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보유액 초과분으로 운용하는 한국투자공사 설립 논란… 국민의 돈을 리스크에 노출시킨다는 비판도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지난 2월15일 현재 2002억4900만달러로 일본(8410억달러), 중국(6099억달러), 대만(2427억달러)에 이어 세계 4위 규모다. 외환위기 당시인 지난 1997년 11월 말(72억6천만달러)에 견줘 무려 28배나 늘었다. 외환보유액 급증은 수출기업 경쟁력(달러 대비 원화가치 절상 억제)을 위해 정부가 시장에서 달러화를 지속적으로 사들이는 외환시장 개입, 경상수지 흑자, 외국인 투자자금의 지속적인 유입에 따른 것이다. 이렇듯 외환보유액이 급증하면서 이제는 오히려 외환당국이 ‘적정 수준’을 초과해 외환을 과잉 보유하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외환보유액 초과분을 재원으로 활용해 운용하는 한국투자공사(KIC)가 올해 설립될 예정이다. 한국투자공사는 일단 한국은행의 외환보유액 중 170억달러와 재정경제부가 관리하는 외국환평형기금 30억달러를 위탁받아 총 200억달러로 운용된다. 200억달러를 수익성 높은 외화표시 자산 위주로 투자·운용하게 되는데, 정부는 장기적으로 국민연기금 등 공공부문 여유재원을 모두 위탁대상으로 해 한국투자공사를 싱가포르투자청(GIC) 수준의 국제적인 대형 투자기관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한국투자공사가 국제 금융시장에서 ‘큰손’으로 활동할 수 있을 정도로 몸집을 키운다는 것이다. 한국투자공사와 같이 정부 주도로 투자기관을 설립, 운영하는 사례는 싱가포르를 제외하고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다.
위기 때 회수해서 쓸 수 있나 한국투자공사 설립을 둘러싼 논란은 2003년 말부터 제기됐다. 당시 정부는 동북아 금융허브 육성의 핵심 축으로 한국투자공사 설립 방안을 내놓았다. 한국투자공사 설립으로 △국제적 투자금융기관 및 자산운용사를 국내에 유치하고 △외환보유액 초과분을 효율적으로 운용해 수익률을 높이고 △국내 자산운용업 선진화를 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외환보유액은 유사시에 대비해 보유하는 비상금인데 수익성을 높인다고 투자하는 건 국민 재산을 리스크에 노출시키는 격”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지속돼왔다. 한국은행도 “외환보유액 운용은 수익성이 아니라 안전성과 유동성이”이라며 공사 설립에 반대해왔다. 그러나 그 뒤 재경부와 한은 사이의 협의를 통해 한은의 요구가 일정하게 법안에 반영되면서 이제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 한국은행 국제국 강순삼 차장은 “한국은행이 한국투자공사에 위탁하는 외환보유액은 긴급시 위탁자산을 조기 환수할 수 있도록 예외적인 특약을 맺기로 합의했다”며 “위탁 외환보유액이 국제통화기금(IMF) 분류기준상의 외환보유액 계산에 포함되도록 하고, 외화자산을 원화자산으로 전환하는 것을 금지하는 별도조항 신설쪽으로 우리의 입장이 반영돼 합의가 됐다”고 말했다. 한은 외환보유액 위탁자산은 따로 꼬리표를 달아서 자산운용 용도를 제한할 수 있도록 법안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IMF 분류기준은 외화자산이 외환보유액에 포함되려면 투자부적격 등급채권이나 부동산 등에 투자돼서는 안 되고, 필요한 경우 즉시 회수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투자공사에 위탁되는 한은 외환보유액이 실제로 유사시에 ‘제2선’의 외환보유액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외환보유액의 운용수익률을 높이려면 위험도가 낮은 단기 채권을 리스크가 더 높은 장기채로 전환해야 한다. 수익률을 높이려면 더 높은 리스크를 부담해야 하는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한국투자공사 설립에 반대해온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쪽은 “조기 회수 규정을 두고 있지만 투자공사가 장기채권을 돌려줘봐야 유동성 위기 때 당장 환금해 활용하기 곤란해진다”며 “이렇게 되면 외환위기 때처럼 유동성이 필요할 때나 투기세력이 원화를 공격할 때 제때 대응하기 어렵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재경부 국제금융국 김익주 과장은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이 2천억달러인데 급박하게 외환 부족으로 조기 회수할 사태가 과연 벌어지겠느냐?”고 말했다.
동북아 금융허브의 전초기지?
물론 외환보유액의 운용수익률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은 꾸준히 제기돼왔다. 외환당국은 환율 안정을 위해 달러화를 사들이는 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통화안정채권(2004년 말 현재 잔액규모 143조원)과 외국환평형기금채권을 발행하는데, 여기에 지급하는 이자비용만 연간 6조8천억원(통안채 이자 5조원·외평채 이자 1조8천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런 국가재정 부담을 상쇄하려면 외환보유액을 적절히 활용해 수익률을 더 높여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외환보유액 전부를 한은이 금고에 현금으로 쌓아놓고 있는 건 아니다. 외환보유액 운용내역을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한은은 외환보유액 중 상당 부분을 미국 재무부채권 등 안정성 높은 단기 채권상품에 투자함으로써 일정한 수익을 내고 있다. 한은은 최근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비공개 회의에서 다른 나라의 중앙은행 외화보유액 운용수익률(5%대)이나 국제투자은행 채권평균수익률 수준 이상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보고한 것으로 알려진다. 한은 강순삼 차장은 “외환보유액을 미 국채뿐 아니라 자산담보부증권, 주택저당채권, 우량회사채 등 수익성이 비교적 높은 해외자산에도 투자하고 있다”며 “한은의 외환보유액 운용수익률이 낮기 때문에 한국투자공사를 설립해 수익률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실제로 한은의 운용성과는 낮은 편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심상정 의원쪽은 “한국투자공사에 위탁해 운용하는 데 따른 운용 수수료가 선이자 형태로 평균 3∼4% 정도는 떼일 것으로 보이고, 한국투자공사 자본금 출자 등 막대한 직접적 비용 부담이 발생하게 된다”며 “이런 비용을 상쇄하고 남을 정도로 수익률을 1% 더 올리려면 리스크를 훨씬 더 높이지 않고는 불가능해진다”고 말했다. 특히 한은이 위탁하는 자산에 대해 예외적으로 안정성 위주로 운용할 경우, 투자공사 입장에서 목표수익률을 달성하기 위해 외국환평형기금에서 위탁된 자산을 고수익 고위험 자산 위주로 투자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물론 손실이 발생한다면 모두 국민 부담으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수익률 논란이 일고 있는 데 대해 재경부 김익주 과장은 “한국투자공사 설립은 외환보유액 수익률 제고보다는 동북아 금융허브 구축이 더 큰 목적”이라고 말했다. 동북아 금융허브로 만들기 위해서는 외국계 금융회사를 대거 유치해야 하는데, 외환보유고 위탁운용이라는 인센티브를 줘야 외국 금융기관들이 국내에 진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투자공사는 한국은행 등으로부터 위탁받은 자산을 직접 운용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국내외 대형 자산운용사에 재위탁하는 방식으로 운영될 공산이 크다. 사실 참여정부가 출범하면서 동북아 경제중심 국가 구상의 틀을 ‘금융허브 육성’으로 잡았으나 세계적인 투자은행들을 당장 유치하기가 어렵자 우선 외환보유액을 활용해 외국 자산운용사들을 유치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한국시장 진출을 매력 있게 만들려는 목적에서 외환보유고와 국민연금 등을 동원해 한국투자공사를 설립키로 한 셈이다.
“외국 금융회사들 배만 불릴 것”
그러나 외환보유액 운용이라는 먹잇감을 제공한다고 해서 유수의 대형 외국계 자산운용사들이 본사 또는 아시아태평양지역본부·지사를 한국으로 옮길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장하준 교수(영국 케임브리지대)는 “역사적으로 강력한 제조업의 성장없이 금융 중심지로 성장한 나라는 없다. 동북아 금융허브는 자칫 남의 장단에 춤추는 꼴이 될 수 있고 국민 재산으로 외국계 금융회사의 배만 불릴 가능성도 높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계 투자신탁·자산운용회사는 푸르덴셜·시티뱅크·슈로더·템플턴 등 이미 12개에 이른다. 그러나 재경부 김익주 과장은 “외국 투자금융 기관들이 한국에서 제공하는 시드머니(외환보유액)로 영업하는 것인데, 한국에 지사가 와 있어야 정보를 따내기도 쉽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한국으로 옮겨올 것”이라고 낙관했다.
일각에서는 재경부 관료들의 낙하산 창구로 한국투자공사가 활용될 가능성을 지적하기도 한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최한수 간사는 “그동안 한은이 운영해온 외환보유액을 재경부가 한번 해보자는 식으로 한국투자공사가 설립되거나, 재경부 관료들의 자리 보전 수단으로 이용될 가능성을 차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쪽은 “외환보유액 초과 보유분을 운용해 수익률을 높이기보다는 차라리 외환보유고를 적정 수준으로 줄여서 그 축소분을 국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한국투자공사가 설립되면 동북아 금융허브 구축의 길이 열릴까. 2004년 12월15일 ‘21세기 번영의 길 동북아 금융허브세미나’ 에서 연설하는 이헌재 부총리. (사진/ 연합)
위기 때 회수해서 쓸 수 있나 한국투자공사 설립을 둘러싼 논란은 2003년 말부터 제기됐다. 당시 정부는 동북아 금융허브 육성의 핵심 축으로 한국투자공사 설립 방안을 내놓았다. 한국투자공사 설립으로 △국제적 투자금융기관 및 자산운용사를 국내에 유치하고 △외환보유액 초과분을 효율적으로 운용해 수익률을 높이고 △국내 자산운용업 선진화를 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외환보유액은 유사시에 대비해 보유하는 비상금인데 수익성을 높인다고 투자하는 건 국민 재산을 리스크에 노출시키는 격”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지속돼왔다. 한국은행도 “외환보유액 운용은 수익성이 아니라 안전성과 유동성이”이라며 공사 설립에 반대해왔다. 그러나 그 뒤 재경부와 한은 사이의 협의를 통해 한은의 요구가 일정하게 법안에 반영되면서 이제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 한국은행 국제국 강순삼 차장은 “한국은행이 한국투자공사에 위탁하는 외환보유액은 긴급시 위탁자산을 조기 환수할 수 있도록 예외적인 특약을 맺기로 합의했다”며 “위탁 외환보유액이 국제통화기금(IMF) 분류기준상의 외환보유액 계산에 포함되도록 하고, 외화자산을 원화자산으로 전환하는 것을 금지하는 별도조항 신설쪽으로 우리의 입장이 반영돼 합의가 됐다”고 말했다. 한은 외환보유액 위탁자산은 따로 꼬리표를 달아서 자산운용 용도를 제한할 수 있도록 법안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IMF 분류기준은 외화자산이 외환보유액에 포함되려면 투자부적격 등급채권이나 부동산 등에 투자돼서는 안 되고, 필요한 경우 즉시 회수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한때 1천원 아래로 떨어졌던 2월23일 서울외환은행 본점 딜링룸 풍경. 위기 때 한국투자공사에 맡긴 외환을 급히 회수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사진/ 한겨레 김봉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