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현실의 대서사 마감한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현란한 화면 · 섬세한 기술로 관객 사로잡아
여행은 끝났다.
12월17일 전 세계에서 일제히 개봉한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으로 <반지원정대>(2001)와 <두개의 탑>(2002)에 이어 ‘반지’ 3부작의 대장정도 끝에 이르렀다. 낭만도, 상상력도 일상의 쳇바퀴에 끼어버린 세상에 지친 사람들을 이 세상 너머의 저 세계로 이끌었던 여행의 끝은 3시간12분이라는 긴긴 상영시간에도 불구하고 아쉽기까지 하다.
신화 속에서 3시간12분이 짧게 느껴져
중간계의 몰락으로 이어질 절대반지를 모르도르의 운명의 산 분화구에 던져넣어 파괴하기 위해 떠난 원정대의 고통스러운 여정은 당연히, 이 마지막 편 <왕의 귀환>에서 절정에 이른다. 아르곤(비고 모르텐슨), 간달프(이언 매컬런), 레골라스(올랜도 블룸), 김리(존 라이스 데이비스) 등 원정대는 점점 힘이 커지고 있는 악의 상징 사우론과 중간계의 쇠락해가는 인간 왕국인 곤도르를 무대로 마지막 일전을 앞두고 있다. 과거의 위대함은 사라진 채 명맥만을 유지해오던 곤도르 왕국의 섭정 데네도르(존 노블)은 두 아들의 죽음과 부상으로 미쳐가고, 6천명의 병력으로 곤도르의 수도 ‘미나스 티리스’로 밀려오는 사우론의 20만 대군과 맞서야 하는 반지원정대와 곤도르, 로한의 연합군에게서는 절망과 슬픔, 그러나 포기하지 않는 비장한 긴장이 느껴진다. 왕의 자격에 대해 고민하던 곤도르의 왕위 계승자 아라곤은 다시 만들어진 왕의 검 안두릴을 들고 ‘사자(死者)의 길’로 들어선다. 전편에 이어 극장을 찾은 관객들은 원작자 J. R. R 톨킨의 상상력에만 의존한 ‘초현실의 장대한 서사시’를 생생하게 그려낸 빼어난 화면과 기술에 압도된다. 북유럽의 신화와 유럽 고대언어에 정통한 언어학자였던 톨킨이 글로 써낸 상상 속 ‘중간계’(middle earth)를 살아 움직이는 생생한 화면으로 재현한 감독 피터 잭슨과 시각효과를 책임진 뉴질랜드의 웨타(WETA) 디지털의 솜씨는 이번에도 실망스럽지 않다. 마지막 전투에서 온 땅을 뒤흔들며 등장하는 코끼리 괴물 무마킬(올리파운트)과 나즈굴이 타고 다니는 익룡을 닮은 괴물, 으스스하게 다가오는 거미 괴물 쉴롭, 아라곤이 깨우는 죽은 자들의 군대 등이 1·2편보다 훨씬 강렬한 시각효과를 보여준다. 2부 <두개의 탑>의 처절한 헬름 협곡 전투장면에서는 1만명의 디지털 캐릭터가 활약했지만, 이번 펠렌노르 전투에서는 20만명의 디지털 캐릭터- 들판을 시커멓게 채운 오크와 트롤 군대- 가 등장한다. “이만한 규모의 전쟁신(scene)을 어떤 영화에서도 구경한 적이 없을 것이며, 앞으로도 볼 수 없을 것이다”라는 피터 잭슨의 큰소리가 헛소리는 아니다. 한번의 당김으로 상대에 다가가지 않고 죽이는 총이나 단추 하나를 눌러 수십만명을 죽이는 폭탄 없이 갑옷을 입고 칼이나 도끼를 손에 들고 달려드는 육박전의 이 처절한 세계에서는 ‘중세적’인 의리와 우정에 대한 ‘복고적인’ 매혹이 넘쳐 흐른다.
반지에 사로잡혀 ‘괴물’이 돼버린 골룸은 프로도를 배신할 것인가, 프로도는 절대반지의 욕심을 떨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들도 답을 얻는다. 반지원정대 일행과 떨어져 반지를 던져버리기 위해 충실한 하인인 샘(숀 어스틴)과 함께 용암이 치솟는 운명의 산으로 향하던 프로도(일라이저 우드)는 반지에 대한 욕망을 버리지 못하는 골룸을 길 안내자로 삼아 기진맥진한 상태로 나아간다. 힘없고 작은 호빗족 프로도의 목에 걸려 있는 절대반지는 그가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점점 무거워지며 그를 좀먹고, 반지에 압도된 프로도는 배신당해 반지를 빼앗기지 않을까 하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다. 반지는 권력과 힘에 대한 욕망이며, 악이란 권력에 대한 욕망에 흔들리는 자신의 마음 안에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주제 역시 3편에서 더욱 강렬하게 표현된다.
권력과 힘에 대한 욕망을 떨칠 건가
1·2편을 통해 가장 뛰어난 컴퓨터 그래픽 캐릭터로 떠오른 골룸 역시 이 영화의 핵심적인 열쇠를 쥐고 있다. 첫 장면부터 골룸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평화로운 호숫가에서 사촌 디골과 낚시를 하던 청년 스미골은 디골이 우연히 호수 바닥에서 건져낸 절대반지에 눈이 뒤집혀 사촌을 죽이고 반지를 빼앗는다. 그리고 반지의 노예가 되어 괴물 골룸으로 변해버린다. 골룸은 특히 인간 본성의 추악하고 나약한 모습을 상징하는데, <왕의 귀환>에서는 반지의 사악한 힘과 자신의 본성 사이에서 끊임없이 분열하면서도 반지를 포기하지 못하는 모습을 처절하게 보여주며 결말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는다.
연약한 프로도가 반지를 파괴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은 것에서 보듯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들이 세상을 구한다는 것 역시 <반지의 제왕> 전체의 주제인데, 3편에서는 가냘프고 현명한 공주 에오윈(미란다 오토)이 숙부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마술사왕(로렌스 매코리)의 검과 철퇴에 맞서 싸우는 여전사로 변신하고, 어리버리하고 겁 많던 호빗 메리(도미닉 모나한)와 피핀(빌리 보이드)도 끔찍한 전쟁의 현장에서 자신들 안의 용기를 발견하게 된다. 프로도의 하인이며 여정의 동반자인 샘은 이번에는 거의 프로도를 능가하는 비중으로 등장하는데, 1편에서 보잘것없이 보였던 그는 점차 골룸과 반지의 유혹에 끊임없이 흔들리는 프로도를 격려하고 지키며 끝까지 임무에 충실한 순수한 영웅으로 변해 있다. 샘에 대해 원작자 톨킨은 “호빗 중의 보석”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는데, 영국 노동계급을 암시하는 캐릭터로 해석되곤 한다.
<반지원정대>부터 <왕의 귀환>까지 3편의 시리즈를 돌아본다면, 놀라운 것은 선과 악이 대결해서 선이 승리를 거둔다는 핵심 줄거리에 용기와 헌신, 희생, 우정, 사랑, 자유, 믿음 등 현대의 대중문화에서 거의 ‘구닥다리’ 취급을 받는 가치들이 낭만적으로 강조되는 이 이야기가 어떻게 젊은 세대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얻게 되었나 하는 점이다. 이미 <반지의 제왕> 1·2·3편이 잇따라 출판된 1954~55년 톨킨의 절친한 친구이자 동료 교수이며 <나니아 이야기> 등을 쓴 판타지 소설 작가였던 C. S. 루이스는 <반지의 제왕>에 대해 “거의 병적으로 낭만주의를 싫어하는 시대에 찬란하고 웅변적이고 당당한 영웅적 로맨스가 돌아왔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금까지 이 세상에서 쓰인 그 어떤 책도 저자가 ‘하위 창조작업’이라고 부르는 이 작품만큼 급진적이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1950년대 중반에 비해 ‘거의 병적으로 낭만주의를 싫어하는’ 경향은 더욱 강해지고 냉소와 감정의 거리두기가 가장 세련된 가치가 된 지금 사람들의 무의식에는 여전히 희생과 의리와 사랑과 믿음에 대한 애타는 목마름이 있는 것일까?
오래된 가치 복원… 기술문명을 생각한다
어쨌든 모든 현대적인 것과 기계적인 것을 혐오했으며, 1973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텔레비전도 보지 않았다는 톨킨의 <반지의 제왕>이 첨단기술과 컴퓨터 그래픽을 동원해 영화로 완성됐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반지의 제왕>에 톨킨의 현대 세계와 기술문명에 대한 분노, 1·2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유럽사회에 대한 비유, 기독교 신앙과 북유럽 신화에 대한 해석이 담겨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현대적인 삶의 파괴적인 특성에 반감을 느낀 톨킨은 고대 북유럽의 신화와 고대와 중세의 영문학 작품들에 빠져 살았으며, 현실과 멀리 떨어진 고대와 중세 유럽을 모델로 중간계를 만들어냈다. <반지의 제왕>을 보면서 기사와 요정들의 희생과 의리에 매혹되고 뛰어나고 현란한 화면과 기술에도 압도되는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중간계의 몰락으로 이어질 절대반지를 모르도르의 운명의 산 분화구에 던져넣어 파괴하기 위해 떠난 원정대의 고통스러운 여정은 당연히, 이 마지막 편 <왕의 귀환>에서 절정에 이른다. 아르곤(비고 모르텐슨), 간달프(이언 매컬런), 레골라스(올랜도 블룸), 김리(존 라이스 데이비스) 등 원정대는 점점 힘이 커지고 있는 악의 상징 사우론과 중간계의 쇠락해가는 인간 왕국인 곤도르를 무대로 마지막 일전을 앞두고 있다. 과거의 위대함은 사라진 채 명맥만을 유지해오던 곤도르 왕국의 섭정 데네도르(존 노블)은 두 아들의 죽음과 부상으로 미쳐가고, 6천명의 병력으로 곤도르의 수도 ‘미나스 티리스’로 밀려오는 사우론의 20만 대군과 맞서야 하는 반지원정대와 곤도르, 로한의 연합군에게서는 절망과 슬픔, 그러나 포기하지 않는 비장한 긴장이 느껴진다. 왕의 자격에 대해 고민하던 곤도르의 왕위 계승자 아라곤은 다시 만들어진 왕의 검 안두릴을 들고 ‘사자(死者)의 길’로 들어선다. 전편에 이어 극장을 찾은 관객들은 원작자 J. R. R 톨킨의 상상력에만 의존한 ‘초현실의 장대한 서사시’를 생생하게 그려낸 빼어난 화면과 기술에 압도된다. 북유럽의 신화와 유럽 고대언어에 정통한 언어학자였던 톨킨이 글로 써낸 상상 속 ‘중간계’(middle earth)를 살아 움직이는 생생한 화면으로 재현한 감독 피터 잭슨과 시각효과를 책임진 뉴질랜드의 웨타(WETA) 디지털의 솜씨는 이번에도 실망스럽지 않다. 마지막 전투에서 온 땅을 뒤흔들며 등장하는 코끼리 괴물 무마킬(올리파운트)과 나즈굴이 타고 다니는 익룡을 닮은 괴물, 으스스하게 다가오는 거미 괴물 쉴롭, 아라곤이 깨우는 죽은 자들의 군대 등이 1·2편보다 훨씬 강렬한 시각효과를 보여준다. 2부 <두개의 탑>의 처절한 헬름 협곡 전투장면에서는 1만명의 디지털 캐릭터가 활약했지만, 이번 펠렌노르 전투에서는 20만명의 디지털 캐릭터- 들판을 시커멓게 채운 오크와 트롤 군대- 가 등장한다. “이만한 규모의 전쟁신(scene)을 어떤 영화에서도 구경한 적이 없을 것이며, 앞으로도 볼 수 없을 것이다”라는 피터 잭슨의 큰소리가 헛소리는 아니다. 한번의 당김으로 상대에 다가가지 않고 죽이는 총이나 단추 하나를 눌러 수십만명을 죽이는 폭탄 없이 갑옷을 입고 칼이나 도끼를 손에 들고 달려드는 육박전의 이 처절한 세계에서는 ‘중세적’인 의리와 우정에 대한 ‘복고적인’ 매혹이 넘쳐 흐른다.

△ 악에 맞선 반지원정대는 승리할 수 있을까? 장대한 3부작 서사극의 마지막 편에서 주인공들은 사랑 · 희생 · 의리 · 정의를 위해 절정으로 나아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