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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높이 나는 섬유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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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1-2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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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신소재 공급원으로 거듭나는 효자 산업… 구조조정 통해 수익성 개선 몸부림

‘스타킹에서 인공심장까지.’

섬유업, 하면 사양산업이란 이미지가 깊이 각인돼 있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다른 면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섬유강국이며, 섬유업이 국내 수출과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만만치 않다.

쓰임새 또한 예상밖으로 넓다. 일반적으로 섬유라고하면 주로 의류소재를 떠올리게 되는데 산업전반으로 용도가 날로 확대되고 있다. 자동차 안전벨트, 로프, 타이어 코드, 골프채, 테니스 라켓 등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에서 인공심장, 비행기 부품 등 고도의 정밀성을 필요로하는 부분에까지 널리 쓰이고 있다.

무엇보다 섬유가 국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사양산업이란 말을 무색하게 한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 전망에 따르면, 올해 섬유류 수출은 177억달러로 사상 최대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이에 비해 섬유류 수입은 49억달러에 그칠 것으로 보여 섬유부문 무역흑자는 134억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섬유업은 지난해에도 133억달러 정도의 흑자를 기록해 우리나라 전체 무역흑자의 절반 이상(55.6%)을 차지했다.

국내 산업 전반에서 섬유가 차지하는 비중도 막중해 지난해 기준으로 총수출의 11.9%, 제조업 고용의 15.1%, 제조업 생산의 8.3%이다. 이만하면 어깨에 힘줄 만도 한데 사양산업이란 꼬리표를 달고 다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전체 무역흑자의 절반 이상이 섬유업에서…

한국섬유개발연구원의 조호현 연구기획팀장은 “70년대 중화학산업을 육성하는 과정에서 섬유류는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이 때문에 사양산업이란 이미지가 굳어졌다”고 풀이했다. 조 팀장은 “심지어 은행 등 금융권에서도 섬유업은 사양산업이란 인식이 통용돼왔다”고 덧붙였다.

물론 국내 섬유산업 자체가 안고 있는 문제점도 적지 않다. 조 팀장은 “섬유업계의 가장 큰 문제는 업체 수가 너무 많은 데 따른 오버캐파(과다생산)이며 섬유부문이 수출 등에서 차지하는 몫은 크지만 수익성은 낮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업체 수가 많은 데 따른 과당경쟁으로 외형에 비해 내용이 튼튼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지난번 2차 기업퇴출(11월3일)에서 섬유산업의 과다생산 구조가 어느 정도 해결될 것으로 기대됐으나 결과는 달랐다. 섬유업계에선 화섬업체인 고합이 매각대상으로 분류됐고 갑을과 갑을방적이 합병대상으로 선정되는 데 그쳤다.

업계 전반적으로 기술개발 능력이 취약하고 마케팅 능력도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 관계자는 “국내 자체기술보다는 외국 기술에 의존하고 범용기술으로 바탕으로 한 제품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해 선진국 시장 진출에 커다란 약점을 안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섬유산업의 마케팅 능력은 이탈리아 등 선진국에 비해 60%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선진국의 주문자상표부착(OEM) 주문에 따라 국내 기업은 주로 생산부문만을 맡아온 데서 빚어진 양상이다. 이 때문에 고부가가치화의 핵심 경쟁요소인 패션·디자인도 선진국 모방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정보화, 기술표준화도 여전히 미흡한 수준이다.

그렇지만 최근 들어 섬유업계 내부의 자발적인 구조조정이 활발하다. SK케미칼과 삼양사가 지난 11월1일 폴리에스테르 사업부문을 떼내 화섬통합 법인으로 출범시킨 휴비스(HUVIS)가 대표적인 예다. 업계에선 이번 통합에 따라 원료 공동구매로 인해 그동안 유가상승과 더불어 업체들에 큰 부담이 됐던 원료가격이 크게 떨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공급과잉 탈피 위한 자발적 구조조정

(사진/“섬유산업이 사양산업이라고요?” 섬유산업이 의류산업에서 첨단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실제 공급과잉으로 초래됐던 폴리에스테르(PET) 가격하락 등의 문제는 양사가 통합을 발표한 지난 7월 이후부터 이미 서서히 개선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 현대증권은 지난해 t당 1241달러였던 폴리에스테르 장(長)섬유의 수출가격이 지난 7월 1504달러, 8월 1583달러, 9월 1618달러로 꾸준히 올라 올해 평균가격은 지난해보다 26.4% 상승한 1569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또 지난해 t당 평균 475달러에서 올 들어 500달러 이상으로 폭등했던 텔레프탈산(TPA) 등 원료 가격도 지난 7월 594달러, 8월 583달러, 9월 570달러 등 점차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공급과잉 해소가 제품가 상승, 원료가 하락으로 이어지면서 채산성을 크게 향상시키고 있는 셈이다.

개별 업체들의 노력 외에 섬유산업기술개발융자자금(올해 140억원), 밀라노프로젝트(총사업비 6800억원을 들여 대구를 섬유패션산업 중심지로 육성하는 계획), 섬유종합전 등 정부나 협회 차원의 지원도 적극적이다. (주)코오롱 기술연구소(경북 구미)의 정봉덕 과장은 “싼 인건비에 바탕을 두고 있는 저가품 시장은 중국 등에 이미 추월당하고 있어 이젠 고기능 제품 분야에서 일본, 유럽과 맞설 힘을 길러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업계 전반이 구조조정에 나서 수익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부가 제품으로 일본·유럽에 맞서야”

정 과장은 “일본의 경우 화섬업체는 8∼9개 정도였다가 지금은 정리돼 5개 업체만 가동중인데 국내에는 모두 12개 업체가 경쟁하고 있는 상태”라며 “국내 업체간 공조를 위한 틀을 만드는 일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휴비스 같은 통합법인을 만드는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영업·관리 부문쪽은 공동으로 운영해 비용을 절감하고 아울러 이미지를 높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 전체가 살기 위해선 무리한 증설 경쟁보다는 선발업체를 중심으로 통합하는 전략이 불가피하다는 얘기이다.

섬유제품은 지난 87년 단일 품목으로는 처음으로 수출 100억달러를 달성했으며 지금까지도 꾸준한 성장세를 지켜 우리 경제의 버팀목 구실을 하고 있다. 사양산업 이미지를 떨치고 첨단소재쪽으로 영역도 넓히고 있다. 그럼에도 구조조정을 통한 업계 전반의 자율적인 정비는 절실한 과제로 남아 있다. 금융인 출신이면서 섬유업종에 유난히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송병순 CDIB & MBS 벤처캐피탈 회장은 “사양산업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며 “사양업이라는 평가를 받는 분야에서도 돈되는 신규사업은 얼마든지 있는 법”이라고 말했다.

섬유산업 무역흑자 현황

 

1987년

1996년

1997년

1998년

1999년

2000년(예상)

수출

118

177

183

165

171

177

수입

15

54

50

28

38

43

무역흑자

103

123

133

137

133

134

김영배 기자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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