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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구로공단 ‘화려한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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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1-2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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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렴한 임대료 등 힘입어 기술벤처 유치… 굴뚝산업의 대명사에서 첨단업종의 터전으로

(사진/구로공단이 대대적인 업그레이드 작업을 벌이고 있다.깔끔한 아파트형 공장들에 첨단업종 회사가 입주해 낡은 공장들을 밀어내고 있는 것이다)
회색빛 우중충한 건물, 공장굴뚝 연기, 더럽고 어렵고 위험한 3D 업종의 집합소…. 서울시 영등포구 구로공단 이미지로 이런 단어들을 떠올린다면, 이젠 시각교정이 필요할 것 같다.

굴뚝산업의 대명사 구로공단이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문패를 바꿔단다. 첨단 산업단지로 변모해가고 있는 최근의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구로공단을 관리하고 있는 한국산업단지공단(이사장 이효진)은 일반 공모를 통해 구로공단의 새 이름을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결정한 데 이어 12월 중순 서울시 구로동 키콕스(KICOX)벤처센터에서 새 이름 선포식을 가질 예정이다. 지난 1964년 국내 수출산업단지 제1호로 구로공단이 조성된 지 36년 만이다.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문패 바꿔달아



서른여섯해를 지나는 동안 변하지 않은 게 없지만 구로공단의 변화폭은 특히 컸다. 섬유·봉제산업 중심이었던 공단이 지금은 첨단업종의 터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구로단지 670여 입주업체 가운데 절반이 넘는 350개 업체가 통신부품과 단말기, 인터넷 네트워크 장비 등 첨단업종으로 등록돼 있다. 지난 80년대까지만 해도 구로공단이 수출산업기지 구실을 하며 섬유·봉제업 중심이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구로공단에 변화의 바람이 일기 시작한 것은 대략 90년 중반부터. 지난 96년 지하철 2호선 구로공단역 인근 1단지에 동일테크노타운이 들어선 것을 시작으로 에이스테크노타워, 1·2차 대륭테크노타운 등 깔끔한 외관의 아파트형 공장들이 낡은 공장들을 밀어내고 잇따라 들어섰다. 이들 4개 아파트형 공장에만 150여개의 첨단업종 회사가 몰려 있다.

현재 건설중인 대륭 3차, 코오롱, 마리오, 미라보 등까지 포함하면 아파트형 테크노빌딩은 모두 20개에 이른다. 첨단업종이 더욱 늘어날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민간업체가 지은 이들 아파트형 테크노빌딩과 함께 지난 10월 개관한 키콕스벤처센터는 구로공단의 첨단화를 더욱 자극하고 있다.

키콕스벤처센터는 서울시로부터 국내 벤처집적시설 1호로 지정됐으며 구로공단을 비롯해 전국 32개 국가산업단지를 관리하는 한국산업단지공단 본부도 여기에 자리잡고 있다. 연건평 8천여평에 지하 3층, 지상 15층 규모인 벤처센터는 정보통신 네트워크 구축 등 벤처기업 환경에 맞는 인텔리전트 빌딩으로 건축됐다. 이 빌딩에는 제조 벤처기업과 창업보육 기업 등 60여개 기업이 입주하게 된다. 이미 40개가 넘는 업체가 들어와 영업중이다.

구로공단으로 벤처기업들이 속속 몰려드는 것은 무엇보다 임대료가 싸기 때문이다.

무선인터넷 서비스업체인 (주)와플의 김영헌(32) 웹SI팀장은 “테헤란로 등 강남 인근의 경우 임대료가 평당 350만∼500만원에 이르지만 이곳(키콕스벤처센터)은 200만원을 밑돌기 때문에 비용을 크게 절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와플은 서울시 잠실 인근에 자리잡고 있다가 키콕스벤처센터가 정식 개관하기도 전인 9월에 들어와 1호 입주 업체로 기록돼 있다.

디자인 소프트웨어 전문개발 회사로 역시 키콕스벤처센터에 입주한 (주)알티즌의 이우영 이사도 “키콕스벤처센터 등 구로공단의 가장 큰 장점은 임대료가 싸면서도 관련 업체들이 몰려 있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키콕스벤처센터 인근의 아파트형 공장 임대료도 250만원 수준으로 강남지역에 비해 훨씬 싸다.

기술과 아이디어만 있으면 무엇이든 지원

(사진/디지털산업단지를 얼굴을 바꾼 구로공단에 제조기반이 있는 기술켄처들이 둥지를 틀었다)
싼 임대료에 벤처기업을 측면지원하는 기관,과시설도 비교적 잘 갖춰져 있다. 키콕스벤처센터에는 수출보험공사, 경영컨설팅사, 법률·특허 사무소, 금융기관 등 각종 벤처지원 기관이 입주해 있고 벤처종합지원실과 헬스케어(운동시설) 등 편의시설도 마련돼 있다. 또 공장설립대행센터, 산업입지센터 등 지원사무실을 배치해 벤처기업들의 경영, 법률, 기술, 마케팅 자금 등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 기술과 아이디어만 있는 벤처인이라면 승부를 걸어볼 수 있는 바탕이 마련돼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서울에서 벤처하면, 테헤란밸리(강남 테헤란로 부근) 아닌가. 구로공단과 첨단 이미지는 아직은 뭔가 잘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인식은 여전하다.

이에 대해 이우영 알티즌 이사는 “테헤란밸리에는 인터넷 서비스 중심의 닷컴 벤처기업들이 자리잡고 있다면 구로단지에는 제조기반이 있는 기술벤처들이 주로 들어서 있다”고 말했다. 결국 벤처열풍 속에서 인터넷 서비스 중심의 테헤란밸리는 집중 부각된 반면에, 전통 제조업과 깊이 연관돼 있는 구로단지는 첨단의 이미지로 갈아입는 게 쉽지 않았다는 얘기이다. 기존 전통 제조업의 연장선 정도로나 여겨졌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많이 달라지고 있다. 테헤란밸리의 닷컴기업들은 수익모델 찾기 실패에다, 일부 부도덕한 벤처기업인들의 불법·일탈 행위로 큰 위기를 겪고 있는 반면에 전통 제조업에 기반을 둔 구로공단의 벤처기업들은 상대적으로 크게 부각되고 있다. 확실한 수익모델과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외부환경 변화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 강점이다.

구로공단이 그동안 마냥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다. 국가경제의 큰 틀이 변할 때마다 부침을 함께했다.

지난 64년부터 73년까지 모두 60만평(여의도 면적의 3분의 2) 규모로 조성된 구로단지는 값싼 노동력을 무기로 섬유·봉제산업 등 노동집약적 제조업의 산실로 한국수출의 선도자 구실을 한데 따라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경제성지(聖地)로 평가받았다. 87년의 경우 노동자 7만5천명이 전국 제조업 수출의 10%를 차지하는 최고 성장 수준을 기록하는 등 한국을 세계 10대 무역대국으로 키우는 기관차 구실도 했다. 그러다 80년대 후반부터 노동집약적 산업이 급격히 쇠퇴하는 변화의 물결에 밀려 경쟁력을 잃고 많은 공장들이 지방과 해외로 옮겨가 공동화 현상이 가속화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정부와 한국산업단지공단은 대학 등에 구로단지 체질개선 방안을 모색해주도록 연구용역을 의뢰하고 여기서 나온 결과를 바탕으로 지난 97년 ‘구로단지 첨단화 계획’을 마련했다. 키콕스벤처센터 건립 등 일련의 성과도 이런 계획에 따른 것이다.

제조업체와 연계 유리한 입지여건도 장점

(사진/구로공단의 벤처기업은 확실한 수익모델로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컴퓨터 모니터를 조립하는 모습)
구로단지의 발빠른 변신은 앞으로도 더욱 속도가 붙을 것같다. 한국산업단지공단은 구로단지의 중심부인 1단지 8만여평은 벤처전문단지로, 2단지 12만평과 3단지 34만평은 각각 패션디자인, 고도기술 및 연구개발 단지로 특화해 공단 전체를 첨단화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구조고도화 작업을 통해 테헤란밸리와는 달리 기존 제조업과 연계해 시너지 효과를 거두도록 한다는 것이다.

공단의 계획에 따르면, 앞으로 10년 뒤 서울디지털산업단지는 입점한 기업 수가 1200개에 이르는 국내 최대 규모의 제조벤처단지로 면모를 새롭게 함으로써, 소프트벤처 중심의 테헤란밸리와 양축을 형성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산업단지공단 박상봉 과장은 “구로공단은 서울에 있는 유일한 산업단지이며 전자·통신 등 벤처관련 제조업 기반이 집적해 있어 벤처타운으로 성장할 잠재력이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이 밖에 테헤란로 등 서울 중심가에 비해 교통체증이 덜한 데다 인천국제공항이 가깝고 인천미디어밸리 등과 교류를 촉진하기도 유리한 자리라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구로공단’이란 이름은 이제 전철역 이름과 교통 표지판에서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공단쪽이 벤처단지로 탈바꿈하는 데 걸맞게 전철역 이름과 교통 표지판 교체를 요청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김영배 기자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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