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매체의 대중화 시기 일상의 변화 추적… 100년 전 사람들은 어떻게 독자로 거듭났나
‘책 속에 길이 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 등 책은 무조건 좋은 것이며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지금처럼 모든 사람들의 머릿속에 단단히 자리잡은 지는 별로 오래되지 않았다. 한반도에서 보통 사람들이 ‘독자’가 되기 시작한 것은 1907년께가 되어서였다. 조선시대까지 하루 종일 경전을 읽고 외는 것은 비생산 유한계층인 ‘선비’만의 특권이었다.
보통 독자들에 의한, 보통 독자들을 위한
100년 전쯤 한반도를 휩쓴 활자와 책은 ’뉴미디어’로서 현재의 인터넷 열풍보다 더 심하게 당시의 일상을 뒤흔들었다. “농투성이 무지렁이들과 장돌뱅이들, 개 잡고 소가죽 벗기던 이들, 심지어 그 자식들까지 학교 문앞을 기웃거리고, 급기야 모든 사람들이 책이란 걸 읽고, 나아가 글줄까지 긁적거릴 줄 알게 된 일종의 개벽이었다. 그 주인공들이 ‘모든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이 문자의 독재는 역설적으로 ‘앎의 민주주의’이기도 했다.”
국문학자 천정완씨의 <근대의 책읽기>는 책을 읽고 글을 쓰게 된 당시 조선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곳곳에서 바뀌었는지를 발랄하게 시시콜콜 보여주는 근대문학사다. 지은이의 박사논문을 고쳐 쓴 이 책은 박사논문이라는 말에 전혀 주눅들 필요 없이 경쾌하면서도, 최근 쏟아져나온 젊은 국문학자들의 근대 연구서 가운데 당시의 사람들과 삶을 가장 총괄적으로 보여준다. 이전의 문학사라면 당연히 이광수, 이효석, 염상섭 등 근대사의 주요한 작가와 작품을 이야기했지만 이 책의 주인공들은 보통 독자들이다. 방각본 소설과 구활자본(딱지본) 소설, 순한글로 문학작품이 공존하던 시절, 이광수의 <무정>과 <재생>을 읽고 감격해 눈물을 흘리는 여성 독자들, 번역된 투르게네프와 톨스토이를 읽고 밤잠을 설치던 기생과 연예인들, 일본 대중잡지에 매혹된 어린이와 여성들, 마르크스와 레닌의 책을 읽던 학생과 노동자들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또 당시 일본어 책을 읽고 일본어로 글을 쓰던 이들의 작품과 그에 대한 복잡한 시선 등을 통해 근대 초기 지식의 근대성과 식민지성이 맺는 관계를 보여준다.
1920년대로 접어들면 근대적 신문과 잡지가 퍼져나가고, 학생들이 늘어나면서 엄청난 양의 글쓰기가 지금의 이메일처럼 편지라는 매체를 통해 이뤄졌다. 이전의 문화가 듣고 외우는 ‘청각의 문화’였다면 근대 대중독자의 출현은 보고 읽기가 위주인 ‘시각의 문화’로서 문화를 뿌리부터 바꿔놓았다. 책은 곧 영화와 경쟁하기 시작했는데 “활동사진을 볼 것이 없거나 심심할 때 책을 본다”(이광수), “요즘 아이들은 영상으로 사고한다”(1930년대의 한 잡지) 등 요즘과 비슷한 푸념은 이미 당시부터 등장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영화보다는 문학이 더 고상한 것으로 대접받았다. 문학청년은 신여성들의 마음을 울리는 최고의 연애상대가 되었고, “기미운동 이후 한창 신문·잡지가 비온 뒤 대순 나오듯 하던 시절에는 어디 시 한구, 소설 한편만 발표하여도 그 청년에게는 여자의 연애편지가 사면팔방 쏟아져 들어왔다.” 시각 문화의 소통… 실용서들 폭넓게 읽혀 100년 전 책읽기의 시공간은 오늘날 그대로 이어졌다. 당시 대중독자들이 가장 많이 산 책은 참고서와 수험서, 실용서였다. 근대사회의 개막은 곧 학벌사회의 개막이기도 했다. 1920년대 이후부터 식민지 시기 내내 조선인은 만성적인 취학난과 입시경쟁에 시달리게 된다. 교육 수요에 비해 학교가 너무 적었기 때문이다. 이문당에서 나온 <보통학교자습전과참고서>(1924), 박문서관에서 나온 보통학교전과모법정해(1925) 등이 많이 팔렸다. 우리는 현 시대가 가장 난세라고 생각하지만 이 책에서 천지개벽하듯 근대가 도달하던 시대를 살아낸 보통 사람들의 생각을 엿보다 보면, 지금 우리가 역사의 필연처럼 생각하는 근대의 법칙을 벗어나 한 걸음 더 디딜 공간을 찾게 되는 즐거운 상상도 해본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 <근대의 책읽기>, 천정완 지음, 푸른 역사 펴냄
1920년대로 접어들면 근대적 신문과 잡지가 퍼져나가고, 학생들이 늘어나면서 엄청난 양의 글쓰기가 지금의 이메일처럼 편지라는 매체를 통해 이뤄졌다. 이전의 문화가 듣고 외우는 ‘청각의 문화’였다면 근대 대중독자의 출현은 보고 읽기가 위주인 ‘시각의 문화’로서 문화를 뿌리부터 바꿔놓았다. 책은 곧 영화와 경쟁하기 시작했는데 “활동사진을 볼 것이 없거나 심심할 때 책을 본다”(이광수), “요즘 아이들은 영상으로 사고한다”(1930년대의 한 잡지) 등 요즘과 비슷한 푸념은 이미 당시부터 등장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영화보다는 문학이 더 고상한 것으로 대접받았다. 문학청년은 신여성들의 마음을 울리는 최고의 연애상대가 되었고, “기미운동 이후 한창 신문·잡지가 비온 뒤 대순 나오듯 하던 시절에는 어디 시 한구, 소설 한편만 발표하여도 그 청년에게는 여자의 연애편지가 사면팔방 쏟아져 들어왔다.” 시각 문화의 소통… 실용서들 폭넓게 읽혀 100년 전 책읽기의 시공간은 오늘날 그대로 이어졌다. 당시 대중독자들이 가장 많이 산 책은 참고서와 수험서, 실용서였다. 근대사회의 개막은 곧 학벌사회의 개막이기도 했다. 1920년대 이후부터 식민지 시기 내내 조선인은 만성적인 취학난과 입시경쟁에 시달리게 된다. 교육 수요에 비해 학교가 너무 적었기 때문이다. 이문당에서 나온 <보통학교자습전과참고서>(1924), 박문서관에서 나온 보통학교전과모법정해(1925) 등이 많이 팔렸다. 우리는 현 시대가 가장 난세라고 생각하지만 이 책에서 천지개벽하듯 근대가 도달하던 시대를 살아낸 보통 사람들의 생각을 엿보다 보면, 지금 우리가 역사의 필연처럼 생각하는 근대의 법칙을 벗어나 한 걸음 더 디딜 공간을 찾게 되는 즐거운 상상도 해본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