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 임석재 교수의 서양건축사 시리즈 <땅과 인간> <기독교와 인간>]
몇해 전 그가 사석에서 “내가 지은 책으로 도서관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을 때, 그저 ‘욕심이 무지 많다’고만 여겼다. 그런데 지나면서 보니 그 말이 진심이었다는 생각이 짙어지고 있다.
임석재 교수(이화여자대학교 건축학과)의 <땅과 인간> <기독교와 인간>(북하우스 펴냄, 각권 3만원)은 서양건축사의 본줄기를 꿰뚫는 책이다. 앞으로 모두 5권으로 마무리될 ‘임석재 서양건축사 시리즈’의 1·2권에 해당된다. <땅과 인간>은 인간이 땅 위에 터를 잡고 인간만의 문명을 이루기 시작한 원시고대~로마를 다뤘고, <기독교와 인간>은 기독교가 자리잡아 가는 로마~비잔틴 시대를 다뤘다. 앞으로 나올 책들은 기독교 건축이 절정을 이루는 로마네스크~고딕시대, 르네상스~바로크, 18~19세기로 잘려져 각각 <하늘과 인간> <인간과 인간> <기술과 인간>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아마도 ‘임석재 도서관’이 세워진다면 이 책들은 그 도서관의 핵심이 될 것이다. 번역물에 의존해오던 서양건축사가 처음으로 한국 학자의 손끝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통사란 시대의 단면을 끊어 객관적 정보를 전달하는 것 외에도 지은이의 역사관이 담겨 있어야 한다. 정보 전달과 해석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 위해 지은이는 ‘중층변증법’이라는 이론틀로 역사를 훑는다. 스파르타-아테네, 헬레니즘-헤브라이즘처럼 서양 문명에는 수백개의 대립적 개념이 쌍을 이루고 있는데, 이 쌍개념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중층의 겹을 이루고 하나의 문명이 쓰러질 때마다 쌍개념이 갈등해 정-반을 거쳐 합에 이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파르테논신전을 보면 건물을 짓기 이전에 미리 규범으로 정해진 비례체계를 적용하면서 이를 현장에서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보정작업이 이뤄졌는데, 이 보정작업을 명료하게 드러냄으로써 이상성과 현실성이라는 쌍개념이 조화를 이뤄 걸작을 탄생시켰다는 설명이다.
지은이는 이 책을 쓴 이유에 대해 “현실세계에 대한 기여” 때문이라고 밝힌다. 인터넷의 발달로 변화해가는 서양에서 진행되는 건축 현상들이 거의 실시간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서양건축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건축 현장에서 뛰는 사람들은 무엇인가 크게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는 목마름이 있는데, 역사공부만이 이를 해결해준다고 본다. 지은이는 이 책을 위해 10여 차례 유럽 답사를 다니며 10만장의 슬라이드를 갖췄다고 한다. 한국건축이 놓여 있는 ‘오늘’에서 ‘내일’로 도약하기 위한 발판이 되는 것, 이 수고로운 역작의 존재 의미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