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의 ‘스타일 앤 더 시티’]
이효리 · 렉시가 함소원보다 한수 위인 까닭… 자신의 매력을 능숙하게 조작할 수 없나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을 마신 다음날이면 언제나 후회가 막심하다. 왜 그 지경이 되도록 술을 마셨을까 싶어, 남들 보기 창피하고 내 스스로도 미워죽겠다. 어디 산속 깊은 곳에 기어들어가 목을 매고 싶지만, 죽는 것도 쉽지 않으니 차라리 스스로 머리채를 낚아채서 땅바닥에 내다꽂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런데 언젠가 장기적 만취 상태에서 깨어나면 함소원도 나처럼 자기 머리채를 쥐어뜯고 싶은 날이 반드시 올 거라고 믿고 있다.
나는 그동안 여자 연예인들이 자신이 가진 성적 매력을 대중적인 소비상품으로 내놓는 것에 꽤 관대한 편이었다. 막말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몸의 상품화가 뭐가 나쁘냐며, ‘몸의, 성의 상품화’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모든 패션지와 패션산업은 죽어 마땅하다고 떠들어왔다. 그러면서 여자 스타들이 겨우 옷 좀 벗었다고 매춘부처럼 취급하는 남자들을 오히려 더 한심하게 생각해왔다.
그런데 함소원만큼은 결코 예쁘게 봐줄 수가 없다. 처음엔 반신반의하며 어린 아가씨가 헤어누드까지 보여주겠다니 그 용기가 퍽이나 가상하다고 생각하려고 했다. 그런데 기자회견이랍시고 스포츠신문 기자들을 죄다 불러놓고 그 앞에서 손바닥만한 핫팬츠 차림으로 체조선수인 양 다리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 꼴은 차마 눈뜨고 못 볼 지경이었다. 뭐랄까, 그건 유곽에서 이루어지는 쇼보다 조금 더 고상한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누드사진을 찍는 행위 안에는 건강한 나르시시즘적 자기애가 숨어 있어야 하는 법인데, 저 아이는 어찌하여 저 자신도 부끄러운 짓을 하고 있나? 무엇보다 쇼비즈니스계의 기본 전략이라 할 수 있는 그 흔한 ‘치고 빠지기 작전’도 모르는 무지몽매함이 안타까웠다. 화끈하게 벗는 것으로 주목받고 싶었으면 기자회견을 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잠수’를 타야 한다. 그리고 기자회견을 할 요량이면 더욱 고상한 옷차림으로 매춘부의 작태가 아닌 영민한 여성처럼 보이기 위한 포즈를 연습했어야 한다. 이도저도 아니면 스포츠신문 기자들을 향해 “왜 이 가슴이 마음에 들어? 그럼 너 가져”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배짱이 두둑하든가. 그런 점에서 이효리나 렉시는 함소원보다 확실히 한수 위다. 이효리는 이미 범국민적인 사랑을 받고 있었으니 그렇다치고 신인가수 렉시를 봐라. 손바닥으로 자신의 둔부를 훔쳐올리며 렉시는 이렇게 노래한다. “자신 있으면 다 와봐. 이 애송이들아.” 한때 ‘천사표’를 지향했을지도 모르는 생기발랄한 소녀들은 이제 헤프고 음탕하게 보일 필요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듯하다. 하지만 나는 자신의 매력을 더 능숙하게 조작할 수 있는 여자들만이 옷을 벗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헤프고 단정하지 못한 여자의 스테레오 타입처럼 그렇게 단순하고 호락호락하게 보여선 안 된다. 질펀하고 동시에 총명해야 한다. 마돈나나 나오미 캠벨처럼 말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연륜과 경험이 필요하다. 말하자면 이 사업은 어린 소녀들이 아무 생각 없이 덤볐다가는 인생의 종지부를 찍을 수도 있는 아주 위험한 카드라는 말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착하고 참한 여자처럼 보이는 게 아직까지는 남는 장사다. 그 나이에도 변함 없이 청순가련형을 연기하는 최지우를 봐라. 다소 우스꽝스럽긴 하지만, 그녀는 결코 마녀사냥의 대상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김경 | 패션지 <바자> 피처 디렉터
누드사진을 찍는 행위 안에는 건강한 나르시시즘적 자기애가 숨어 있어야 하는 법인데, 저 아이는 어찌하여 저 자신도 부끄러운 짓을 하고 있나? 무엇보다 쇼비즈니스계의 기본 전략이라 할 수 있는 그 흔한 ‘치고 빠지기 작전’도 모르는 무지몽매함이 안타까웠다. 화끈하게 벗는 것으로 주목받고 싶었으면 기자회견을 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잠수’를 타야 한다. 그리고 기자회견을 할 요량이면 더욱 고상한 옷차림으로 매춘부의 작태가 아닌 영민한 여성처럼 보이기 위한 포즈를 연습했어야 한다. 이도저도 아니면 스포츠신문 기자들을 향해 “왜 이 가슴이 마음에 들어? 그럼 너 가져”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배짱이 두둑하든가. 그런 점에서 이효리나 렉시는 함소원보다 확실히 한수 위다. 이효리는 이미 범국민적인 사랑을 받고 있었으니 그렇다치고 신인가수 렉시를 봐라. 손바닥으로 자신의 둔부를 훔쳐올리며 렉시는 이렇게 노래한다. “자신 있으면 다 와봐. 이 애송이들아.” 한때 ‘천사표’를 지향했을지도 모르는 생기발랄한 소녀들은 이제 헤프고 음탕하게 보일 필요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듯하다. 하지만 나는 자신의 매력을 더 능숙하게 조작할 수 있는 여자들만이 옷을 벗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헤프고 단정하지 못한 여자의 스테레오 타입처럼 그렇게 단순하고 호락호락하게 보여선 안 된다. 질펀하고 동시에 총명해야 한다. 마돈나나 나오미 캠벨처럼 말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연륜과 경험이 필요하다. 말하자면 이 사업은 어린 소녀들이 아무 생각 없이 덤볐다가는 인생의 종지부를 찍을 수도 있는 아주 위험한 카드라는 말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착하고 참한 여자처럼 보이는 게 아직까지는 남는 장사다. 그 나이에도 변함 없이 청순가련형을 연기하는 최지우를 봐라. 다소 우스꽝스럽긴 하지만, 그녀는 결코 마녀사냥의 대상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김경 | 패션지 <바자> 피처 디렉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