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캐피털이 출자자 모아 집중 투자… 경쟁력 강화 기대 속에 거품 조장 우려도 
   
   
  (주위를 둘러보며)“그 밖에 다른 의견은 없으십니까. 없으면… 공식적인 결성식은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땅-땅-땅.” 
  소빅창업투자(주) 박현태 대표의 선언과 함께 영화사업에 대한 투자를 주업으로 삼는 또 하나의 벤처투자조합이 생겨났다. 일반인에겐 무슨 낯선 기호의 합성어인 듯한 ‘소빅1호 벤처투자조합’(일명 소빅멀티미디어투자조합). 소빅은 ‘소프트 비전 코리아’에서 따온 말이다. 
  소빅멀티미디어투자조합은 지난 12월21일 여의도 KTB네트워크빌딩 5층에서 주요 조합원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결성 총회를 열고 본격 출범을 선언했다. 이번 조합출자 규모는 모두 100억원 수준이며 중소기업진흥공단, 영화진흥위원회, 영화·음반제작사인 케이엠컬쳐(주) 등이 주요 조합원으로 참여했다. 조합결성을 주도한 소빅창업투자도 10억원의 자금을 투입했으며 조합 출자금의 운용을 책임지게 된다. 소빅1호 벤처투자조합은 앞으로 5년간 존속하게 되며 출자금의 50%를 영화사업에 투자할 계획이다. 
   
 
일신창투의 ‘대박’ 이후 대세 형성 소빅창업투자 같은 벤처캐피털(창업투자) 회사들의 영화사업 투자가 줄을 잇고 있다. 다수의 출자자를 끌어들여 조합을 결성하는 방식으로 투자 규모를 크게 키워 영화쪽을 넘보는 등 새로운 움직임도 두드러지다. 코스닥시장 침체가 길게 이어지면서 일반 벤처기업에는 투자할 의욕을 잃은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소빅창투에 앞서 드림벤처캐피탈은 지난 6월 역시 영화관련 투자조합인 ‘드림영상IT벤처1호’를 띄웠다. 드림영상벤처조합에는 중소기업진흥공단, 영화진흥위원회 등이 참여했으며 조합 출자금은 135억원 수준이다. 같은 달에는 코웰창투가 100억원 규모의 영화관련 투자조합 ‘코웰멀티미디어’를 결성했으며 12월 들어 튜브인베스트먼트, MVP창투, 일신창업투자(주), 드림벤처캐피탈, 벤처플러스 등도 영화 및 애니메이션 투자조합을 잇따라 출범시켰다. 벤처캐피털회사가 영화사업 투자에 본격 나선 것은 지난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물론 그 이전에도 몇몇 벤처캐피털이 영화사업에 손을 대긴 했으나 규모가 미미했고 눈에 띄는 성공작이 없었다. 그러다 95년 일신창업투자가 <은행나무침대>에 투자해 이른바 ‘대박’을 터뜨리면서 사실상 창업투자사의 영화투자 1호로 기록됐다. 일신창투는 당시 4억5천만원을 투자해 100%에 이르는 수익률을 올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신창투의 영화사업을 주도했던 김승범 책임조사역은 그뒤 독립해 영화 배급·제작사인 튜브엔터테인먼트를 차려 대표로 취임했다. 김승범 대표는 현재도 영화계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이 만만치 않다고 한다. 영화를 고르는 안목도 안목이려니와 튜브엔터테인먼트의 지난해와 올해 투자규모가 전체적으로 400억원에 이른다는 사실에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일신창투가 영화사업에 투자하기 전 국내 영화산업에 대한 투자는 삼성, 대우, SK 등 재벌회사들이 주도하는 양상이었다. 이들 재벌은 자신들의 TV·비디오 등 전자제품(하드웨어)과 영화라는 소프트웨어(영화·비디오 판권 등)를 엮을 경우 적지않은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잇따라 영화분야에 진출했지만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았다는 평이다. 재벌들이 너도나도 뛰어드는 바람에 외화수입 값만 왕창 올려놨다는 나쁜 인상만 남겼을 뿐이다.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 바람 속에서 이들 재벌은 대부분 영화사업에서 손을 떼 지금은 제일제당(CGV극장사업, CJ엔터테인먼트), 동양(메가박스 극장사업), 삼성(삼성벤처캐피탈) 정도가 남아 있을 뿐이다. 외환위기 이후 재벌들이 떠난 뒤 생겨난 공백은 주로 벤처캐피털 회사들로 채워졌다. 올해 들어 코스닥 시장이 극심한 침체를 겪으면서 갈 곳을 잃은 벤처캐피털 자금이 영화사업 부문으로 대거 밀려들면서 이런 경향은 더욱 뚜렷해졌다. 벤처캐피털을 중심으로 한 조합결성 움직임은 요즘 들어 두드러진 새로운 양상이다. 김승범 튜브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영화 제작에 들어가는 자금의 70∼80%는 벤처캐피털에서 나온다고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성공사례는 극소수, 그래도 가능성 높다
  벤처캐피털의 잇단 영화 투자는 크게 두 가지 점에서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영화투자로 기대만큼 돈을 벌 수 있을까 하는 점과 한편으로 영화계에선 이를 어떤 눈길로 바라보고 있을까 하는. 
  영화 투자로 재미를 본 건 <은행나무침대>의 일신창투만이 아니다. 거금을 들여 히트한 상당수 한국영화 뒤에는 벤처캐피털의 자금력이 배경으로 깔려 있다. 지난 99년 <쉬리>에 4억원 정도를 넣어 8억원에 이르는 순수익을 거둔 산은캐피탈, <공동경비구역JSA>에 8억원을 투자해 100%를 웃도는 수익률을 바라보고 있는 KTB네트워크 등이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물론 이런 성공적인 예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한 작품으로 재미를 봤더라도 다른 여러 편에서 손실을 입어 창투사 전체로는 수익률이 낮은 경우도 많다. <쉬리>로 적지않은 수익을 거둔 산은캐피탈도 다른 영화들에서는 별 실적을 거두지 못해 영화사업에서 거둔 수익이 신통치 않았다는 분석이다. 나머지 벤처캐피털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정설이다. 
  그럼에도 벤처캐피털 회사들은 영화사업에 대한 전망을 비교적 밝게 보고 있다. 이는 마땅한 투자처가 없는 금융환경과 맞물려 벤처캐피털 자금을 영화 분야로 이끄는 요인이 되고 있다. 
  <쉬리>에 대한 투자를 주도했던 산은캐피탈의 윤정석 차장은 “정부에서도 영화분야를 지식기반산업으로 여겨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데다 영화인들 스스로도 노력을 많이 하고 있어 영화산업의 앞날은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윤 차장은 “영화는 수출지향적인 면이 강한데다 캐릭터산업 등 연관되는 분야도 많아 성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케이엠컬쳐 박무승 부사장도 “생활 수준이 높아질수록 영화를 비롯한 오락 산업이 부각된다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영화의 경우 즐기는 데 그다지 큰돈이 들지 않아 경기침체기에도 꾸준한 성장률을 유지한다”고 지적했다. 외환위기가 터진 뒤에도 영화 관람객 수가 줄지 않고 도리어 늘어난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는 설명이다. 
  다만, 영화에 대한 투자 역시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와 마찬가지로 리스크(위험)가 높다는 점은 분명히 인식하고 있으며 이에 따른 대응책이 바로 투자조합 결성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러 투자자들을 끌어들여 조합을 결성하는 방식에선 리스크가 분산된다는 것이다. 조합결성 방식에선 또 자금운용을 책임지는 집행조합원과 공적인 기관이 손실금 충당에서 우선순위에 서게 됨으로써 일반 조합원은 덜 위험하다는 장점도 있다. 
  예를 들어 출자규모 100억원인 소빅벤처투자조합의 경우 소빅창업투자 및 중소기업진흥공단이 각각 10억원, 30억원의 출자금을 대고 손실금 충당에서 우선순위에 서게 된다. 따라서 소빅조합이 40억원 이상의 손실을 입지 않는 한 나머지 조합원은 적어도 원금은 까먹지 않게 되는 것이다. 대신 집행조합원은 목표수익률(연평균 15%) 초과 수익의 20%를 성과보수로 지급받도록 돼 있다. 이런 자금조달 구조는 대규모 자금을 손쉽게 끌어들이는 지렛대 구실을 하고 있다. 
   
  자금이 한순간에 빠져나가지 않는다면… 
   
  이처럼 벤처캐피털을 중심으로 한 금융자본이 영화산업 자금줄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데 대한 영화계쪽 반응은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자금조달이 쉬워져 그만큼 한국영화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것이란 기대 한편으로는 대규모 자금이 밀물처럼 들어왔다 한순간에 빠져나갈 경우의 후유증을 우려하는 시각도 많다. 
  CJ엔터테인먼트 이강복 대표는 “벤처캐피털 자금이 투자할 데가 마땅치 않아 영화쪽으로 몰려오고 있는데, 오랫동안 이 바닥에서 주류로서 ‘스테이하면’(머물면) 몰라도 단기수익을 좇아 대거 들어온 자금이 거품을 조장할 수도 있다”도 말했다. 이 대표는 “한해 쏟아지는 영화 50편 가운데 성공하는 것은 한두편에 불과할 정도로 깨질 확률이 높은 분야”라고 강조했다. 이런 분야에서 단기수익을 노리는 벤처캐피털이 오래 잠겨 있기 어렵다는 걱정이 깔려 있다. 
  이런 우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영화산업 자금줄의 주류는 어느덧 벤처캐피털이 쥐고 있는 게 현실이 됐다. 
  김승범 튜브엔터테인먼트 대표는 “투자자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어느 업종이나 마찬가지로 장기투자할 수 없는 게 자본의 속성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김 대표는 다만, 영화는 투자대상으로 좋은 산업이므로 투자조합 결성에 이어 아예 영화제작사의 지분을 인수하는 방식의 장기적인 투자 경향이 강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영배 기자kimyb@hani.co.kr 
 
   
 
 
 
 
 

사진/마땅한 투자처가 없는 벤처캐피털 지금이 영화사업 부문으로 대거 밀려들고 있다. 사진은 소빅멀티미디어 투자조합 결성식 모습.(이용호 기자)
일신창투의 ‘대박’ 이후 대세 형성 소빅창업투자 같은 벤처캐피털(창업투자) 회사들의 영화사업 투자가 줄을 잇고 있다. 다수의 출자자를 끌어들여 조합을 결성하는 방식으로 투자 규모를 크게 키워 영화쪽을 넘보는 등 새로운 움직임도 두드러지다. 코스닥시장 침체가 길게 이어지면서 일반 벤처기업에는 투자할 의욕을 잃은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소빅창투에 앞서 드림벤처캐피탈은 지난 6월 역시 영화관련 투자조합인 ‘드림영상IT벤처1호’를 띄웠다. 드림영상벤처조합에는 중소기업진흥공단, 영화진흥위원회 등이 참여했으며 조합 출자금은 135억원 수준이다. 같은 달에는 코웰창투가 100억원 규모의 영화관련 투자조합 ‘코웰멀티미디어’를 결성했으며 12월 들어 튜브인베스트먼트, MVP창투, 일신창업투자(주), 드림벤처캐피탈, 벤처플러스 등도 영화 및 애니메이션 투자조합을 잇따라 출범시켰다. 벤처캐피털회사가 영화사업 투자에 본격 나선 것은 지난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물론 그 이전에도 몇몇 벤처캐피털이 영화사업에 손을 대긴 했으나 규모가 미미했고 눈에 띄는 성공작이 없었다. 그러다 95년 일신창업투자가 <은행나무침대>에 투자해 이른바 ‘대박’을 터뜨리면서 사실상 창업투자사의 영화투자 1호로 기록됐다. 일신창투는 당시 4억5천만원을 투자해 100%에 이르는 수익률을 올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신창투의 영화사업을 주도했던 김승범 책임조사역은 그뒤 독립해 영화 배급·제작사인 튜브엔터테인먼트를 차려 대표로 취임했다. 김승범 대표는 현재도 영화계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이 만만치 않다고 한다. 영화를 고르는 안목도 안목이려니와 튜브엔터테인먼트의 지난해와 올해 투자규모가 전체적으로 400억원에 이른다는 사실에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일신창투가 영화사업에 투자하기 전 국내 영화산업에 대한 투자는 삼성, 대우, SK 등 재벌회사들이 주도하는 양상이었다. 이들 재벌은 자신들의 TV·비디오 등 전자제품(하드웨어)과 영화라는 소프트웨어(영화·비디오 판권 등)를 엮을 경우 적지않은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잇따라 영화분야에 진출했지만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았다는 평이다. 재벌들이 너도나도 뛰어드는 바람에 외화수입 값만 왕창 올려놨다는 나쁜 인상만 남겼을 뿐이다.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 바람 속에서 이들 재벌은 대부분 영화사업에서 손을 떼 지금은 제일제당(CGV극장사업, CJ엔터테인먼트), 동양(메가박스 극장사업), 삼성(삼성벤처캐피탈) 정도가 남아 있을 뿐이다. 외환위기 이후 재벌들이 떠난 뒤 생겨난 공백은 주로 벤처캐피털 회사들로 채워졌다. 올해 들어 코스닥 시장이 극심한 침체를 겪으면서 갈 곳을 잃은 벤처캐피털 자금이 영화사업 부문으로 대거 밀려들면서 이런 경향은 더욱 뚜렷해졌다. 벤처캐피털을 중심으로 한 조합결성 움직임은 요즘 들어 두드러진 새로운 양상이다. 김승범 튜브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영화 제작에 들어가는 자금의 70∼80%는 벤처캐피털에서 나온다고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성공사례는 극소수, 그래도 가능성 높다

사진/영화에 대한 투자는 위험이 크지만 연관 분야가 많아 성장 가능성이 높다. 영화를 고르는 안목이 탁월하다는 평을 받고 있는 김승범 튜브엔터테인먼트 대표.(이정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