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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누가 ‘코알라’를 주물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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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4-02-1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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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살 청년의 ‘경영권 접수’ 선언과 주식매입으로 주가 급등한 서울식품, 그 수상한 속사정

류이근 기자/ 한겨레 경제부 ryuyigeun@hani.co.kr

여의도 증권가에 ‘나홀로 M&A’ 바람이 불고 있다. 그러나 수상쩍은 구석이 적지 않다.(박승화 기자)
“코알라를 내놔라”. ‘코알라’는 50년 제빵 역사를 뽐내는 서울식품공업㈜의 로고다. 최근 22살의 한 청년이 이 회사의 “경영권을 ‘접수’하겠다”고 나섰다. 이로 인해 한동안 시장에서 잊혀졌던 서울식품 주식에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서울식품의 주가는 썩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지난 1999~2000년 한때 1만~2만원을 넘던 주가는 지난 1월15일 760원대로 떨어지면서 곧 관리종목으로 지정될지 모르는 위기에 빠져 있었다. 보통주 기준으로 액면가의 20% 미만의 주가가 30일 동안 거래가 이어지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되기 때문이다. 서울식품의 액면가는 5천원인데, 지난해 말부터 올 초까지 연속으로 보름 동안이나 주가가 1천원 밑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홀연 16일부터 주가가 거래 7일 동안 연속 가격제한폭까지 오르며 단숨에 2천원을 회복했다. 2천원대 주가는 2002년 12월17일 이후 1년2개월여 만에 처음이다.

‘왕개미’ 부친은 서울식품 전 상무


서울식품은 지난 1월20일 주가급등에 대한 증권거래소의 ‘조회공시’ 요구에, “현저한 시황 변동을 초래한 사실을 뒷받침할 만한 것으로 현재 진행 중이거나 확정된 공시사항이 없다”고 답변했다. 그렇다면 주가가 왜 올랐을까? 뜻밖에도 22살의 회사원인 경아무개씨가 2월9일 서울식품의 지분 11.83%를 매입했다고 공시하면서 의문의 실타래가 하나씩 풀리기 시작했다.

경씨는 공시뿐만 아니라 언론에도 “경영참여를 위해 지분을 매입했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이 때문에 이른바 ‘왕개미’의 기업 인수·합병(M&A)에 대한 기대감이 이미 불 붙은 주가를 더욱 부채질했다. 주가는 2월11일 3555원까지 치솟았다. 이 과정에서 경씨는 10·11일에도 지분이 늘어가고 있는 상황을 친절하게(?) 공시로 증시에 ‘생중계’했다. 특수관계인을 포함한 지분이 21.16%로 늘어나면서 경씨는 기존 대주주인 서아무개씨를 제치고 최대주주로 등극했다. 그러나 11일 회사가 50% 이상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상황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거래소는 이날 바로 서울식품의 거래를 정지시켰다. 또 투자자들한테 ‘투자유의’를 안내했다. 다음날 거래가 재개됐으나, 치솟던 주가는 가격제한폭까지 곤두박질쳤다.

이런 모든 게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인수·합병 스토리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과정을 자세히 뜯어보면 미심쩍은 대목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경씨는 서울식품 주식을 사들이는 데 8억원 이상을 쏟아부었다고 언론을 통해 밝혔다. 이 가운데 4억원은 ‘지인’한테 빌렸다고 한다. 나머지 4억원은 순순하게 자기 주머니에서 조달한 돈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하지만 22살짜리 그것도 평범한(?) 회사원에게 4억원은 결코 만만치 않은 돈이다.

서울식품의 주가변동상황

이쯤해서 경씨의 아버지에게로 눈을 돌려보자. 답을 풀 수 있는 아주 많은 열쇠가 그의 아버지와 관련돼 있다는 게 시장의 추측이기도 하다. 우연히도 경씨의 아버지는 2000년 3월까지 서울식품의 상무로 있었다. 이후 코스닥등록기업인 에프와이디의 대주주이자 회장으로 변신했다. 문제는 경씨의 아버지가 현 서울식품의 서 사장과 함께 시세조종 혐의로 2002년 구속된 전력이 있다는 점이다. 그는 증권사 지점장 출신으로 증권업계에 꽤나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이 때문에 시장에는 “아들 뒤에 아버지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아버지 경씨는 또 다른 좋지 않은 전력으로 홍역을 치르는 중이다. 바로 2000~2001년 대주주로 있으면서 에프와이디로부터 29억원의 대여금을 쓴 뒤 이를 갚지 않아, 자신의 명의로 된 부동산이 경매 절차를 밟고 있는 것이다. 에프와이디 관계자는 “대주주의 횡령에 따른 형사 고소·고발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그가 숨겨둔 돈으로 아들을 이용해 서울식품의 주식을 샀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현재 에프와이디는 그의 재산을 처분해 10억원 이상을 회수한 상태다.

“시세차익 노리는 냄새 난다”

아들 경씨는 일관되게 ‘경영참여’ 목적으로 지분을 사들였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회사에 대한 아무런 ‘청사진’도 내놓지 않고 있어 의혹을 키우고 있다. 경씨는 13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은 말하기 곤란하다. 아직 확실하게 결정된 사안은 없다. 때가 되면 알리겠다”며 인수·합병 이후의 계획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눙치며 넘어갔다. 도대체 왜 인수·합병을 하려는지, 인수·합병을 하면 회사를 어떻게 꾸려나가겠다는 건지 설명이 없다. 서울식품 관계자는 “경씨한테서 연락을 일절 받지 않았다”며 “대주주(서 사장)한테 연락이 왔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로서는 그 사람의 의도를 전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대목에서 경씨의 아버지가 서울식품의 서 사장과 긴밀한 관계라는 사실이 또 다른 시나리오를 가능하게 해준다. ㄱ증권의 애널리스트는 “짜고 치는 ‘고스톱’일 가능성이 많다”고 거침없이 말한다. 이 애널리스트는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이 회사의 주가가 액면가의 20%에 미달하는 상황에서 그냥 내버려뒀으면, 관리종목 지정에 이어 퇴출이라는 운명을 맞았을 게 뻔하다”며 “실질적인 인수·합병이 아니고, 시세차익을 노리는 냄세가 난다”고 말했다. 이런 시나리오가 경씨 아버지와 서울식품과의 특별한 인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18일 이 회사가 4대 1 비율로 감자를 한다는 점도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회사는 이미 지난해 10월 감자를 통해 247억원인 자본금을 61억원으로 줄이기로 결의했다. 감자를 하게 되면 통상 증자를 하게 된다. ㄷ증권 애널리스트는 “경씨가 감자 예정이나 자본잠식 상태를 모르고 주식을 샀을 리가 없다”며 “그 대가로 증자를 할 때 제3자 배정 등을 통해 싼 값에 주식을 받아 차익을 챙기고 손을 털 수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런저런 우려 때문에 “투자자들은 감자 이후 소재가 터져 주가가 급등하는 일이 있더라도 따라 사지는 말아야 한다”고 그는 당부했다. 한 애널리스트는 경씨가 서울식품을 인수한 뒤 상장에 실패한 기업의 ‘백도어리스팅’(우회등록)의 통로로 쓸 가능성을 점치기도 했다.

서울식품은 2001년 156억원, 2002년엔 11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회사 관계자에 따르면 2003년 말 현재 자본잠식이 60% 이상이라고 한다. 해마다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뚜렷한 실적 개선을 보이지 않는 업체의 경영권을 인수하려는 속뜻이 딴 데 있다는 의심은 이래저래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하룻동안 상장주식 76% 거래돼

서울식품 주가는 지난 한달 동안 254%나 올랐다. 이것도 자본잠식이 알려지면서 주가가 빠졌기 때문에 다소 낮아진 수치다. 증권거래소 관계자는 “단기급등이 내부의 시세조종 등에 의한 것인지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2월13일 장중 주가 변동폭은 30%에 이르며 거래량은 360만주나 된다. 서울식품의 상장주식 수가 476만주인 점을 고려할 때 이날 하룻동안에만 상장주식의 76%가 넘는 어마어마한 주식이 움직인 셈이다. 증권거래소의 또 다른 관계자는 “거래량과 주가 움직임에 수상한 점들이 너무 많다”며 “‘손이 탔다’(작전세력이 개입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거들었다. 주가조작의 흔적이 보인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거래소나 금융감독원의 조사를 통해 밝혀져야 하겠지만, 시장에서는 벌써부터 인수·합병이란 포장으로 ‘코알라를 놓고 장난을 벌인 게 아니냐’는 우려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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