의 강력한 대처’를 촉구하는 자리였으나, 이에 곁들여 데이콤 노조에 대해서도 공세를 퍼부었다. 김각중 전경련 회장을 비롯한 5단체장들은 “데이콤의 단체협약에는 인사를 노조와 협의하도록 하는 등 기업의 인사·경영권을 침해하는 내용이 들어 있고 상당수 공기업도 마찬가지”라며 “정부가 이런 상태를 방치하면 민간기업의 경영이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즉 데이콤 노조가 넘보고 있는 경영권을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인 셈이다. 물론 여기서 경영권의 주체는 데이콤의 지분 56.1%를 가진 LG그룹이다. 경제단체장들은 이날 회의에서 모은 의견을 3당 대표들에게 직접 전달하고 대국민홍보와 정치권 설득 작업도 펴기로 했다. 데이콤 노조에 총자본의 공습경보가 울린 것이다.  
   
  단체협약안 조항이 직장폐쇄로 이어져 
   
 
 
  지난 11월7일부터 시작된 데이콤 노조의 파업은 여느 기업들의 노사분규와는 성격이 다르다. 기간통신사업자로서 서비스 이용객의 불편을 감수하고서도 회사 설립 이래 최장기 파업기록을 세울 정도로 노사가 정면충돌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파업의 강도로 봐서는, 상대방을 반드시 꺾지 않으면 노사 모두에 사활이 걸린 쟁점을 놓고 다투는 듯싶다. 하지만 우습게도(?) 종래 단체협약의 두 가지 조항이 데이콤 노사분규의 불씨이다. 문제의 단체협약안은 ‘회사 휴·폐업과 분할·합병 등 조합원의 신분에 변동을 초래할 경우’(제9조)와 ‘인사제도 및 관련규정을 제정 또는 개정으로 조합원의 신분변동 때 노동조합과 사전합의 한다’(제30조)는 조항이다. 회사쪽에서는 이 조항이 “기본적으로 인사권과 경영권에 대한 침해이며 급변하는 시장환경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어렵게 하는 구조조정의 장애물”이라며 ‘사전합의’를 ‘사전협의’로 바꾸자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노조는 “LG그룹이 데이콤 독립경영의 한축인 노조의 경영감시체제를 무력화하면서 연봉제를 관철하려는 의도”이기 때문에 한치도 물러설 수 없다며 맞서고 있다. 회사쪽의 대응도 만만치 않다. 파업 한달째(12월7일)를 맞아서는 직장폐쇄라는 극약처방까지 내렸다. 문제의 단협안 개정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보여준 셈이다. 
  그러자 데이콤 노조는 거리로 나섰다. 한현갑 노조 사무처장은 “노조에서는 일단 장기파업을 끝내기 위해 모든 요구안을 자진철회했으나 회사쪽에서는 단 한 발자국도 물러나지 않겠다는 자세를 고수하고 있다”며 “이 때문에 LG그룹의 부실 떠넘기기와 부당한 경영간섭을 국민들에게 알리는 거리투쟁을 전개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데이콤 노조는 이번 노사분규가 ‘독립경영의 유지’냐 아니면 ‘재벌경영에 편입’되느냐의 중대한 갈림길로 보고 있다. 
  데이콤은 엄연히 LG그룹이 56.1%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주인인데, 어떻게 법적 권한도 없는 노조에서 독립경영을 요구할 수 있는가? 당연히 제기할 수 있는 물음이다. 재벌들로서는 울화통이 터질 일이다. LG그룹 구조조정본부 관계자도 “도대체 주인이 인사권을 행사하는 데에도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데이콤의 독립경영은 LG그룹이 노조는 물론 국민들에게 한 약속이다. 배경을 알려면 9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올라가야 한다.  
   
  재벌경영과 독립경영의 피할 수 없는 대결 
   
  정부 재투자기관이었던 데이콤은 93년 민영화한 뒤부터 재벌들이 경쟁적으로 눈독들이는 대상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정부의 지분제한이 풀리지 않았고 재벌들끼리도 신사협정을 맺어 누구도 독식을 할 수 없게 돼 있었다. 특히 LG는 96년에 개인휴대통신(PCS) 사업권을 따낼 때 구본무 회장이 정보통신부에 ‘데이콤 지분 5% 미만 보유 및 경영권 확보시도 금지각서’까지 써줬다. 그러나 계열 금융회사와 관계사들을 총동원해 야금야금 지분을 끌어모은 LG그룹은 99년에 반도체를 현대에 넘겨준 다음부터 데이콤 인수의지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정부는 구 회장의 각서를 ‘없었던 일’로 해주고, 금융감독원은 LG가 데이콤 지분확보 과정에서 위장계열사를 동원한 주식불공정거래 혐의를 포착해놓고서도 그냥 넘어가 반도체 빅딜에 대한 보상이 아니냐는 의혹을 사기도 했다. 
  어쨌든 이래저래 여론의 눈총이 따갑게 느껴지자 LG는 올 초부터 스스로 “데이콤은 독립적인 전문경영인체제를 유지한다”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지난 3월 데이콤 인수를 확정하는 주총을 열기 직전에는 노조에 ‘LG계열사와의 인적교류 제한’을 합의해주는가 하면, 참여연대와는 ‘경영투명성 및 기업지배구조개선안’에 전격 합의해 신선한 충격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안전장치에도 불구하고 데이콤이 LG에 넘어간 뒤로는 재벌식 경영의 폐해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는 게 노조쪽 시각이다. 데이콤 노조의 강효철 교육선전국장은 “LG그룹의 직·간접적인 경영개입에 따른 손실이 올 한해에만 4800억원에 이르러 올해 회사 설립이해 최대 규모인 200여억원의 적자가 예상된다”면서 “이는 어슬픈 주인 찾아주기 명분으로 독립경영기업을 재벌에게 넘긴 결과”라고 단정했다. 
  데이콤 노조는 LG의 경영참여에 따른 부실화의 사례를 여러 가지 제시하고 있다. 우선 3년간 누적적자가 311억원이나 되는 부실사업 ‘채널아이’를 LG가 261억원의 프리미엄까지 얻어 600억원이나 받아먹고 데이콤에 떠넘겨 동반부실을 초래한 것을 부당내부거래로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했다. 또 투자재원 조달을 위해 2000년에 실시할 계획이었던 3500억원의 유상증자와 하나로통신 지분 2천만주 매각계획도 LG그룹의 거부로 무산됐다는 게 노조쪽 주장이다. 데이콤은 유상증자와 하나로통신 주식매각 불발에 따른 투자재원 조달차질을 회사채 발행으로 메웠다. 그만큼 차입금이 늘어나 99년 말 84%에 불과하던 데이콤 부채비율이 2000년 말에는 200%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렇다면 LG의 데이콤 인수 뒤 성과는 없었을까? 노조는 “애초 2005년까지 총 6조5천억원을 투자하겠다고 약속해놓고 한푼도 내놓지 않았다”며 “거대 공기업 한국통신과 경쟁해야 하는 데이콤으로서는 재벌에 편입될 경우 신규 투자자금 조달측면에서 유리해질 것으로 기대했는데 오히려 거꾸로 데이콤이 LG에 보태주고 있다”고 한탄했다. 
  노조의 주장에 대해 데이콤 경영진쪽에서도 조목조목 반박논리를 내세운다. 데이콤 경영진은 반박문에서 “채널아이 인수가격은 외부 감정평가회사와 회계법인의 공정한 평가결과에 따라 정해진 것이며 유상증자와 하나로통신 주식매각 차질은 LG그룹의 반대가 아니라 증시침체라는 불가피한 상황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부채비율 상승은, 차입금 증가보다는 하나로통신 주식가격의 급락에 따른 자본조정이익의 감소 영향이 더 크다는 게 회사쪽 설명이다. 다만 LG그룹의 투자약속 불이행과 관련해서는 “대주주로서 데이콤의 투자재원 조달과 운용에 협조한다는 것이지 직접 수조원을 쏟아붓겠다는 약속은 한 적 없다”며 다소 궁색한 논리를 펴고 있다. 
   
  누구도 달가워하지 않을 벼랑 끝 대치 
   
  책임소재를 명확히 가리기는 어렵지만 데이콤이 LG에 넘어간 뒤 1년여동안 기업가치가 크게 떨어진 것은 분명하다. 99년 말 최고치 68만원선이던 데이콤 주가는 3만원대로 떨어져 상장기업 가운데 가장 큰 낙폭을 보이고 있다. 한국신용정보가 지난해 11월 신용등급을 떨어뜨린 데 이어 한국신용평가와 한국기업평가 등 다른 신용평가회사들도 회사의 직장폐쇄 조처 뒤 신용등급 하향검토 대상에 올려놓았다. 장기간 노사갈등으로 불확성이 커졌고 서비스차질에 따른 고객이탈과 기업가치 하락이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다. 
  데이콤은 노조가 96년부터 우리사주조합 지분을 적극 활용해 경영참여활동을 활발하게 펼쳤던 기업이다. 노사동수로 직장발전협의회를 구성해 거의 모든 경영정보를 나누고, 경영상황이 악화했을 경우에는 노조에서 자발적인 고통분담 노력도 보였다. 그런데 이런 노사문화가 LG에 경영권이 넘어간 다음 경영진으로서는 ‘도저히 눈뜨고 봐줄 수 없는 행태’가 되고 말았다.  
  데이콤 노사는 당장 경영현안이 될 수 없는 문제를 놓고 벼랑 끝 대치를 지속하고 있다. 양쪽 모두 ‘회사의 사활이 걸려 있다’는 명분을 내세운다. 분규가 장기화하면 회사에 치명적인 타격을 준다는 사실을 노사 양쪽이 잘 알고 있으면서도 타결의 실마리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누구를 위한 기업인가’에서 양쪽의 근본적인 시각 차이가 갈등의 골을 도저히 메울 수 없게 하고 있다. 
    박순빈 기자sbpark@hani.co.kr 
 
    
 
 
 
 
 

사진/LG그룹은 90년대 중반 데이콤의 독립경영을 약속했었다. 회사의 사활을 걸고 노사가 맞선다?(강창광 기자)

사진/LG그룹쪽은 데이콤 파업 한달째를 맞아 직장폐쇄를 단행했다.(강창광 기자)

사진/데이콤 노동자들이 직장폐쇄에 항의 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강창광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