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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일본차의 질주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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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4-03-2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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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타에 이어 혼다 · 닛산까지 한국 시장 뛰어들 채비… 가격 · 컨셉트 등에 유리한 위치 점령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2003년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팔린 수입차는 총 1만9461대(등록대수 기준)다. 국내 승용차 시장에서 수입차의 점유율은 1.9%로 높아졌다. 수입차의 질주는 올해도 계속되고 있다. 올 들어 2월까지 자동차 내수판매는 전체적으로 1년 전보다 32.8%나 급감했지만 수입차는 3285대가 팔려 오히려 21% 증가했다. 주요 수입차 메이커별로 지난 한햇동안 한국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린 차는 BMW(5432대·27.9%), 도요타 렉서스(3772대·19.3%), 메르세데스벤츠(3117대·16.0%) 순이다.

닛산 “르노 삼성과 경쟁 안해”


혼다의 어코드(위), 일본 도쿄에 있는 닛산자동차 대리점.(류우종 기자)
이런 수입차 돌풍 속에서 올해 일본 자동차 메이커들의 한국 시장 진출이 본격화하고 있다. 도요타에 이어 혼다와 닛산까지 올 상반기에 한국 시장에 새로 뛰어들어 수입차 시장의 판도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혼다와 닛산은 한국 시장 탐색을 끝내고 오는 5월 한국 시장에 수입 모델을 처음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2001년 한국 시장에 진입한 도요타가 렉서스 브랜드를 앞세워 크게 성공하자, 이런 자신감을 발판으로 일본 완성차 빅3가 모두 한국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도요타 렉서스는 지난해 10월, 그동안 수입차 시장에서 부동의 1위였던 BMW를 제치고 월 판매대수에서 정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수입자동차협회 윤대성 전무는 “일본차 메이커들은 시장이 있다고 확 달려드는 것이 아니라 돌다리도 두드려보는 전략으로 물밑에서 시장성을 탐색한 뒤 천천히 진입하는 전략을 구사한다”며 “지난 1999년 수입선 다변화 조치 해제로 한국 시장 진출을 준비해온 일본차 메이커들이 이제 한국 시장에 본격 상륙하고 있다”고 말했다.

닛산은 지난 3월16일 한국 판매법인인 닛산코리아를 설립하고 독립 딜러 모집에 나섰다. 닛산은 5월 초에 수입모델 라인업을 발표하고, 2005년 중반까지 한국 시장에 맞는 닛산의 새 모델을 선보이기로 했다. 수익성 악화로 지난 99년 르노에 인수됐던 닛산이 그동안의 오랜 구조조정을 끝내고 이제 해외시장 진출에 대대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닛산이 한국 시장에 내놓을 모델은 럭셔리 브랜드인 인피니티·시마 등인 것으로 알려진다. 인피니티는 렉서스·BMW·메르세데츠벤츠는 물론 에쿠스 등 고급 국산차와도 치열한 시장 다툼을 벌일 것으로 전망된다.

닛산의 독자적인 한국 시장 진출에 따라 닛산과 기술제휴 중인 르노삼성과의 관계가 어떻게 바뀔지도 관심거리다. 일단 닛산은 르노삼성의 국내 판매망을 활용하지는 않을 방침이다. 닛산코리아의 홍보대행사인 인컴브로더는 “닛산의 수입 모델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르노삼성과 경쟁하는 모델은 들어오지 않을 것”이라며 “수입차는 럭셔리 카로 포지셔닝돼 있는데 르노삼성과 섞어 한 군데서 같이 팔면 이미지가 깎일 수 있다는 우려에서 독자 영업으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혼다 역시 닛산처럼 5월 중에 신차발표회를 열고 한국 시장에 파고들 예정이다. 지난해 3월 한국 판매법인을 설립한 혼다는 이미 국내의 서너개 업체와 딜러 계약까지 마쳤다. 혼다가 올 상반기에 들여올 수입 모델은 중형차 어코드와 소형차 시빅, 스포츠실용차(SUV)인 CR-V가 될 공산이 크다. 도요타와 닛산이 최고급 럭셔리 브랜드(렉서스·인피니티)를 앞세우는 데 반해, 혼다는 대중 브랜드로 한국 시장을 공략한다는 구상이다.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 혼다를 기다리는 고객들이 적지 않아 국산차나 수입차 가릴 것 없이 긴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혼다가 한국 시장 런칭카로 들여올 어코드(2400cc, 3000cc)는 세계적으로 780만대 이상 팔린 대표적인 중형 베스트셀러 카로, 렉서스에 이어 혼다 돌풍이 일어나면 국산 고급세단(오피러스·그랜저XG 등)이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 수입차 시장은 주로 렉서스(ES330)·벤츠(C클래스180)·BMW(318i) 등 3천만∼5천만원대의 수입차 40여개 모델이 각축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일본에서의 판매가격에 비춰볼 때 혼다의 시빅1.5와 어코드2.0이 한국에서 판매되면 각각 2천만원과 3130만원에 팔릴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현재 한국과 일본 당국이 협상 중인 한-일 자유무역협정(FTA)이 2005년에 체결되면 우리나라의 수입자동차 관세(현행 8%·일본은 무관세)가 없어지게 돼 국산차와의 가격 차가 좁혀진다. 현대자동차 부설 자동차산업연구소는 수입관세가 8%에서 0%로 인하될 경우 일본차의 국내 판매가격이 7.4% 정도 인하될 것으로 추정했다.

부품교체 · 애프터서비스에도 유리

도요타의 렉서스.
이처럼 무관세를 적용받을 경우 혼다 시빅과 어코드의 가격은 각각 1850만원과 2900만원으로 낮아질 수 있다. 우리나라의 준중형차는 900만∼1300만원대, 중형차는 1500만∼2300만원대인데, 일본차의 브랜드 가치와 품질 수준을 고려하면 시장을 지키려는 국산차와 치열한 한판 경쟁이 붙을 수밖에 없다. 수입자동차협회 윤대성 전무는 “가격이나 품질을 고려할 때 그랜저XG 등에서 수입차로 옮겨볼 생각이 있는 소비자들이 쉽게 어코드쪽으로 건너뛸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도요타 렉서스 열풍이 보여주듯 일본차가 한국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일본차는 완성도가 높고 잔고장이 적어 초기 품질이 BMW나 벤츠보다 낫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특히 일본차의 연비는, 렉서스 ES330이 3311cc의 큰 배기량에도 불구하고 10.2km/ℓ를 내는 등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뛰어나다. 실제로 1970년대 두번의 오일쇼크로 기름값이 폭등하자 전 세계 자동차 구입자들은 대거 일본차 구입에 나섰다. 자동차산업연구소 박홍재 박사는 “내구성이 높고 잔고장이 적어 중고차를 높은 가격에 팔 수 있다는 점도 일본차의 강점”이라고 말했다.

일본차와 한국차의 컨셉트도 비슷하다. 현대자동차가 초기에 미쓰비시자동차의 기술을 활용해 승용차를 생산했고, 르노삼성차도 닛산의 기본 모델을 활용하고 있다. 윤대성 전무는 “유럽차는 엑셀를 밟을 때 대개 큰 소리가 나도록 제작되는 반면 일본차와 국산차는 잡소리 없이 조용한 컨셉트다”며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이런 컨셉트에 길들여진 점도 일본차가 돌풍을 일으키는 요인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살롱이란 말이 붙듯, 렉서스 등 일본차는 빨리 달리는 것보다는 주거공간처럼 조용한 차량 내부를 지향하는데 이것도 한국 소비자들에게 친숙한 컨셉트다. 다른 수입차와 달리 한국과 지리적으로 가깝기 때문에 일본차는 부품교체·애프터서비스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물류 및 중간 유통비용 절약에 따른 가격경쟁력을 통해 한국 시장을 빠르게 파고들 수 있는 것이다.

돌파구는 수출뿐이지만…

[불안에 떠는 르노삼성차]

일본차(특히 닛산자동차)의 한국시장 상륙이 본격화되고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협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가장 불안한 쪽은 르노삼성차다. 일본차의 시장점유율이 높아질 경우 다른 완성차 업체들은 수출로 돌파해나갈 여지가 있지만, 르노삼성은 판매시장이 사실상 국내 하나뿐이라서 직접적으로 큰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수출시장이 거의 없는 르노삼성은 지난해 자동차 내수가 크게 침체되자 한때 생산라인 가동을 중단해야 했다. 내수시장이 무너지면 공장을 세워야 하는 처지인 셈이다.

특히 르노삼성은 독자적인 신차 개발 능력이 없어서 그동안 닛산한테서 기술을 제공받아 플랫폼(차대)을 공유하는 등 기본모델을 닛산에 의존해왔다. 그런데 닛산이 한국 시장에 독자 진출함에 따라 닛산 모델과 르노삼성 모델이 한국 시장에서 서로 경쟁상대가 돼 충돌하는 현상이 나타날 우려도 있다. 올해 한국 입성을 앞두고 닛산이 2005년 SM7 개발을 끝으로 르노삼성에 대한 기술이전을 중단할 것이라는 소식이 외신을 타고 전해지면서 양쪽의 기술공조 파기설까지 최근에 제기됐다. 게다가 르노삼성이 개발 중인 프리미엄 브랜드 SM7은 (준)중형이 아니라 오피러스, 체어맨, 에쿠스 등과 경쟁할 만한 대형 세단이다. 이럴 경우 닛산이 한국 시장에 팔 예정인 대형 브랜드 ‘인피니티’와 경쟁하는 모델이 될 수 있다.

결국 르노삼성은 수출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2010년에 50만대(내수 및 수출 25만대씩) 생산 체제를 구축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지만, 르노삼성이 지난해 수출한 차는 1200여대에 불과했다. 그것도 르노-닛산이 아직 진출하지 않은 요르단·칠레·우크라이나 같은 틈새시장만 찾아다니고 있다. 르노삼성이 그동안 수출보다 내수판매에 주력한 건, 신생 업체라는 점 등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세계 시장에서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모델과 르노삼성 차종이 서로 충돌하는 이른바 부메랑 효과를 막는다는 측면도 있었다. 이에 대해 르노삼성차 관계자는 “르노삼성을 아시아 허브로 키우고 생산물량의 절반을 수출한다는 르노그룹의 구상은 변함이 없다”며 “수출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자동차기업은 없다. 르노-닛산 얼라이언스가 보유한 해외 네트워크망을 우리가 활용하면 시너지 효과를 내 수출을 늘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세계 시장에서 르노-닛산과 르노삼성의 세그먼트(대상 고객층)가 다르고, 같아진다면 르노그룹이 중간에서 교통정리를 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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