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새로운 문명의 방향을 ‘생명문화’로 풀어낸 ‘세계생명문화포럼’
“아름다운 모심, 힘찬 살림”을 꿈꾸는 ‘세계생명문화포럼’이 지난 12월18~20일 수원의 경기 중소기업종합센터에서 열렸다. 세계 17개국의 시인·사상가·평화운동가·환경운동가·과학자·예술인 100여명이 어우러져 21세기 새로운 문명의 방향을 ‘생명문화’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토론하고 상상해보는 자리였다. 우리에게는 김지하 시인을 중심으로 친숙해진 ‘생명문화’는 기존 인간 중심의 생명 개념을 동·식물, 흙, 공기, 물, 지구, 우주의 모든 생명체로 확장해 다양한 생명이 함께 ‘생기’, 즉 ‘살맛’을 발하는 적극적인 ‘살림의 문화’를 모색하려는 것이다.
지구촌 살림의 문화를 위하여
이 포럼에는 인도의 환경운동가인 반다나 시바(Vandana Shiva), 유진 하그로브(미국 노스텍사스대 환경윤리연구센터 소장), 리카르도 나바로(지구의벗 국제본부 의장), 김지하 시인, 장회익 녹색대 총장, 박재일 한살림 대표 등이 참석했다. 세계의 다른 지역,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는 고유한 목소리들은 현재 인류 문명은 전지구적인 총체적 위기에 직면해 있으며, 생명을 제대로 모시고 섬기는 마음과 자세, 가치관의 전환을 통해 생명의 신명과 활력을 힘차게 되살리는 새로운 인류 문명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데 모아졌다.
기조발제자의 한 사람인 세계적인 생명·여성운동가 반다나 시바는 현 문화를 진단하는 이미지를 “자살의 체제”라 표현했다. 과학기술 중심의 핵물리학자에서 생명과 환경을 지키려는 운동가로 변신한 시바는 이번 방문이 자신에게 아주 특별한 이유를 칸쿤에서 자결한 이경해씨의 죽음과 연관지었다. 당시 칸쿤에 있었던 그는 “인도에선 매년 2만5천명의 ‘이경해’가 나타난다”며 “선진 몇 나라 대기업의 이익을 위해 작동하고 있는 경제체제가 전 세계에서 이경해 같은 생활인들을 자살로 몰고 있다”고 했다. 그는 또 ‘죽임의 경제체제’의 또 다른 예로 지금 인도에서 ‘수에즈’라는 세계적인 생수회사가 갠지스 강물을 상품화하려 하는 이야기를 꺼냈다. 인도인뿐 아니라 전 세계인에게 신성한 강으로 상징되는 갠지스강의 물을 서구의 대기업이 ‘잠시 기계를 거치게 하고 염소소독제 좀 집어넣는’ 처리과정을 거쳐 인도인에게 돈을 받고 되팔려 하고 있다. “수에즈에서 바라보는 갠지스강의 물은 이윤을 생산하기 위해 주어진 물질일 뿐이지만, 인도인에게는 영적·종교적·생명의 물이요, 신성한 젖줄이요, 여신”이라는 것이다. “이 신성한 상징을 단지 물질로 전락시키는 현 경제체제는 단순히 경제의 문제를 넘어선 사상과 가치관, 그리고 문명의 위기이며 이것은 곧 인류의 죽음과 자살의 체제요 문화다.” 그는 또 “기업의 세계화와 자원 독점이 지구를 거대한 슈퍼마켓으로 만들어 인간을 소비를 위한 존재로 전락시킨다”며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주체로서의 인간이 되도록 생태적 가치에 기초한 생산과 소비의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포럼이 위기와 절망만을 이야기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문화를 향한 희망의 이미지들로 강한 울림을 주었다. 눈보라 가득한 모진 세파에 매화의 싹이 움트듯 우리가 처한 혼돈과 죽음의 상황이 새로운 생명의 힘찬 태동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이고, 이 새로운 가능성을 한국의 전통적인 신명사상, 한글의 우주적인 통찰과 미학, 놀이와 일과 춤의 신명이 어우러지는 우리 뿌리에서 찾아내려는 많은 이야기들도 오갔다. 이번 포럼과 관련해 지난달 열렸던 순회강연에서 미국 뉴저지에서 창조농장을 운영하는 미리암 맥길레스(Miriam MacGillas) 수녀는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의 이미지’를 통해 희망을 이야기했다. 달을 ‘탐사’하러 간 우주인들이 지구의 중력에서 자유로워지면서 비로소 발견한, 광대한 검은 우주의 바다에 떠 있는 녹색생명의 별인 지구는 신비와 감동, 생명의 환희를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가치의 중심 이동… 신명나는 살판 실현 신비, 축제, 생명, 찬미, 오랜 기다림, 아름다움 등 오랫동안 잊혀졌던 단어들이 이 우주비행사들에게 되돌아왔듯 생명-문화라는 거대한 담론들은 우리 각자가 체험함으로써 깨닫고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깨닫음이 각자의 생각과 몸짓의 변화로 자리잡을 때 우리 안에 오래 잠들어 있던 ‘덩실덩실 너울너울’ 생기의 물결이 다시 흐르는 힘찬 ‘살림’의 문화를 꽃피울 수 있다. 이번 포럼은 그런 세계로의 초대이자 약속이요, 만남이요, 가능성이며, 그리고 이 한파 매서운 겨울날에 꾸어보는 꿈이었다. 고혜경 | 신화학자 · 가톨릭대 강사

사진/ “생태적 가치에 기초한 생산과 소비의 질서를 구축해야 한다.” 인도의 환경운동가 반다나 시바(왼쪽,한겨레 이제훈 기자)와 지구의 벗 국제본부 의장 리카르도 나바로(오른쪽,한겨레).
기조발제자의 한 사람인 세계적인 생명·여성운동가 반다나 시바는 현 문화를 진단하는 이미지를 “자살의 체제”라 표현했다. 과학기술 중심의 핵물리학자에서 생명과 환경을 지키려는 운동가로 변신한 시바는 이번 방문이 자신에게 아주 특별한 이유를 칸쿤에서 자결한 이경해씨의 죽음과 연관지었다. 당시 칸쿤에 있었던 그는 “인도에선 매년 2만5천명의 ‘이경해’가 나타난다”며 “선진 몇 나라 대기업의 이익을 위해 작동하고 있는 경제체제가 전 세계에서 이경해 같은 생활인들을 자살로 몰고 있다”고 했다. 그는 또 ‘죽임의 경제체제’의 또 다른 예로 지금 인도에서 ‘수에즈’라는 세계적인 생수회사가 갠지스 강물을 상품화하려 하는 이야기를 꺼냈다. 인도인뿐 아니라 전 세계인에게 신성한 강으로 상징되는 갠지스강의 물을 서구의 대기업이 ‘잠시 기계를 거치게 하고 염소소독제 좀 집어넣는’ 처리과정을 거쳐 인도인에게 돈을 받고 되팔려 하고 있다. “수에즈에서 바라보는 갠지스강의 물은 이윤을 생산하기 위해 주어진 물질일 뿐이지만, 인도인에게는 영적·종교적·생명의 물이요, 신성한 젖줄이요, 여신”이라는 것이다. “이 신성한 상징을 단지 물질로 전락시키는 현 경제체제는 단순히 경제의 문제를 넘어선 사상과 가치관, 그리고 문명의 위기이며 이것은 곧 인류의 죽음과 자살의 체제요 문화다.” 그는 또 “기업의 세계화와 자원 독점이 지구를 거대한 슈퍼마켓으로 만들어 인간을 소비를 위한 존재로 전락시킨다”며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주체로서의 인간이 되도록 생태적 가치에 기초한 생산과 소비의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포럼이 위기와 절망만을 이야기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문화를 향한 희망의 이미지들로 강한 울림을 주었다. 눈보라 가득한 모진 세파에 매화의 싹이 움트듯 우리가 처한 혼돈과 죽음의 상황이 새로운 생명의 힘찬 태동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이고, 이 새로운 가능성을 한국의 전통적인 신명사상, 한글의 우주적인 통찰과 미학, 놀이와 일과 춤의 신명이 어우러지는 우리 뿌리에서 찾아내려는 많은 이야기들도 오갔다. 이번 포럼과 관련해 지난달 열렸던 순회강연에서 미국 뉴저지에서 창조농장을 운영하는 미리암 맥길레스(Miriam MacGillas) 수녀는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의 이미지’를 통해 희망을 이야기했다. 달을 ‘탐사’하러 간 우주인들이 지구의 중력에서 자유로워지면서 비로소 발견한, 광대한 검은 우주의 바다에 떠 있는 녹색생명의 별인 지구는 신비와 감동, 생명의 환희를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가치의 중심 이동… 신명나는 살판 실현 신비, 축제, 생명, 찬미, 오랜 기다림, 아름다움 등 오랫동안 잊혀졌던 단어들이 이 우주비행사들에게 되돌아왔듯 생명-문화라는 거대한 담론들은 우리 각자가 체험함으로써 깨닫고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깨닫음이 각자의 생각과 몸짓의 변화로 자리잡을 때 우리 안에 오래 잠들어 있던 ‘덩실덩실 너울너울’ 생기의 물결이 다시 흐르는 힘찬 ‘살림’의 문화를 꽃피울 수 있다. 이번 포럼은 그런 세계로의 초대이자 약속이요, 만남이요, 가능성이며, 그리고 이 한파 매서운 겨울날에 꾸어보는 꿈이었다. 고혜경 | 신화학자 · 가톨릭대 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