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달러 대량으로 사들이고 외환거래 규제까지…수출 보호만 신경쓰다 기업체질 약해질 수도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미국의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부시 정부를 ‘혁명적’ 정부라고 표현했다. 적어도 경제적 측면에서 본다면, 부시 정부의 정책이 가져온 결과는 정말 혁명적이다. 우선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 규모가 부시 정부 들어 크게 늘어났다. 그러나 경상수지 적자는 미국 경제에서 늘 있는 일이다. 아주 극적으로 보이는 부분은 재정이다. 클린턴 정부 시절 미국의 재정은 유례없는 흑자 기조였다. 그러던 것이 부시 정부 들어서는 극적인 반전이 이뤄졌다. 경기침체로 인한 세수 감소에다 부시 정부의 대규모 감세, 군사비 지출 증가 때문에 재정수지는 적자로 돌아섰고 그 규모 또한 천문학적으로 커지고 있다. 미국의 의회 내 회계분석기관인 의회예산국(CBO)은 1월26일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연방정부의 2004 회계연도 재정적자가 사상 최고 수준인 4770억달러에 이를 것이라 발표했다. 대규모 쌍둥이적자의 결과는 달러약세로 이어지고 있다.
아시아 경쟁국보다 원화 약세 유지
달러약세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2002년 초부터이고, 당시 1유로당 0.8달러대이던 달러가치는 현재 1유로당 1.3달러를 바라볼 정도로 떨어졌다. 엔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2002년 초 1달러는 130엔대였다. 지금 1달러는 110엔에도 못 미친다. 달러약세는 특히 지난해 8월 이후 가팔라졌다. 그렇다면 원화가치의 움직임은 어떤가? 월평균 환율로 보면 2002년 중 원-달러 환율은 비교적 큰 폭으로 떨어졌다. 환율은 1월 평균 1326원에서 12월 평균 1200원으로 10% 이상 떨어졌다. 달러약세 추세를 순조롭게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2003년 이후에는 그렇지 않다. 2003년 1월 평균환율은 1170원이었으나, 12월 평균환율은 1197원으로 오히려 올라갔다. 연초와 연말을 비교하더라도 원화가치는 소폭 절하됐다. 이는 세계적인 달러약세 추세와는 다른 것으로, 2003년 9월 월평균 환율이 1150원대로 떨어지면서 정부가 적극적 환율방어에 나섰기 때문이다. 물론 올해 1월 들어서는 정부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원-달러 환율이 비교적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다. 1월 말 현재 원-달러 환율은 1173원대로 연초에 비해 20원 이상 떨어졌다. 그러나 이 정도의 환율하락은 유로나 원 등 다른 통화가 달러에 비해 강세를 보이는 것에 비하면 별 변화가 없는 것이다. 일본 엔화가치의 변화와 원화가치의 변화를 비교해보면 원화가 얼마나 상대적인 약세를 유지하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지난해 8월 엔화는 100엔당 979원이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100엔당 1100원이 넘는다. 그사이 엔화가치가 원에 비해 10% 이상 비싸졌다. 엔화가 달러에 비해 강세를 보였지만, 원화가치는 별 변동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 엔화는 지난해 10.8% 절상됐다. 또 홍콩달러 가치는 달러에 비해 0.5%, 대만달러는 2.1%, 타이 바트화는 9.1% 올랐다. 아시아의 경쟁국 중에서는 고정환율제를 채택하는 중국과 말레이시아만이 2002년 말과 같은 수준의 환율을 유지했다.
금융기관 손실만 늘린다는 비판도
원-달러 환율이 떨어지지 않는 것은 정부의 개입 때문이다. 우리 경제를 둘러싼 환경은 원화가 강세를 보일, 다시 말해 환율이 떨어질 조건들로 가득 차 있다. 지난 한햇동안의 경상수지 흑자와 외국인 주식투자 자금 등을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온 외화는 230억달러에 이른다. 그만큼 달러가 차고 넘치는 상황이다. 경상수지 흑자와 외국인 주식 순매수 기조는 올 들어서도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환율이 떨어지지 않는 것은 정부의 시장 개입이 그만큼 강력했음을 보여준다. 원화 강세를 막기 위해 정부는 시장에서 넘쳐나는 달러를 사들였다. 이를 위해 정부는 지난해에만 12조8천억원어치의 국채(외국환평형기금채권)를 발행했다. 그전까지 누적 발행액 17조원의 70%가 넘는다. 물론 이런 규모는 일본 정부가 엔강세를 막기 위해 200조원 이상을 투입한 것에 비하면 적은 규모지만, 일본보다 이자가 높은 우리나라로서는 정부의 부담이 결코 적지 않다.
그러나 정부의 강력한 개입에도 불구하고 올 들어 환율은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 이는 시장거래자들이 정부 개입의 한계를 감지하고 환율하락쪽에 베팅을 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자 정부는 더욱 강력한 방어전략으로 나서고 있다. 정부는 지난 1월15일과 19일 두 차례에 걸쳐 금융기관들의 역외차액결제선물환시장(NDF) 거래를 규제하는 대책을 내놓았다. 규제의 핵심은 국내 금융기관들로 하여금 달러선물 매도초과 상태를 유지하라는 것이다. 이는 원화 매수를 막기 위한 것이다.
정부는 이런 규제의 이유를 “환투기 세력을 막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정부 규제가 투기세력을 막지 못하고 국내 금융기관들에게 손실만 끼치고 있다는 불만스러운 목소리가 계속 터져나오고 있다. 한 시중은행 외환딜러는 “위험회피를 위해 거래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한 영업 기회만 박탈하고 가만히 앉아 손해를 보게 만드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한국은행 안에서도 정부가 거래제한이라는 극약 처방을 내린 것을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정부가 환율방어에 목을 매는 이유는 ‘수출’ 때문이다. 정부는 가뜩이나 내수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수출마저 나쁘면 경제 상황이 급격히 나빠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최중경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은 “정부가 환율하락을 방치했다면 수출 채산성 악화로 기업의 고용, 임금이 감소하고, 내수를 더욱 침체시켰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나라와 같이 개방된 소규모 경제에서는 물가보다 경상수지와 환율 등 대외요인이 더 중요하다”며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해서라도 환율하락을 막겠다고 못 박았다.
환율하락 요인이 상당한데도 정부가 강력한 방어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 환율이 급락할 수 있다는 점에서 최 국장의 발언 자체는 적절하였다. 실제로 환율이 떨어지지 않아 휘발유값이 리터당 1400원대에 이르는 등 물가에 악영향을 주고 있지만, 수출은 올 들어서도 매우 좋다. 지금까지는 시장이 정부의 목표를 충족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환율방어가 정말 우리 경제에 득이 될지, 그리고 지속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급격한 변동 막는 선에서 그쳐야
무역협회는 수출기업의 채산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환율이 1183원 이하로 떨어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정부도 대기업은 환율이 더 떨어져도 문제없지만, 우량·중소기업은 그 이하로 떨어지면 채산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수출기업들은 체질적으로 환율하락에 엄살을 피우게 마련이다. 오히려 환율하락은 경쟁력 압박의 요인이 되고, 이를 극복함으로써 기업의 체질은 강해진다. 따라서 정부가 할 일은 환율을 과거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급격한 환율변동을 막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 역사적으로 환율의 추세를 바꾸려는 시도는 한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정부가 환율 조절에 실패할 때, 정부만 의지한 채 대응을 소홀히 한 경제 주체들은 한꺼번에 타격을 입는다. 정부의 환율방어가 지나쳐, 기업들에게 진통제와 마약을 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외환딜러 시장에서는 정부 규제가 투기세력을 막지 못하고 국내 금융기관들에게 손실만 끼치고 있다는 불만이 계속 터져나오고 있다.(박승화 기자)
달러약세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2002년 초부터이고, 당시 1유로당 0.8달러대이던 달러가치는 현재 1유로당 1.3달러를 바라볼 정도로 떨어졌다. 엔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2002년 초 1달러는 130엔대였다. 지금 1달러는 110엔에도 못 미친다. 달러약세는 특히 지난해 8월 이후 가팔라졌다. 그렇다면 원화가치의 움직임은 어떤가? 월평균 환율로 보면 2002년 중 원-달러 환율은 비교적 큰 폭으로 떨어졌다. 환율은 1월 평균 1326원에서 12월 평균 1200원으로 10% 이상 떨어졌다. 달러약세 추세를 순조롭게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2003년 이후에는 그렇지 않다. 2003년 1월 평균환율은 1170원이었으나, 12월 평균환율은 1197원으로 오히려 올라갔다. 연초와 연말을 비교하더라도 원화가치는 소폭 절하됐다. 이는 세계적인 달러약세 추세와는 다른 것으로, 2003년 9월 월평균 환율이 1150원대로 떨어지면서 정부가 적극적 환율방어에 나섰기 때문이다. 물론 올해 1월 들어서는 정부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원-달러 환율이 비교적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다. 1월 말 현재 원-달러 환율은 1173원대로 연초에 비해 20원 이상 떨어졌다. 그러나 이 정도의 환율하락은 유로나 원 등 다른 통화가 달러에 비해 강세를 보이는 것에 비하면 별 변화가 없는 것이다. 일본 엔화가치의 변화와 원화가치의 변화를 비교해보면 원화가 얼마나 상대적인 약세를 유지하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지난해 8월 엔화는 100엔당 979원이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100엔당 1100원이 넘는다. 그사이 엔화가치가 원에 비해 10% 이상 비싸졌다. 엔화가 달러에 비해 강세를 보였지만, 원화가치는 별 변동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 엔화는 지난해 10.8% 절상됐다. 또 홍콩달러 가치는 달러에 비해 0.5%, 대만달러는 2.1%, 타이 바트화는 9.1% 올랐다. 아시아의 경쟁국 중에서는 고정환율제를 채택하는 중국과 말레이시아만이 2002년 말과 같은 수준의 환율을 유지했다.

지난 1월28일 청와대에서 김진표 경제부총리(맨 오른쪽)가 재경부 업무보고에 앞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정부의 강력한 환율방어는 우리 경제에 약이 될까.(청와대사진기자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