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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다음은 L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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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1-2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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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열사 신용등급 떨어진 뒤 자금악화설 휩싸여… LG·금융당국은 “음해성 소문”으로 일축

‘불안해요 LG’

요즘 자금시장에서 스멀스멀 흘러나오는 목소리이다. ‘현대사태’가 그럭저럭 봉합되기가 무섭게 이번엔 LG그룹이 자금악화설에 휩싸인 것이다. LG나 주채권은행인 한빛은행쪽에선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하고 있지만, 주식시장에 투자자들의 반응은 다르다.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 투자자들의 매도공세로 LG 주요계열사들의 주가가 바닥을 기고 있다.

여기에다 얼마 전에는 한 신용평가기관이 LG텔레콤과 데이콤의 신용등급을 낮춤에 따라 ‘LG가 곤경에 처할 것이다’라는 소문은 더욱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금융감독 당국이 악성루머 유포 세력을 엄단하겠다고 나서는 등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모양새는 불안감을 오히려 증폭시켰다.

지금껏 비교적 우량하다는 이미지를 지켜오면서 지난해 말 부채비율 목표(200% 이하)도 무난히 달성한 LG그룹이 자금악화설에 휩싸인 이유는 뭘까. LG나 금융감독 당국의 추정대로 경쟁업체의 음해성 소문일 뿐인가.


불안한 투자자들 매도공세로 주가 바닥

LG 자금악화설은 대우와 현대사태에 파묻혀 눈길을 끌지 못했을 뿐, 사실 지난 8월께부터 나돌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수면 위에 떠오른 것은 한국신용정보가 LG텔레콤과 데이콤의 신용등급을 떨어뜨리면서부터였다. 한신정은 지난 11월20일 LG텔레콤과 데이콤의 회사채와 기업어음(CP)에 대한 수시평정(평가)을 통해 회사채 등급을 A-에서 BBB+로, 기업어음 등급은 A2-에서 A3+로 각각 하향조정했다.

한신정은 이렇게 갑자기 등급을 내린 것과 관련해, 지난 6월 정부의 단말기 보조금지급금지 조처 뒤 다른 이동통신 서비스사업자의 수익성은 빠르게 개선되는 추세인데도 LG텔레콤은 3분기까지 영업손실 규모가 2천억원을 넘어서는 등 수익성이 나빠지고 있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또 SK텔레콤 등 경쟁업체들이 잇따라 인수·합병에 나섬에 따라 이동통신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입지가 약화되고 있다는 점도 등급조정 배경으로 꼽혔다.

이와 함께 차세대이동통신(IMT-2000) 사업에 대한 투자로 재무부담이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유상증자 등을 통한 자금조달 계획의 이행이 늦어지고 있는 점도 등급조정의 주요인이라고 한신정은 밝혔다. 데이콤 역시, 주요사업 부문의 경쟁심화 등 영업여건 악화에 따른 수익성 하락과 인터넷 사업부문의 막대한 시설투자 조달의 어려움이 등급조정의 이유였다.

두 회사에 대한 한신정의 등급조정 뒤 증시에선 LG그룹 전체의 자금악화설로 증폭됐으며 급기야 금융감독원이 진화에 나서는 상황이 전개됐다. 금감원은 즉각 이를 악의적인 루머 유포행위로 규정하고, 유포세력을 끝까지 추적해 엄단한다는 경고메시지를 내보냈다. 금감원 관계자는 “최근 증시에서 ‘현대 다음엔 LG다’, ‘LG가 자금난에 빠졌다’는 등 악의적이고 근거없는 루머가 퍼지고 있어 루머 유포자에 대한 추적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LG그룹은 현재 자금흐름이나 업황 등 경영상태에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자금위기설과 관련해 정부나 금감원 차원에서 핵심 계열사의 조기계열 분리를 요구했다는 것도 낭설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확실한 증거는 아직 없으나 IMT-2000 사업자 선정을 앞두고 경쟁관계에 있는 업체들의 책동이 아닌가 하는 해석을 덧붙였다.

LG그룹쪽은 최근의 자금악화설 및 계열사 주가하락 사태에 대해 구조조정 성과에 대한 이해부족 등으로 인해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LG구조조정분부의 한 임원은 “전체 계열사가 상반기에만 1조8천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으며 연간 전체로는 3조5천억∼4조원의 흑자를 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금악화설에 대해 “특정 업체를 꼽을 수는 없지만 IMT-2000 경쟁업체쪽이 아닌가 싶다”며 “악소문을 구체적으로 얘기하는 데가 있으면 정식으로 대응하려고 한다”는 내부 분위기도 전했다.

구조조정 성과에도 재무구조 악화돼

(사진/LG그룹은 자금악화설에 대해 구조조정 성과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탓이라고 말한다. 강유식 LG구조조정본부장이 '지주회사체제로의 전환 계획'을 밝히고 있다)
LG 주채권은행인 한빛은행쪽의 설명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은행 대기업금융팀의 최병도 팀장은 “시장에서는 LG그룹 자금흐름에 이상이 생겼다고 떠드는 사람들이 있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최 팀장은 “자금수급에 문제가 있다면 대출한도를 소진하고 한도증액 요청을 해올 것 아니냐”고 반문하며 “LG의 어느 계열사에서도 그런 낌새가 전혀 없다”고 전했다.

LG나 한빛은행쪽의 설명대로라면 자금난설은 헛소문인 셈인데, 과연 그럴까.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의 의견은 조금 다르다. LG가 당장 유동성위기에 빠질 정도는 아니지만 재무구조가 크게 악화돼 악성루머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는 게 이들의 판단이다.

LG가 금감원에 제출한 3분기 실적에 따르면, 12개 상장 및 등록계열사 전체의 자본총액은 8조5천억원인 반면에 부채총액은 23조원이어서 부채비율이 276%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말 부채비율을 200% 밑으로 낮췄으며 올해 상반기까지도 이 비율을 유지해왔으나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갑자기 높아진 것이다.

LG의 부채비율이 하반기 들어 갑자기 높아진 주원인은 주력계열사인 LG전자와 LG정보통신의 합병비용이다. LG전자는 지난 9월1일치로 LG정보통신을 흡수합병했는데, 이 과정에서 합병에 반대하는 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에 1조원가량이 투입되었으며, 이 때문에 주가가 떨어지자 주가부양을 위한 자사주 매입에 또 3천여억원의 자금이 들었다. 문제는 이 자금을 주로 외부차입금으로 조달했다는 점이다. LG전자는 9월 말 현재 이자지급성 총차입금은 5조7443억원(단기차입금 2조1455억, 장기차입금 3조5988억원)이며 부채비율은 284%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 및 올해 6월 말 부채비율이 각각 185.4%, 172.0%였던 것에 견줘볼 때 재무구조가 급격하게 나빠진 것이다.

물론 당장 빚을 갚는 데 어려움을 겪을 정도는 아니다. 강록희 대신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LG전자의 영업관련 현금흐름 및 올해 말 기준 당기순익(약7천억원으로 예상)과 현금유출이 없는 감가상각비(4500억원 이상으로 추정)를 감안하면 올해 만기도래하는 회사채(4천억원 안팎)를 상환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그렇지만 “앞으로 부채비율을 낮춰야 하는데다 IMT-2000 사업자로 선정될 경우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1조원 정도의 자금조달을 하기 위해선 적극적인 자구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 연구원은 강조했다.

LG, 주가 대책 세우며 적극적 대처

(사진/LG텔레콤과 데이콤에 대한 신용등급 하향조정이 자금악화설로 이어졌다.최근 LG계열사 등급을 낮춘 한국신용정보평가 회의 모습)
LG쪽도 재무구조가 나빠졌다는 지적에는 수긍하며 나름대로 대책도 마련했다. LG구조조정본부는 최근 작성한 ‘주가관련 대책’에서, 그간의 구조조정 성과와 앞으로의 계획 및 주력계열사의 경영실적에 대해 투자자들의 정확한 이해를 돕기 위해 기업설명회(IR) 등 적극적 홍보활동을 실시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더욱 강화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각 계열사의 구조조정 실적과 계획도 조목조목 제시했다. LG텔레콤은 상반기 360만명에 머물던 가입자가 11월 현재 380만명으로 늘어났으며, 매달 통화료 등 현금수입이 1300억∼1400억원이 유입되고 있어 12월 말 회사채 만기분 1500억원을 갚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다. 데이콤은 기간망 구축과 용량확대가 어느 정도 마무리돼 초고속 인터넷 접속서비스에 대한 신규투자비가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다고 주장한다. 올해는 애초 계획치보다 1500억원 줄어든 5천원선, 내년에는 3천억원 정도로 잡아놓았다. LG전자도 LG정보통신과 합병에 따라 자금부담이 다소 늘기는 했지만 4분기의 영업실적으로 상쇄하면 큰 문제가 될 게 없다 게 LG쪽 시각이다.

LG화학은 내년 4월부터 LGCI·LG화학·LG생활건강 등 3개로 분할, 각각 독립법인으로 새출발하며 분할되는 3개 법인은 모두 부채비율 200% 이하의 우량한 재무구조를 갖게 되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구조조정 및 차별화된 사업구조 확보를 통해 부채비율 100% 수준의 초우량 재무구조를 갖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룹 전체의 지배구조와 관련해, LG는 LG화학과 LG전자는 관련업종 계열기업 지분만 소유하고 업종과 무관한 계열기업간 출자관계를 해소해나감으로써 출자구조의 단순화 및 수직계열화를 이룰 것이라고 강조했다.

LG증권 김주형 상무는 “LG에 대한 나쁜 소문이 밑도 끝도 없이 나오는 것은 IMT-2000 사업에 참여키로 한 방침과 관련이 깊은 것 같다”며 “IMT사업자로 결정되지도 않았으며 설사 결정된다 하더라도 합작사업이기 때문에 세간에 알려진 만큼의 대규모 자금이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LG쪽의 이런 해명을 차치하더라도 최근의 자금악화설은 다소 부풀려진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통상 자금난이라고 하면 당장 빚을 못 갚아 허덕댈 정도이거나 멀지 않은 장래에 이런 지경에 빠지는 것을 뜻한다고 볼 때 LG의 실정과는 다소 거리가 멀다.

LG텔레콤과 데이콤의 신용등급을 하향조정한 한국신용정보의 김재범 전자통신평가실장은 “이번에 내놓은 LG계열에 대한 수시평정(평가)은 2∼3개월 전에 착수한 것으로 최근의 루머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며 “LG그룹 전반의 상황을 대우나 현대와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LG계열 2개사에 대한 신용등급을 낮추긴 했으나 이는 최근의 경영성과를 반영한 것이며 유동성 문제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강조했다. 유동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투자적격이냐, 투기등급이냐 차원의 사항으로 LG텔레콤과 데이콤의 경우 투자적격 중에서도 높은 등급인 A-에서 한 계단 내려갔을 뿐이다.

금감위 관계자는 “LG계열사 중에서 이자보상배율로 따질 때 빨간불이 켜진 곳은 한 군데도 없다”며 “수익성이 좀 떨어지는 정도일 뿐으로 유동성 위기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LG가 1위 사업을 확보한 게 별로 없는 등 과제를 안고 있긴 하나 현금 흐름면에서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계열별 독립채산제가 어느 정도 확보돼 있다는 점도 LG의 장점으로 꼽았다. 구본무 회장의 그룹 장악력이 제한적이어서 지금까지 그룹 차원의 큰 사업을 벌이지 않아 말썽이 생길 여지가 별로 없다는 해석이다.

시장을 설득하지 못하면 거꾸러진다

그렇지만 이런 시시콜콜한 분석보다 정작 중요한 것은 LG에 대한 시장의 반응일 것이다. LG가 아무리 구조조정 계획을 내놓고 설명자료를 쏟아낸다고 하더라도 시장 참여자들을 설득시키지 못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게 대우, 현대사태의 교훈이다.

지난 5월 금감원은 현대 계열사의 위기설을 자체통신망에 올렸다는 이유로 동양증권에 대해 기관 문책경고 및 대표이사 경고 조처를 내려 세간의 빈축을 산 바 있다. 당시 동양증권의 보고서는 그때까지 증시 주변에서 알려진 내용들을 종합해 분석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중평이었음에도 신뢰도가 낮은 투자보고서를 유포했다는 이유만으로 중징계를 내렸다. 금감원의 이 조처를 두고 금융계에서는 “경제위기 상황의 희생양을 만들려는 의도”라는 혹평까지 나왔다. 이후에 불거진 현대사태를 돌이켜보면 동양증권의 보고서는 오히려 정부와 현대가 적극적으로 참고해야 마땅했다.

LG에 대한 소문을 현대사태와 동일선상에서 견줄 수는 없다하더라도 어떻게 대처하는 게 현명한지를 가르쳐주는 대목이다.


박순빈 기자sbpark@hani.co.kr

김영배 기자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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