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최초의 흑인 외교관이자 주한대사인 시드니 바파나 쿠베카의 ‘한국과 친구되기’
2004년을 그는 기다려왔다. 남아공 최초의 흑인 외교관인 시드니 바파나 쿠베카(52) 남아프리카공화국 주한대사. ‘문화 외교관’의 역할을 자임해온 그에게 새해의 시작은 더욱 특별하다. 올해는 만델라에 의한 흑인정권이 탄생한 지 꼭 10년이 되는 해. 10돌을 맞아 남아공의 문화, 아프리카 흑인의 뿌리를 제대로 알리는 것이 그의 목표다. 아는 게 없어서 멀고 먼 대륙, 아프리카와 한반도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기 위해 아낌없이 힘을 쏟아붓겠다는 그의 포부를 들어봤다.
남아공 문화 홍보에 전력 쏟는다
“한국은 남아공과 무역거래를 하고 있는 아시아 국가 중 4위를 차지합니다. 한국에서도 남아공은 아프리카 국가 중 가장 교역 규모가 큰 나라입니다. 그런데도 한국 사람들에게 남아공은 여전히 낯섭니다. ”
2001년 8월 한국에 부임한 쿠베카 대사는 남아공의 문화를 홍보하는 데 유달리 공을 많이 들여왔다. 지난해만 해도 아프리카 흑인 음악 일대기를 역동적으로 묘사한 뮤지컬 <우모자>(함께하는 정신이란 뜻)를 선보였고, 남아공 음식 페스티벌을 열어 남아공 세다르버그에서만 나는 건강차 루이보스티와 남아공산 와인을 알렸다. 지난해 말 발매된 <드라켄스버그 소년합창단> 앨범에는 쿠베카 대사가 직접 소개말을 써서 남아공의 태백산맥이라 할 만한 드라켄스버그산맥을 소개하며 ‘남아공에 놀러오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한국 문화에도 관심이 많아 사찰에서 머물며 전통문화를 체험하는 ‘템플 스테이’ 같은 프로그램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문화는 서로를 이해하는 가장 기본적인 수단입니다. 남아공의 경우 영어와 아프리칸스어(네덜란드어에서 파생된 언어)에 9개 부족의 언어까지 모두 11개의 공식 언어가 있는 나라입니다. 남아공에는 본래 대륙에 살고 있던 흑인 반투족과 식민지를 경영하기 위해 정착한 유럽인 외에도 19세기엔 사탕수수 재배를 위해 아시아인들도 상당수 이주했습니다. 그런데도 흑인 차별로 인해 백인 중심의 이식 문화만이 오랫동안 강조됐습니다. 10년 전 만델라가 대통령이 되면서 흑인들의 자긍심을 키우기 위한 수단으로 정부는 의식적으로 토착문화를 부흥시키고자 애썼습니다. 이제는 그런 노력이 서서히 결실을 맺고 있습니다.” 노예노동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이 시름을 잊으려 검은 고무장갑을 두드리며 춤추는 ‘검부츠댄스’ 같은 것이 ‘예술’로 인정받거나, 남아공을 이루는 부족 가운데 하나인 엔데벨레족이 즐겨 쓰는 특유의 문양이 뉴욕 미술계에서 인기를 끌게 된 것도 이런 배경이었다. 만델라 정권은 문화의 부흥을 위해 9월23일을 ‘문화유산의 날’로 정해 국경일로 삼기도 했다. “남아공 최초로 다인종 자유선거가 실시돼 만델라가 대통령에 당선된 4월27일은 남아공에서 가장 중요한 국경일입니다. 4월27일을 맞아 우리는 패션과 춤, 음악을 결합한 대규모 페스티벌을 열 계획입니다. 남아공 중요 부족들의 문양과 스타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패션쇼에 토착 춤과 음악이 곁들여지는 환상의 무대가 될 겁니다.” 20년 동안 조국에 들어갈 수 없었던 사연 줄루족 출신의 쿠베카 대사는 특히 흑인 토착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의 관저는 남아공의 아름다운 자연을 떠올리게 하는 민속 예술품들이 가득 차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저는 1976년 스웨토 지역에서 일어난 흑인 봉기에 참가한 이후 20년 동안 조국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었습니다. 봉기에 가담한 죄로 유럽으로 망명해 정치학과 외교학을 공부했고, 그 뒤엔 스웨덴·노르웨이·짐바브웨 등에서 만델라가 이끄는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외교 업무를 담당해야 했습니다. 오랫동안 고국을 그리며 이국을 떠돌았기 때문인지 남아공의 문화와 예술을 더욱 사랑하게 된 듯합니다.” 그는 인터뷰를 끝내자마자 서둘러 2년 전 남아공에서 열렸던 패션쇼 실황 녹화 테이프를 꺼내들었다. 아프리카의 초원 한쪽을 떼어 옷감으로 지어 만든 듯한 대담한 스타일, 배움만으로는 도저히 표현해낼 수 없을 것 같은 흑인들의 강렬한 춤사위를 지켜보며 그 자신은 너무나 흡족해했다. “우리는 아프리카의 매혹적인 문화가 편견 없이 받아들여지도록 최선을 다할 겁니다.” 글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orgio.net

2001년 8월 한국에 부임한 쿠베카 대사는 남아공의 문화를 홍보하는 데 유달리 공을 많이 들여왔다. 지난해만 해도 아프리카 흑인 음악 일대기를 역동적으로 묘사한 뮤지컬 <우모자>(함께하는 정신이란 뜻)를 선보였고, 남아공 음식 페스티벌을 열어 남아공 세다르버그에서만 나는 건강차 루이보스티와 남아공산 와인을 알렸다. 지난해 말 발매된 <드라켄스버그 소년합창단> 앨범에는 쿠베카 대사가 직접 소개말을 써서 남아공의 태백산맥이라 할 만한 드라켄스버그산맥을 소개하며 ‘남아공에 놀러오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한국 문화에도 관심이 많아 사찰에서 머물며 전통문화를 체험하는 ‘템플 스테이’ 같은 프로그램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문화는 서로를 이해하는 가장 기본적인 수단입니다. 남아공의 경우 영어와 아프리칸스어(네덜란드어에서 파생된 언어)에 9개 부족의 언어까지 모두 11개의 공식 언어가 있는 나라입니다. 남아공에는 본래 대륙에 살고 있던 흑인 반투족과 식민지를 경영하기 위해 정착한 유럽인 외에도 19세기엔 사탕수수 재배를 위해 아시아인들도 상당수 이주했습니다. 그런데도 흑인 차별로 인해 백인 중심의 이식 문화만이 오랫동안 강조됐습니다. 10년 전 만델라가 대통령이 되면서 흑인들의 자긍심을 키우기 위한 수단으로 정부는 의식적으로 토착문화를 부흥시키고자 애썼습니다. 이제는 그런 노력이 서서히 결실을 맺고 있습니다.” 노예노동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이 시름을 잊으려 검은 고무장갑을 두드리며 춤추는 ‘검부츠댄스’ 같은 것이 ‘예술’로 인정받거나, 남아공을 이루는 부족 가운데 하나인 엔데벨레족이 즐겨 쓰는 특유의 문양이 뉴욕 미술계에서 인기를 끌게 된 것도 이런 배경이었다. 만델라 정권은 문화의 부흥을 위해 9월23일을 ‘문화유산의 날’로 정해 국경일로 삼기도 했다. “남아공 최초로 다인종 자유선거가 실시돼 만델라가 대통령에 당선된 4월27일은 남아공에서 가장 중요한 국경일입니다. 4월27일을 맞아 우리는 패션과 춤, 음악을 결합한 대규모 페스티벌을 열 계획입니다. 남아공 중요 부족들의 문양과 스타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패션쇼에 토착 춤과 음악이 곁들여지는 환상의 무대가 될 겁니다.” 20년 동안 조국에 들어갈 수 없었던 사연 줄루족 출신의 쿠베카 대사는 특히 흑인 토착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의 관저는 남아공의 아름다운 자연을 떠올리게 하는 민속 예술품들이 가득 차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저는 1976년 스웨토 지역에서 일어난 흑인 봉기에 참가한 이후 20년 동안 조국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었습니다. 봉기에 가담한 죄로 유럽으로 망명해 정치학과 외교학을 공부했고, 그 뒤엔 스웨덴·노르웨이·짐바브웨 등에서 만델라가 이끄는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외교 업무를 담당해야 했습니다. 오랫동안 고국을 그리며 이국을 떠돌았기 때문인지 남아공의 문화와 예술을 더욱 사랑하게 된 듯합니다.” 그는 인터뷰를 끝내자마자 서둘러 2년 전 남아공에서 열렸던 패션쇼 실황 녹화 테이프를 꺼내들었다. 아프리카의 초원 한쪽을 떼어 옷감으로 지어 만든 듯한 대담한 스타일, 배움만으로는 도저히 표현해낼 수 없을 것 같은 흑인들의 강렬한 춤사위를 지켜보며 그 자신은 너무나 흡족해했다. “우리는 아프리카의 매혹적인 문화가 편견 없이 받아들여지도록 최선을 다할 겁니다.” 글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orgio.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