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발한 수법으로 재산 은닉하는 부실기업주는 날고… 한계에 부딪힌 예보 조사는 기고 
   
 ‘드디어 꼬리를 잡았다.’ 
  무더위가 한창이던 지난 7월 어느 날. 예금보험공사 조사2부 김아무개 검사역은 자신도 모르게 쾌재를 불렀다. 몇달째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는데 이젠 뭐가 좀 잡힐 것 같은 기대감으로 차올랐다. 그러면서 앞으로 부닥칠 또다른 벽을 어떻게 넘을지 걱정스럽기도 했다. 
  그는 이날도 별 생각없이 평소 관리하던 통장을 정리해봤는데, 이럴 수가! 5천만원이 넘는 뭉텅이 돈이 들어왔다가 쏙 빠져나간 흔적이 장부에 또렷이 남아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이걸 잘 따라가보면 실마리가 잡힐 것도 같은데….’ 
 이 통장은 지난 97년 인가취소된 항도종금 대주주인 조준래씨의 계좌로, 예보가 검사를 나간 당시 압수·보관해온 터였다. 예보는 공적자금 회수 차원에서 조씨를 비롯한 대주주의 은닉재산에 대한 추적작업을 벌였으며 그 일환으로 이들의 계좌를 정기적으로 점검해왔다.  
   
 
전국을 떠돌며 은닉재산 찾아냈으나… 김 검사역은 조씨 계좌에 남아 있는 입·출금 기록을 실마리삼아 수표추적 작업에 들어갔다. 예보가 금융기관 부실에 책임이 있는 이를 특별히 지정해 은행에 요청하면 수표추적을 할 수 있다. 그는 수표추적 과정에서 조씨가 재산세를 낸 사실을 알아냈다. ‘이 사람 명의로 된 재산은 남아 있는 게 없는데… 숨겨놓은 재산이 있는 게 분명하군.’ 재산세를 낸 기록에는 대표적인 지번(땅 번지수)이 적혀 있어 또다른 단서를 제공해주고 있었다. 김 검사역이 재산세납부 기록을 바탕으로 은닉재산 찾기에 들어간 뒤 전국 여기저기서 숨겨놓은 조씨의 부동산이 고구마줄기처럼 줄줄이 엮여 나왔다. 또 부인, 아들 이름으로 빼돌린 예금계좌도 여러 개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김 검사역이 이렇게 해서 찾아낸 조씨의 은닉재산은 부동산만 41건이었다. 금액으로는 무려 77억8천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 밖에 자신명의로 금융기관 예금 1100만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검사역의 추적작업은 지난 11월까지 계속된 지루하고 고달픈 과정의 연속이었다. 지번을 따라 전국을 돌아야 했으며 이 과정에서 부산, 경주, 김해 등에 퍼져 있는 종친회 사무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빌다시피 정보를 요청하기도 했다. 다행히 조씨가 종친회에서 별로 인심을 못얻었던 듯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동네 복덕방 주인들과 술잔을 기울이는 일도 잦았다. 금융 구조조정 과정에서 천문학적 규모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데는 부실 금융기관의 대주주들의 탓이 가장 큰데도 정작 이들은 재산을 빼돌리고 여전히 떵떵거리고 사는 경우가 많다. 예보가 필사적인 추적작업을 벌이고 있긴 하나 법·제도적 한계에 부딪혀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항도종금 조씨를 비롯해 부실종금사 대주주들의 은닉재산을 대거 찾아내 최근 언론에 공개하기도 했지만 이들 종금사에 투입된 공적자금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그나마 법정 다툼을 벌여 이겨야 환수할 수 있다. 예보가 지난 10월 말 현재 총 225개 부실금융기관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부실관련자는 2263명에 이른다. 예보는 이들의 소유재산 중 1521건의 재산을 가압류했고 부실관련자 1153명을 상대로 260건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진행중이나 실제로 환수한 실적은 한푼도 없다. 자료요청에 등돌리는 관련부처들
  예보 조사에서 드러난 부실 금융기관 대주주들의 재산은닉 수법은 실로 교묘하기 짝이 없다. 종금사 영업정지일 직후 장인이나 조카에게 근저당권을 설정하거나 임의경매를 통해 아예 장인 등의 명의로 소유권을 이전하는 건 기본이다. 심지어 합의이혼한 뒤 부인 앞으로 부동산을 비롯한 재산을 빼돌려 일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는 파렴치한도 있다. 항도종금의 또다른 대주주인 조평제씨는 자기소유 부동산 1건을 종금사 영업정지 직후 부인 앞으로 증여했다가 이 땅이 지방자치단체에 수용되면서 수령한 보상금 2억3천만원을 본인 및 부인, 아들 이름으로 2개 금융기관, 8개 계좌에 분산예치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역시 인가취소된 대한종금 대주주로서 부실책임자인 전윤수씨는 이 종금사 영업정지일(97년 12월10일) 직전 약 5억원 상당의 소유 부동산을 당시 3살짜리 아들에게 증여한 것으로 드러나 실소를 자아냈다. 
  이처럼 부실 책임자들의 재산은닉 행위는 다양하고 교묘해지는데, 예보의 추적은 아직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고 있다. 항도종금 대주주 조씨의 사례에서처럼 영업정지 당시 압수한 계좌에서 자금흐름이 포착되는 등 꼬리가 밟혔을 때 이를 실마리삼아 맨발로 전국을 뒤지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예보의 한 조사요원은 “동사무소나 세무서를 찾아 자료협조를 요청하면 ‘그런 보험회사도 있느냐’ ‘언제 생긴 보험회사냐’ ‘보험회사에서 그런 자료가 왜 필요하냐’고 반문한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면 조사자들은 예보에 대한 신문스크랩을 들고 예금보험공사의 기능과 구실, 관련 법령 등을 일일이 설명해야 하는 곤욕을 치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공적자금 하마’에 대한 비난이 하루이틀된 것도 아닌데, 왜 개선되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이처럼 늘 귀따가운 한탄만 들리는 것일까.  
  우선 국세청, 건설교통부, 행정자치부 등 관련부처의 협조가 원활치 않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국세청의 납세정보, 건교부의 부동산정보망, 행자부의 종합재산세정보 등 네트워크를 적절히 활용하면 맨발로 뛰는 원시적인 방법에 비해 훨씬 빨리, 촘촘하게 조사할 수 있음에도 현실에선 그렇지 못하다. 관련부처들이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를 들어 정보제공에 난색을 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에겐 국민의 피땀이 서린 공적자금 회수보다, 막대한 부실을 초래하고 뻔뻔스럽기까지 한 부실관련자들의 개인정보 보호가 더 중요하다. 
  예금자보호법(제21조의 3)은 예보가 관계 중앙행정기관, 지방자치단체, 기타 대통령령이 정하는 공공기관에 부실관련자의 재산에 관한 자료나 정보의 제공을 요청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선 그야말로 ‘단지 요청할 수 있는 권리’에 머물고 있다. 한편으로 법에선 예보의 요청을 받은 공공기관의 장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에 응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특별한 사유는 늘 발생하고 있다. 이 때문에 부실 책임자의 은닉재산에 대한 추적은 더디게 진행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예금자보호법 개정작업, 그래도 찜찜 
   
  예보의 조사권이 미치는 범위가 좁다는 점도 늘상 문제점으로 꼽힌다. 현재 예금자보호법상으로 예보는 완전퇴출돼 파산(또는 청산)재단으로 넘어간 금융기관의 임직원에 한해 조사를 할 수 있을 뿐이다. 아직 살아 있는(영업중인) 금융기관의 임직원에 대해선, 예보의 자금지원이 이뤄졌더라도 조사권이 미치지 못한다. 이 때문에 부실의 책임을 묻는 데 한계가 많을 수밖에 없다.  
  더욱 큰 문제는 부실을 일으킨 기업주에 대한 조사가 이뤄질 통로가 차단돼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금융기관을 부실에 빠뜨린 기업과 기업인에 대해 은밀하게 조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또 예보가 직접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도 없어 파산재단의 관재인의 손해배상청구를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다행히 예금자보호법 개정안이 마련돼 곧 국회에 상정될 예정이어서 이런 문제들에 대한 개선이 어느 정도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가 마련한 예금자보호법 개정안에 따르면, 퇴출에 이르지는 않았더라도 공적자금이 투입된 경우 예보의 조사권이 미치도록 해 부실에 대한 책임을 엄중히 묻게 된다. 또 해당 금융기관을 부실에 빠뜨린 부실기업과 부실채무자에 대한 조사도 법적 뒷받침 아래 진행할 수 있도록 했다. 민법조항에 따라 단순히 채권자로서 은닉재산 등을 조사할 수 있을 뿐인 현재 상태에서 한발 나아가는 셈이다. 
  그럼에도 이번 예금자보호법 개정작업은 여전히 아쉬운 점을 남기고 있다. 예금채권 우선변제제도 도입이 검토돼다 최종 개정안에서 빠진 대목이 대표적인 예다.  
  예보는 은닉재산을 찾아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 승소하더라도 청구액을 제대로 받기 힘들다. 임금채권, 소액 임차보증금, 국세, 저당권·질권이 설정된 채권 등에 우선순위를 내준 뒤 일반채권과 경합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보 관계자는 “국세청의 경우 받지 못한 국세를 받기 위해 영장없이 재산을 조사하고 경매 배당에서 우선권을 갖는 반면, 예보는 상당부분 세금으로 전가될 게 뻔한 공적자금을 쓰고도 이를 회수할 방법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한생명의 경우, 최순영 전 회장이 98년 이전에 횡령한 2천억원 이상의 불로소득에 대해 세금추징을 당하자 예보가 투입한 공적자금으로 세금을 냈지만, 최 전 회장으로부터 회수한 돈은 이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조사권 확대의 효과도 아직은 미지수다. 예보 관계자는 “법 개정에 따라 조사권이 확대되지만 시·군·구 등 일선 행정기관의 협조와 이해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가 될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파산관재인 문제도 여전히 미결과제로 남아 있다. 금융기관은 일반업체와 달리 파산 뒤에도 대출금 회수, 담보 부동산 및 현금·유가증권 관리, 리스 및 외화자산 관리 등 사실상 금융업무를 영위하기 때문에 금융전문 지식과 확고한 회수의지를 갖춘 파산관재인이 선임돼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파산재단은 정상기업과 달리 직원들이 열심히 일하면 오히려 일자리를 빨리 잃게 되는 한시적인 조직으로 직원 장악이 쉽지 않다는 점도 감안돼야 한다. 이 때문에 채권회수에 좀더 적극적일 수밖에 없는 예보가 주도적으로 파산관재인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파산관재인에 예보의 참여를 
   
   올해 초 관련법률이 개정돼 변호사뿐 아니라 예금보험공사 직원도 파산관재인으로 선임될 수 있는 길이 열리긴 했으나 실제 예보 직원이 선임되는 일은 드물다. 지난 10월 말 현재 퇴출 금융기관의 관리인(파산관재인)은 모두 238명인데, 예보 직원은 35명(14.7%)에 불과한 실정이다. 나머지는 변호사 195명(81.9%), 기타 8명(3.4%) 등이다. 이처럼 파산관재인으로 대부분 변호사 선임되는 것은 파산관재인 선임권을 법원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법원은 법의 형식논리에 따라 ‘채권회수의 최대화’보다는 ‘채권의 공정한 분배’에 역점을 두고 주로 변호사를 관재인으로 선임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금융연구원 이재연 연구위원은 “미국의 경우 예보 자체가 퇴출 금융기관의 관리인이 돼 공적자금의 회수 및 환수에 전력을 기울일 수 있다”며 “우리나라의 경우도 파산관재인으로 예보 직원을 선임하는 정도에 그치지 말고 예보 자체를 관재인으로 선임하는 전향적인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예금채권 우선변제와 관련해, 이 연구위원은 “현행 법체계상 예금채권을 국세와 동일선상에 놓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나 국세, 임금채권 다음 순서에는 와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금융구조조정 과정에서 110조원을 투입한 데 이어 또 다시 40조원을 더 투입할 예정으로 국회동의까지 받았다. 앞으로 투입할 자금에 대한 엄정한 관리 못지않게 부실을 초래한 장본인들에 응분의 책임을 물리는 일 또한 중요하다. 
 
   
    김영배 기자kimyb@hani.co.kr 
 
 
 
 

(사진/부실 금융기관 대주주 등의 은닉재산에 대한 조사를 맡고 있는 예금보험공사 조사2부)
전국을 떠돌며 은닉재산 찾아냈으나… 김 검사역은 조씨 계좌에 남아 있는 입·출금 기록을 실마리삼아 수표추적 작업에 들어갔다. 예보가 금융기관 부실에 책임이 있는 이를 특별히 지정해 은행에 요청하면 수표추적을 할 수 있다. 그는 수표추적 과정에서 조씨가 재산세를 낸 사실을 알아냈다. ‘이 사람 명의로 된 재산은 남아 있는 게 없는데… 숨겨놓은 재산이 있는 게 분명하군.’ 재산세를 낸 기록에는 대표적인 지번(땅 번지수)이 적혀 있어 또다른 단서를 제공해주고 있었다. 김 검사역이 재산세납부 기록을 바탕으로 은닉재산 찾기에 들어간 뒤 전국 여기저기서 숨겨놓은 조씨의 부동산이 고구마줄기처럼 줄줄이 엮여 나왔다. 또 부인, 아들 이름으로 빼돌린 예금계좌도 여러 개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김 검사역이 이렇게 해서 찾아낸 조씨의 은닉재산은 부동산만 41건이었다. 금액으로는 무려 77억8천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 밖에 자신명의로 금융기관 예금 1100만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검사역의 추적작업은 지난 11월까지 계속된 지루하고 고달픈 과정의 연속이었다. 지번을 따라 전국을 돌아야 했으며 이 과정에서 부산, 경주, 김해 등에 퍼져 있는 종친회 사무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빌다시피 정보를 요청하기도 했다. 다행히 조씨가 종친회에서 별로 인심을 못얻었던 듯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동네 복덕방 주인들과 술잔을 기울이는 일도 잦았다. 금융 구조조정 과정에서 천문학적 규모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데는 부실 금융기관의 대주주들의 탓이 가장 큰데도 정작 이들은 재산을 빼돌리고 여전히 떵떵거리고 사는 경우가 많다. 예보가 필사적인 추적작업을 벌이고 있긴 하나 법·제도적 한계에 부딪혀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항도종금 조씨를 비롯해 부실종금사 대주주들의 은닉재산을 대거 찾아내 최근 언론에 공개하기도 했지만 이들 종금사에 투입된 공적자금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그나마 법정 다툼을 벌여 이겨야 환수할 수 있다. 예보가 지난 10월 말 현재 총 225개 부실금융기관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부실관련자는 2263명에 이른다. 예보는 이들의 소유재산 중 1521건의 재산을 가압류했고 부실관련자 1153명을 상대로 260건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진행중이나 실제로 환수한 실적은 한푼도 없다. 자료요청에 등돌리는 관련부처들

(사진/금융기관 부실에 책임이 있는 이들의 재산은닉으로 국민들만 상처받는다.97년 12월 업무정지 조처가 취해진 대한종금 본사 앞에서 한 투자자가 울음을 터트리고 있다)

(사진/정부가 마련한 예금자보호법 개정안은 예금보험공사의 역활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것으로 보인다.그러나 예금채권 우선변제제도가 빠지는 등 아쉬움도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