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공간으로 탈바꿈 시도하는 ‘부엌 프로젝트’… 이제는 모두가 부엌데기로 거듭나야 한다
“여자라서 행복해요~”
대형 냉장고 앞에서 웃음짓는 여자. 이렇게 아름다운 냉장고를 혼자서, 통째로 관리할 수 있어 행복한 걸까. 첨단 냉장고와 우아한 싱크대가 있다면, 퇴근 뒤에도 여자들은 부리나케 부엌으로 달려가 미소 띤 얼굴로 행복의 된장찌개를 보글보글 끓일 수 있을까.
수천년 동안 여성들의 전유공간이던 부엌. 남자가 들어오면 재수 없다며 문지방을 넘을새라 내몰았던 곳, 땔감의 매운 연기에 며느리가 눈물콧물 쏟던 곳, 손바닥이 짓무르도록 남의 식구를 위해 밥하고 설거지하는 어린 식모의 일터. 물론 요즘 부엌은 이처럼 비극적이진 않다. 부엌은 설비를 첨단화하면서 ‘시스템 키친’이 되었고 ‘주부의 사무실’이자 가족이 모이는 ‘공공장소’라고까지 불린다. 하지만 여전히 부엌을 알뜰히 돌보는 책임은 여자에게 돌아간다. 삼시, 손맛, 솥뚜껑 운전수, 주부습진의 주인공은 여성이다.
엄마의 고무장갑밖에 없어야 하나
최영숙·진향임씨 등 여성문화전문아카데미의 문화기획강좌 1기 수강생 7명이 마련한 ‘부엌 프로젝트-세개의 고무장갑’은 이 굳게 닫힌 ‘우먼 스페이스’의 빗장을 열어젖히려는 시도다. 서울시 광진구 노유동 동부여성발전센터에서 11월27일~12월3일 열리는 이 문화축제에선 부엌을 주제로 한 전시·공연·세미나가 풍성하게 펼쳐진다. “조왕신이 짧고 긴긴 인생살이를 삼시세끼 끼니에 묶고 서방 자식 식구에 묶어 부엌에 척 가둬놓고는 못 나가게 하는구나.” 27일 개막공연 ‘수다스런 땅덩어리’는 민간신앙에서 부엌을 지키는 신이었던 조왕신을 지목한다. 조왕신은 통상 부뚜막을 지키며 가정의 안녕과 평화를 지켜준다고 하지만, 불씨만 꺼뜨려도 소박맞을 중죄인으로 취급받으며 부엌에서 고된 노동을 해야 했던 여성들에겐 그리 고맙지 않은 신이다. “밥 삼천 그릇, 떡 삼천 그릇, 나무 삼천개, 말하는 땅 삼천 조각을 모아주면 부엌문을 연다는, 욕심 많은 귀신 중에 귀신”으로, “여성들을 끊임없이 부엌에 가둬두는 남성들을 대변하는 감시자 역할”을 맡기도 했다. 조왕신이 마음을 누그러뜨려 부엌문을 활짝 열 수 있도록 관객들은 각자 쪽지에 소원을 적어 퍼포먼스에 참가한다. 왜 부엌에는 엄마의 고무장갑밖에 없는가. ‘세개의 고무장갑’은 부엌에 낯설던 남자와 아이들을 부엌으로 부르는 초대장이다. 기획자들은 부엌처럼 전시장을 꾸며놓고 젊은 작가들이 궁리해낸 ‘부엌 소수자를 위한 소품’들을 놓는다. 엄마가 항상 일일이 간식을 챙겨줄 수는 없는 법. <어린이용 요리책>은 전자레인지에 몇분만 돌리면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즉석식품 조리법을 동화책처럼 꾸민 것이다. <그릇퍼즐>은 반찬그릇과 밥그릇을 모아놓으면 아기곰 모양이 되는 재미난 식기 세트다. 엄마가 잔소리를 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알아서 척척 상을 차릴 수 있도록 유도한다. <키높이 식탁>은 밥상도 되었다가 책상도 되었다가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키를 조절하는 식탁이다. 맥도널드 같은 패스트푸드점에선 아무리 움직이기 싫어하는 남자라도 제 먹은 건 스스로 치우도록 돼 있다. ‘빈 그릇은 이곳에 넣으시오’와 같은 지시문이 적혀 있는 부엌은, 좀 낯설긴 해도 부엌을 ‘우먼 서비스’에서 ‘셀프 서비스’ 공간으로 바꾸는 효과적인 도구다.
여성성 판타지 지운 모두의 공간으로
지난 100년 동안 부엌 밖 세상은 요지경처럼 변했다. 여자들의 지위가 높아졌고 맞벌이 부부가 늘었다. 이번 ‘부엌 프로젝트’에는 개항기에서 일제시대를 거쳐 해방 이후부터 지금까지 변화한 부엌 안 세상을 담은 사진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소여물을 쑤는 커다란 솥단지가 걸려 있던 나무 때는 아궁이는 연탄 아궁이로 바뀌었다. 물항아리 대신 수도가 들어왔고 시렁 대신 식기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싱크대가 보편화됐다. 전북대 함한희 교수(문화인류학과)는 “부엌이 현대화되면서 ‘주방’이라고 불리기 시작했고, 과학·위생·아름다움·여유의 미덕이 강조되면서 마치 실험실처럼 흐트러짐 없는 깨끗한 부엌의 이상이 생겨났다”고 말한다. “편리한 세상을 알고 나니 늙게 되었다”는 70대 할머니의 허무한 고백처럼, 부엌은 주택 안의 어느 공간보다 더 빨리 테크놀로지를 수용하며 변화해왔다.
부엌의 물리적인 부분이 변화한 것처럼, ‘부엌의 여자’도 변했다. 1950·60년대 농촌의 노동력이 넘쳐나던 시절엔 가난한 시골 소녀들이 도시로 올라와 남의 부엌에서 행주를 빨았고, 노동시장이 달라진 70년대 중반에는 중산층 주부들이 직접 부엌일을 도맡았다. 주부가 직접 부엌의 주역이 되면서부터 부엌가구의 변신과 설비의 첨단화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80년대에 이르면 이른바 ‘현대생활’의 이미지 속에는, 아내의 과중한 가사 전담을 안타까워하는 자상한 남편이 등장한다. “아내는 절 위해 차를 바꾸자고 했고, 저는 아내를 위해 부엌을 바꿨습니다. 소중한 아내의 행복을 위해(한아름 부엌가구 인테리어 광고 중에서).”
이런 변화 속에도 부엌이 상징하는 모성성·여성성의 판타지는 계속된다. 전시 기획자들이 메신저를 통해 남자들과 부엌에 대해 나눈 이야기 속에는 여전히 ‘부엌=여자’다. “간혹 앞치마를 두를 때에는 여자친구에게 쿨한 남자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서다”라는 20대 싱글 남자의 고백처럼, 부엌은 남자들이 간혹 선의를 보이기 위해 들르는 곳이다.
11월30일 오후 2시엔 깍두기를 담는 행사가 열린다. 김치 중에도 낮은 급으로 여겨져 양반은 쳐다도 안 봤다던 김치, 깍두기를 담그며 아이들·남자들과 함께 시끌벅적 깍두기 잔치를 벌인다. 또한 11월28일~12월3일 엿새 동안 주부 출신의 ‘키친 사이언스 전도사’ 장김현주씨가 이끄는 과학놀이 코너도 마련된다(문의 02-587-0591).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 나무땔감 아궁이에서 연탄 아궁이로, 그리고 보일러와 싱크대로. 부엌의 겉모습은 첨단화됐지만 그 주인은 여전히 여성이다.
최영숙·진향임씨 등 여성문화전문아카데미의 문화기획강좌 1기 수강생 7명이 마련한 ‘부엌 프로젝트-세개의 고무장갑’은 이 굳게 닫힌 ‘우먼 스페이스’의 빗장을 열어젖히려는 시도다. 서울시 광진구 노유동 동부여성발전센터에서 11월27일~12월3일 열리는 이 문화축제에선 부엌을 주제로 한 전시·공연·세미나가 풍성하게 펼쳐진다. “조왕신이 짧고 긴긴 인생살이를 삼시세끼 끼니에 묶고 서방 자식 식구에 묶어 부엌에 척 가둬놓고는 못 나가게 하는구나.” 27일 개막공연 ‘수다스런 땅덩어리’는 민간신앙에서 부엌을 지키는 신이었던 조왕신을 지목한다. 조왕신은 통상 부뚜막을 지키며 가정의 안녕과 평화를 지켜준다고 하지만, 불씨만 꺼뜨려도 소박맞을 중죄인으로 취급받으며 부엌에서 고된 노동을 해야 했던 여성들에겐 그리 고맙지 않은 신이다. “밥 삼천 그릇, 떡 삼천 그릇, 나무 삼천개, 말하는 땅 삼천 조각을 모아주면 부엌문을 연다는, 욕심 많은 귀신 중에 귀신”으로, “여성들을 끊임없이 부엌에 가둬두는 남성들을 대변하는 감시자 역할”을 맡기도 했다. 조왕신이 마음을 누그러뜨려 부엌문을 활짝 열 수 있도록 관객들은 각자 쪽지에 소원을 적어 퍼포먼스에 참가한다. 왜 부엌에는 엄마의 고무장갑밖에 없는가. ‘세개의 고무장갑’은 부엌에 낯설던 남자와 아이들을 부엌으로 부르는 초대장이다. 기획자들은 부엌처럼 전시장을 꾸며놓고 젊은 작가들이 궁리해낸 ‘부엌 소수자를 위한 소품’들을 놓는다. 엄마가 항상 일일이 간식을 챙겨줄 수는 없는 법. <어린이용 요리책>은 전자레인지에 몇분만 돌리면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즉석식품 조리법을 동화책처럼 꾸민 것이다. <그릇퍼즐>은 반찬그릇과 밥그릇을 모아놓으면 아기곰 모양이 되는 재미난 식기 세트다. 엄마가 잔소리를 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알아서 척척 상을 차릴 수 있도록 유도한다. <키높이 식탁>은 밥상도 되었다가 책상도 되었다가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키를 조절하는 식탁이다. 맥도널드 같은 패스트푸드점에선 아무리 움직이기 싫어하는 남자라도 제 먹은 건 스스로 치우도록 돼 있다. ‘빈 그릇은 이곳에 넣으시오’와 같은 지시문이 적혀 있는 부엌은, 좀 낯설긴 해도 부엌을 ‘우먼 서비스’에서 ‘셀프 서비스’ 공간으로 바꾸는 효과적인 도구다.

▷ 여성작가들은 부엌, 음식 등에서 많은 영감을 받는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여성의 노동을 은유하는 윤희수씨의 <어머니의 공기>(위). “혼자서도 여왕처럼 먹자.” 나르시시즘을 표현한 전상옥씨의 <싱글을 위한 식탁>(아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