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화폐교환 창구 책임자 박은혜씨가 털어놓는 돈 돌아가는 이야기
서울 중구 남대문로 3가에 있는 한국은행의 정문 안쪽까지 들어가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가’급 보안시설인 한국은행은 경계가 삼엄하긴 하지만, 민간인 출입금지 구역은 아니다. 하지만 일반인으로선 은행의 은행인 한국은행에 볼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일반인은 전혀 상대하지 않는가? 물론 그렇지는 않다. 은행 정문 왼쪽으로 20m가량 떨어진 곳에 별관 1층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다. 회전문을 밀치고 들어가면, 거기에서 우리는 한국은행 화폐수급팀의 화폐교환 창구를 만나게 된다.
뚝 잘린 1천원짜리, 500원으로
이 창구의 책임자는 박은혜(43) 조사역이다. 박씨가 이 창구를 맡은 지도 이제 2년6개월이 됐다. 그의 일은 훼손되거나 오염돼 통용하기 어려운 돈을 새돈으로 바꿔주는 것이다. 훼손되지 않았더라도 동전뭉치를 지폐로, 또는 1만원짜리를 1천원짜리로 요구하면 바꿔준다. “낡은 지폐를 갖고 와서 깨끗한 새돈으로 바꿔달라는 사람이 많은데, 그건 원칙적으로 우리 일이 아니에요.” ‘원칙적으로’라는 말은 예외가 있다는 뜻이다. 박씨는 낡은 지폐를 새돈으로 바꿔달라고 기껏 찾아온 사람들을 그냥 돌려보낼 수 없어, 서비스 차원에서 소액은 바꿔준다.
이 창구를 찾는 사람은 하루 80~100명가량이다. 명절 때는 세뱃돈으로 쓰려고 새돈을 원하는 사람이 많아 하루 400~500명이 찾는다. 하루에 바뀌어 나가는 돈은 3500만원에서 4천만원 정도다. 여기서 잠깐! 훼손된 돈은 액면의 얼마로 바꿔줄까? “지폐라면, 전체의 5분의 2 이상 4분의 3 미만이 남아 있으면 액면의 반을 줘요. 4분의 3 이상 온전하면 전액을 주죠.” 가장 흔하게 훼손된 지폐는 절반으로 뚝 잘린 1천원짜리다. 상인들이 동전이 없을 때 둘로 찢어 500원짜리로 쓰기 때문이다. 돈을 함부로 대하는 것이 안타깝지만, 2분의 1을 갖고 왔으니 어쨌든 반액은 준다. 지난해부터 제법 늘어나고 있는 게 지폐를 앞면과 뒷면으로 각각 분리한 이른바 ‘박리’ 지폐다. 이런 변조지폐는 짝을 맞춰 양쪽 면을 갖고 오면 새돈으로 바꿔주지만 한쪽 면만 갖고 오면 반액도 주지 않는다. 동전을 지폐로, 지폐를 동전으로 바꾸려는 사람들도 이 창구를 많이 찾는다. 예전에는 시중은행에서 쉽게 바꿀 수 있었지만, 요즘은 시중은행들이 잘 바꿔주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인터넷 홈페이지(www.bok.or.kr)에 주화수급정보센터를 만들어, 동전이 많이 모이는 곳과 많이 쓰이는 곳을 연결해주고 있다. “외국의 경우 동전교환을 해줄 때 수수료를 받는 은행도 있는데, 우리나라는 금융감독원이 수수료 받는 것을 금하고 있어요. 그러다보니 시중은행들이 돈을 바꿔주지 않고 한국은행으로 가라고 한대요.”
그는 “우리가 동전 바꿔준다는 얘기는 안 쓰면 안 될까요?”라며 웃었다. 한국은행 창구에 와도 줄 서 있는 사람들이 많아 오래 기다리게 하는 것이 미안해서란다. 훼손된 동전을 바꾸러 오는 사람도 있을까, 몇푼이나 된다고? 그러나 아니다. “휘어지거나 구멍 뚫린 동전을 새돈으로 바꾸러 오는 부지런한 사람도 한달에 3~4명은 있다”고 그는 귀띔했다.
어느 외국인의 2500만원어치 동전
박씨를 가장 안타깝게 하는 이들은 불에 탄 돈을 들고 오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훼손된 돈은 시중은행에서는 바꿔주지 않는다. 오직 한국은행에서만 바꿀 수 있다. 문제는 불에 탄 돈으로 판정을 내리는 게 매우 어렵다는 데 있다. “어떤 분들은 불에 탄 돈은 저울로 달아서 바꿔주는 것으로 알고 있더라고요. 전혀 아니에요. 재와 타다 남은 것을 보고 확실히 돈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때, 확인된 만큼만 새돈으로 지급하죠.” 지난해 12월 경기 포천의 한 중소기업 대표는 임금 지급 등을 위해 3천만원을 은행에서 찾아 회사에 뒀다가 불이 나 돈이 재가 되고 말았는데, 그 재를 가지고 이 창구를 찾아왔지만 한국은행에서 확인해 바꿔간 돈은 270만원에 불과했다고 한다.
훼손된 돈을 바꿔주다 보니, 박씨는 정말 별의별 돈을 만나본다. “세탁기에 넣었다가 가루가 된 지폐를 들고 오시는 분도 있어요. 하얗게 탈색돼버린 지폐라고 해도 위조를 막기 위해 집어넣은 은선 등으로 돈이었음이 확실히 확인되면 새돈으로 바꿔드려요. 노인분들이 온돌 장판 밑에 숨겼다 불에 탄 돈도 가지고 오는데, 어떤 때는 노인이 돌아가신 뒤에 발견해 자손들이 갖고 오는 때도 있지요. 남편 몰래 탄 곗돈을 잠깐 전자레인지에 숨겼다 레인지를 작동해서 타들어간 돈을 들고 오신 분도 있었어요. 천장에 구멍을 뚫고 그곳에 돈을 숨겨놓았다가 쥐가 갉아먹은 것을 갖고 오시는 분들도 있었지요.” ‘한국은행’이란 든든한 배경을 가진 박씨는 그런 돈을 갖고 오는 사람들에게 항상 빳빳한 새 지폐와 반짝반짝 빛나는 동전만을 건넨다. 선물처럼.
외국인들도 이 창구를 이용한다. 아니, 외국인이라기보다는 정말 알뜰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지난해 11월5일 인도네시아의 한 항공사 직원이 이 창구를 찾았다. 관광안내를 하는 친구가 한국인들에게 팁으로 받은 동전을 모은 것이라며, 100개씩 잘 세어 묶은 봉지에서는 무려 90만원이 나왔다. 나흘 뒤 그는 다시 54만원어치의 우리나라 동전을 갖고 와 지폐로 바꿔갔다.
박씨를 비롯한 화폐수급팀 직원들은 지난해 7월7일의 일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인 2명이 세관에서 자동차로 동전자루를 실어왔다. 정리되지도 않은 동전자루를 펼쳐 직원 15명이 3시간 걸려 일일이 세었다. 자그마치 2500만원어치의 동전이었다. 이들은 다시 이틀 뒤 684만원어치의 동전을 지폐로 바꿔갔다. 한국은행의 보고서에는 그날의 일이 이렇게 기록돼 있었다. “세계 여러 나라의 화폐를 교회나 자선단체에서 싸게 사서 세계를 돌며 해당국의 화폐로 교환해 차액을 챙기는 사람들로 추정됨.”
박씨는 국민들이 동전이든 지폐든 돈을 소중하게 다뤄주기를 바란다. 특히 동전은 제조원가가 매우 비싼데도, 사람들이 액면만을 생각해 함부로 대하는 것이 아쉽다고 했다. 10원짜리 동전 하나를 만드는 데는 30원이 들고, 100원짜리는 70원, 500원짜리는 100원가량 든다고 한다. 100원짜리 동전 하나가 1만원짜리 지폐(50~55원) 1장 만드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이 든다. 물론 1만원짜리 지폐도 우리나라의 경우 수명이 48개월로 외국의 지폐보다 짧은 편이다. 이 때문에 새로 돈을 찍는 데 많은 돈이 들고, 그 비용은 다시 국민들의 부담이 된다.
“요즘 경기 좋지 않다는 걸 느껴요”
지난 1980년 한국은행에 입사해, 이제 한국은행 근무가 24년이 되는 박씨에게는 한국은행 금고의 엄청난 돈이 전혀 돈으로 보이지 않는단다. 하지만 그도 요즘 경기가 좋지 않다는 게 느껴진다고 했다. “교환금액이 작아졌어요. 자주 오시던 주변 상인들이 뜸하게 와서 ‘왜 오랜만에 오셨냐’라고 물으면, 장사가 안 돼서라고 말해요. 요즘은 기념주화를 바꾸러 오는 분들도 정말 많아졌어요” 기념주화를 살 만하다면 제법 여유가 있는 사람일 텐데, 오죽 쪼들리면 기념주화까지 돈으로 바꾸는 것일까. 가장 많이 들어오는 것은 88올림픽 때 만든 기념주화다. 당시 액면의 몇배에 팔렸지만, 장사만을 생각해 대량 제조하는 바람에 지금은 거의 액면에 거래된다. 물론 한국은행에서도 모든 기념주화를 액면대로만 바꿔준다. “왜 그렇게밖에 안 주느냐고 화를 내는 분들도 가끔 있어요.” 그들을 위로하고 달래는 일 또한 박은혜씨의 몫이다.
글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이 창구를 찾는 사람은 하루 80~100명가량이다. 명절 때는 세뱃돈으로 쓰려고 새돈을 원하는 사람이 많아 하루 400~500명이 찾는다. 하루에 바뀌어 나가는 돈은 3500만원에서 4천만원 정도다. 여기서 잠깐! 훼손된 돈은 액면의 얼마로 바꿔줄까? “지폐라면, 전체의 5분의 2 이상 4분의 3 미만이 남아 있으면 액면의 반을 줘요. 4분의 3 이상 온전하면 전액을 주죠.” 가장 흔하게 훼손된 지폐는 절반으로 뚝 잘린 1천원짜리다. 상인들이 동전이 없을 때 둘로 찢어 500원짜리로 쓰기 때문이다. 돈을 함부로 대하는 것이 안타깝지만, 2분의 1을 갖고 왔으니 어쨌든 반액은 준다. 지난해부터 제법 늘어나고 있는 게 지폐를 앞면과 뒷면으로 각각 분리한 이른바 ‘박리’ 지폐다. 이런 변조지폐는 짝을 맞춰 양쪽 면을 갖고 오면 새돈으로 바꿔주지만 한쪽 면만 갖고 오면 반액도 주지 않는다. 동전을 지폐로, 지폐를 동전으로 바꾸려는 사람들도 이 창구를 많이 찾는다. 예전에는 시중은행에서 쉽게 바꿀 수 있었지만, 요즘은 시중은행들이 잘 바꿔주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인터넷 홈페이지(www.bok.or.kr)에 주화수급정보센터를 만들어, 동전이 많이 모이는 곳과 많이 쓰이는 곳을 연결해주고 있다. “외국의 경우 동전교환을 해줄 때 수수료를 받는 은행도 있는데, 우리나라는 금융감독원이 수수료 받는 것을 금하고 있어요. 그러다보니 시중은행들이 돈을 바꿔주지 않고 한국은행으로 가라고 한대요.”

훼손되거나 오염된 돈을 새 돈으로 바꿔주는 박은혜씨. 그는 국민들이 돈을 깨끗이 써주기를 바란다.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