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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연극- 색다른 무대언어가 보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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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11-2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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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연극인들의 새로운 모색 보여주는 ‘넥스트웨이브 2003-아시아 신세기 연극열전’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낸다지만, 변방의 물결 또한 중심을 흔든다. 아시아 비주류 예술가들의 자유로운 교류의 장을 이뤄낸 서울프린지네트워크가 한국과 일본, 중국, 싱가포르, 홍콩에서 활약하는 차세대 젊은 연극인들을 초청한다. 12월5~21일 서울 문화일보홀에서 열리는 ‘넥스트웨이브 2003-아시아 신세기 연극열전’. 프린지 페스티벌의 진원지가 영국이라면(프린지 페스티벌은 1947년 에든버러 국제페스티벌의 주변부(fringe)에 초청받지 못한 작은 공연단체들이 모여 싹을 틔워냈다), 넥스트웨이브 페스티벌의 탄생지는 뉴욕의 복합문화공간 ‘뱀’(BAM·Brooklyn Academy of Music)이다. 뉴욕에서 문화적 변방이랄 수 있는 브루클린에 있는 예술센터 ‘뱀’은 미국과 유럽, 제3세계의 아방가르드 예술을 적극적으로 소개하며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어왔다.

‘넥스트웨이브 2003’에는 색깔이 뚜렷한 연극이 대거 선보인다. 한 · 중 · 일 배우들이 한 무대에 오르기도 하고, 브레히트의 시를 토대로 한 창작 실험극도 있다.

뉴욕 ‘뱀’의 정신 잇는 연극 잔치

‘뱀’은 1983년 넥스트웨이브 페스티벌을 처음 개최한 이래 20년 동안 로버트 윌슨, 머스 커닝엄, 피나 바우시, 크로노스 쿼텟 등 실험적 예술인들의 ‘스타 인큐베이터’로 자리잡았다. 올해 두돌을 맞는 한국의 넥스트웨이브 페스티벌 또한 새로운 무대언어를 고민하는 아시아 연극인들이 모여 서울 한복판에서도 뉴욕 ‘뱀’의 정신을 이어가자는 취지다.


페스티벌의 첫 무대에 오르는 개막작 <세자매>(은빛창고)는 한국과 중국, 일본 세 나라 배우들이 한 무대에서 세 나라 언어로 연기하는 독특한 작품이다. 극단 백수광부의 30대 젊은 연출가 홍은지씨가 이끄는 프로젝트 그룹 ‘은빛창고’는 니시야마 미즈키(일본 극단 안(AN) 공동대표 겸 배우), 보니 챈(홍콩 극단 테아트르 두 피프 공동예술감독 겸 배우), 정진희·김경희(극단 백수광부 배우) 등의 배우와 성기완(음악 담당·3호선 버터플라이 기타리스트), 이윤수(무대미술), 유은경(조명 디자인) 등으로 이뤄졌다. 러시아의 극작가 안톤 체호프의 <세자매>를 원작으로 홍은지씨가 재구성한 이 작품은 새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부르주아의 몰락, 가족 사이 단절을 배우들의 섬세한 몸짓으로 풀어낸다. 기획자는 “배우들의 서로 통하지 않는 언어(자막처리도 안 한다고 한다)는 오히려 소외와 단절의 감정을 극대화할 것”이라고 말한다.

중국 연극 하면 경극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에게 <코뿔소의 사랑>은 최신 중국 연극의 흐름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국립 공연예술단체인 중국국가화극원의 배우들과 33살의 젊은 연출가 멍징후이가 만나 사랑에 눈멀고 귀먹은 남자의 ‘코뿔소 같은 사랑 이야기’를 펼친다. 10년 전만 해도 사회주의 선전선동극 일색이던 중국 연극계에 ‘실험극’이란 화두로써 파문을 일으킨 멍징후이는 예술성뿐 아니라 대중적 인기도 높아 요즘엔 “연극 한회마다 150만원가량의 수익을 올리는” 스타급 연출가다.

다양한 실험들… 철학적 메타연극도

싱가포르 극단 TNS의 <코안>(Koan)은 이른 아침, 물 한병을 들고 길을 떠난 여자의 여정과 수행의 과정을 담담한 시선으로 풀어낸 멀티미디어 모노드라마다. 작가 하레시 샤르마는 “헤르만 헤세의 <싯달타>와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에서 영감을 받아 무언가를 찾으러 떠난 여인이 자연스럽게 깨달음의 길에 접어드는 과정을 그렸다”고 설명한다.

이 밖에 한국에선 브레히트의 시 ‘죽은 병사의 전설’을 토대로 한 창작 실험극 <귀환>(원영오 작·연출, 극단 노뜰), 연극에 대한 철학적 사색을 담은 ‘메타연극’ <아홉개의 모래시계>(김재엽 작·연출, 드림플레이프로젝트)가 초연돼 젊은 연극인들의 잔치를 빛낸다. (문의)02-325-8150.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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