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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당신이 버려야 할 오리엔탈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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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4-01-0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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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가면의 제국>

‘노벨상’에 대한 우리의 숭배는 거의 ‘콤플렉스’ 수준이지만, 1973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미국의 헨리 키신저가 피노체트 쿠데타를 지휘하고 캄보디아 폭격을 주도했으며, 1978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이스라엘 국무총리 메나헴 베긴이 1940년대 팔레스타인에서 수천명의 아랍인과 영국인 그리고 동료 유대인들을 살육한 유대인 극우 테러리스트였다는 것은 알지 못한다. 심지어 노벨평화상을 받은 뒤에도 베긴은 1982년 레바논을 침략해 2만명의 아랍인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세계화 시대’를 목놓아 외치지만 오랫동안 우리가 애타게 바라본 세계는 미국과 서유럽, 일본뿐이었다. 우리는 그들과 닮아가기 위해 ‘하얀 가면’을 쓰기를 주저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 ‘하얀 가면의 제국들’을 제대로 알기나 했을까? 한국의 주요 언론들은 지금까지 그런 ‘선진국’들의 ‘우월성’만을 강조할 뿐 ‘강자의 어두운 부분’을 감추어 왔다. <한겨레21>에 연재한 글들을 중심으로 한 박노자의 새책 <하얀 가면의 제국>(한겨레신문사 펴냄)은 지금까지 우리가 외면해온 서구의 그늘과 변방의 고통받는 약자들을 만나게 하는 책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서구가 강요한 오리엔탈리즘에 길들여져 ‘하얀 가면’을 쓰고 약자를 무시하는 ‘우리 안의 서구중심주의’를 바라보도록 한다.

박노자가 역사와 현재에서 모아 전해주는 사실들은 우리에게는 낯설다. 네덜란드의 인도네시아 식민지 관료 출신의 에두아르드 데케르는 <막스 하벨라르>에서 자신이 체험한 식민지의 처참한 현실을 세밀하고 정확하게 쓰면서 네덜란드 사회의 깨끗함과 조용함, 예절과 매너 뒤에는 야만적이고 비인간적인 착취를 당하는 식민지 인도네시아 민중의 피와 눈물이 있었음을 고발했다. 그러나 현재에도 우리가 풍요롭게 입고 먹는 것들을 생산한 ‘제3세계’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대가는 처참한 수준이며, 네덜란드의 ‘막스 하벨라르’ 재단은 ‘공정한 조건’으로 수입하는 제3세계 상품에 ‘하벨라르 상표’를 붙여 이 문제를 개선하려 하고 있다.

1877년 러시아와 터키의 발칸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때, 승리를 눈앞에 둔 러시아에서는 당시 터키제국의 수도 이스탄불(옛 콘스탄티노플)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다. 이때 “러시아는 어떤 슬라브 민족보다 위대하며, 모든 민족을 합쳐도 그보다 위대하다. (수많은 이민족을 이스탄불에서 쫓아내거나 죽이고) 콘스탄티노플을 영원히 우리만의 도시로 남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사람이 있었으니 ‘인간 양심의 대변자’로 꼽히는 도스토예프스키(1821∼81)였다.

우리는 중·고교 국사 시간에 조선 후기 상업이 발달함으로써 자본주의 맹아가 자랐으며 서구적 근대화를 이룩하려 했던 개화파를 선각자로, 조선 말 의병장은 근대적 민족주의자로 배운다. 박노자는 이것이야말로 “우리 역사를 그들의 척도로 재는 행위이며, 그렇기에 최악의 폭력”이라고 말한다. 조선 후기 사회는 자본주의가 토론될 수 없는 시공간이며, 의병장들은 유교적 전통을 지키려 했고, 개화파는 ‘선각자’로만 묘사될 수 없는 다양한 측면이 있는데도 우리는 서양 근대를 기준으로만 해서 역사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서구·근대화·유럽 혹은 미국이라면 무조건 모범이라고 우리 자신을 길들여온 ‘옥시덴탈리즘’을 경고하는 이 책은 내 안의 오리엔탈리즘을 버리고 자신의 눈을 똑바로 뜨고 세상과 만날 것을 제안한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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