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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미국이 찾은 희생양, 위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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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4-03-3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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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경제의 화려한 부상과 미국의 추락… 미-중 환율전쟁은 왜 시작되었나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부 교수

중국은 미국과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세계은행-IMF 연차총회에서 연설 중인 저우샤오촨 중국 인민 은행장.(AP연합)
중국 위안화 재평가를 둘러싸고 각종 주장과 전망이 난무하고 있다. 이 문제는 기본적으로 위안화 절상뿐 아니라 심지어 변동환율제로의 이행을 요구하는 미국과 급격한 위안화 절상은 물론이거니와 환율 시스템의 개혁을 거부하는 중국간의 갈등이다. 중국과 미국간 환율전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위안화 재평가 문제가 제기된 시점과 배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위안화의 가치가 저평가돼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 이후로, 당시 중국은 수출과 외국인 투자가 크게 증가하면서 경제의 고속성장이 안정화되는 시기로 진입하고 있었다. 반면 미국은 1990년대 말 이른바 ‘주식시장 케인스주의’에 의한 신경제, 즉 주가 상승에 의한 소비와 투자의 증가(자산효과), 그리고 이를 통해 나타난 신경제의 활력이 꺼지며 경기가 빠르게 침체되고 있었다.

미국 내부의 문제를 중국 탓으로


1990년대 말 미국 내수시장의 호황과 미국 수입의 증가는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세계 경제의 회복에는 기여했으나 미국 경상수지를 크게 악화시켰다. 1997년까지 1283억달러에 불과하던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1998년에 2083억달러, 2000년에 4103억달러, 2002년에 5034억달러, 2003년에 5418억달러로 빠르게 증가했다. 그런데 미국은 경상수지 적자의 문제를 미국 자산에 대한 외국인들의 매수라는 자본수지의 흑자로 해결했다. 그러나 미국 경제의 침체가 깊어가면서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2001년 한해에만 11차례, 그리고 2002년과 2003년에도 각각 한 차례씩 금리를 인하하여 2000년 말 6.5%였던 금리가 2003년 6월까지 1%로 크게 인하되었다. 금리 인하와 경기침체로 미국 자산의 매력이 떨어짐에 따라 2000년 1조달러를 넘었던 미국 내 외국자산은 2002년에는 6303억달러 수준으로 크게 감소했다.

이같은 배경에서 달러화는 약세로 돌아섰다. 그러나 (달러에 연동되어 있을 뿐 아니라 1996년 이래 달러당 8.2760~8.2800위안 선에서 사실상 거의 변동이 없는) 위안화는 달러 약세에 편승해서 상대적으로 절하됐기 때문에 가격경쟁력이 높아졌고, 그 결과 중국의 무역수지 흑자가 크게 늘어난 반면 미국의 대중 수출은 크게 늘어나지 않았다. 이것이 위안화 절상 요구의 배경이다. 문제는 현재 미국 경제가 겪고 있는 수출 부진과 고실업 현상이 중국의 대미 흑자에서 비롯된 것이기보다는 미국 자체의 경쟁력 하락이나 산업구조의 변화나 천문학적인 재정적자에 따른 경제정책 운용의 경직성 등과 관련된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위안화의 대폭 절상과 환율 시스템의 변동을 요구하는 미국을 중국은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미국의 요구를 중국은 시장개방의 확대 속에 유일하게 남겨둔 자본통제 수단의 포기를 강요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고, 이는 체제유지와 관련된 것이기에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미국의 요구에 대해 중국이 단호한 태도를 취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실 급격한 환율 시스템 변화는 중국뿐 아니라 국제 경제 전반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중국은 갈등 확대 막기 위해 고심

다른 한편으로 중국은 미국과의 불필요한 갈등 확대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중국은 대미 수입 증가속도를 대미 수출 증가율 9%보다 높게 계획하고 있고, 총규모 67억달러의 비행기 엔진, 자동차 부품을 미국에서 직접 구매하기로 했다. 또 2차 구매사절을 미국에 보내 대두를 비롯한 농산물을 구매하고, 수출시 부가가치세 환급 비율을 낮추며, 소폭이지만 위안화도 절상할 예정이다. 중국이 지난 2월 기록한 78억7천만달러의 무역적자 역시 이런 노력의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중국과 미국간의 환율 및 무역 전쟁의 실상을 보면 외부에서보다는 내부에서 해법을 찾아야 할 미국 경제 문제의 희생양을 찾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점에서 일부에서 위안화 재평가를 둘러싼 미-중 갈등을 기본적으로 ‘팍스 아메리카나’(미국에 의한 평화) 대 ‘팍스 시니카’(중국에 의한 세계 평화)의 충돌로 보는 것도 일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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