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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정치자금엔 면세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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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4-02-2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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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성 있거나 정당이 받은 불법자금에는 과세하지 않는다는 국세청의 모호한 태도 도마 위에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검찰이 적발한 정치권의 불법자금 규모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검찰이 이미 기소한 액수를 기준으로 보면 한나라당이 받은 돈은 551억원에 이른다. 또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 안희정씨가 41억원, 민주당(열린우리당)이 32억원,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11억원, 한나라당 신경식 의원이 10억원, 정대철 열린우리당 의원이 9억5천만원을 각각 받았다. 아직 기소 내용에는 추가되지 않았지만 검찰은 한나라당이 삼성에서 추가로 170억원을 건네받았다고 밝혔다.

한나라당이 재벌들에게 받은 불법 자금을 보관하던 금고(한겨레 윤운식 기자). 국세청은 정당이 받은 자금은 불법이라도 세금을 매길 수 없다고 주장한다.
만약 민간인이 이 자금을 다른 사람에게 무상으로 건네받았다면 내야 할 세금이 350억원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불법자금을 받은 정당이나 정치인들은 세금을 한푼도 내지 않았다. 조세제도의 대원칙은 “소득이 있는 곳에는 과세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불법 정치자금 수수에 대해서도 세금을 걷으면 될 것 아닌가? 하지만 과세 책임을 지는 국세청은 여전히 수수방관하고 있다. 실제로 국세청은 지금껏 한번도 불법 정치자금에 세금을 매기지 않았다. 법 해석상 어렵다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몰수된다 해도 세금 물려야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자는 크게 개인과 정당으로 나뉜다. 우선 개인이 받은 경우를 보자. 국세청은 개인에 대해서는 ‘대가성 없이 받은’ 경우 무상증여이므로 과세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대가성이 있는’ 불법 정치자금은 세법상 증여로 보기 어려운 만큼, 과세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국세청은 지난 1월 참여연대 조세개혁팀의 탈세 제보에 대한 회신에서 “정치인이 받은 금전은 ‘뇌물’ 또는 ‘횡령’에 의한 불법 소득을 구성하며 이에 대한 과세의 필요성은 인정되나, 열거주의를 채택하는 현행 소득세법상 과세에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다만, 재정경제부의 유권 해석에 따라 결정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해 김진표 전 부총리는 부총리로 재직 중이던 지난 2월6일 정례 브리핑에서 과세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불법 정치자금은 대가성이 없으면 증여세를 부과하고, 대가성이 있으면 기타소득(사례금)으로 보아 소득세를 물려야 한다.” 김 전 부총리의 발언은 대가성이 있든 없든, 개인이 받은 불법 정치자금에 세금을 매겨야 한다는 해석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국세청은 여전히 재경부의 서면 통보가 있어야 한다며 발을 빼고 있다. 대가성이 있는 정치자금의 경우 액수에 따라 10~50%의 증여세를 매길 수 있고, 대가성이 있는 사례금일 경우 9~36%의 소득세를 매기게 된다. 따라서 안희정씨에게는 12억8천만원, 신경식 의원에게는 2억4천만원, 정대철 의원에게는 1억5천만원의 세금이 각각 부과돼야 한다.

2월11일 불법 정치자금에 대한 과세를 촉구하는 참여연대의 시위(김진수 기자). 국세청은 계속 과세 불가 선언만 하고 있을 것인가.
물론 김진표 전 부총리는 “불법 정치자금의 경우, 과세를 하더라도 실익이 없다”고 말해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현행 정치자금법은 불법 정치자금으로 확정되면 해당 자금을 전액 몰수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몰수를 하면 과세를 취소해야 하기 때문에, 과세의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참여연대 조세개혁팀은 “몰수는 불법 행위에 대한 형사처벌이고, 세금 부과는 소득 이전에 따른 행정집행이기 때문에 몰수와는 별개로 과세할 수 있고, 또한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증여세법은 증여를 받은 뒤 3개월이 지나면 돈을 돌려줬다고 해도 증여세를 매기도록 하고 있다. 또 신고기간 경과 3개월 이후에는 먼저 한 증여는 물론, 돌려준 행위에도 각각 증여세를 매기도록 하고 있다. 참여연대 조세개혁센터는 “이처럼 증여한 돈을 반환하는 경우에도 세금을 물리는데, 하물며 증여세 부과대상이 되는 불법 자금이 몰수될 것이라고 해서 비과세 혜택을 줄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강조했다.

더욱 치열한 쟁점은 ‘정당’이 받은 불법 정치자금에 세금을 매길 수 있는지 여부다. 정당이 받은 불법 정치자금의 규모가 훨씬 크고, 개인이 받은 정치자금도 따지고 보면 그 뿌리가 정당활동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경부나 국세청 모두 정당이 받은 불법 자금에는 과세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정당이 받은 어떤 불법 자금에도 세금을 부과할 수 없다는 논리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이하 상속세법) 제46조를 근거로 한다. 이 조항은 ‘정당이 증여받은 재산’에 대해 비과세하도록 하고 있다. 국세청과 재경부는 이 조항을 무엇보다 우선하고 있다.

문제는 이 조항이 불법 자금에도 적용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조세특례제한법(76조)과 정치자금법(27조)에 따르면 합법적 정치자금에 대해 비과세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국세청은 “상속세법이 적법 정치자금에 대해서만 증여세를 비과세한다는 뜻이라면 조세특례제한법의 내용과 중복된다”고 지적한다. 즉, 상속세법에 별도의 규정을 둔 것은 정당이 받은 모든 자금에 대해 비과세하도록 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관행 고치기 위한 참여연대의 싸움

참여연대는 이와 정반대의 해석을 내리고 있다. 참여연대는 “정당이 증여받은 재산에 대해 비과세한다는 규정은 있지만, 이는 모두 정당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를 준수하거나 법적 보호 가치가 있을 때에 해당하는 것인 만큼 정치자금법에 근거하지 않고 불법으로 취득한 재산에 비과세 혜택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불법 정치자금 과세운동은 참여연대가 지난해 4월 세풍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과세촉구서를 국세청에 제출하면서 처음 시작돼 벌써 10개월째 이르고 있다. 참여연대의 싸움은 불법 정치자금이나 뇌물을 받은 사람들이 범죄 사실은 밝혀져도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면죄부를 받아온 관행을 뿌리뽑자는 뜻에서다. 불법 정치자금에 대해 세금을 내게 하는 것, 그리고 탈세 행위를 처벌한다는 강력한 의지를 내비치는 것은 불법을 뿌리뽑는 데 큰 기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불법 정치자금에 대한 국민들의 공분과 현행 세법 해석의 모호함을 감안한다면, 국세청이 일단 과세 처분을 내리고 법원의 판결을 받는 것이 타당”하다며, “계속해서 과세 불가만 외친다면 특권층의 눈치를 보는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법원의 판결을 받아보는 것은, 법에 흠이 있다면 고치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의미도 있다. 3월3일은 ‘납세자의 날’이다. 국세청이 국민들에게 세금 잘 내라고 말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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