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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한국축구 승장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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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1-0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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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감독들의 서글픈 투혼… ‘아시아 맹주’의 자존심은 누가 회복하나

(사진/한국축구의 월드컵 도전사에서 최고의 공격수 출신의 감독은 저조한 성적을 거두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이회택,김호,허정무,차범근 감독)

팔짱을 끼는 사람, 뒷짐을 지는 사람, 의자에 깊숙이 앉는 사람, 이리저리 서성거리는 사람. 야전사령관인 운동경기의 감독들은 폼도 제각각이지만 표정 역시 다양하다. 그러나 용만 쓸 뿐이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이래라저래라 지시를 할 수는 있지만 직접 나설 수 없고 선수가 그 지시를 혹 따르지 않거나 못하더라도 어찌 할 도리가 없다.

영화나 드라마 감독은 배우의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교정을 하고 다시 찍을 수 있지만 운동경기는 ‘각본없는 생방송’. 다시라는 것이 없으니 감독이 현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결코 많지 않다. 야구나 미식축구 등 생각할 시간이 있고 경기가 끊어졌다 이어지는 운동은 그래도 감독의 몫이 따로 있다. 상황에 따라 작전을 걸 수 있고 성공여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축구는 쉼없이 이어지는 경기여서 감독이 개입할 여지가 별로 없다. 그래서 축구감독은 팀 중심에 깊숙이 있으면서도 그라운드에서 국외자처럼 겉돌게 된다.

1승에 한맺혔던 월드컵 도전사의 감독들


뛰는 것은 선수고 직접 가르치는 것은 코치이며 이기면 선수 덕이다. 그런데도 지면 그 책임이 고스란히 감독에게 돌아간다. 때문에 늘 월드컵 등 큰 국제대회는 ‘감독들의 무덤’이 되며 몇몇 감독은 “감독은 파리 목숨”이라고 투덜댄다. 하지만 목표만큼의 성과를 올리지 못했을 때 잘리는 것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을 수는 없다. 감독은 선수를 뽑고 키우며 움직이는 사령탑이고 사기를 좌지우지하는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같은 힘의 병사를 이끌고도 어떤 장수는 이기고 어떤 장수는 대패하니 감독의 용병, 전술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감독은 결과에 따라 책임을 져야 한다. 아직 제대로 된 성공을 거두지 못한 한국축구는 그래서 올림픽이나 월드컵이 끝나면 연례행사처럼 감독을 바꾸었고 때문에 이제 더이상 교체할 감독감도 없는 형편이다. 하지만 지내놓고 생각해보면 적임자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1승에 한맺힌 월드컵 도전사를 되돌아보면 정답이 나온다. 86년 멕시코 월드컵. 32년 만에 본선에 오른 한국 월드컵호의 선장은 김정남. 그는 어지러운 말이나 행동보다는 머리를 쓰는 축구를 했다. 매우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으나 어느 정도의 바람을 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에 한골도 뽑지 못하고 0-2로 졌으나 이탈리아와는 2-3의 엇비슷한 경기를 했으며 불가리아와는 1-1로 비겼다. 김정남 감독은 1승의 염원을 풀지는 못했지만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가능하리라는 희망을 던졌다.

90년 이탈리아 월드컵. 1승의 희망이 매우 높았다. 지난 대회 성적을 감안하면 이기지 못할 것도 없었다. 더욱이 감독은 선수 시절 ‘아시아의 호랑이’로 용맹을 휘날렸던 이회택. 그는 적은 몰랐지만 자신을 믿었다. 좌충우돌 부딪치고 돌파하다보면 1승을 올릴 수 있다고 했고 모두들 그 말을 믿고 기대했다. 하지만 그의 전략도 용병술도 없는 ‘한국식 축구’는 겨우 한골을 넣었을 뿐 3전 전패했다. 전 대회보다 훨씬 후퇴한 내용이었고 풍운아 이회택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94년 미국 월드컵. 김호는 일부 언론의 비난 속에서도 선전했다. 전 대회에서 1-3으로 졌던 스페인과 2-2로 비겼으며 볼리비아와도 0-0의 대등한 승부를 벌였다. 막강 독일에 먼저 3점을 내주고도 2점을 따라붙어 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비록 졌지만 내용있는 축구를 했다. 여전히 1승의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1승의 불씨를 다시 지폈다.

98년 프랑스 월드컵. 차범근은 1승과 16강을 어느 정도 자신했다. 치밀한 작전으로 탄탄대로를 달렸던 지역 예선전. 그에게 거는 기대는 어느 때보다 컸다. 막무가내 식의 축구가 아니라 생각하는 축구를 구사했고 전략 전술에 의한 조직적 축구였기에 적어도 2무1패보다 나은 성적을 거둘 것 같았다. 그러나 멕시코에 1-3, 네덜란드에 0-5. 투지도 전술도 없는 차범근 축구는 급기야 ‘현지 해임’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했다. 차범근 없이 싸운 벨기에전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상대적이긴 하지만 두번은 실패했으나 두번은 성공한 셈이었다. 그 실패와 성공 사이엔 어떤 비밀이 숨어 있는 것인가. 김정남, 김호는 선수 시절 철벽을 자랑했던 수비수이고, 이회택, 차범근은 스트라이커 자리를 주고받은 최전방 공격수이다. 감독이 된 것도 수비수 출신이 실패하면 공격수 출신을 기용했고, 공격수 출신이 실패하면 수비수 출신을 번갈아 기용했기 때문이다.

수비수 출신의 선전과 공격수 출신의 전패

(사진/일본축구를 한 단계 끌어올린 것으로 평가받는 트루시에 감독)
수비수 출신은 비교적 성공한 편이었으나 공격수 출신 감독은 전패했다. 골을 넣은 것이나 골을 먹은 것 등 모든 면에서 최고의 공격수들이 최고의 수비수를 따라가지 못했다. 김호, 김정남은 수비에 치중했고 이회택, 차범근은 공격에 치중했기 때문일까.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공격에 치중하겠다고 했던 이회택, 차범근은 5게임에서 2골밖에 넣지 못했으나 김정남, 김호는 6게임에서 7골을 넣었다. 선수 시절 맡은 포지션의 기술과는 관계없음을 입증하는 증거다.

공격수들은 그러면 왜 실패했는가. 공격수는 그라운드를 넓게 보지 못하는 편이다. 상대방의 골키퍼와 수비수 몇명을 볼 뿐이다. 수비수는 최후방에서 전체 그라운드를 본다. 선수 시절엔 각자의 역할만 잘하면 문제가 없었지만 지도자가 되자 시야의 넓고 좁음이 크게 차이가 난 것이다. 야구에서 투수보다는 포수가 많은 정보를 가지고 넓게 보는 것과 비슷한 이치겠다.

흔히 우리는 감독의 스타일을 구분할 때 덕장이니 지장이니 용장이니 하는 말을 쓴다. 하지만 감독 중 가중 뛰어난 감독은 승장이다. 패장이 되고 나면 지덕체는 무용지물이 되며 승장이 되면 다 덕장이고 지장이고 용장이다. 지, 덕, 체는 그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승리를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같은 멤버라도 감독이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지는데 재일야구인 장훈씨는 ‘선수의 능력과 컨디션 파악’을 감독의 제1의 능력으로 꼽았다. 감독은 굳이 용감할 필요까지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덕성이나 실력으로 선수들을 철저하게 승복시켜야 한다. 그래야 선수들이 믿고 따르며 기대 이상으로 선전할 수 있다. 어느 스포츠계 인사가 말했듯 정말 뛰어난 감독은 평소에 모든 것을 다 만들어놓고 경기 땐 할 일이 없어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조는 사람이다.

졸고 있어도 선수들이 알아서 이기는 경기를 할 수 있는 감독이라야 한국의 2002 월드컵을 제대로 이끌 수 있고 공동 개최국인 일본보다 나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금 국내엔 그만한 감독감이 보이지 않는다. 길게 보지 않고 틈만 나면 목을 친 탓도 크지만 넓은 시야로 앞선 축구를 접목시키기엔 걸어 온 길들이 너무 좁다. 허정무 감독도 국내 감독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올림픽, 아시아 선수권대회의 결과도 만족스럽지 못했지만 팬들이 더 걱정하는 것은 한국축구의 내용이다. 저력이 있어 어찌어찌 골은 잡았지만 전술이나 개인기가 전혀 세련되지 못했다.

우리에게 능력과 비전이 없다면…

(사진/축구 종주국인 영국의 대표팀 감독으로 뽑힌 스웨덴 출신의 스벤 고란 에릭손 감독)
축구 종주국인 영국이 시끄럽다. 협회가 스웨덴 출신 외국인 감독을 영입했기 때문이다. 영국의 축구영웅 보비 찰든경은 협회가 영국의 자존심을 완전히 구겼다며 흥분하고 있다. 그러나 협회는 단호하다. 영국축구의 자존심은 2002년 월드컵에서 우수한 성적을 올리는 것이지 영국인 감독을 기용하는 것이 아니라며 뜻을 꺾지 않고 있다. 한국인 감독으로 2002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른다면 더없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선진 축구를 따라잡을 능력과 비전을 제시 할 인물이 쉽지 않으니 아무래도 ‘용병 감독’을 써야 할 것 같다. 지금은 기분나쁠지라도 그것이 1년8개월 뒤 웃을 수 있는 비결일 듯싶다. 일본축구가 급격히 성장해 아시아의 맹주로 자리잡은 데는 축구협회의 장기적인 계획과 선수 개인기의 발전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트루시에’ 감독의 기여를 들지 않을 수 없다. 조국 남아공을 월드컵 16강에 올려 놓은 경험이 있는 트루시에 감독이 일본 대표팀을 맡은 뒤 일본축구의 성적표는 급격히 향상됐다. 우리가 ‘아시아 맹주’의 자존심을 앞세우며 국내 감독에 집착하는 사이, 일본축구는 외국인 감독을 통해 선진 축구 전술을 섭렵해왔다. 조급증과 주먹구구식의 우격다짐만 고집하지 않았다면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축구발전을 도모한 일본에 아시아의 맹주 자리를 내주는 처량한 신세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영만/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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