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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문/화/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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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11-2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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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 | 애정만세 4색전

11월21일~12월4일 서울 대학로 하이퍼텍 나다(02-766-3390, www.dsartcenter.co.kr)

사랑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잘 만들어진 영화 4편이 모였다. 브래더 앤더슨 감독의 <해피 엑시던트>와 아모스 펠렉 감독의 <패스트푸드 패스트우먼> 등 미국 영화 2편과 이란 영화 <도메>, 롤랑 조페 감독의 <바텔> 등이다. 하루에 4편을 한번씩 상영한다.

<도메>의 배경은 이란 북부의 작은 산골 마을. 젖소 농장에서 일하는 순박한 아프가니스탄 출신 이주노동자 청년 도메는 어느 날 우연히 만난 아름다운 세타레에게 순식간에 마음을 빼앗겨버린다. 하지만 집안의 어른이 중매를 해줘야 하는 것이 이란의 관습. 도메는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유일한 사람인 농장주인 마흐무드에게 그 역할을 부탁한다. 감독 하산 엑타파나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와 자파르 파나히의 조감독 출신으로 이 영화는 2000년 칸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했다. 재기 넘치는 연애담인 <해피 엑시던트>는 시간 여행을 소재로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오해를 이야기한다. 시원찮은 연애로 지쳐 있던 여자 루비는 어느 날 샘이라는 남자를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진다. 이상한 점은 샘이 팔뚝에 바코드 문신이 새겨져 있고 ‘남다른’ 잠꼬대를 하는 등 특이한 행동을 보이는 것. 한술 더 떠 그는 자신이 루비를 만나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 왔다고 주장한다. 이스라엘 출신의 아모스 콜렉 감독이 만든 <패스트푸드 패스트우먼>의 주인공은 35살의 웨이트리스 벨라. 그는 어느 날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택시운전사 브루노를 만난다. 벨라는 남자는 가정을 부담스러워한다는 친구의 충고를 듣고 브루노에게 ‘아이는 질색’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두 아이를 혼자 키우는 신세인 브루노는 자신의 처지를 벨라에게 말하지 못한다. <킬링 필드> <미션> <시티 오브 조이>로 알려진 롤랑 조페 감독이 2000년에 만든 <바텔>에는 제라르 드 파르디외와 우마 서먼 등이 출연한다. 17세기 루이 14세의 왕자 콩데의 성. 바텔은 경제적으로 파산 직전인 왕자의 집사로 왕자가 국왕의 신임을 얻기 위해 마련하는 축제를 준비하고 있다. 그러던 중 왕비의 측근이자 눈부신 미인 안느를 만나게 되고 둘은 서로에게 끌려 하룻밤을 보낸다. 고풍스러운 배경 속에서 펼쳐지는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다.




연극 | 정약용 프로젝트

11월30일까지 서울 정동극장(02-751-1500, 1588-7890)

정동극장 전통 연희극 시리즈 마지막 작품. 조선 후기 독창적 사상과 뛰어난 저술 활동을 펼친 다산 정약용(1762~1836)의 삶이 ‘조선 뮤지컬’로 살아났다. ‘정약용 프로젝트’는 우리 전통의 노래와 춤, 대사가 어우러진 ‘토리극’의 형식에 담겼는데, 토리란 전통 연주에서 꺾고 흔들고 급격하게 소리를 높이거나 떨어뜨리는 시김새를 표현하는 순우리말이라고 한다. ‘춤추듯 걷고 노래하듯 대사하는’ 한국판 랩을 감상할 수 있다. 방은미 연출.



뮤지컬 | 킹 앤 아이

2004년 1월11일까지 서울 LG아트센터(02-2005-0114)

많은 사람들의 오해와 달리, 율 브리너의 카리스마가 인상적인 <왕과 나>의 출발은 본래 뮤지컬이었다. 1951년 뉴욕의 세인트 제임스 극장에서 처음 올려진 이 뮤지컬은 <사운드 오브 뮤직>으로 유명한 작곡가 리처드 로저스가 시나리오 작가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와 5번째로 만나 탄생시킨 수작으로 율 브리너 또한 이 뮤지컬의 오리지널 캐스트였다. 그는 무대 위에서의 성공을 스크린으로까지 화려하게 이어갔다. 뮤지컬의 내용 또한 실제 역사적 사실과도 좀 다른데, 19세기 실존 인물 애나 레오노웬스의 자서전 <샴 궁전의 영어교사>의 영향을 받아 영국의 여류작가 마거릿 랜던이 집필한 베스트셀러 <애나와 시암의 왕>을 그 원작으로 했다. 그렇기에 동양의 위풍당당한 왕과 서양의 아름다운 여교사의 로맨스라는 동화적 이야기를 서양인의 시선으로 매끈하게 그려낸 이 작품은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미국의 브로드웨이와 영국의 웨스트엔드에서 장기 공연을 계속해왔다.

이번 한국 공연은 연출·안무·무대 등에 브로드웨이 현지 스태프들이 참가하고 우리나라 배우들이 연기를 펼친다. 왕에는 탤런트 김석훈과 뮤지컬 스타 남경주가 더블 캐스트됐는데, TV드라마에서 주로 ‘꽃미남과’로 등장했던 김석훈은 이번 무대에서 겉으로는 무뚝뚝하고 강한 척하지만 흠집나기 쉬운 여린 감수성을 지닌 왕의 역할을 무난히 소화한다. 콧대 높지만 발랄한 영국 여교사 애나 역은 뮤지컬에서 관록을 쌓은 김선경이 맡아 아름다운 노래와 재치 있는 연기로 극에 탄력과 긴장감을 살렸다. 특히 왕의 궁전에서 영국 대사를 맞아 왕실 가족들이 보여주는 뮤지컬 속 뮤지컬, <톰아저씨의 오두막>은 서양 이야기를 타일랜드의 전통 춤과 노래로 절묘하게 각색해 특별한 재미를 더한다. 그럼에도 제국주의 시대 동양을 바라보는 서양인의 오만 어린 시선이, 100년 뒤 동양인들이 연기하는 무대에서도 여전히 묻어나는 건 원작의 강고함을 깰 수 없어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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