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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기회균등에 대한 모독/ 한효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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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12-0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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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와 함께하는 예컨대 | 기여입학제, 어떻게 볼 것인가]

한효명/ 서울 서문여고 3학년

사회적 쟁점에 대한 개인의 입장을 정리할 때, 고려할 수 있는 사항은 상반된 입장에 내재된 가치문제와 그 쟁점이 대두된 배경일 것이다. 기여입학제에 대한 논란도 그 이면의 가치갈등과 사회적 맥락을 고려한다면, 문제 해결에 대한 이성적 접근이 가능할 것이다.

기여입학제는 크게 비물질적 기여입학과 물질적 기여입학으로 나눌 수 있다. 현재 논쟁이 되고 있는 것은 물질적 기여입학제이다. 물질적 기여입학제(이하 기여입학제)를 찬성하는 쪽은 국내 사립 대학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대학교육재정을 확보해야 하며 이는 기여입학제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논리를 편다. 또한 기여입학제를 통해 확보된 자금은 장학금 등의 목적으로 사용되기에 그 혜택은 다른 학생에게 돌아간다고 주장한다. 동시에 미국대학을 기여입학제 실시의 모범사례로 들어 기여입학제를 옹호한다. 기여입학제 찬성론자의 근거는 일견 타당해 보이나 몇 가지 사항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일러스트레이션 | 황은아
첫째, 교육문제가 과연 자본주의적 논리, 즉 효율성의 가치로 재단할 수 있는가. 대학은 기업이 아니다. 오히려 대학교육은 국가 정책의 일부로서 고려돼야 한다. 대학의 국제경쟁력 강화가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은 분명하나, 우리는 또 다른 차원, 즉 형평성을 고려해야 한다. 학벌주의가 엄연히 존재하는 한국 사회에서 한 개인의 출신 대학은 그 사람이 획득할 부와 권력의 양을 결정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 입학 기회가 개인이 지닌 지위와 부에 좌우되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균등하게 제공되는 것은, 사회계층 이동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 기여입학제를 허용한다면 부와 권력의 세습과 그로 인한 사회적 위화감을 유발할 것이다. 또한 계층이동 기회의 제한은 사람들의 유인동기를 감소시켜, 국가적인 측면에선 효율성마저 저해할 것이다. 기여입학제를 실시하고자 한다면 학벌주의가 타파되거나 적어도 완화되어야 한다.


둘째, 기여입학제는 대학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꼭 필요한가. 대학의 충분한 재정은 대학의 경쟁력 강화에 긍정적일 것이나, 이를 도입했을 때 몇몇 명문대에만 기부금이 집중돼 기존의 대학 서열화가 심화될 우려가 있다. 또한 대학들이 기여입학제의 근거로 내세우는 대학 재정의 부족에도 의문이 생긴다. ㄱ대학 총학생회는 기여입학 반대를 주장하며, 그 근거로 대학의 재정이 흑자임을 들었다. 대학은 예산 중 일부를 적립금의 형태로 모아두는데 이는 건물을 건설하는 데 이용되고 있고, 이들 건물은 학교법인의 재산이 될 뿐, 직접적으로 교육의 질을 높이는 데 도움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국내 유명 사립대학의 누적 이월금이 상당하다는 자료도 있으므로, 대학의 재정이 열악하다는 것은 적어도 기여입학제를 주로 주장하고 있는 명문 사립대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설사 재정이 열악하다고 해도 기여입학제가 재정 확보의 유일한 수단은 아니므로, 대학이 다른 수단을 강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셋째, 한국의 사회적 상황이 기여입학제에 적합한가. 앞에서 언급했듯이 교육의 기회평등은 개방적 사회체계를 유지하기 위한 마지막 보루이다. 더군다나 우리나라는 부에 대해 부정적 인식이 강하다. 부의 부정적 인식에는 청빈한 삶을 강조하는 유교의 영향도 크지만, 무엇보다 부가 부정한 수단을 통해 이뤄졌다는 인식과 소위 ‘있는 자’들의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신의 미약에 원인이 있다. 부의 정당성이 인정되지 않은 사회에서 국민이 기여입학제에 거부감을 보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기부입학제의 찬성쪽이 모범 사례로 제시하는 미국의 경우 부의 정당성이 강한 편이고 있는 자의 기부문화도 발달되어 있으므로, 한국과 대등한 비교상대가 될 수 없다.

롤스는 실질적 기회 균등을 보장하는 동시에 자연적 불평등의 결과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조정하는 사회, 즉 민주적 평등체제를 꿈꿨다. 민주적 평등체제는 평등에 관해 민주주의 사회가 추구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체계일 것이다. 우리 나라 헌법은 이보다 한 단계 낮은 평등, 실질적 기회균등만을 보장하여 사회적 우연성만을 배제하고 있다. 그런데 기여입학제는 실질적 기회균등마저 부정하고 있다. 무엇보다 기여입학제가 허용되지 말아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 한효명/ 서울 서문여고 3학년

[ 칭찬과 아쉬움 ]

‘기여입학제’에 대한 찬반을 묻는 논술에서 ‘기본’에 충실한 글을 예컨대로 뽑았다. 서울 서문여고 한효명 학생의 글은 논술의 모범답안 같은 글이다. 무엇보다 논리의 흐름이 자연스럽다. 서론·본론·결론이 탄탄한 논리와 적절한 분량으로 연결돼 있다. 그의 글은 한번만 읽으면 주장하는 요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한효명 학생의 또 다른 장점은 글 주제에 충실했다는 점이다. 무리하게 다른 사회환경과 외부 논리를 끌어들이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기여입학제의 논리 안에서 풀어갔다. 말하자면 ‘내재적 비판’인 셈이다. 내재적 비판은 그 주제에 대한 촘촘한 지식과 다층적인 사유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외재적 비판보다 어렵다.

그는 우선 기여입학제 찬성론자의 논리를 ‘간단하게’ 요약한 뒤, 이를 조목조목 비판하는 방식으로 글을 풀어갔다. 그의 논리가 평범한 수준을 넘어서는 이유는 기여입학제의 한계를 국가의 ‘효율성’까지 연결하고, 실제 상당수 대학에서 현재도 흑자재정을 운영하고 있는 점 등 구체적 사실을 지적한 점이다. 결론에서 ‘실질적 기회균등’이라는 핵심어를 통해 기여입학제 반대 논리를 간결하게 정리한 점도 인상적이다. 다만, 자신의 주장을 ‘첫째, 둘째, 셋째’와 같은 말을 내세워 정리하는 방식은 자칫 기계적이라는 느낌을 줄 수 있다. 논술글이라도 다양한 표현법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이에 비해 예산고 이찬우 학생의 글은 ‘거시적’ 관점에서 논지를 풀어갔다. 기여입학제를 대학의 시장종속 문제로 본 것이다. 이를 위해 ‘신자유주의’라는 사회환경을 끌어온다. 그는 기부금 입학을 신자유주의 열풍에 영향받아 학문이 시장에 종속되는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본문에서는 언론을 예로 들어 시장종속의 위험성을 지적한다. 공익성을 가져야 할 신문이 시장에 종속되면서 논조의 왜곡을 가져왔듯이, 대학의 시장종속도 학문탐구라는 본래의 기능을 잃고 이윤추구로 귀결될 것이라는 우려다.

이찬우 학생의 글은 다양한 담론을 논술에서 소화하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논지를 응축시킨 문장도 곳곳에서 빛났다. 그러나 단락과 단락 사이의 논리적 이음새가 약하다. 그래서 처음 읽었을 때는 논리가 선뜻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읽을수록 글의 장점이 눈에 들어오지만, 논술글의 서술 방법으로는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일부 논리의 ‘비약’도 눈에 띈다. 예컨대 언론과 대학을 ‘중립성’이라는 단어로 등치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만약 연결시킨다 하더라도, 시장이 두 분야에 개입하는 형태인 광고와 기부금의 맥락이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빠졌다. 이찬우 학생의 글은 항상 ‘예컨대’로 뽑힐 만큼 휼륭하지만, 글의 균형이 이따금씩 깨져 최종 선택에서 제외돼왔다.

부평고 김호빈 학생도 예컨대로 뽑힌 한효명 학생에 비해 손색없는 글을 보내주었다. 서술 방식과 균형 잡힌 논리도 한효명 학생과 비슷했다. 특히 우리 대학의 경쟁력 약화의 원인이 물질적 차원만이 아니라는 지적은 매우 날카로웠다. 오히려 대학 서열화와 같은 폐쇄적인 체제가 대학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논리를 한줄로 꿰는 능력에서 한효명 학생의 글이 ‘조금’ 더 낫다고 판단했다.

세 학생의 글은 평가자의 ‘취향’에 얼마든지 당락이 갈릴 만큼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수능도 끝난 ‘논술의 계절’이어서인지 다른 글의 수준도 고르게 높았다. 논술시험을 앞둔 학생들의 건필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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