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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카드사업 넘보는 재벌의 야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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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2-2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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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롯데 현대 등 진출 위한 수순 밟아… ‘공적자금 절약론’ 속에 시장 질서 문란 우려도

(사진/재벌들의 카드업 진출이 잇따를 전망이다. 외환은행이 구조조정 차원에서 매물로 내놓은 외환카드)
서울 남대문로5가 남산그린빌딩 4층, 삼성동 성담빌딩 14층, 여의도 현대투신(옛 국민투신)빌딩 8층. 신용카드업 진출을 노리는 재벌들의 전초기지다.

힐튼호텔 아래쪽에 있는 남산그린빌딩에는 SK계열사인 SK캐피탈이 둥지를 틀고 카드업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SK는 평화은행 카드사업 부문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카드업에 뛰어든다는 구상을 갖고 있으며 이미 양해각서(MOU)까지 체결한 상태다.

성담빌딩에 입주해 있는 롯데캐피탈은 카드사업부를 중심으로 롯데그룹의 카드사업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현대투신건물에는 할부금융 업체인 현대캐피탈이 자리잡고 있으며 현대자동차그룹의 카드업 진출을 이끌고 있다.

초호황 누리는 사업을 재벌이 마다하랴


현재 7개 신용카드사 가운데 재벌 계열은 LG(LG캐피탈)·삼성(삼성카드)·동양(동양아멕스카드)·대우(다이너스) 등 4곳이다. 이중 아멕스나 다이너스는 매각대상으로 알려져 있어 LG, 삼성 2곳이 명실상부한 재벌 계열로 분류된다. 이들 두 회사는 은행계 통합카드인 BC카드를 빼곤 1, 2위 다툼을 벌이고 있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에는 SK, 롯데와 현대가 동시에 신용카드업 진출을 추진하고 있어 재벌계 위주의 업계 판도가 더욱 굳어질 것이란 전망을 낳고 있다.

재벌들이 신용카드업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은 물론 돈을 벌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현재 신용카드업은 돈을 잘 버는 정도가 아니라 초호황을 누리고 있다.

카드업계에 따르면 BC·LG·삼성·국민 등 신용카드 회사들은 지난 3분기(1∼9월)까지 총 8815억원의 순이익을 올려 이미 99년 한햇동안 순익 2421억원(다이너스카드 제외)의 3배를 훨씬 웃돌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회사별 평균 순익은 404억원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3분기까지만 해도 1259억원에 이르고 있다.

카드 이용금액도 147조88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252.4% 불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0월 이후에도 큰폭의 증가세를 보이고 있어 올해 전체로는 순이익 1조원, 이용금액 200조원 돌파가 가능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올 들어 카드복권추첨제가 도입되고 연말소득 공제혜택을 주는 등 신용카드 활성화 정책에 힘입어서다. 전자상거래가 확산되고 있는 것 또한 신용카드업 활황에 크게 이바지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SK를 비롯한 재벌들로선 다른 계열사와 카드사를 엮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정유회사·정보통신(SK), 백화점(롯데), 자동차(현대) 등 관련 계열사의 제품과 서비스 이용 고객들의 일부만 끌어들여도 카드업계에서 터전을 닦는 게 어렵지 않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현금을 굴리는 카드사가 다른 계열사를 도울 수 있는 힘을 발휘할 수도 있다. SK가 평화은행의 카드업 영업권 프리미엄으로 무려 3200억원을 제시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SK 등 재벌들은 이르면 95년부터, 늦어도 97년 이후부터 전담팀을 두고 신용카드업 진출을 꾸준히 준비해왔다. 하지만 금융감독 당국의 허가를 받지 못해 쉽사리 꿈을 이룰 수 없었다.

신용카드업에 새로 진출하려면 관련법(여신전문금융업법)에 제시된 요건을 갖추고도 감독당국의 인가를 받아야만 한다. 카드업을 겸영하고 있는 은행의 신용카드사업 부문을 인수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SK가 평화은행 카드사업 부문의 자산(매출채권 등)을 인수할 수는 있어도 카드업에 대한 면허 자체는 사들일 수 없으며 금융감독위원회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 중고자동차를 살 수는 있어도 그 자동차 소유자의 운전면허증을 살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외환카드 등 독립된 카드사의 주식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진출하는 경우는 원칙적으로 인가 절차가 필요없지만 금융기관의 ‘주인’이 바뀌는 일이어서 이 또한 감독당국의 입김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

금융당국은 그동안 신용카드업 신규진출을 억제해왔다. 카드업 겸영 은행 20개를 포함하면 무려 27개사가 난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당 경쟁을 불러일으키고 금융질서를 어지럽힐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또 신규 진출을 추진하고 있는 곳이 모두 재벌이고 이에 대한 여론의 눈길이 따갑다는 점도 부담 요인으로 작용했다.

겉으론 은행 부실 해소… 외국기업들도 눈독

(사진/카드사업은 열려라 참깨인가.정부의 활성화 정책에 힘입어 신용카드업은 초호황을 누리고 있다)
그렇지만 최근 들어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평화, 외환 등 겸영 방식 또는 독립된 자회사를 통해 카드업을 영위하고 있는 은행들이 구조조정 압박을 받아 카드사업 부문(또는 카드 자회사)을 팔아야 할 처지에 놓여 있는 게 재벌들의 신규진출에 훌륭한 명분을 만들어주고 있다. 신규 진출이 아니라 기존사를 인수함으로써 카드업에 나선다는 점에서 과당경쟁이란 비판도 설득력을 잃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부실 은행들이 카드사업을 팔아 공적자금을 한푼이라도 더 절약해야 한다는 명분도 덧붙는다.

금융당국의 방침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언론보도에선 허용과 불허 사이에서 왔다갔다 한 듯이 비쳐지기도 했지만 기존사 인수를 통한 진출이라면 재벌이든, 외국계이든 허용해준다는 쪽으로 정리돼 있다.

금감원의 정기승 비은행감독국장은 “구조조정에 도움이 되는 경우에 한해 카드업 진출을 허용해준다는 방침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정 국장은 “재벌들의 카드업 진출을 무조건 나쁘게만 볼 수는 없다. 다만, 아무 기여하는 바 없이 카드업에 새로 들어오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일 뿐이다”고 덧붙였다.

이런 점에서 볼 때 SK의 카드업 진출은 시간 문제일 뿐 성사되는 데 별다른 걸림돌이 없어보인다. 평화은행 카드사업 부문을 인수하는 데 무려 3천억원이 넘는 가격을 제시해놓고 있어 그만큼 공적자금이 절약된다는 점에서다. 롯데는 외환카드를 인수한다는 방침 아래 협상을 벌이기도 했으나 가격이 맞지 않아 난항을 겪고 있다. 외환카드는 외국계 은행에 인수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현대는 자동차 할부금융을 주업으로 삼고 있는 현대캐피탈이 신용카드업 인가를 받는 방식을 통한 진출을 노리고 있다. 이른바 신규진출이다. 현대캐피탈 함정식 기획실장은 “여신전문금융업법상 인가기준을 충족하고 있으며 카드업 진출에 드는 자금은 기존의 자본금으로 충분히 메울 수 있다”고 자신했다.

이에 대해 금감원의 시각은 부정적이다. 금감원 당국자는 “카드업 인가 여부는 요건의 문제가 아니라 감독정책의 문제”라며 “구조조정에 기여하는 바 없이 새로 카드업에 진출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란 방침을 거듭 강조했다. 현대가 추진하는 진출 방식은 평화은행 카드사업 부문이나 외환카드 인수를 통한 것과 달리 카드시장에 회사 1개를 더 보태는 것으로 과당 경쟁의 한 요인이 될 뿐 아니라 더욱 큰 원칙인 ‘공적자금 절약론’과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왜 롯데가 돈이 적게 드는 방법(캐피탈이 인가를 받는)을 놔두고 막대한 자금이 드는 외환카드 인수를 시도했겠느냐는 반문도 덧붙는다.

현재 신용카드 진출을 꾀하고 있는 곳으로는 이들 대기업그룹뿐만이 아니다. 금융계에서는 동부와 금호그룹도 신규진출을 모색중이라는 소문이 나돈다. 또 홍콩상하이, 도쿄미쓰비시 등 외국계 은행들도 신용카드업에 군침을 흘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 구조조정기를 맞아 팔려는 데도 많고 살 쪽도 널려 있는 것이다. 감독당국의 인가만 떨어지면 업계 지도가 크게 바뀔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공적자금을 절약해야 한다는 ‘당위’와 이미 일부 재벌그룹이 시장에 진출해 있는 ‘현실’이 맞물려 재벌의 카드업 진출에 대한 비판의 강도를 떨어뜨리고는 있지만 부작용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이젠 카드사를 탈·불법의 온상으로?

금감원 관계자는 “재벌이 부실은행의 카드사업 부문을 인수할 경우 공적자금이 절약되는 장점이 있는 게 사실이지만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는 등 부작용이 빚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카드사의 경우 수신기능이 없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은 오산”이라며 “영업권에 대한 프리미엄을 듬뿍 지불하고 껍데기만 남는 카드사를 운영하기 위해 채권 등을 남발, 부실화하면 결국 다른 영역으로 피해를 끼치게 된다”고 말했다. 대우 계열사의 급전 운용창구로 활용되다가 막대한 부실을 안게 된 다이너스가 단적인 사례이다.

카드사의 호황이 지속될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도 남는다. 경기가 악화하는 데 따라 현금서비스와 할부구매가 늘고 부실채권이 증가할 개연성을 무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또 그동안 재벌계열 2금융기관들이 계열사 편법지원을 비롯한 탈·불법 행위를 숱하게 저질러왔다는 점도 어두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김영배 기자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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