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중숙의 사이언스 크로키]
현대에 들어 과학이 눈부신 발전을 거듭함에 따라 과학을 벗어난 분야에 대한 영향력에 관해 갈수록 많은 논란이 일고 있다. 근대 이전에는 과학 자체의 역량이 크지 않았으므로 이런 논의도 거의 없었다. 그 뒤 과학이 발전하면서 서서히 고개를 들었지만 한동안은 공상적인 내용에 머물렀다. 예를 들어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나 <프랑켄슈타인>과 같은 소설도 계시적 내용을 담고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흥미의 차원을 넘지 못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과학의 위력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정도로 확대되면서 문제는 아주 심각해졌다. 처음에는 독일을 견제하기 위해 원자폭탄의 개발을 권유했다가 나중에 이를 후회하면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앞장선 아인슈타인의 일화는 대표적 사례다.
최근 이 논쟁은 생물학 분야에서 치열하게 불붙고 있다. 지난 5년여 동안 우리나라도 가칭 ‘생명윤리기본법’의 제정을 둘러싸고 힘겨운 줄다리기를 해왔다. 그러나 아직도 해결을 못 보고 또 해를 넘길 모양이다. 이와 같은 법적 허점 때문에 지난해 또는 올해 우리나라는 자칫 꼼짝없이 복제인간을 맞는 최초의 나라가 될 뻔하기도 했다. 한편 미국에서는 9·11 사태 이후 세균 테러의 가능성 때문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 와중에 올 초 탄자니아에서 들여온 페스트균이 든 용기 30개를 분실한 미국의 미생물학자가 미연방수사국(FBI)에 체포되는 이례적인 일도 벌어졌다. 올해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피터 애그리 교수는 여기에 학문적 자유에 대한 탄압의 성격이 있다고 여겨 상금의 일부를 변호 비용으로 기부하고 나섰다.
최근의 이런 상황은 우리로 하여금 과학의 배경을 다시 둘러보게 한다. 근세 이전에는 과학자라는 직업이 따로 없었다. 영국의 수학자 휴얼(William Whewell)이 예술가(artist)란 단어를 본떠 과학자(scientist)란 용어를 만든 것은 19세기도 한참 지난 1834년의 일이었다. 우리가 위대한 과학자라고 부르는 뉴턴의 명저 <프린키피아>는 1687년에 나왔다. 그런데 이를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라고 부르는 데서 알 수 있듯 본래 과학은 철학의 한 분야로 간주되었다. 실제로 이런 전통은 유럽 대륙에서 2차대전 전까지 뚜렷하게 전해져왔다. 당시 저명한 과학자들의 저술을 보면 그들의 업적에 관련된 심오한 철학적 바탕을 쉽게 감지할 수 있다.
그 뒤 미국이 과학의 주도권을 쥐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미국은 현실적 응용성을 강하게 앞세워 과학을 철학의 토양으로부터 실용주의의 땅으로 뿌리째 옮겨 심었다. 아마도 이 신천지가 훨씬 기름졌던 모양이다. 이곳에서 과학은 더욱 풍성한 열매를 맺어 오늘날 보는 과학문명의 시대를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철학은 상대적으로 더욱 위축돼갔다. 스티븐 호킹은 초베스트셀러가 된 <시간의 역사>에서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칸트에 이르는 위대한 전통에 비추어보면 이 얼마나 초라한 몰락인가?”라고 한탄했다.
그런데 우연찮게도 이런 분화를 겪으면서 과학의 위험성이 더욱 점증되는 듯싶다. 현재 우리 사회에 몰아치는 인문학과 이공계 경시 풍조는 언뜻 서로 다른 두 현상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처럼 내막을 들춰보면 그 연원이 결코 다르지 않다. 물론 그렇다고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릴 수는 없다. 다만 이 비옥한 토양에 잊혀졌던 철학이란 자양분을 다시 더해갈 필요가 있다.
고중숙 | 순천대학교 교수 · 이론화학 jsg@sunchon.ac.kr

일러스트레이션 | 유은주
고중숙 | 순천대학교 교수 · 이론화학 jsg@sunchon.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