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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김용관] 조류독감 물렀거라 꼬꼬댁 꼬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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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4-02-1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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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원 캐릭터 개발 등 치밀한 전략으로 성공신화 만들어가는 ‘치킨맨’ 사장 김용관씨

글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서울 양천구 목동 지역 어린이들 사이에서는 그를 모르면 간첩이다. 치킨맨. 수다맨이나 아이스맨도 그의 인기를 따르지 못한다. 태어난 지 겨우 100일 만에 그는 정말 확 떴다. 치킨맨, 그의 직업은 정확히 말해 통닭 배달부다. 목동아파트 3·4단지 일대에서는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붉은 옷의 치킨맨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치킨맨을 만든 사람은 김용관(29)씨. 밤이면 가끔 그는 직접 치킨맨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치킨맨의 가장 큰 특징은, 조류독감에 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치킨맨 복장을 한 김용관씨.

캐릭터 디자이너 경험 살려


지난해 12월 충북 음성 지역에서 조류독감이 발견된 이후, 아시아 일대에 조류독감이 퍼져 인명피해까지 발생하면서, 닭이나 오리 요리를 파는 음식점들이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치킨가게들도 예외는 아니다. 대부분의 가게가 절반가량 매출이 줄었다고들 한다. 그러나 통닭맨은 말한다. “우리는 문제없어요.” 김씨의 가게 ‘치킨맨’의 벽에 걸린 일별계획표에는 “평일 80마리 목표달성”이라고 쓰여 있다. 그는 목표를 거의 달성했다. 지난해 11월 치킨맨의 매출은 1900만원, 12월에는 1000만원에 그쳤으나 1월에는 2100만원이었다. 조류독감의 파고를 가볍게 뛰어넘은 것이다.

그가 배달전문 통닭집 ‘치킨맨’의 문을 처음 연 것은 지난해 5월이다. 어린이들을 주요고객으로 삼고, 어린이날에 맞춰 개업식도 했다. 가게는 7평. 투자금은 3천만원이다. 아내 한세정(26)씨가 요리를 하고, 배달직원은 2명이 따로 있다. 김씨는 뭐든 다한다. 처음엔 그냥 다른 치킨집처럼 아무런 특색 없이 배달을 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배달부 ‘치킨맨’이 그려져 있었다. 그는 개업 두달 전에 ‘치킨맨 캐릭터’의 저작권을 등록했다. 치킨맨은 하나가 아니다. 두목치킨맨, 불 뿜는 치킨맨, 날라리 치킨맨, 바른생활 치킨맨 등 모두 6명이 한 팀이다. 그는 캐릭터에 맞춰 복장을 주문한 뒤 10월부터 치킨맨으로 배달부를 바꿨다.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 그는 미술을 공부한 뒤 웹디자이너와 캐릭터 디자이너로 4년가량 직장생활을 했다.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그는 소자본 창업에 관심을 갖고 시장을 연구해왔다고 한다. “치킨맨 아이디어는 2002년 5월께 떠올랐어요. 온라인에 비해 서비스가 크게 뒤처진 음식업종을 공략하면 틈새시장이 있을 거다. 그런 고민 결과 배달부에 캐릭터를 적용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해 고안한 것이 바로 치킨맨이죠.” 그는 아저씨가 슬리퍼를 신고 와서 건네주는 통닭 배달 관행에 혁명을 일으키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음식은 맛이라는 보수적 관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옛날에는 노래만 잘하면 가수가 됐지만, 지금은 노래만으로는 안 되잖아요.” 그는 고객들의 오감을 만족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치킨맨’ 아이디어가 핵심이긴 하지만 다른 것에 전혀 신경쓰지 않는 것은 아니다. 결혼 전부터 사업을 함께 준비한 아내는 ‘요리’를 공부하고 나름의 소스를 개발해냈다. 홍보전략에서도 그는 독특한 방식을 썼다. 자신이 그린 치킨맨 만화를 시리즈로 만들어 초등학생들에게 돌리는 것이 시작이었다. 물론 홍보물을 돌리는 것도 치킨맨이다. 치킨맨 캐릭터 스티커를 만들어 어린이들에게 무료로 나눠주기도 했다. “치킨 고객은 70%가 어린이거든요.” 그는 요즘에도 아침이면 아내와 함께 치킨맨 헬멧을 쓰고 오토바이를 타고 운동을 나간다.

닭추모 퍼포먼스까지 공격적 마케팅

사람들이 ‘치킨맨’이라며 손을 흔들어주거나 재밌다며 쳐다보는데, 그것 자체가 홍보활동이다. 그는 치킨맨 캐릭터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온힘을 쏟았다. 하지만 불과 두달 만에 그렇게 널리 알려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린이들에게 친숙한 브랜드라서 그런지, 어른들은 주문하면서 쑥스러워하기도 하죠.”

두목 치킨맨이 막 배달을 나서고 있다.

치킨맨 배달부가 등장한 지 두달 만에 조류독감의 파고가 밀려온 것은 그에게도 위기였다. 주문이 절반으로 뚝 줄어든 것이다. 치킨 시장은 마비 상태에 빠져들었다. 그는 ‘신규고객 확보’ 전략으로 맞섰다. “통닭을 주문하는 기존 고객의 70%가 주문을 끊었지만 나머지 30%는 여전히 통닭을 먹습니다. 그렇다면 그 나머지를 내 고객으로 만들면 되는 것이죠.” 그는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공격적인 투자를 했다. 6명으로 구성된 치킨맨 캐릭터 모두를 동원해 일주일에 3번씩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에서 홍보전을 벌였다. 그동안은 가게 가까운 곳에서만 홍보를 했지만, 이제는 멀리까지 원정을 갔다. 인터넷 시대에 맞춰 캐릭터를 노출시키는 이벤트도 적절히 구사했다. 조류독감이 처음 퍼진 충북 음성에 내려가 “동지(닭)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퍼포먼스를 열었다. 크리스마스에는 치킨맨 캐릭터들을 총출동시켜 국회의사당 앞에서 축산 농가의 보상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고, 명동에서 통닭 시식회를 열기도 했다. 제야의 밤, 서태지 콘서트에도 치킨맨은 어김없이 출동했다. 인터넷 사이트에 치킨맨의 활약이 오르고, 방송화면에 치킨맨이 등장하면서 치킨맨은 지역을 넘어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물론 매출이 회복됐다고 해도 수익까지 늘어난 것은 아니다. 홍보비용이 많이 들어, 조류독감이 퍼지기 전보다는 수익이 줄었다. 하지만 그는 조류독감 이후 확보한 신규고객들이 계속 고객이 될 것인 만큼 대성공이라고 자부한다. “역시 치킨맨 캐릭터가 위력을 발휘하는 것 같습니다. 한 대형 치킨체인에서 캐릭터 복장을 만들어줄 수 없겠느냐는 요청도 있었어요.” 그는 단호히 거절했다. 그들은 그가 꾸고 있는 큰 꿈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일찌감치 프랜차이즈사업을 꿈꿨다. 또 캐릭터 사업도 진행할 예정이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이르다고 말한다. 체인점을 내겠다며 혹은 투자를 하겠다며 찾아오는 사람이 여럿 있지만 거절한다. 아직 다듬어야 할 것이 적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지금도 주문이 몰리는 밤에는 직접 배달을 나간다. 캐릭터 사업도 할 예정이지만, 인터넷 도메인만 확보해놓고 아직 사이트 오픈은 못하고 있다. 사이트가 오픈될 때, 그는 ‘치킨맨’ 만화는 물론 애니메이션까지 올리고 싶어한다.

그는 기획 단계에서 대기업들이 돈으로 밀어붙이면 질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고 한다. 그래서 빨리 캐릭터 인지도를 높여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빨리 인지도가 높아질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프랜차이즈 · 캐릭터 사업까지 꿈꾼다

지금은 대형 브랜드라고 해도 치킨맨을 따라잡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고 그는 장담한다. 그와 얘기하다보면, 치밀한 전략과 적절한 위기대응 방식에 저절로 혀가 내둘러진다. 공부를 많이 한 것 같았다. “책은 몇권 봤어요. 그런데 교과서적인 게 너무 많더라고요. 응용이 중요한 것 같아요. 마케팅은 정해진 기업이 있다기보다는 자기에게 가장 잘 맞는 기법을 응용해 써야 한다고 봐요.” 그는 요즘 한 출판사와 계약해 마케팅 관련 책을 쓰고 있다.

그는 ‘치킨맨’을 좀더 정교하게 다듬고 사업을 체계화해 B급 브랜드가 아닌 A급 브랜드로 키우고 싶다는 꿈을 숨기지 않았다. 그런데 여름엔 더워서 그 두터운 치킨맨 복장을 어떻게 입지? 그는 걱정 말라며 웃었다. 이미 옷 속에 넣을 휴대용 냉방장치를 개발했고, 업그레이드를 준비하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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