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의 ‘스타일 앤 더 시티’]
에로티시즘의 대가로 패션 사진 찍는 헬무트 뉴턴이 섹시한 까닭
헬무트 뉴턴은 지구상에서 가장 관능적이고 선동적인 패션 사진을 찍는 에로티시즘의 대가로 유명한데, 지금 유럽에서는 그의 자서전 출간과 대규모 순회 전시회 때문에 또다시 화제의 중심에 있다.
사실 성현아나 김완선의 누드 사진은 헬무트 뉴턴의 사진에 비하면 거의 ‘장난’ 수준이다. 일단 질적 수준을 떠나서 조금도 쇼킹하지 않다. 헬무트 뉴턴은 트리플 섹스, 사도마조히즘, 여성 동성애, 매춘, 관음증, 처녀, 정부, 지배자 등 포르노그래피의 상투적 메뉴들을 아주 즉물적으로 드러낸다. 그는 사진 속에서 공장지대 담벼락에 여체를 정육점 고기처럼 전시하는가 하면, 하의를 홀딱 벗은 여경으로 하여금 거리를 순찰하게 하고, 어느 부자집 거실 한복판에 깁스를 한 전라의 여자를 위태롭게 세워두기도 한다.
사실 패션 사진의 1차 목표는 ‘관심 끌기’이고, 최고의 미덕은 대중의 숨겨진 욕망을 자극해 패션 산업으로 하여금 그 환상으로 돈을 벌게 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분명히 그에게 메스껍다고 말해줘야겠지만, 같은 업계에서 밥을 버는 나로서는 ‘자신의 성적 강박을 언제나 여성에 대한 찬사’ 탓으로 돌리는 뉴턴의 말을 신뢰할 수밖에 없다. “내가 그런 사진을 찍는 이유는 여성을 찬양하기 때문이오. 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강한 여성들에게 관심이 많소. 그게 내 삶과 모든 패션 작업의 모티브였소.”
최근에 나온 헬무트 뉴턴의 자서전(<헬무트 뉴턴>, 더블데이 출판사)을 보면 그의 말이 결코 허풍이나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베를린 태생의 이 유대인 사진가는 평생을 여자와 섹스, 그리고 카메라에 빠져 살았다. 나치스 그늘 아래에서 무척이나 병약한 아이로 태어난 그는 부자 아버지 덕에 10대부터 태평하게 재즈와 수영, 그리고 고급 패션지와 누아르 잡지가 제공하는 성적 이미지에 빠져들 수 있었다. 9살 때는 형의 손에 이끌려 베를린에서 가장 유명한 매춘부를 보러 갔고, 12살 때는 카메라를 샀고, 16살 때는 여자 속옷을 찍는 여성 포토그래퍼 밑에서 정식으로 사진을 배웠다. 그리고 18살이 되자 아버지가 애지중지하던 자동차를 팔아서 싱가포르로 도망갔다. 그 시절에는 주로 매음굴에서 영감을 받았는데, 덕분에 19살 때는 연상의 멋진 프랑스 여자의 기둥서방으로 픽업될 수 있었다. 다시 오스트레일리아로 옮겨와 유명 사진작가가 될 야심에 이름까지 영어식으로 바꾼 그는 그곳에서 존 브라우니라는 젊은 여배우와 결혼하는 행운을 잡는다. 그리고 함께 유럽으로 옮겨와서 그때부터 패션 사진작가로서 명성을 날리게 된 것이다. 말하자면 에로스와 우아함이 결합된 그의 천부적 재능은 베를린에서의 럭셔리한 삶, 성장기의 성적 강박, 이국에서의 비도덕적 쾌락, 그리고 우아하고 세련된 유럽적 감각 등 모든 경험들의 총체적 결합에서부터 나온 것이다. 그는 80살이 넘은 지금까지도 쉴 새 없이 셔터를 눌러대며 너스레를 떤다. “내 사진들은 폭력적이지 않소. 난 폭력적인 포토그래퍼가 아니라 섹시한 포토그래퍼요. 여자를 아주 좋아하지.” 김경 | 패션지 <바자> 피처 디렉터 P.S
지난번에 피곤한 남자가 섹시하다고 하여 ‘물의’를 일으킨 것 같은데, 헬무트 뉴턴 자서전을 보며 나는 진짜 섹시한 남자는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최근에 나온 헬무트 뉴턴의 자서전(<헬무트 뉴턴>, 더블데이 출판사)을 보면 그의 말이 결코 허풍이나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베를린 태생의 이 유대인 사진가는 평생을 여자와 섹스, 그리고 카메라에 빠져 살았다. 나치스 그늘 아래에서 무척이나 병약한 아이로 태어난 그는 부자 아버지 덕에 10대부터 태평하게 재즈와 수영, 그리고 고급 패션지와 누아르 잡지가 제공하는 성적 이미지에 빠져들 수 있었다. 9살 때는 형의 손에 이끌려 베를린에서 가장 유명한 매춘부를 보러 갔고, 12살 때는 카메라를 샀고, 16살 때는 여자 속옷을 찍는 여성 포토그래퍼 밑에서 정식으로 사진을 배웠다. 그리고 18살이 되자 아버지가 애지중지하던 자동차를 팔아서 싱가포르로 도망갔다. 그 시절에는 주로 매음굴에서 영감을 받았는데, 덕분에 19살 때는 연상의 멋진 프랑스 여자의 기둥서방으로 픽업될 수 있었다. 다시 오스트레일리아로 옮겨와 유명 사진작가가 될 야심에 이름까지 영어식으로 바꾼 그는 그곳에서 존 브라우니라는 젊은 여배우와 결혼하는 행운을 잡는다. 그리고 함께 유럽으로 옮겨와서 그때부터 패션 사진작가로서 명성을 날리게 된 것이다. 말하자면 에로스와 우아함이 결합된 그의 천부적 재능은 베를린에서의 럭셔리한 삶, 성장기의 성적 강박, 이국에서의 비도덕적 쾌락, 그리고 우아하고 세련된 유럽적 감각 등 모든 경험들의 총체적 결합에서부터 나온 것이다. 그는 80살이 넘은 지금까지도 쉴 새 없이 셔터를 눌러대며 너스레를 떤다. “내 사진들은 폭력적이지 않소. 난 폭력적인 포토그래퍼가 아니라 섹시한 포토그래퍼요. 여자를 아주 좋아하지.” 김경 | 패션지 <바자> 피처 디렉터 P.S
지난번에 피곤한 남자가 섹시하다고 하여 ‘물의’를 일으킨 것 같은데, 헬무트 뉴턴 자서전을 보며 나는 진짜 섹시한 남자는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