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파 점퍼를 산 다음날 이후 두번 다시 그 옷을 입지 못하게 된 사연
나에게 유행이란 ‘현명한 척하는 사람들이 조롱하면서도 복종하고야 마는 독재자’에 가깝다. 얼마 전 나는 다시 한번 그 독재자의 함정에 빠져 생돈 9만8천원을 날리고 말았는데, 그 사연인즉 이렇다.
지난 월드컵 때 이탈리아 대표팀의 유니폼을 보고 홀딱 반한 나는 그 협찬 브랜드인 카파(Kappa)가 드디어 국내에 상륙했다는 소식을 듣고 냉큼 명동 매장으로 달려갔다. 물론 처음엔 ‘직업의식’을 갖고 그저 잠깐 둘러보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결국 초록색과 빨간색 컬러가 감각적으로 매치된 검정색 트레이닝 점퍼 하나를 사고야 말았다.
그런데 아뿔싸! 카파의 인기가 ‘가을 산불’처럼 이렇게 막무가내일 줄이야. 나이키나 아디다스에 비하면 음악성 높은 ‘인디밴드’에 가깝다고 생각한 이 이탈리아 스포츠 브랜드는 한두달 만에 젊은이들이 우글거리는 거리 구석구석뿐만 아니라 텔레비전 쇼 오락 프로그램까지 완전히 접수해버리고 말았다.
그 중에서도 내 점퍼는 유난히 눈에 많이 띄었다. 하루는 텔레비전을 보니 강호동과 김제동이 진행하는 오락 프로그램의 출연진들이 단체로 입고 있었는데, 그 다음날 보니 이번에는 내 점퍼가 싸이와 그의 백댄서들의 유니폼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희망이 있는 줄 알았다. 동대문이고 남대문이고 내 점퍼랑 똑같이 생긴 카피 제품이 천지에 널려 있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결국 나는 그 점퍼를 산 다음날 말고는 두번 다시 그 옷을 입지 못하게 됐다.
카파는 지난해 9월 출시 뒤 불황 속에서도 20개의 매장이 월평균 1억7천만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본사에서 직수입한 정통 스포츠웨어는 10% 정도에 불과하고 대부분 한국에서 디자인한 제품이라고 하니, 패션인의 한 사람으로서는 카파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싶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한편으로는 달랑 한번 입고 낯뜨거워서 더 이상 입을 수 없게 된 내 ‘추리닝 윗도리’ 값을 물어달라고 ‘생떼’를 쓰고 싶은 심정이다. 막말로, 강호동이 입은 점퍼를 입고 싶어하는 여자가 세상에 몇이나 되겠는가 매스미디어를 이용한 대대적인 물량공세적 스타 마케팅이란 단기간에 브랜드 지명도를 높일 수는 있으나, 장기적으로 보면 때로는 ‘독’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남과 뭔가 다르고 싶은 욕망’으로 옷을 사는 젊은이들을 겨냥하고 있다면 지나친 노출을 피하는 마케팅 전략으로 최소한의 신비감을 유지시켜줘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진짜로 옷값을 물어달라고는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이제 방법은 단 두 가지. 똑같은 옷이라도 남다르게 입어내거나, 유행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전자라면 근사한 스포츠룩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던 영화 <로열 테넌바움>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라코스떼 테니스 원피스를 화려한 모피와 함께 입었던 귀네스 팰트로나, 하얀색 테니스 셔츠를 베이지색 수트와, 그리고 아디다스 트레이닝 점퍼를 트렌치 코트와 함께 입었던 루크 윌슨처럼 입는 거다. 말하자면 트렌디한 스포츠룩을 아주 클래식한 아이템과 믹스 매치하는 거다. 이제 내 트레이닝 점퍼도 검정색 정장 재킷이나 트렌치코트 혹은 아주 로맨틱한 스커트를 만나 새롭게 태어날 날을 기다리고 있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난방이 지나치게 잘되는 실내에서도 코트나 재킷을 절대로 벗으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김경 | 패션지 <바자> 피처 디렉터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한편으로는 달랑 한번 입고 낯뜨거워서 더 이상 입을 수 없게 된 내 ‘추리닝 윗도리’ 값을 물어달라고 ‘생떼’를 쓰고 싶은 심정이다. 막말로, 강호동이 입은 점퍼를 입고 싶어하는 여자가 세상에 몇이나 되겠는가 매스미디어를 이용한 대대적인 물량공세적 스타 마케팅이란 단기간에 브랜드 지명도를 높일 수는 있으나, 장기적으로 보면 때로는 ‘독’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남과 뭔가 다르고 싶은 욕망’으로 옷을 사는 젊은이들을 겨냥하고 있다면 지나친 노출을 피하는 마케팅 전략으로 최소한의 신비감을 유지시켜줘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진짜로 옷값을 물어달라고는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이제 방법은 단 두 가지. 똑같은 옷이라도 남다르게 입어내거나, 유행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전자라면 근사한 스포츠룩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던 영화 <로열 테넌바움>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라코스떼 테니스 원피스를 화려한 모피와 함께 입었던 귀네스 팰트로나, 하얀색 테니스 셔츠를 베이지색 수트와, 그리고 아디다스 트레이닝 점퍼를 트렌치 코트와 함께 입었던 루크 윌슨처럼 입는 거다. 말하자면 트렌디한 스포츠룩을 아주 클래식한 아이템과 믹스 매치하는 거다. 이제 내 트레이닝 점퍼도 검정색 정장 재킷이나 트렌치코트 혹은 아주 로맨틱한 스커트를 만나 새롭게 태어날 날을 기다리고 있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난방이 지나치게 잘되는 실내에서도 코트나 재킷을 절대로 벗으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김경 | 패션지 <바자> 피처 디렉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