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 한국 사회 여성인권의 현주소 들여다본 <성폭력을 다시 쓴다>]
“모든 인간은 폭력 당하지 않을 권리를 포함해 인간으로서 권리를 가진다”는 인권개념이 현실에서,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누구가 맞지 않을 권리가 있지만, 여성폭력에 대한 우리 사회의 담론은 인간으로서 맞지 않을 ‘권리’보다 여성으로서 참아야 할 ‘도리’를 더 강조한다. 사람들이 외면하고 싶어하지만, 끊임없이 일어나는 강간, 성추행, 아내 구타와 그것을 드러내고 해결하기 어려운 여성들의 현실은 법의 영역을 넘어 여성에 대한 폭력을 어떻게 인식하고, 말하고, 해결할 것인가라는 좀더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
한국여성의전화연합이 기획하고 정희진, 정춘숙, 전희경, 정미례, 강김아리, 박이은경 등이 쓴 <성폭력을 다시 쓴다>(한울 펴냄)는 성폭력특별법이 만들어진 지 10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의 여성인권은 어디에 있는지를 깊게 들여다본다. 성폭력 사건이 처리되는 과정에서 필자들이 운동가, 연구자, 기록자로 보고, 듣고, 겪은 생생한 내용을 해석하면서 이들은 여성에 대한 폭력이 사회적인 문제이며 예상보다 훨씬 복잡한 난제임을 드러낸다. 10년 넘게 남편의 폭력과 구타, 폭언과 강간에 시달리던 아내가 가위로 위협하는 남편에 대항하다가 남편을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 사생활인 섹스 비디오를 동의 없이 공개당한 피해 여성이 국민 앞에 사죄한 ‘여성 연예인 비디오 사건’, 남자친구가 일방적으로 아이를 입양시키자 아이를 되찾기 위해 나서면서 남성이 아이에 대한 권리를 독점하는 사회에 맞서게 된 미혼모, 도지사의 성희롱과 진보운동 단체 내부의 성폭력 사건의 진행과정을 통해 가해자의 사회적 위치 때문에 여성들이 당하는 피해와 비난, 군산 성매매 지역 화제 참사 사건 등에서 여성들의 현실을 보여주고 분석했다.
법을 만든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성폭력 범죄가 제대로 처벌되지 않고, 극소수의 피해자들만이 신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들은 이제까지 성폭력 반대운동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성이 논의되는 방식 그 자체에 저항했다기보다 ‘여성의 성은 보호되어야 한다’는 남성 중심의 시선 안에서 진행되어왔으며, 여성의 경험을 여성의 입장에서 해석할 ‘언어’도 없다고 말한다. 여성폭력은 피해 여성 개인의 고통보다 그 여성이 속한 집단의 명예와 관련돼 논의되므로, 범죄나 인권침해의 문제가 아니라 도덕에 관한 문제로 인식되고, 여성은 피해 사실에 분노하기보다 수치심을 느끼며, 자신이 속한 집단의 명예를 ‘더럽힌’ 존재가 된다. 때문에 피해자들은 신고하면 더 큰 피해가 오는 현실을 잘 알고 있으며. 성에 대한 남성의 사회적인 권력은 여성폭력 관련법을 무력화하기 쉽다.
남성과 여성이 폭력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다른데, 영화 <오아시스>에서 볼 수 있듯이 남성에게는 사랑 고백 행위가 여성에게는 성폭력일 수 있다. 결국 법을 넘어서 여성이 자신에 대해, 사회에 대해 말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