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기억에 위대한 문명이 가려진 인도차이나 3국에 깊이 들어가는 역사문화 기행
‘월남파병’과 1975년 ‘인도차이나반도 공산화’로 떠들썩하던 반공교육의 시대가 정점을 지나면서 베트남은 한동안 <인도차이나>와 <연인> 같은 서구 영화에서나 보는 나라였다. 그러던 베트남은 1990년대 말부터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 풍광 좋은 여행지로 항공사의 광고에 등장하기도 하고, 베트남 음식이 최고의 유행음식이 됐으며, 베트남 파병의 어두운 기억을 반성하자는 목소리도 조금씩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3국의 어제와 오늘을 균형 잡힌 시각으로
<메콩의 슬픈 그림자, 인도차이나>(창비 펴냄)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베트남과 캄보디아, 라오스 등 인도차이나 3국을 제대로 만나고 이해하자고 제안하는 여행기다. 책을 쓴 유재현씨는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거쳐 인터넷 사업가로 살고 있으며 1992년에 등단한 소설가다. 1998년 우연히 떠났던 여행길에서 ‘인도차이나’에 반한 그는 지난 5년 동안 열번 넘게 그곳에 드나들었고, 1999년에는 회사를 다른 사람에게 맡겨두고 캄보디아에서 반년 동안 살기도 했다. 눈이 시리게 아름다운 바다와 찬란한 유적들, 환한 웃음을 짓는 사람들에 반하면서 한편으로는 “왜 이들은 이토록 오랫동안 이데올로기란 깃발을 들고 싸워왔단 말인가? 왜 폴포트는 이처럼 처참한 학살을 저질렀단 말인가? 앙코르와트란 문명과 킬링필드란 비극은 어떻게 이어지는가?…” 하는 물음들을 던지면서. 이 책에는 이 곳의 역사와 사람들에 단단히 매혹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섬세한 기록과 깊이 익혀낸 생각들이 담겨 있다.
그가 직접 인도차이나 세 나라의 곳곳을 찾아다니며 역사와 현재와 풍경과 사람을 엮어놓은 이 책에서 돋보이는 것은 어느 한쪽에 기울지 않고 최대한 균형 잡힌 시선으로 세심하게 바라보고 기록한 점이다. 빛나는 문명을 이룬 위대한 인도차이나, 제국주의의 수탈에 신음하던 비극적 인도차이나, 미국과 싸워 이긴 영웅적인 인도차이나, 대량학살과 가난을 겪은 불쌍한 인도차이나 등 어느 하나로 고정시키지 않고 그 모두를 껴안고 있는 인도차이나를 그려낸 셈이다. 전쟁과 가난, 질병과 폭력으로 힘겨웠던 인도차이나의 현대사와 제국주의 강대국의 횡포를 고발하지만, 미국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영웅적인’ 인도차이나라는 도식에도 매달리지 않는다.
메콩강 삼각주의 농민들이나 수상가옥의 사람들, 하노이 거리의 좌판에서 쌀국수를 먹는 사람들 등 그들의 일상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지만, 그는 이제는 부패해버린 뇌물 챙기기에 여념이 없는 베트남의 공산당 관료들과 인민들에게 공포의 존재인 경찰, 군인들에 대해서는 냉철한 비판을 내놓는다. “솔직히 나는 베트남 그 어딜 가도 눈앞에 어른거리는 저 붉은 깃발에 그만 질렸다. 어지간하면 미 제국주의와 싸워 승리한 위대한 혁명의 나라에서 혁명의 상징인 깃발에 숙연해질 만도 하건만 마음은 착잡하게 가라앉는다.” 그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의 진보주의자에게 일종의 금기였던 호치민에 대한 비판도 주저하지 않는다. 베트남 혁명을 성공으로 이끌고 이상적인 사회주의 지도자로 칭송받는 호치민이지만 인도차이나 공산당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캄보디아와 라오스 공산당 운동의 자주성을 인정하지 않았고 스탈린식의 비타협 노선을 앞세웠기 때문이다. 결국 통일 베트남의 군사 엘리트들은 라오스에 병력을 주둔시키고 ‘형제국’인 캄보디아를 1978년 무력으로 침공했다. 지은이는 “호치민 사후 그에 대한 베트남식 영웅화가 진행되면서 모든 과오가 묻혀버리고 재생산되었다”고 말한다. 80여년의 식민지 시대와 40여년의 전쟁이라는 고통의 역사를 헤쳐나온 인도차이나의 어느 한 구석도 전쟁의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네이팜탄으로 모든 것들이 불타고 사라졌던 들판에 풀과 나무가 다시 자라나 뒤덮고 있었지만 전쟁을 겪은 사람들과 사회에 남아 있는 상처는 지금도 손을 대면 신음소리가 새어나올 것 같았다.” 우리가 베트남에 대해서보다 더 무지한 캄보디아와 라오스에서도 상처는 참혹했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 벌어지던 1968∼73년 베트콩의 보급로를 차단하기 위한 미군의 무차별적 폭격으로 80만명에 이르는 캄보디아인이 목숨을 잃었으며, 토지는 폭탄으로 황폐화되었다. 물론 우리에게 ‘킬링필드’로 알려진 폴포트 정권 아래서의 고문과 학살도 있었지만, ‘공산주의자들의 학살’로 전세계에 널리 선전된 이 학살 이전에 더 많은 사람들이 미군에 의해 죽었다는 것은 오랫동안 잊혀져왔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그는 또 내전과 외침의 복잡한 현대사를 한번 매듭지었던 1991년의 파리평화협정 이후, 평화로운 선거를 감독한다며 유엔이 만들어낸 유엔 캄보디아 과도정부가 제대로 총선을 관리하지 못한 상태에서, 서구인들을 상대로 한 매춘과 마약 판매만 급속히 번져버린 프놈펜의 풍경을 씁쓸히 전해준다. 베트남보다 참혹했던 캄보디아와 라오스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가장 느리고 조용하고 소박하다는 평가를 받는 라오스는 공산주의 국가이면서도 불교의 나라다. 자원도 별로 없는 산악지대에서 100여개 민족이 함께 살아온 이 나라는 별다른 민족분쟁 없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미중앙정보국(CIA)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아편과 헤로인의 재배와 밀수라는 사회적 문제를 안고 있기는 하지만, 별로 모나지 않게 살아가는 라오스 사람들과 수도 위엥찬(비엔티안)의 한적한 모습, 미군의 군수물자 시멘트를 이용해 지은 항불독립운동 기념탑 ‘승리문’ 등을 만날 수 있다. 물론 이 책이 전쟁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화교를 억압한 양상이 우리와 너무도 유사해 남의 얘기 같지 않은, 이제는 차이나 골목이라 불러야 할 정도로 쇠락한 베트남 미토의 차이나타운 이야기, 호치민의 팜응우라오 골목에서 서양의 모든 명화들을 ‘팜응우라오식’으로 그리는 키치화가, 북베트남과 남베트남 사이의 묘한 감정, 정교한 석조 구조물과 사원으로 가득한 앙코르와트를 둘러싼 1천년 전 앙코르 왕조의 역사, 캄보디아 서북부에서 만난 소수민족 카렌족 병사, 한글로 ‘아름다운 평양 처녀들’이라고 써 있는 앙코르와트 근처 북한음식점 ‘평양랭면’에서 느끼는 비애감 등 다양한 사람과 풍경들이 170여장의 사진과 함께 펼쳐진다.

▷ <메콩의 슬픈 그림자, 인도차이나>, 유재현 지음, 창비 펴냄
메콩강 삼각주의 농민들이나 수상가옥의 사람들, 하노이 거리의 좌판에서 쌀국수를 먹는 사람들 등 그들의 일상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지만, 그는 이제는 부패해버린 뇌물 챙기기에 여념이 없는 베트남의 공산당 관료들과 인민들에게 공포의 존재인 경찰, 군인들에 대해서는 냉철한 비판을 내놓는다. “솔직히 나는 베트남 그 어딜 가도 눈앞에 어른거리는 저 붉은 깃발에 그만 질렸다. 어지간하면 미 제국주의와 싸워 승리한 위대한 혁명의 나라에서 혁명의 상징인 깃발에 숙연해질 만도 하건만 마음은 착잡하게 가라앉는다.” 그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의 진보주의자에게 일종의 금기였던 호치민에 대한 비판도 주저하지 않는다. 베트남 혁명을 성공으로 이끌고 이상적인 사회주의 지도자로 칭송받는 호치민이지만 인도차이나 공산당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캄보디아와 라오스 공산당 운동의 자주성을 인정하지 않았고 스탈린식의 비타협 노선을 앞세웠기 때문이다. 결국 통일 베트남의 군사 엘리트들은 라오스에 병력을 주둔시키고 ‘형제국’인 캄보디아를 1978년 무력으로 침공했다. 지은이는 “호치민 사후 그에 대한 베트남식 영웅화가 진행되면서 모든 과오가 묻혀버리고 재생산되었다”고 말한다. 80여년의 식민지 시대와 40여년의 전쟁이라는 고통의 역사를 헤쳐나온 인도차이나의 어느 한 구석도 전쟁의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네이팜탄으로 모든 것들이 불타고 사라졌던 들판에 풀과 나무가 다시 자라나 뒤덮고 있었지만 전쟁을 겪은 사람들과 사회에 남아 있는 상처는 지금도 손을 대면 신음소리가 새어나올 것 같았다.” 우리가 베트남에 대해서보다 더 무지한 캄보디아와 라오스에서도 상처는 참혹했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 벌어지던 1968∼73년 베트콩의 보급로를 차단하기 위한 미군의 무차별적 폭격으로 80만명에 이르는 캄보디아인이 목숨을 잃었으며, 토지는 폭탄으로 황폐화되었다. 물론 우리에게 ‘킬링필드’로 알려진 폴포트 정권 아래서의 고문과 학살도 있었지만, ‘공산주의자들의 학살’로 전세계에 널리 선전된 이 학살 이전에 더 많은 사람들이 미군에 의해 죽었다는 것은 오랫동안 잊혀져왔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그는 또 내전과 외침의 복잡한 현대사를 한번 매듭지었던 1991년의 파리평화협정 이후, 평화로운 선거를 감독한다며 유엔이 만들어낸 유엔 캄보디아 과도정부가 제대로 총선을 관리하지 못한 상태에서, 서구인들을 상대로 한 매춘과 마약 판매만 급속히 번져버린 프놈펜의 풍경을 씁쓸히 전해준다. 베트남보다 참혹했던 캄보디아와 라오스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가장 느리고 조용하고 소박하다는 평가를 받는 라오스는 공산주의 국가이면서도 불교의 나라다. 자원도 별로 없는 산악지대에서 100여개 민족이 함께 살아온 이 나라는 별다른 민족분쟁 없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미중앙정보국(CIA)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아편과 헤로인의 재배와 밀수라는 사회적 문제를 안고 있기는 하지만, 별로 모나지 않게 살아가는 라오스 사람들과 수도 위엥찬(비엔티안)의 한적한 모습, 미군의 군수물자 시멘트를 이용해 지은 항불독립운동 기념탑 ‘승리문’ 등을 만날 수 있다. 물론 이 책이 전쟁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화교를 억압한 양상이 우리와 너무도 유사해 남의 얘기 같지 않은, 이제는 차이나 골목이라 불러야 할 정도로 쇠락한 베트남 미토의 차이나타운 이야기, 호치민의 팜응우라오 골목에서 서양의 모든 명화들을 ‘팜응우라오식’으로 그리는 키치화가, 북베트남과 남베트남 사이의 묘한 감정, 정교한 석조 구조물과 사원으로 가득한 앙코르와트를 둘러싼 1천년 전 앙코르 왕조의 역사, 캄보디아 서북부에서 만난 소수민족 카렌족 병사, 한글로 ‘아름다운 평양 처녀들’이라고 써 있는 앙코르와트 근처 북한음식점 ‘평양랭면’에서 느끼는 비애감 등 다양한 사람과 풍경들이 170여장의 사진과 함께 펼쳐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