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적 분식회계 숨긴 공동정범 규명 작업, 회계법인의 고의와 금감원의 방조 혐의 
  경북궁을 오른쪽으로 끼고돌아 효자로로 들어서면 길 왼쪽에 자리잡은 5층짜리 흰색 건물을 볼 수 있다. 옛 보험감독원에서 금융감독원 연수원으로 바뀐 곳이다. 
  초등학교 교실 분위기를 풍기는 이 건물에선 지금 대우그룹 회계조작(분식회계)에 대한 조사와 책임소재 규명(특별감리)이 한창 진행중이다. 금감원의 ‘대우 분식회계 조사·감리 특별반’(반장 이성희 금감원 국장)이 작업을 맡고 있다. 
  특별반은 올해 초부터 연수원 3층에 자리를 잡고 비밀리에 작업을 해왔으며 이제 막바지 단계에 와 있다. 빠르면 다음달 말 최종적인 조사결과와 조처를 내놓게 된다. 여기서 나오는 결과물은 간단치 않은 파장을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특별반의 임무가 단순히 회계의 잘잘못을 따지는 수준에 머물지 않고 김우중 전 회장을 비롯한 기존 대우그룹 경영진의 자금유용 등 불법행위에 대해서도 아울러 조사했기 때문이다. 대우 부실화에 대한 책임 묻기의 ‘단초’가 되는 셈이다. 
   
김우중 전 회장 등 30여명 고발될 듯 
 
    
 
 (사진/바늘방석의 대우 전 경영진. 김우중 전 그룹 회장, 강병호 전 대우자동차 사장, 김태구 전 대우자동차 사장(위쪽부터))
  거래 자체를 아예 장부에서 빠뜨린 경우도 있었다. 유럽지역의 전체 대우 현지법인의 자금조달 및 운용을 총괄해온 영국금융센터(BFC)의 변칙적인 자금거래가 대표적인 사례. 특별반의 현장조사 결과 BFC는 김우중 전 회장의 지휘 아래 75억달러의 자금을 조성해 이 가운데 상당부분을 장부에 기재도 하지 않고(부외거래) 운용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예를 들면 대우자동차 등에 외상수입어음을 끊어주고 국내에서 물건을 가져간 다음에 현지법인들에 물건을 대주는 구실을 BFC가 많이 했는데, 이 모든 과정을 장부에 기재하지 않은 것이다. 대우계열사들은 BFC가 끊어준 어음을 다시 국내 금융기관들한테 할인받아 돈을 꿨으나 모두 휴짓조각이 됐다.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인 박응조 회계사는 “현실적인 감사환경상 이런 식으로 해당 회사가 외부감사인(회계법인)을 속이려 들면 밝혀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대우자동차가 재고자산을 과대계상한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덩치 큰 기업의 재고자산은 수천 수만 가지에 이르기 때문에 외부감사 때는 통상 전체의 3∼5% 정도의 ‘샘플’만을 뽑아 점검을 하게 된다. 샘플에 포함됐다 하더라도 분식 여부를 가려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재고자산의 수량을 속인 것은 그나마 판별할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이 있으나 원가를 높게 친 경우 분식을 가려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회계사들의 얘기이다. 
  특히 국내 기업들은 12월 말에 결산일이 몰려 있어 3월 주총 때까지 짧은 기간에 외부감사가 집중적으로 이뤄지는 점도 문제다. 회계감사를 맡을 인원이 달리는데다 시일이 부족해 부실감사가 이뤄질 개연성이 다분한 실정이다 
  기업들이 일방적으로 속이는 경우도 있지만 회계법인과 죽을 맞춰 분칠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국내 대형회계법인 관계자들은 “외환위기 이후 사정이 나아지긴 했으나 이전엔 회계법인이 대기업에 일방적으로 종속된 관계였다. 대기업으로부터 회계 일감을 따내지 못하면 생존을 보장받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이는 외부감사 때 기업 봐주기 행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회계 일감’과 ‘물렁 감사’를 주고받는 결탁이 이뤄지는 것이다. 
   
거대한 구멍을 그들은 정말 몰랐을까 
   
 대우의 외부감사를 맡았던 회계법인 상당수도 이런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대우 문제에서 회계법인들은 할말이 별로 없을 것 같다. 대우쪽에서 치밀하게 속이려 들어 재고자산 과대계상 같은 행위를 가려내는 일은 불가능했다손 치자. 김일손 회계연구원장은 “그렇더라도 무려 20조원인 넘는 분식이 이뤄졌다면 ‘전체 그림’(아귀)이 맞을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장조사 없이 장부만 보더라도 분식의 가능성을 충분히 의심할 수 있다는 얘기이다. 같은 맥락에서 감리를 맡고 있는 금감원도 도마 위에 오를 수밖에 없다. 최근 3년 동안 주요 대우계열사를 한번도 감리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별반 조사에 따라 제재(검찰 고발 등)를 받게 될 ‘대우맨’들은 현재 대부분 칩거 상태여서 접촉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간신히 선이 닿은 이들도 “코멘트할 입장이 아니라”며 애써 노출을 피했다. 
  어렵사리 전화로 연결된 강병호 대우통신 고문((주)대우·대우자동차 사장 역임)은 지난 7월21일 전화통화에서 (어떻게 그런 정도의 분식이 이뤄질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그걸 왜 나한테 물어보냐”며 벌컥 화를 냈다. “상대방을 잘못 찾았다. 월급쟁이 사장을 했을 뿐인데 대우 전체의 분식을 내가 어떻게 아느냐”고도 했다. 
  대우FSO(폴란드자동차공장) 사장을 지낸 석진철 다림비전 회장은 “해외에 나가 있던 사람이 뭘 알았겠나. 특별감리반의 조사결과도 나오지 않은 만큼 코멘트할 입장이 아니다”고 말했다. 김태구 전 대우자동차 사장, 장병주 전(주) 대우 사장 등은 수차례 전화접촉 시도에도 불구하고 끝내 연락이 닿지 않았다. 
  금감원 관계자는 “주요 혐의자들이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모두 김우중 전 회장의 전결사항이라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부도 이전에 대우그룹이 “우리는 총수의 개인지분이 낮고 각 계열사별 독립경영체제를 일찌감치 구축했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선전은 새빨간 거짓이었던 셈이다. 
  이제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금감원 특별반의 조사는 많은 과제를 남기고 있다. 당장 급한 문제는 김우중 전 회장에 대한 직접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다. 김 전 회장은 현재 유럽에 머물고 있으며 금감원의 조사에 응하지 않고 있다. 정기영 금감원 전문심의위원은 “대우그룹의 주요 거래는 김우중 회장의 직접 지휘 아래 비선조직에 의해 이뤄진 게 많아 김 회장에 대한 조사가 필수적”이라며 “서초동에 살고 있는 차남 선협씨를 통해 금감원 조사에 응해줄 것을 계속 종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젠 건전한 거래풍토 조성해야 한다 
   
  이보다 더욱 중요한 과제는 김 전 회장을 비롯한 기존 경영진들의 자금유용 등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다. 이번 특별반의 조사는 순자산이 구멍난 것을 그대로 기록하지 않은 데 대한 추궁의 성격이 짙을 뿐이며 누가 어떤 이유로 구멍을 냈는지에 대한 대한 조사는 미진하다. 분식 규모가 23조원에 이르기까지는 비자금 조성을 위한 자금유용이나, 해외로 재산 빼돌리기 등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 대우 부실로 금융권이 천문학적 규모의 빚을 떠안게 됐고 이는 곧 국민의 세금 부담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금감원은 이 부분에 대한 조사는 검찰에서 규명돼야 할 사항이라며 발을 빼고 있다. 
  박응조 회계사는 “대우경영진과 회계법인에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하겠지만 이들을 대우문제의 뿌리를 덮는 희생양으로 삼아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책임묻기에서 나아가 기업투명성 제고와 회계시장의 건전한 거래풍토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진/세기적 사기극의 주인공은 누구? 금감원의 대우 분식회계 조사·감리특별반이 활동하고 있는 금감원 연수원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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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특별반의 작업은 철저히 장막에 가려져 있었다. 특별감리 내용에 대한 설명은 아예 들을 수 없었으며 특별반이 있는 연수원 접근도 차단당했다. 지난 7월19일 연수원 인근에서 기자가 잠깐 만난 이성희 반장은 사무실에 들어가는 것은 절대 안 된다며 손을 내저었다.
금감원의 공식 발표는 나오지 않았지만 대우의 분식 규모는 대략 23조원 정도(워크아웃 대상 12개사)로 파악됐다. 단일 그룹 분식 규모로는 기네스북에 오를 기록이다. 대우 경영진과 회계법인에 대한 처벌 내용도 어느 정도 윤곽이 잡혀 있다. 김우중 전 회장을 비롯한 30명 안팎(회계사 5∼6명 포함)이 검찰에 고발될 것으로 보인다. 주요 계열사의 대표이사와 자금담당 임원들, 또 엉터리 회계장부를 적정하다고 판단을 내린 외부감사인들이 주로 고발대상이다. 이들에게는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감법)’을 비롯해 증권거래법, 외환관리법, 특정경제가중처벌법 등 여러 가지 법률이 적용된다. 여기서 잠깐 분식회계에 대해 알아보자. 분식회계는 기업이 회계장부를 조작해 재무상태를 거짓으로 꾸미는 것을 말한다. 장부에 써넣는 자산이나 부채 항목의 금액을 실제보다 많거나 적게 만들어 조작하는 것이다. 이는 금융기관에서 돈을 유리한 조건으로 꾸거나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한 목적에서 저질러진다. 물론 불법행위이며 채권자나 투자자들에게 잘못된 판단을 불러일으킨다. 따라서 금감원의 감리결과가 나오면, 이를 근거로 대우 채권단과 소액주주들의 민·형사상 소송도 봇물처럼 터질 것으로 보인다. 대우의 회계분식은 23조원에 이르는데 이 정도 ‘결점’을 몇년간 감춰왔다는 건 대단한 불가사의다. 해당 계열사의 감사가 이를 밝혀내지 못한(또는 않은) 것은 논외로 치더라도 외부감사기관인 회계법인이나, 회계법인 감사보고서의 타당성 여부를 관리·감독해야 하는 금감원이 이를 적발해내지 못했다는 것은 많은 의문을 남긴다. 금감원 특별감리반의 한 관계자는 “대우자동차의 경우 재고자산과 외상매출 채권을 과대계상하는 방법을 주로 동원했으며 (주)대우의 경우 다양한 수법을 골고루 활용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특히 그룹 계열사의 수출창구이자 자금줄 구실을 한 (주)대우는 분식 규모가 1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우그룹 전체 분식의 대략 절반이 (주)대우에서 저질러진 셈이다. 금융권 부실 키운 온갖 분식 수법들
(사진/김 회장의 대량해고조처를 반대하던 노동자들)

(사진/대우 경영진의 자금유용에 관한 철저한 조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해 7월 정주호 당시 대우 구조조정 본부장(왼쪽)등이 워크아웃 신청계획을 발표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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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벌떠는 회계법인들 
 대우그룹 회계장부 조작에 대한 금융감독 당국의 조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대우에 ‘엮인’(외부감사를 맡았던) 회계법인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분식회계와 관련해선, 김우중 전 회장 등 기존 대우그룹 경영진에 우선적인 책임이 있겠으나 이들에 대한 처리 방향은 어차피 검찰로 이관된 뒤 결정될 전망이다. 반면, 회계법인들의 경우 감리 결과 발표 직후 내려질 금감위의 행정조처(영업정지 등)만으로도 존폐 기로에 설 정도의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 회계법인에 대한 금감위의 조처는 ‘빅5’ 중심으로 짜인 회계시장의 판도를 크게 바꿔놓을 뿐 아니라 기업들의 회계업무 및 감사 풍토에도 상당한 변화를 몰고올 전망이다. 대우 계열사의 외부감사를 맡았던 회계법인은 안건(대우자동차·오리온전기), 산동(㈜대우·대우중공업·쌍용자동차·대우자판·다이너스클럽코리아), 세동(대우전자·대우캐피탈), 안진(경남기업), 영화(대우전자부품), 청운(대우통신) 등이다. 이른바 회계법인 빅5에 드는 곳 중 삼일회계법인만 빼고는 모두 대우 ‘수렁’에 빠진 셈이다(청운회계법인은 기아자동차에 대한 외부감사를 잘못한 책임으로 지난해 1개월간 영업정지를 받은 뒤 문을 닫았으며 세동은 안진에 흡수됐다). 대우 외부감사를 맡았던 회계법인들에 대한 처벌 수위는 아직 분명치 않다. 빨라야 다음달 말에나 금감위의 조처가 내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대우계열의 분식 규모가 상상을 초월하는 천문학적 규모(23조원가량)에 달해 강도높은 조처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회계법인에 대한 가장 강한 행정조처는 등록취소이며 그 다음 단계로 영업정지가 있다. 청운회계법인이 영업정지(1개월)를 받은 적이 있을 뿐 등록취소를 받은 경우는 아직 없었다. 이번에도 등록취소 단계까지 가지는 않고 영업정지를 받는 수준일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해당 회계법인은 신뢰에 치명타를 입게 된다. 이 밖에 감사인 지정을 제한하는 조처도 있다. 금감위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해마다 △감리지적을 받았거나 △소유·경영이 분리돼 있지 않은 경우 △또는 부채비율이 높은 기업을 골라(99년의 경우 300여개사) 회계법인을 지정해 외부감사를 받도록 하고 있다. 회계법인들에 증선위가 ‘일감’을 주는 셈인데 ‘문제’가 있는 회계법인들에는 이를 제한한다. 당장 일감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지만 회계시장에서 신뢰를 잃어버린다는 점에서 해당 회계법인들엔 만만치 않은 부담이다.  |  
김영배 기자kimyb@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