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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논술길라잡이] 사람다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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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4-01-0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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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참 이상한 존재

사람을 규정하는 말들을 들어보면 알다가도 모를 게 참 많아.
‘사람은 유일하게 자살하는 동물이다.’
‘사람은 타인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다.’
그런데 말야, 또 한편으로 사람만큼 제 목숨 열심히 챙기는 동물도 없단 말이거든. 이런저런 규정을 들어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어. 그건 ‘사람은 ~~하는 동물’이라는 거야. 자신을 자연의 일원으로 규정한단 말이지. 그런데도 사람은 끊임없이 자연을 넘어서려고 해. 자연 속 존재이면서 자연을 벗어나려는 이중성을 보인단 말야.

사람 규정의 두 줄기

서양 철학사에서 사람을 규정하는 데서 우리는 두 가지 큰 갈래를 볼 수 있어. 하나는 사람을 논리적·과학적으로 규정하려는 흐름이야. 그건 사람을 잘 짜인 어떤 큰 질서 속에 집어넣고 일목요연하게 설명하지. 소크라테스, 스콜라, 모더니즘 따위가 그 예라 할 수 있어. 다른 하나는 사람을 논리적·과학적으로 보려 하기보다는 ‘지금-여기’의 존재로 보는 거라 할 수 있어. 소피스트의 수사학이나 르네상스 휴머니즘, 그리고 오늘날의 포스트모더니즘 따위가 그 예야.
그런데 여기서 재밌는 사실 하나가 나와. 근대 철학과 과학은 사람을 과학적 질서 속에 편입시켰어. 그런데 그렇게 하는 순간 사람은 DNA나 화학적 반응, 그리고 사회 구조의 산물 따위로 설명되고 만단 말이지. 가장 잘 설명하려는 순간 그토록 넘어서고자 했던 자연의 질서나 사회 법칙에 그대로 포함되고 만다는 거야.

다시, 사람이란?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 보면, 사람인지 복제인간인지 판별하는 장면이 나와. 거기서 확실한 판별법은 기억에 대한 질문이야. 복제인간은 주입된 논리적인 기억만큼은 확실해. 그런데 결정적으로 들통 나는 건 ‘비논리적’인 질문을 받았을 때야. 자기만의 추억, 주관적인 감정 따위를 질문하는 순간, 어처구니없이 비인간은 드러나.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를 얻어야 해. 사람은 합리적·과학적인 규정만으로는 결코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을. 그런데 영화에서 여주인공 레이첼은 좀처럼 사람인지 기계인지 구별되지 않아. 왜냐? 그녀는 데커드와 비논리적인 ‘사랑’을 하고 있었거든.

사람다운 사람 되기

사람은 규정되면서 규정을 넘어서는 존재, 세계 안에 있으면서 늘 세계를 넘어선 가치를 추구하는 존재야. 너나 없이 물질을 추구하면서도 탈물질을 외치는 게 바로 사람이야. 누구나 구조의 효과로 살고 있지만, 이 비인간적인 질서를 넘어서고자 발버둥치는 것도 사람이야. 나는 이 비효율적이고 비과학적인 인간의 행위를 관통하는 게 다름 아닌 ‘사랑’이라고 봐. 자기애, 이타적 사랑, 나아가 아가페적 사랑까지. 어느 누가 이 사랑에 ‘왜’라는 질문을 하는가? 사람은 사회적 동물인고로 사랑의 사회적 실천을 꿈꿔. 이를 굳이 한마디로 하라면, ‘인도주의적 휴머니즘’이라 할 수 있겠지. <어린왕자>에 이런 말이 있지?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그 안에 오아시스가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라는 환상을 품고 삭막한 현실로 나서는 자, 그가 진실로 ‘사람다운 사람’이 아닐까?(다음부터는 동양의 인간관들을 쭉 살펴보자구.)

우한기 | 광주 플라톤 아카데미 논술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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