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의 기원은 인류의 역사보다 훨씬 오래되었다. 지구상에 나타난 생물체가 처음 등장했던 시기부터 질병은 시작됐다. 고고학적 발굴이나 의사학적 자료에 따르면 질병의 형태가 수백만년 동안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놀랍다. 약 50만년 전 인류가 유인원의 암흑 상태에서 출현한 이래 인간은 늘 질병에 희생돼왔다. 질병에서 해방되려는 인간의 노력은 인간의 역사와 더불어 시작됐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원시 미개인들은 다수의 질병이 노여움을 산 악령이나 악마 혹은 신들이 보낸 것이라 믿었다. 실제로 고대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멕시코, 페루 등에서 의학은 종교에 집중되기도 했다. 이들은 질병을 불결한 상태를 야기한 죄에 대한 처벌이라고 여겼다. 고대 문명이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하천 계곡에서 발생한 동양 문명은 그 지식체계를 자연철학에 두고 있다.
1340년대 후반 페스트에 의한 사망자 수는 전 세계적으로 6천만명에서 7천만명 정도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페스트(흑사병), 나병(한센병), 매독, 폐결핵, 장티푸스(염병), 호열자(콜레라), 홍역, 백일해, 뇌염, 천연두, 소아마비, 디프테리아, 발진티프스 등은 하나같이 인류를 공포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넣었던 전염병들이다. 이런 병들은 “전혀 고칠 길이 없는 불치병”이거나 “고치기가 매우 어려운 난치병”으로 간주되었다.
1940년대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수명이 고작 45살에 불과했다. 이렇게 수명이 낮았던 가장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전염병의 창궐이었다. 근대에 이르러 사망률이 줄어든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집약해서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전염병의 퇴치와 수술법의 발달이다. 그러나 아직도 현대인들이 가장 두렵게 생각하는 대상은 암과 뇌혈관 질환과 에이즈라 할 수 있다.
역사 속에 인류와 함께 존재했던 질병의 발자취를 더듬어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질병은 문명이나 사회에 의해 창조되는 경향이 있으며 질병의 모습은 시대에 따라 달라져왔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에 걸친 학자들의 연구와 분석에 의해 질병의 원인과 특성도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른다면 불치병과 난치병도 언젠가는 극복되고 퇴치될 것이다. 지난날 우리들의 역사는 “영원한 불치병이란 없다”라는 교훈을 주었으며 “오늘날의 난치병도 언젠가는 극복되고야 말 것이다”라는 확신을 주기에 충분하다. 다만 난치병 극복의 시기는 인류 전체의 관심과 노력에 따라 좌우된다는 사실도 아울러 기억해야 한다.
전세일 | 포천중문의대 대체의학대학원 원장

일러스트레이션 | 방기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