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임금격차는 계속 벌어진다

492
등록 : 2004-01-09 00:00 수정 :

크게 작게

나이 들수록 소득분배 악화돼 …비숙련 노동 수요 감소와 산업구조 변화가 주요 원인

지금의 고용관계는 노동자나 기업에게 모두 유지할 가치가 있다. 양쪽 모두 서로의 관계를 끝내는 것보다 지속함으로써 얻는 이득이 더 크기 때문에 두 당사자는 서로 얽매여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기업은 다른 노동자들을 고용할 수 있고 노동자들은 다른 직장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양자는 서로 협상력을 갖는다. 그러나 이런 관계가 모든 노동자한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늙은 노동자의 경우 임금이 인플레이션에 맞춰 인상되지 못하더라도 직장을 떠나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에 사용자들은 나이 많은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을 보류하는 경향을 보인다. 임금 책정에서의 연령 차별인 셈이다.

경제성장의 과실이 저숙련 저임금 노동자한테는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동일노동 동일임금 요구 시위.(한겨레 강창광 기자)
그런데 나이 들수록 노동자가구의 임금소득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조세연구원의 ‘소득분배 구조의 향후 추이’ 보고서(통계청의 1982∼2002년 도시 근로자가구 가계수지 동향을 근거로 추계)를 보면 1957년에 출생한 근로자 가구주들이 25살(1982년)이던 당시 소득 상위 5%의 연간 평균소득(536만원)은 하위 5%의 연간 평균소득(146만원)의 3.7배로 나타났다.

항아리형에서 양봉형으로


그런데 20년이 지나 45살이 된 2002년에는 상위 5%(7280만원)와 하위 5%(1370만원)의 연간 평균소득 격차가 5.3배로 커졌다. 또 이들이 65살이 되는 2022년에는 상위 5%와 하위 5%의 연간 평균소득이 각각 1억2225만원과 2027만원이 돼 소득 격차가 6.0배로 벌어질 것으로 전망됐다.

1967년에 태어난 근로자 가구주들 역시 나이 들수록 소득분배가 악화되고 있다. 25살이던 1992년에 하위 5%(598만원)와 상위 5%(2253만원)의 소득격차는 3.7배로 나타났다. 이어 35살이던 2002년에는 3.8배로 조금 더 벌어진 뒤 45살이 되는 2012년에는 하위 5%(2138만원)와 상위 5%(1억230만원)의 차이가 4.7배로 커지고 55살이 되는 2022년에는 5.5배, 65살이 되면 하위 5%(4496만원)와 상위 5%(2억7108만원) 사이에 6.0배의 차이가 날 것으로 예상됐다. 특히 생애 연령-소득곡선을 그려본 결과 소득수준이 낮을수록 최고소득을 올리는 나이도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적인 가구는 가구주 나이가 50대 초반일 때 소득이 가장 높았는데, 하위 5% 가구는 40대 후반에서 최고소득을 버는 반면 상위 5%는 50대 후반에 가서야 최고소득을 올리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김종면 한국조세연구원 연구위원은 “40여년이라는 전 노동생애에 걸쳐 연령-소득곡선을 관측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통계자료의 소득에 자본소득이 포함돼 있지만 대부분 임금소득으로 봐도 큰 무리가 없다. 조사결과 나이 들수록 임금소득 불평등이 커지고 있음이 뚜렷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물론 사람들의 소득은 나이에 따라 변화한다. 젊은 노동자들의 임금은 낮고, 숙련과 경험이 쌓이면서 소득은 증가하게 마련이다. 소득의 생애주기와 관련해 대체로 임금노동자의 소득은 50살 정도에 절정에 달하고 그 뒤 하락하는 모양을 띠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점에서 노동자 사이에 나이 들수록 임금 양극화가 도드라지는 현상은 주목할 만한 양상이다.

우리나라 임금계층별 분포는 1980년대 들어 절대 저임금층이 빠르게 줄어들면서 중간임금층이 두꺼워지는 항아리 모양이었다. 그러나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고임금층이 급격히 늘어난 반면 중간임금층의 상당수가 저임금층으로 떨어졌다. 이에 따라 임금 분포는 항아리형에서 양봉형으로 양극화되었다. 실제로 노동부의 ‘임금구조기본통계조사’ 자료를 보면 1988년 전체 노동자의 23.1%가 월 급여 50만원 정도를 받아 중간임금층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그러나 2002년에는 중간임금층이 줄어들고 월 300만원 이상의 고임금층(13.6%)이 가장 높은 분포를 보인다(표 참조).

노동자 내부 구성이 고임금 노동자와 저임금 노동자로 확연히 갈리는 배경에는 기술 수준의 급속한 변화가 자리잡고 있다. 기술의 진보로 숙련 노동의 수요는 증가하는 반면 비숙련 노동의 수요는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창출된 일자리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즉 특별한 기술이나 노하우가 필요 없는 직종보다는 고임금 전문직종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런데 숙련은 쉽게 이전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물론 기업간에 숙련이 쉽게 이전될 수 있는 일부 산업(트랙터, 도로건설장비 제조업 등)에서는 기존 고용관계를 끊고 다른 노동자들로 간단히 대체할 수 있다. 하지만 노동자는 서로 다르고 쉽게 대체가 가능한 기계가 아니다. 게다가 많은 경우에 노동자들의 숙련은 그 기업에 특수한 성격을 띠고 있다. 노동자 처지에서 볼 때 그 숙련을 다른 기업에서는 써먹기 힘들고, 기업 처지에서는 다른 노동자로부터 그런 숙련을 확보하는 데 상당한 훈련과 시간이 필요하다. 이렇듯 전문 기능을 가진 숙련 노동자를 기업 바깥에서 데려오기 어렵기 때문에 기업으로서는 고임금을 주고 해당 숙련 노동자를 붙잡아두려고 한다.

연봉제·성과급·스톡옵션 등 신인사제도의 확산도 노동자 사이의 임금 불평등을 키우고 있다. LG경제연구원 송태정 연구위원은 “노동시장 유연화와 능력주의 신인사제도 도입으로 임금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며 “기업 내 인력구조가 핵심 노동자와 주변 노동자, 고임금-전문 직종과 저임금-저숙련 직종이라는 양 극단으로 갈리고 있다”고 말했다.

산업구조 변화와 노동시장 변화가 서로 맞물리면서 노동자간 임금 격차는 더 확대되고 있다. 정보기술(IT) 등으로 산업구조가 고도화되면서 비숙련 노동자에 대한 수요는 갈수록 줄어들고, 따라서 비숙련 노동자의 실질임금은 나이가 들수록 더 감소한다. 경기가 최근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지만 대다수 사람들이 체감하지 못하는 것도 산업구조 변화에 따른 임금 양극화 탓이 크다. 경기회복이 일부 부문에 국한되거나 일부 기업에만 편중되고 있는 것이다.

같은 업계에서도 양극화 심해져

중화학공업 제품만 봐도 지난해 하반기 중 △무선통신기기 △자동차 △반도체 △IT △조선 등 5대 품목은 12.3%나 성장했지만 나머지 중화학 부문은 0.3% 증가에 그쳤다. 같은 업종 안에서도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또 지난해 하반기에 수출은 13.4% 성장했지만 내수는 -1.4% 줄었고, 중화학공업은 6.1% 성장한 반면 경공업은 -5.5%나 오히려 생산이 감소했다. IT부문은 18.6% 생산이 증가한 반면 비IT 부문은 -0.5% 줄었다. 한쪽에는 지불능력이 높은 고임금 산업과 기업이 존재하는 반면 다른 쪽에는 저임금 사양산업이 공존하면서 노동자들 사이의 임금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경제성장으로 평균 가구소득은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성장이 소득분배 개선을 가져오지 못하고 있고, 특히 저숙련 노동자들에게는 성장의 과실이 돌아가지 않고 있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