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자취를 따라 실크로드 여행한 두 서양인… 인생의 의미를 재발견하는 깊은 감동 안겨
또 한해가 간다. 멍하니 앉아 리모컨 광선을 발사해가며 TV 채널을 바꾸다가 우연히 성지순례를 떠난 두 모녀를 보았다. 스페인의 한 도시에 있는 성지를 향해 프랑스에서 출발한 두 모녀는 한달 가까이 걷고 또 걷는다. 이야기도 나누지만, 자신과 대화하는 침묵의 시간이 많다. 차를 타면 몇 시간이면 갈 거리를 발이 부르트고, 몸살로 앓아눕기도 하면서 걸어간다. 느림과 비움, 침묵…. 언젠가 나에게도 저런 시간이 찾아올까.
이스탄불 시안까지 1만2천km를 걷다
<나는 걷는다>(효형출판 펴냄)의 베르나르 올리비에와 <뉴욕타임스 기자의 대당서역>(꿈꾸는돌 펴냄)의 리처드 번스타인도 아마 오랫동안 그런 시간을 기다려 왔으리라. <나는 걷는다>는 <파리 마치> <르피가로> 등의 정치·사회부 기자로 30년 넘게 활동하다 은퇴한 올리비에가 혼자서 이스탄불에서 시안까지 1만2천km를 걸어서 여행한 1099일의 기록이고, <…대당서역기>는 <뉴욕타임스> 기자인 번스타인이 1400년 전 당나라 승려 현장의 발자취를 따라갔던 여행을 담았다.
‘아나톨리아 횡단’ ‘머나먼 사마르칸트’ ‘스텝에 부는 바람’ 3권으로 구성된 방대한 기록 <나는 걷는다>에서 62살의 올리비에는 느리지만 생생한 삶의 리듬을 되찾고 싶어 1999년 긴 여행을 떠났다. 익숙하지도 않고 동반자도 없는 여행은 저자에게 힘겨운 도전이었다. 발에는 물집이 잡혀 고름이 흐르고 배낭끈에 쓸린 어깨와 허리는 빨갛게 달아올랐다. 터키의 쿠르디스탄에서는 군인들에게 잡혀 취조를 당하기도 했고, 장신구와 달러를 노리는 사람들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카비르 사막의 기온은 50도가 넘었고 발에 닿는 모래의 온도는 80도였다. 이렇게 힘든 중에도 그는 일종의 희열을 느꼈다. 하루 종일 걷다보면 모든 것은 단순해졌다. 불필요한 짐은 내려놓게 되고, 쓸데없는 잡념도 사라졌다. 오직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뿐이며 그날의 경험들이 모두 소중하게 몸으로 느껴졌다. “나는 즐겁게 길을 걸었다. 아름다운 만남으로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무거운 몸에서 해방된 뜨거운 몸은 거대한 밀밭과 경작지 위에서 날개를 달았다. 내 영혼은 종달새처럼 날아올랐다.” 그는 자신의 여정뿐 아니라 그곳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을 기록하고, 마르코 폴로, 정복자 알렉산더와 칭기즈칸, 티무르 등 이 길을 지났던 역사 속의 인물들을 이야기한다.
2002년 여름. 시안에 다다른 저자는 새로운 삶을 발견한다. “길은 여행을 하는 동안 내게 전 재산과 맞먹을 선물을 안겨주었다. 길은 계속 앞으로 가고자 하는 욕망을 주었다. 지쳤지만 노력으로 자신을 초월한 몸이 마침내 자유로운 사고를 할 때의 신성한 순간을 다시 갖고 싶은 욕망.” 리처드 번스타인 역시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떠났다. <뉴욕타임스>의 서평 전문기자로 근무하던 그는 50살이 넘자 부쩍 자신의 삶에 회의가 들었다. 출근하기가 싫어졌으며 ‘설명할 수 없는 우울’에서 좀체 벗어나지 못하는 나날이 계속됐다. 자신의 일에 특별한 문제가 없고, 하나의 ‘특권’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지만, 인생이 뭔가에 가로막힌 듯했다. 증세를 치료하기 위해 정신분석을 받기도 했지만 돈낭비일 뿐이었다. 상처받은 영혼을 위한 치유의 걷기 평범하고 무미건조한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그는 1999년 장기 휴가를 받아 1400년 전 당나라 승려 현장이 ‘위대한 법을 찾지 못한다면 길에서 죽어도 좋다’는 의지로 떠났던 길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현장은 629년 26살에 장안(지금의 서안)을 출발, 인도로 구도 여행길에 올랐고 17년 동안의 험난한 여행에서 돌아와 <대당서역기>를 남겼다. 번스타인의 <대당서역기>는 20세기 말의 현대 중국과 인도, 파키스탄 등 실크로드 지역에 대한 기록과 그의 생각들을 담은 여행기지만 글 곳곳에서 그는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면서 <대당서역기>를 비롯한 각종 문헌에 기록된 현장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당시 불교 사상의 쟁점들을 열거하고 있다. 중국사를 전공하고 중국특파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던 자신의 내공을 살려 동서양의 역사를 넘나들며 이야기를 풀어낸다. 잠깐, 성공한 인생을 살았던 두 서양인이 노년에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해 실크로드를 따라 ‘동양’을 여행하는 이 두권의 책에는 어쩔 수 없이 아시아를 평화롭지만 낙후된 신비한 땅으로 바라보는 오리엔탈리즘의 시선이 묻어 있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그 점은 잠시 접어두고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 때로 먼 곳을 여행해야 한다”는 그들의 말에 귀를 귀울여보자. 이 책들을 읽고 난 뒤에 나 자신이 그곳으로 떠나고 싶어진다면 <황하에서 천산까지> <유라시아 유목제국사>(김호동 지음), <실크로드 이야기>(수잔 휫필드), <문명의 루트 실크로드>(정수일), <박재동의 실크로드 스케치 기행>(박재동)을 읽고 가면 좋겠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2002년 여름. 시안에 다다른 저자는 새로운 삶을 발견한다. “길은 여행을 하는 동안 내게 전 재산과 맞먹을 선물을 안겨주었다. 길은 계속 앞으로 가고자 하는 욕망을 주었다. 지쳤지만 노력으로 자신을 초월한 몸이 마침내 자유로운 사고를 할 때의 신성한 순간을 다시 갖고 싶은 욕망.” 리처드 번스타인 역시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떠났다. <뉴욕타임스>의 서평 전문기자로 근무하던 그는 50살이 넘자 부쩍 자신의 삶에 회의가 들었다. 출근하기가 싫어졌으며 ‘설명할 수 없는 우울’에서 좀체 벗어나지 못하는 나날이 계속됐다. 자신의 일에 특별한 문제가 없고, 하나의 ‘특권’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지만, 인생이 뭔가에 가로막힌 듯했다. 증세를 치료하기 위해 정신분석을 받기도 했지만 돈낭비일 뿐이었다. 상처받은 영혼을 위한 치유의 걷기 평범하고 무미건조한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그는 1999년 장기 휴가를 받아 1400년 전 당나라 승려 현장이 ‘위대한 법을 찾지 못한다면 길에서 죽어도 좋다’는 의지로 떠났던 길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현장은 629년 26살에 장안(지금의 서안)을 출발, 인도로 구도 여행길에 올랐고 17년 동안의 험난한 여행에서 돌아와 <대당서역기>를 남겼다. 번스타인의 <대당서역기>는 20세기 말의 현대 중국과 인도, 파키스탄 등 실크로드 지역에 대한 기록과 그의 생각들을 담은 여행기지만 글 곳곳에서 그는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면서 <대당서역기>를 비롯한 각종 문헌에 기록된 현장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당시 불교 사상의 쟁점들을 열거하고 있다. 중국사를 전공하고 중국특파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던 자신의 내공을 살려 동서양의 역사를 넘나들며 이야기를 풀어낸다. 잠깐, 성공한 인생을 살았던 두 서양인이 노년에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해 실크로드를 따라 ‘동양’을 여행하는 이 두권의 책에는 어쩔 수 없이 아시아를 평화롭지만 낙후된 신비한 땅으로 바라보는 오리엔탈리즘의 시선이 묻어 있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그 점은 잠시 접어두고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 때로 먼 곳을 여행해야 한다”는 그들의 말에 귀를 귀울여보자. 이 책들을 읽고 난 뒤에 나 자신이 그곳으로 떠나고 싶어진다면 <황하에서 천산까지> <유라시아 유목제국사>(김호동 지음), <실크로드 이야기>(수잔 휫필드), <문명의 루트 실크로드>(정수일), <박재동의 실크로드 스케치 기행>(박재동)을 읽고 가면 좋겠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