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길라잡이 | 사람이란 무엇인가 5]
자유의 이중성 여러 가치 중에서 ‘자유’만큼 높은 점수를 받는 것도 드물 거야.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자고. 저마다 언론의 자유를 말하지만, 정작 ‘자기 말’을 하는 사람은 참 드물어. 저마다 종교의 자유를 말하지만, 모두들 직접 재어보지도 않은 채 ‘물은 100℃에서 끓는다’는 과학적 진리를 교리처럼 받아들여. 저마다 상품 구매의 자유를 누린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그들의 소비 행태는 광고에 따르고 있어. 결국 법적·형식적으로는 자유를 누리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어떤 큰 힘에 구속돼 있다는 결론이 나와. ‘형식적 자유, 실질적 구속’인 거지.
자유로부터의 도피 문제가 심각한 건 현대인들이 어떤 거대한 힘에 ‘기꺼이’ 복종한다는 데 있어. 그러면서도 자기가 자유롭다고 착각해. 에리히 프롬은 이를 일컬어 ‘자유로부터의 도피’라고 해. 그토록 피땀 흘려 이룩한 자유를 버리고 어떤 거대한 힘 밑으로 기어들어가 버렸다는 거야. 자유라는 것, 이것만큼 매력적이면서도 부담스러운 게 없어. 자유란 ‘무언가로부터 벗어남’이라는 소극적 의미뿐만 아니라, ‘무엇을 향해 스스로 나아감’이라는 적극적 의미까지 포함하는 거야. 그런데 우리는 소극적 의미의 자유만 생각하지, 스스로 어딘가로 나아간다는 적극적 의미는 잘 생각하지 못해. 아니, 그건 무척 힘든 거야. 어딘가로 홀로 나아가려고 하면 불안해. 특히 오늘처럼 ‘시장’이라는 거대한 틀 속에서 홀로 어딘가로 나아가면 꼭 낙오자가 되는 것 같거든. 그래서 현대인들은 어느새 스스로를 거대한 틀, 현대판 유일신, 곧 물신(物神)에게 자기를 맡겨버렸다는 거야. 자유를 위한 조건 1 여기서 자유를 위한 조건 하나가 나와. 그건 나도 모르게 내가 복종하고 있는 거대한 틀을 발견하는 거야. 그리고 그것에 질문을 던지고, 나아가 그것을 벗어나기 위한 실천을 하는 거지. 그게 대학이든, 시장이든, 여론이든, 특정 이념이든 간에 일단 한번 걸고넘어지는 것이 필요해. 그렇게 하면 자칫 ‘이방인’이 되기 쉬워. 그래서 자유는 위험한 거야. 그러나 이 위험을 두려워해서는 언제까지나 ‘자유롭다고 착각하는 노예’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고. 물론 이게 전부는 아냐. 제2, 제3의 조건이 있겠지?
| 송두율 사건에 부치는 의문 몇주 전 신문에 ‘송 교수, 아직도 김일성 주석 존경해’라는 머리기사가 큼직하게 실렸더라고. 몇몇 신문들은 마치 큰 건수나 올린 듯이 떠들어대더군. 그때 내 머릿속에 스치고 지나가는 의문 하나. “그게 왜 문제지?” 의문은 차츰 커져서 이윽고는 “왜 많은 사람들이 이걸 문제라고 생각하는 걸까?”라는 데까지 가더라고. 사람들은 저마다 ‘양심의 자유’를 말해. 저마다 자기 양심에 따라 자기 신념을 가지고 그걸 말할 자유와 권리가 있다는 거지. 그런데 이 자유가 왜 송 교수에겐 허용되지 않는 걸까 그러기는커녕 왜 특정인의 신념에 법의 잣대를 디밀고 함부로 재단하는 걸까? 이런 말을 하면 또 이런 질문이 이어지지. “그럼, 넌 송 교수에 동조하는 거냐?” |
자유의 이중성 여러 가치 중에서 ‘자유’만큼 높은 점수를 받는 것도 드물 거야.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자고. 저마다 언론의 자유를 말하지만, 정작 ‘자기 말’을 하는 사람은 참 드물어. 저마다 종교의 자유를 말하지만, 모두들 직접 재어보지도 않은 채 ‘물은 100℃에서 끓는다’는 과학적 진리를 교리처럼 받아들여. 저마다 상품 구매의 자유를 누린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그들의 소비 행태는 광고에 따르고 있어. 결국 법적·형식적으로는 자유를 누리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어떤 큰 힘에 구속돼 있다는 결론이 나와. ‘형식적 자유, 실질적 구속’인 거지.
자유로부터의 도피 문제가 심각한 건 현대인들이 어떤 거대한 힘에 ‘기꺼이’ 복종한다는 데 있어. 그러면서도 자기가 자유롭다고 착각해. 에리히 프롬은 이를 일컬어 ‘자유로부터의 도피’라고 해. 그토록 피땀 흘려 이룩한 자유를 버리고 어떤 거대한 힘 밑으로 기어들어가 버렸다는 거야. 자유라는 것, 이것만큼 매력적이면서도 부담스러운 게 없어. 자유란 ‘무언가로부터 벗어남’이라는 소극적 의미뿐만 아니라, ‘무엇을 향해 스스로 나아감’이라는 적극적 의미까지 포함하는 거야. 그런데 우리는 소극적 의미의 자유만 생각하지, 스스로 어딘가로 나아간다는 적극적 의미는 잘 생각하지 못해. 아니, 그건 무척 힘든 거야. 어딘가로 홀로 나아가려고 하면 불안해. 특히 오늘처럼 ‘시장’이라는 거대한 틀 속에서 홀로 어딘가로 나아가면 꼭 낙오자가 되는 것 같거든. 그래서 현대인들은 어느새 스스로를 거대한 틀, 현대판 유일신, 곧 물신(物神)에게 자기를 맡겨버렸다는 거야. 자유를 위한 조건 1 여기서 자유를 위한 조건 하나가 나와. 그건 나도 모르게 내가 복종하고 있는 거대한 틀을 발견하는 거야. 그리고 그것에 질문을 던지고, 나아가 그것을 벗어나기 위한 실천을 하는 거지. 그게 대학이든, 시장이든, 여론이든, 특정 이념이든 간에 일단 한번 걸고넘어지는 것이 필요해. 그렇게 하면 자칫 ‘이방인’이 되기 쉬워. 그래서 자유는 위험한 거야. 그러나 이 위험을 두려워해서는 언제까지나 ‘자유롭다고 착각하는 노예’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고. 물론 이게 전부는 아냐. 제2, 제3의 조건이 있겠지?

우한기 | 광주 플라톤 아카데미 논술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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