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의 논쟁 끝에 제정 앞둔 생명윤리법안… 참여정부는 과학기술을 경제적 도구로 여기는가
그동안 제정을 둘러싸고 무려 5년 이상 지루한 논쟁을 거듭하던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안)’이 지난 12월1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하면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국회를 통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같은 날 한 시민단체는 논평을 통해 “생명윤리를 다룬 최초의 통합 법률로 의의도 있지만 독소조항이 많다”고 입장을 발표하면서 유감을 표명했다. 아직까지 구체적인 법률안이 발표되지 않았기 때문에 상세하게 법안의 자구를 들어 평할 수는 없지만, 이번에 제출된 정부 단일안이 큰 수정 없이 받아들여진 것이라면 시민단체의 평가처럼 의의와 한계를 모두 가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면 먼저 과학기술적 주제를 둘러싼 논의로는 우리나라에서 유례가 없을 만큼 길고도 뜨거운 논쟁이 계속되었던 과정을 간략하게 살펴보자.
생명윤리법 제정 둘러싼 사회적 논의
생명공학의 빠른 발전으로 1997년에 복제양 돌리가 태어난 뒤, 세계적으로 생명공학의 사회적·윤리적 문제점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었고 여러 나라에서 인간 개체복제를 비롯해서 생명공학이 가져올 수 있는 부정적 영향을 규제할 법률이 제정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국회의원과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입법 움직임이 있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1998년에 한국여성민우회를 비롯한 9개 시민단체들이 ‘생명안전윤리 시민단체 연대모임’(연대모임)을 결성하면서 본격화되었고, 2000년 10월에는 ‘인간배아 복제 연구 등 윤리적 논란이 심각한 생명공학 연구에 대한 규제제도를 마련하기 위해’ 과학기술부 산하에 생명윤리자문위원회(자문위)가 구성되었다.
인문사회과학(5명), 종교계(3명), 비정부기구(NGO·2명), 생명공학(5명), 의학(5명) 등 각 분야의 전문가 20명으로 구성된 한시적 기구로 탄생한 자문위는 사회적으로 관심이 집중된 주제에 과학자와 인문학자, 그리고 시민단체 대표들이 참여해서 6개월 이상 진지한 숙의와 토론을 벌인 최초의 사례였다. 또한 이 논의는 관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인간배아 연구처럼 논란의 여지가 많은 주제에 대해 체세포핵이식 방법으로 인간배아를 창출하는 행위는 금지하고, ‘폐기될 동결보관 배아를 이용하는 연구’만 한시적으로 허용하는 합의를 도출해서 생명윤리기본법(가칭)의 골격을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여성단체와 종교단체들은 이 결정에 반발했지만, 자문위는 최종 합의안을 통해 우리나라에서도 정보의 공유와 진지한 토론을 통해 사회적 합의에 도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을 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합의의 수준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도 큰 의의를 가진다.
그러나 자문위가 합의를 기초로 한 생명윤리기본법의 골격을 2001년 5월에 공청회로 발표하면서 생명공학 연구자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혔고, 이후 입법과정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입법을 둘러싼 논의는 다람쥐 쳇바퀴를 돌듯 똑같은 논점을 반복하면서 지지부진을 면치 못했다.
이러한 논쟁에서 등장한 핵심 쟁점은 “체세포 핵이식을 이용한 배아복제와 연구의 허용 문제” “사람의 유전자를 다른 생물의 핵에 넣거나 그 역의 행위를 하는 종간 교잡행위 허용 문제” 그리고 “생명윤리와 안전에 관한 법률을 통합 법률로 제정할 것인지 아니면 인간 개체복제 금지처럼 단일 사안에 대한 개별 법률을 제정할 것인가”로 요약될 수 있다.
우선 이번 법안의 의의부터 이야기하자면, 생명윤리학자와 시민단체 등이 주장한 통합 입법이 받아들여진 점은 높이 평가된다. 이 법안에 기관 내 생명윤리심사위원회(IRB)의 설치가 명기되고, 그동안 거의 무방비 상태였던 인간배아에 대한 관리 규정이 신설된 것은 이런 맥락에서 가능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핵심 쟁점이었던 배아복제와 이종간 교잡이 실질적으로 허용된 것은 생명윤리와 안전의 두 중심 뼈대가 배제되었다는 점에서 ‘생명윤리와 안전에 관한 법률’이라는 법안의 명칭을 무색하게 만들 지경이다.
검증 거치지 않은 광우병 예방 동물
더구나 이러한 법률 제정 과정은 앞에서 길게 언급한 사회적 논의와 자문위의 합의를 실질적으로 무시하고, 현실정치에서 영향력이 있는 일부 정치적 과학자들의 주장이 일방적으로 관철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법률안이 논의되던 시점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한 복제과학자가 마련한 깜짝쇼에서 아직 확인되지도 않았고 윤리적인 면에서 많은 문제를 가진 연구 결과를 “기술이 아니라 마술”이라고 칭찬하는 어처구니없는 풍경을 연출했다. 그것은 국내외적으로 아무런 검증 과정도 거치지 않은, 광우병에 걸리지 ‘않을지 모르는’ 송아지와 인간장기 생산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 인간면역유전자(hDAF)를 보유한 무균돼지였다.
전자의 경우, 일부 언론은 최소한 3년에서 5년의 검증이 필요한 연구이며 국제학술지에 논문의 형태로 발표하는 것이 아니라 깜짝쇼식으로 발표한 점을 비판했다. 특히 무균돼지는 태어나자마자 죽었을 뿐 아니라 사람의 유전자를 동물에게 이식한 이종간 교잡이었다는 점에서 많은 윤리적 문제를 내포한 연구였는데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해당 법안이 심의 중인 민감한 시점에 ‘마술’ 운운하는 기막힌 발언을 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볼 때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은 참여정부라는 슬로건을 내건 노무현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이 과연 누구를 참여시키려는 것인지 의심하게 만든다. 이 법안의 심의과정은 지난 5년여 동안 많은 전문가들과 시민단체 대표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서 이룬 합의가 헌신짝처럼 버려지고 일부 소수의 정치적 과학자들의 견해가 득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과거 군사정권 시절의 행태와 전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새 정부가 과학기술을 경제발전의 도구로 인식하는 협애한 경제주의적 관점을 벗어나 ‘과학기술 그리고 사회’의 폭넓은 인식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이미 이루어진 사회적 합의를 법률의 시행에서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지 밝혀야 할 것이다.
김동광/ 과학저술가 kwahak@korea.ac.kr

노무현 대통령이 서울대병원 임상의학연구소를 방문해 황우석 교수로부터 생명공학 연구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다.(청와대사진기자단)

황 교수팀이 탄생시킨 광우병에 견딜 수 있다는 소.(서울대)

생명공학의 사회 · 윤리적 문제점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생명윤리기본법 제정을 앞두고 시민사회단체들은 사회적 합의를 위해 각종 공청회에서 논쟁을 벌여왔다.(한겨레 서정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