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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대우차 바퀴 빠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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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1-2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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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각일정 늦춰져 축소 위주 생존책에 급급… 독자회생 가능성 잃어 고사할 수도

(사진/대우자동차 고감도 구조조정에 들어갔지만 사태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한 노동자가 생산라인에서 고개를 떨구고 있다)
대우자동차 사태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지난 11월8일 부도를 낸 뒤 부품업체들의 납품거부로 부평공장 가동이 중단된 가운데 군산공장마저 부품공급이 들쭉날쭉해 조업에 차질을 빚고 있다. 이 때문에 10일여 만에 대우차의 생산 및 판매 차질액이 1500억원을 넘어서고 있다. 대우차 내수판매는 부도 이후 20∼30%까지 줄면서 판매손실액도 200억∼300억원에 이르고, 수출에서도 운임지급을 요구하며 현지 항구 등지에서 묶인 차량이 4만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33개 해외 제조법인(생산능력 90만대)과 13개 해외 판매법인도 국내로부터 부품·차량을 공급받지 못하면, 국내 대우차와 운명을 같이하게 된다. 또 대우차와 함께 매각예정이던 대우자판, 쌍용차, 대우캐피탈, 대우통신 보령공장 등의 매각일정도 불투명해졌다. 어느 정도 가닥을 잡더라도 실제 매각은 내년 중반 이후로 미뤄질 가능성이 높다. 이 밖에 대우차와 얽힌 채권채무 관계 등의 처리지연으로 (주)대우, 대우중공업의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도 더욱 꼬이게 됐다. 물론 금융권 추가손실도 불가피하다.

험난한 여정, 이제 시작일 뿐이다


대우차는 현재 법원으로부터 재산보전처분 결정이 내려졌으며, 앞으로 법정관리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대우차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채권채무가 동결돼 협력업체 연쇄도산은 불가피하다. 이는 지금 협력업체들이 대우차에 부품을 공급하지 않는 원인이기도 하다. 어음을 받고 물건을 대줘봐야 나중에 상당기간 휴짓조각이 되기 때문이다. 대우차 협력업체 수는 1∼3차 협력업체를 합해 1만여개, 종업원 수는 60만여명에 이른다. 이미 대우차 부도처리로 협력업체가 갖고 있는 대우차 어음이 휴짓조각이 돼 부품업체들은 현재 심각한 자금난에 봉착해 있다.

현대건설과 함께 우리 경제에 큰 짐이 되고 있는 대우차의 험난한 앞길은 이제 시작단계일 뿐이다. 대우차는 부도 이전 채권단으로부터 매월 1천억원가량의 운영자금을 지원받았다. 그러나 부도 이후 이러한 운영자금 지원은 더이상 기대하기 힘들게 됐다. 법정관리 이후엔 채권단 지원금 없이 영업이익으로 부품값과 임금을 해결해야 한다.

이에 따라 대우차는 매각과 상관없이 고강도 내부구조조정에 들어갔다. 대우차의 한 관계자는 “컨설팅업체인 아더앤더슨과 함께 작성중인 구조조정 계획이 나오는 대로 곧 시행에 들어갈 예정”이라며 “10월31일 발표된 9천억원 규모의 자구계획보다 강도가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마련중인 계획은 법정관리에 따른 판매량 감소를 예측해 작성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우차는 지난 10월31일 △감원 3500명 등 인건비 감축 1천억원 △재료비 1400억원 절감 △광고비를 비롯한 다른 경상비 1800억원 축소 △1천억원 자산매각 △판매가 조정 통한 1600억원 절감 △연구개발비 축소 △해외법인 구조조정 등 2001년에 9천억원의 자금수지를 개선한다는 자구계획을 발표했다. 대우차는 우선 11월13일부터 내년 1월까지 8주 동안 국내 근무 전 직원을 대상으로 순환휴직제에 들어갔다.

문제는 이처럼 축소 위주의 생존전략에만 매달릴 경우, 대우차의 기업가치는 더욱 떨어져 나중에는 독자회생 가능성을 거의 상실한다는 데 있다. 시간이 갈수록 고사할 수밖에 없는 게 지금 대우차의 처지이다. 자동차회사는 끊임없이 신차를 개발하지 않으면, 2년 뒤에도 판매가 계속되길 바라기는 힘들다. 그러나 법정관리 아래에서는 연구개발 투자를 기대하기 힘든 실정이다.

매각도 독자경영도 지금 상태로는 안 돼

(사진/대우차는 경영의 중심이 사라진 상태에서 협력업체에 고통을 떠 넘겼다.사진은 대우차 협력업체 회의 모습)
한때 공기업화냐, 해외매각이냐 등의 논란을 빚기도 했던 대우차는 이제는 자신의 진로를 선택할 수 있는 주체가 아니라 완전히 ‘선택받는’ 객체로 떨어졌다. 대우차에서 인수협상 파터너로 삼고 있는 제너럴모터스(GM)의 릭 왜고너 회장은 최근 미국의 자동차 전문주간지인 <오토모티브 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GM은 아시아 시장을 위한 생산시설이 필요하며, 대우차가 이를 위해 좋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부도 이후의 대우차에 대해서도 관심이 여전함을 내비쳤다. 그러나 GM은 정밀실사가 끝난 이후 지금까지 인수의향서를 제출하지 않고 있다. GM코리아 관계자는 “부도 이후 대우차의 상황이 매우 유동적이어서, 우선 상황이 안정이 된 뒤에야 본격적인 인수협상을 벌일 수 있다”고 말했다.

GM은 대우차가 법정관리 뒤 스스로 인력조정과 사업구조조정을 마무리할 때까지 기다릴 것으로 보인다. 애초 GM이 대우차 인수의향서를 제출할 때 정부와 채권단으로부터 요구받았던 협력업체와 고용승계 부담을 깨끗하게 털겠다는 속셈이 엿보인다. 시간을 끌면 대우차의 가치 하락으로 인수가격은 상당히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다 GM-피아트 컨소시엄은 최근 일부 공장과 자산을 선별인수하는 쪽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GM이 선별인수쪽으로 방향을 틀 경우, 군산·창원공장이 유력하며, 생산성이 떨어지는 부평공장은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법정관리 결정 이후, GM과의 본격협상이 이뤄지더라도 실제 매각은 내년 중반 이후에나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대우차는 새 주인을 찾기까지 상당한 기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며 또 매각 자체가 아예 불투명할 경우에는 독자경영도 염두에 둬야 한다. 결국 매각이든, 독자경영이든 지금의 상태로는 견디기 힘들다는 것이 안팎의 공통된 생각이다. 비록 노조는 인원정리를 반대하고 있지만, 부도 직전 공장가동률이 40%대였던 부평공장의 인원정리는 불가피하다는 이야기가 내부에서도 들리고 있다.

대우차 사태는, 정부와 채권단이 처음부터 치밀하고 다각적인 처리방안을 구상하지 않고 오직 한 가지 방안에만 매달리다가 해외매각이 차질을 빚자 수습하기 곤란한 지경에 이르렀다. 지난해 8월 워크아웃 신청 이후 회사경영의 중심이 없다보니까 종업원들과 협력업체들의 자발적인 구조조정을 유도하기는커녕 채권단 내부에서도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였다.

자동차산업 전문가들은 대우차 못지않게 누적부실로 골치를 앓고 있던 영국의 로버사가 아주 신속하게 구조조정을 하고 있는 데서 교훈삼을 대목이 많다고 조언한다. 로버 주주였던 독일 BMW사가 올해 3월 철수방침을 발표하자 영국 상무부는 바로 그 다음날 미들랜드주와 버밍엄시당국, 채권단, 학계 전문가, 기존 경영진과 종업원 대표들로 테스크포스팀을 구성하고 2개월 만에 구조조정 방안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RV차 랜드로버는 포드가, 경차사업부문은 BMW가 그대로 인수하는 협상을 마무리짓고 일반승용차 부문은 ‘MG로버’로 이름을 바꿔 독자경영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MG로버는 연간 생산능력을 30만대에서 20만대로 줄이는 동시에, 인원도 3만명에서 5500명으로 줄여 생산성을 배가했다. 98∼99년 연간 8억파운드(약 1조2800억원)의 적자를 기록하는 등 만성적자에 허덕이던 로버는 올해 매출액을 20억파운드(약 3조2천억원)로 예상하고 있으며, 오는 2002년에는 손익분기점을 돌파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신속한 구조조정 합의만이 살 길

로버가 이런 부푼 청사진을 그릴 수 있는 것은 대우차와는 달리, 엄청난 부채를 BMW가 다 가져갔기 때문에 가능하다. 로버가 채권단에 별도의 운영자금을 요구하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로버는 내년 여름까지 8개의 모델을 출시하기로 준비하고 있다. 신규투자도 외부자금 지원없이 판매수익으로 가능하다는 게 로버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로버의 미래가 성공으로 끝날지는 아직까진 미지수이긴 하나, 영국 정부가 직접 나서 이해당사자들을 설득해 불과 7개월여 만에 새로운 경영기반을 구축했다는 것 자체가 대우차로서는 부럽기만 하다. MG로버의 노동자들이 대규모 인원조정에 쉽게 동의했던 것은 퇴직자들에 대해 당국과 회사쪽이 적절한 보상을 해줬기 때문이다. 로버 공장이 위치한 버밍엄시는 BMW 유치 당시 투자를 약속했던 1억2900만파운드(약 2064억원)의 공적자금을 로버의 퇴직 종업원들을 위해 썼다. 영국 당국은 인원정리에 따른 비용절감분만큼 종업원 재교육, 재취업을 위해 썼고 체불로 인한 로버 종업원들의 개인대출금 상환도 지원했다. 1인당 4만파운드(약 6400만원)의 위로금도 줬다.

대우차는 영국의 로버와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하지만 이해당사자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처리방향을 신속하게 합의해 구조조정에 나서지 않으면 국가경제에 엄청난 짐을 안겨주는 것은 두 기업 다 사정이 같다.

권태호 기자/ 한겨레 경제부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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