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추구하는 가상화폐
채굴부터 신뢰 구축 방법까지 비트코인 생태계 작동 원리
등록 : 2017-07-19 16:54 수정 :
비트코인은 은행이 하는 일을 전세계 개인들이 네트워크를 만들어 하자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REUTERS
오로지 숫자 0과 1로 된 디지털 코드에 불과한 ‘비트코인’ 하나가 수백만원의 가치를 지니게 된 세상을 어떻게 이해할까? 온라인 게임 <리니지>의 무기 ‘진명황 집행검’은 유저들에게 ‘집 판 검’으로 불린다. 가격이 몇천만원에서 억대에 이르기 때문이다. 사려는 사람은 많은데 물건이 귀하면 값은 올라가기 마련이다. 이상할 것 없는 시장 원리다.
지난호(제1168호
‘갈림길에 선 비트코인’)에 이어 비트코인을 좀더 알아보자. 비트코인은 개인키-공개키, 난수, 해싱 같은 이해하기 어려운 암호기술을 바탕으로 해서 비전문가가 속살까지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래도 원리 정도는 해독할 수 있다.
먼저 ‘채굴한다’는 말부터 뜯어보자. 채굴은 비트코인 네트워크에서 일어나는 일정 시간의 거래묶음(블록)을 내 컴퓨터로 검증해 ‘진짜’라는 딱지를 붙여주는 행위를 말한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이 ‘검증 레이스’에서 우승한 사람에게 비트코인을 보상으로 준다. 이게 비트코인의 화폐 발행 방식이다.
금융거래에서 허위 거래를 걸러내는 검증은 필수다. 비트코인은 은행이나 카드사 전산센터가 하는 일을 전세계 개인들이 네트워크를 만들어 같이 하자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그러면 막대한 수수료 부담 없이 더 안전하게 금융거래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철수가 영희에게 10비트코인을 송금했다고 가정하자. 이 거래 문서는 암호화돼 비트코인 네트워크에 공개된다. 참여자의 컴퓨터엔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의 이전 거래 내역이 한 덩어리(블록체인)로 묶여 저장돼 있다. 물론 검증을 통과해 ‘진짜 거래’라는 딱지가 붙여진 것들이다. 철수의 거래 문서는 누군가의 검증을 통과해야 이 블록체인에 추가될 수 있다.
검증은 암호를 푸는 작업이다. 진본을 입증하는 내용과 함께 암호화됐기 때문에 해독 자체가 진본 입증 과정이다. 암호는 풀리긴 하되 컴퓨터의 무수한 반복 연산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도록 설계됐다. 한 대의 컴퓨터로 이것을 푸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채굴자들은 컴퓨터를 서로 연결해 만든 풀 형태로 참여한다. 연결된 컴퓨터가 많을수록 연산 능력이 좋아지니 암호풀기 레이스에서 우승 확률이 높아진다. 우승 상금(비트코인)은 참여자들이 나눠 갖는다. 검증을 통과한 거래 문서들은 10분마다 모아서 블록을 만들고, 이것을 이전 블록들이 묶인 체인에 연결한다. 참여자들은 갱신된 블록체인을 내려받아 다시 공유한다.
철수가 영희에게 10억비트코인을 송금했다고 허위 거래 문서를 만들어 올리면 어떻게 될까? 이것이 검증을 통과하려면 블록체인을 따라 올라가며 이전 거래 내역의 숫자를 모두 바꿔야 한다. 10분 안에 암호풀기 작업을 마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블록체인 자체가 유효한지는 어떻게 가려낼까? 꼭 해킹 시도가 아니라도 인터넷 공간에선 참여자들이 여러 이유로 서로 다른 블록체인 복사본을 가질 수 있다. 비트코인 네크워크는 이를 투표 방식으로 해결한다. 한 시점에 더 많은 숫자로 존재하는 블록체인만 인정한다. 만약 누군가 전체 비트코인 네크워크 연산 능력의 51%만 확보하면 다수결에서 이기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이론적으로만 가능하다. 전세계 최상위 성능 컴퓨터 시스템 500개를 한데 묶어도 전체 비트코인 네트워크 연산 능력에는 턱없이 못 미친다.
집중된 권력의 해체, 민주주의적 의사결정 방식, 참여-신뢰-가치창출의 선순환 시장구조라는 근사한 의도를 내세운 비트코인은 아직 실험 중이다. 선한 의도가 꼭 선한 결과로 이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그 종착역이 어딜지는 모르지만 다수의 참여만으로도 전혀 새로운 경제생태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비트코인이 던진 질문과 희망은 유효할 것이다.
함석진 넥스트인스티튜트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