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지역연대 구축… 일상적 경영활동 감시체제 확립 시급 
 
 
 ‘시장이 감시하고 지배하는 기업’. 
  이런 기업지배구조를 갖추기 위한 동아시아 연대가 구축됐다. 한국을 비롯해 타이,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96∼97년에 혹독한 외환·금융위기를 겪었고 아직까지 위기의 터널을 완전하게 벗어나지 못한 10개의 동아시아 국가 및 지역들이 연대의 주체들이다.    
  태평양경제협력위원회(PECC)와 필리핀 기업이사연구회(ICD)는 지난 11월9일부터 11일까지 필리핀 세부의 샹그리라호텔에서 ‘시장친화적 기업지배구조 도입방안’을 주제로 공개토론회를 열어 동아시아 10개 국가 및 지역의 기업지배구조 개선활동의 연대기구 추진을 합의했다. 이를 위해 우선 각국 정부와 연구기관, 기관투자자와 신용평가기관이 참가하는 연구조직을 만들어 상호 관심사를 나누기로 했다.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각국의 모범사례를 공유하고, 이를 토대로 법과 제도 개선활동, 기업 평가, 공동 연수및 교육 등 여러 가지 연대활동을 전개한다. 이번 회의는 아시아개발은행(ADB), 세계은행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아시아지역 산하단체 및 기관들이 후원했다. 
   
  위기의 근원 차단해야 동아시아가 산다  
 
“동아시아 경제위기의 뿌리는 낙후된 기업지배구조에 있다. 정부가 통제하고 특정 개인이나 가족들이 지배하는 기업구조를 바꾸지 않고서는 위기를 벗어날 수 없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한 것이다. 동아시아에서는 기업활동을 둘러싼 제도적 환경과 문화가 비슷해 특정 국가나 지역의 위기가 다른 곳으로 쉽게 확산되기 때문에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서는 공동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를 대표해서 이번 회의에 참석한 연세대 국제대학원 김낙권 교수의 설명이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외환위기를 겪고 난 뒤 금융시스템이 공통적으로 간접금융에서 직접금융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기업활동의 주력재원이 은행대출이 아니라 주식과 채권 발행을 통한 직접금융시장에서 조달되고 있다는 얘기이다. 가령 한국을 보면, 외환위기 직전인 지난 96년에 기업들이 은행에서 조달한 신규투자금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중이 전년도보다 17.7% 증가한 반면에 주식의 비중 증가율은 1.3%에 머물렀다. 그러다가 지난해에는 주식발행을 통한 신규투자 증가율(8.5%)이 은행대출의 증가율(1.9%)를 훨씬 앞질렀다. 홍콩과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타이에서는 지난해 은행 대출을 통한 기업 신규투자가 98년보다 오히려 더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들이 은행에서 빌린 돈보다 갚은 돈이 더 많았다는 것이다. 지난해 이들 국가의 전체 기업신규투자가 감소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직접 금융시장에서 조달한 자금으로 은행대출을 갚은 셈이다. 이렇게 동아시아에서 기업들의 직접금융시장 의존도는 커진 반면에, 기업성과가 투자자들에게 돌아가는 몫은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거나 오히려 더 줄어든 경우가 많다. 직접금융시장은 말 그대로, 돈을 쓰는 쪽(기업)과 돈을 대주는 투자자가 자금중개자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만나는 시장이다. 투자자가 자기 판단으로 선택해 기업들에 돈을 대준다. 따라서 투자성과가 장기적으로 나쁘면 그만큼 시장전체가 위축되는 게 당연하다. 하와이대학 경영대학원 이상건 교수는 “동아시아에서 최근 2∼3년 동안 직접금융시장의 비중이 커진 배경에는, 은행들이 자체 부실을 해소에 급급해 자금중개기능을 상실하는 바람에 각국 정부가 인위적으로 육성한 측면이 있다”며 “하지만 공정하고 건전한 질서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직접금융시장도 구조적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교수는 특히, 한국의 일부 기업들이 주식발행을 통해 대규모 자금을 끌어들여 운전자금으로 활용하고 있는 현실을 개탄했다. 이는 기본적으로 투자자에 대한 배당성과를 염두에 두지 않고 있는 자금운용일 뿐 아니라, 또다른 자금불일치(미스매칭)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번 외환위기 때에는 단기외화자금을 끌어들여 중장기 사업자금으로 활용하다 미스매칭이 생겨 발생했지만 앞으로는 거꾸로 장기자금을 단기운전자금으로 소진하다가 투자자들의 배당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곧바로 위기상황을 맞게 된다.” 기업은 투자자에게 정당한 대가 보장해야
  따라서 기업들이 투자자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보장하거나, 처음부터 투자자들에게 어떤 기업이 정당한 대가를 줄 수 있는지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또 기업의 경영성과를 특정 개인이 아니라 전체 주주와 이해관계자들에게 고르게 분배하는 관행이 정착되어야 한다.   
  이 점에서 기업지배구조의 개선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그 기업에 투자한 주주와 채권자들이 기업활동과 성과를 투명하게 알 수 있게 하고, 개인적 이익이나 잘못된 판단으로 기업에 손해를 끼치는 경영자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져야 한다. 세부의 공개토론회 참석자들은 ‘기업지배구조의 개선이 동아시아 경제개혁의 핵심’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면서도, 그러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마련된 제도들이 제대로 정착되지 않고 있는 현실을 아쉬워했다.일본 니혼대학의 마사오 이가라시 교수(경제학)는 “일본에서도 국제무대에서 경쟁이 치열한 일부 제조업을 제외하고 금융, 유통, 건설업 같은 분야의 대형기업들은 후진적인 기업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이와은행의 부당내부거래에 따른 대규모 손실, 미쓰비시자동차의 리콜대상차량 은폐에 따른 신뢰 상실, 한때 일본 최대 백화점이었던 소고백화점의 경영난 등이 모두 후진적 기업지배구조에서 비롯됐다면서 “지배구조를 과감하게 개선하지 못한 일본기업들은 80년대 자산거품(버블)이 붕괴된 뒤로 수익성이 계속 떨어져 일본경제 전체를 장기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동아시아 각국들이 가장 필요한 조처로 내세우는 방안은 사외이사제도이다. 사외이사는 기업경영에 직접 참여할 수 없는 주주들을 대신해 일상적인 경영활동을 감시하고, 부당행위 또는 부실을 낳을 소지가 있는 의사결정에 대해서는 사전에 제동을 걸어 주주들의 이익을 지킨다. 이가라시 교수는 “기업지배구조 개선의 핵심은 누가 경영을 맡느냐가 아니라 기업활동을 얼마나 투명하고, 정당한 책임을 물을 수 있게 감시하느냐에 달려 있다”며 사외이사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에 따라 동남아시아에서도 사외이사제도를 도입하지 않은 나라는 거의 없다. 한국은 98년부터 일정 수준 이상의 자산규모를 가진 기업은 전체 등록이사 4명 가운데 1명꼴로 반드시 사외이사를 두도록 했으며, 말레이시아도 상장기업은 특정 주주나 경영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사가 전체 이사의 25%를 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을 만들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사외이사의 독립성과 전문성은 선진기업 수준에 훨씬 못 미치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오스트레일리아 모나시대의 마이클 스컬리 교수(금융학)는 “선진국에서는 사외이사에 대한 엄격한 자격기준을 적용하고 있고 사외이사 선임 뒤에도 정식 급여를 제외하고는 다른 보상을 일체 받을 수 없게 하고 있다”며 기업의 외부주주와 사외이사들간 ‘이해의 상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철저한 사전·사후 운용지침을 강조했다. 그러나 동남아시아에서는 대부분 사외이사의 감시대상인 대주주나 경영진에 의해 사외이사가 선임되는가 하면, 기업들이 사외이사의 활동에 필요한 경영정보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아 들러리 구실만 하고 있다.  
   
  지배구조 개선 흉내만 내면 외부 압력을… 
   
  기업지배구조는 이처럼 여러 가지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더라도 기업 스스로 그 제도의 취지를 살려나가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따라서 무늬만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외부의 압력이 필요하다.  
  ‘시장친화적 기업지배구조 도입’을 위한 세부 토론회에서는 지배구조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어 동아시아 전체 시장참가자들한테 판단자료를 제공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또 신용평가회사인 S&P 관계자는 올해 연말 러시아를 시작으로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평가등급을 매겨 시장을 반응을 봐가며 내년부터는 동아시아 기업들에까지 확대, 적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토론회에서는, 국내 참여연대의 활동에 대해 다른 국가의 참가자들이 깊은 관심을 보이며 시민·사회단체의 기업감시활동이 선진 기업지배구조 정착의 유용한 수단임을 확인했다.      
     
  세부(필리핀)=박순빈 기자sbpark@hani.co.kr   

(사진/동아시아의 기업지배구조 개성을 위한 민간 연대활동이 활성화될 전망이다.국제토론회를 마친 뒤 민간 네트워크 구축에 합의서명을 하고 있는 각국대표들)
“동아시아 경제위기의 뿌리는 낙후된 기업지배구조에 있다. 정부가 통제하고 특정 개인이나 가족들이 지배하는 기업구조를 바꾸지 않고서는 위기를 벗어날 수 없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한 것이다. 동아시아에서는 기업활동을 둘러싼 제도적 환경과 문화가 비슷해 특정 국가나 지역의 위기가 다른 곳으로 쉽게 확산되기 때문에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서는 공동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를 대표해서 이번 회의에 참석한 연세대 국제대학원 김낙권 교수의 설명이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외환위기를 겪고 난 뒤 금융시스템이 공통적으로 간접금융에서 직접금융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기업활동의 주력재원이 은행대출이 아니라 주식과 채권 발행을 통한 직접금융시장에서 조달되고 있다는 얘기이다. 가령 한국을 보면, 외환위기 직전인 지난 96년에 기업들이 은행에서 조달한 신규투자금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중이 전년도보다 17.7% 증가한 반면에 주식의 비중 증가율은 1.3%에 머물렀다. 그러다가 지난해에는 주식발행을 통한 신규투자 증가율(8.5%)이 은행대출의 증가율(1.9%)를 훨씬 앞질렀다. 홍콩과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타이에서는 지난해 은행 대출을 통한 기업 신규투자가 98년보다 오히려 더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들이 은행에서 빌린 돈보다 갚은 돈이 더 많았다는 것이다. 지난해 이들 국가의 전체 기업신규투자가 감소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직접 금융시장에서 조달한 자금으로 은행대출을 갚은 셈이다. 이렇게 동아시아에서 기업들의 직접금융시장 의존도는 커진 반면에, 기업성과가 투자자들에게 돌아가는 몫은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거나 오히려 더 줄어든 경우가 많다. 직접금융시장은 말 그대로, 돈을 쓰는 쪽(기업)과 돈을 대주는 투자자가 자금중개자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만나는 시장이다. 투자자가 자기 판단으로 선택해 기업들에 돈을 대준다. 따라서 투자성과가 장기적으로 나쁘면 그만큼 시장전체가 위축되는 게 당연하다. 하와이대학 경영대학원 이상건 교수는 “동아시아에서 최근 2∼3년 동안 직접금융시장의 비중이 커진 배경에는, 은행들이 자체 부실을 해소에 급급해 자금중개기능을 상실하는 바람에 각국 정부가 인위적으로 육성한 측면이 있다”며 “하지만 공정하고 건전한 질서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직접금융시장도 구조적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교수는 특히, 한국의 일부 기업들이 주식발행을 통해 대규모 자금을 끌어들여 운전자금으로 활용하고 있는 현실을 개탄했다. 이는 기본적으로 투자자에 대한 배당성과를 염두에 두지 않고 있는 자금운용일 뿐 아니라, 또다른 자금불일치(미스매칭)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번 외환위기 때에는 단기외화자금을 끌어들여 중장기 사업자금으로 활용하다 미스매칭이 생겨 발생했지만 앞으로는 거꾸로 장기자금을 단기운전자금으로 소진하다가 투자자들의 배당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곧바로 위기상황을 맞게 된다.” 기업은 투자자에게 정당한 대가 보장해야

(사진/참여연대의 소액주주운동이 기업지배구조 개선활동의 모범적인 사례로 꼽혔다.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회의 김주영 변호사가 활동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토론회에서 각국 대표자들은 동아시아 경제개혁의 성패여부는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있다고 한결같이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