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혜니?”
“….”
“여성의 전화야.”
“알아요.”
“잘 지내지?”
“네, 좋아요.”
비로소 웃음기 머금은 민혜(가명)의 목소리가 전화선을 탄다.
내일모레 행사 준비한다며 펼쳐놓은 수첩에서 발견한 민혜 전화번호에 더럭 전화는 걸었지만 잘 있다는 대답을 듣고 보니 더 할 말도 없다. “친구들과 잘 지내고 엄마에게도 안부전화 자주 해라”는 당부 멘트로 끊을밖에….
2년 전 안면 튼 뒤로 민혜는 길거리 어디에서고 만나면 “선생님”하며 덜컥 안아 보조개까지 날려주는 아이였다. 또다시 어려움에 처해 생전 처음 엄마와 떨어져 걱정했드랬는데 초반 경계의 흔적만 빼면 목소리가 밝다.
청소일을 하시는 엄마와 오빠가 가족의 전부인 민혜는 실업계 고등학교 3학년이다.
몇년 전 상담과정에서 정신감정을 의뢰한 우리는 결과를 믿을 수 없었다. 함께 검사받았던 엄마의 3급 판정은 예상한 터였지만 일반 아이와 다를 바 없어 보이던 아이가 정신지체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아직도 믿기지 않던 아이의 아이큐 수치가 어른거린다.
하나밖에 없는 오빠는 정신지체 1급으로 이미 오래 전부터 정신병원을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이들 모녀를 만나면서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실수가 안타까워 맘먹고 혼내고 나면 마음이 어찌도 짠해지던지….
한없이 사회적 보호가 필요한 가족인데 보호막은커녕 ‘외따로 떠 있는 섬’ 같다.
일찍 돌아가신 아빠쪽 가족으로부터 이미 외면당한 지 오래이고 짱짱하게 산다는 외가쪽으로부터도 구박덩이에, 떨구고 싶은 존재인 듯싶다.
둘이 의지하며 모녀가 친구처럼 사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는데 졸업을 앞둔 민혜와 엄마의 토닥거림이 심해지더니 결국 모녀가 떨어져 생활한 지 보름쯤 된다.
“난디라우 거시기 잠 바꽈주씨요”라며 느닷없이 ‘거시기’가 되어버린 내게 앞뒷말 자르고 자기 이야기만 하고 얼른 전화를 끊어버리는 민혜 엄마.
남자들 우글거리는 직장에서 일하다 보니 여자 혼자라고 성희롱은 예사이고 막말까지 대거리하려니 힘이 든다고 한번씩 푸념하는 민혜 엄마에게 우리가 해줄 일이 왜 이리 적은지.
회사 사장에게 항의하고 성교육 하는 일 외에 일상적으로 모녀를 도와줄 방법이 마땅찮아 볼 때마다 마음 무거울 따름이다.
“직장 띠이면 어쩌게라우”라며 이렇게 저렇게 해보자는 나의 의견을 번번이 무산시키는 민혜 엄마.
“쓰러져가도 내 집 있응께 여그서 살라요. 가긴 어딜 간다요”라며 직장일 끝나면 집안 퉁수 되어버리는 민혜 엄마에게 딸 없는 겨울은 어떤 색일까?
“언제 올 거야?”
“1월부터 기술 배워야지요. 안 가요”
야무진 계획을 세운 민혜의 겨울은 그래도 희망을 품은 것 같아 마음 한 자락이나마 놓인다.
이태옥 | 영광 여성의 전화 사무국장

일러스트레이션 | 경연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