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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로봇은 일상을 바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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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11-2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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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용 로봇의 대중화는 가격경쟁력이 관건… 시각처리 능력 갖춰야 자유로운 이동 가능

최근 정부는 미래사회를 주도할 10여개의 전략산업을 신성장동력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했다. 외국의 경쟁력을 뚫고 우리의 기술만으로 수출할 수 있는 생산품에 관련한 기술군을 대략 10개로 정리한 것이다. 디지털TV와 방송, 디스플레이, 지능형 로봇, 미래형 자동차, 차세대 반도체, 차세대 이동통신, 지능형 홈네트워크, 디지털 콘텐츠와 소프트웨어 솔루션, 차세대 전지, 바이오신약·장기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들은 2010년 정도를 기준으로 100억달러 이상의 수출 가능성을 지닌 기술인지의 여부를 기준으로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선택 분야에 대한 논란도 있다. 10개의 성장동력 분야의 연구자들은 앞으로 안정적인 지원을 받기 때문이다. 어쨌든 우리나라가 국제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최근 지능형 로봇은 우리나라에서도 일상에 다가서고 있다. 로봇기술은 인공지능과 정보기술이 결합하는 추세에 있다. 이를 기반으로 인간과 상호작용하면서 가사와 교육, 놀이 등에 참가할 수 있는 인간 친화적 서비스를 실현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전 세계의 로봇시장은 미국, 일본이 약 7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그리고 로봇들간의 축구시합인 ‘로보컵’(RoboCup)은 로봇기술의 우열을 가리는 올림픽으로 인식된다. 2010년 무렵에는 1천억달러의 로봇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중에서 각국이 노리는 것은 가정용 로봇인데, 전체 매출액의 약 60%를 가정용 로봇이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가정용 로봇 중심으로 시장 형성


머지않아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텔레비전이나 냉장고처럼 청소용 로봇을 구입하는 게 보편화될 것이인다. 예를 들어 아이로봇사에서 개발해 시판하는 룸바(Roomba)는 40만원 정도의 가격으로 집안 청소를 해준다. 이 장치는 지름 약 30cm의 원반형인데 충전하여 작동하면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바닥의 먼지를 진공으로 청소해준다. 사용자가 특별한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된다. 장치 앞에 달린 센서를 통해 벽을 더듬어가며 방안과 거실을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계단이 있더라도 굴러 떨어지지 않을 정도의 제어력이 있다. 계단과 같이 위험한 곳에서는 바닥의 센서로 감지해 앞으로 더 이상 나아가지 않는다. 만일 몇 가지 장치를 설치하면 광선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동작을 취하기도 한다. 다만, 크기가 작아서 일반 수동식 청소기에 비해 흡입력이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도 거실에 룸바를 갖다놓기만 해도 바닥청소는 간단히 해결된다.

그동안 로봇은 컴퓨터 기술을 발전시키는 데 매우 중요한 구실을 했다. 30여년 전 인공지능이 논의될 때만 해도 공상과학에서 말하는 인간을 닮은 로봇은 2000년 이전에 가능하리라 예측했다. 특히 게임이나 계산에서 나타난 컴퓨터의 놀라운 능력은 이런 기대를 부풀렸다. 하지만 한계는 이내 드러나고 말았다. 예컨대 소리나 이미지만으로 앞의 사람이 누구인지를 판단하는 식의 물체 인식 기술은 거의 젬병에 가까웠다. 1980년만 해도 사람의 지능에 필적할 만한 계산력을 지닌 컴퓨터는 수퍼컴퓨터밖에 없었다. 당연히 쓸 만한 로봇을 만드는 데 엄청난 연구비가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가정용 로봇의 대중화는 가격경쟁력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방바닥에 흩어진 나무박스를 주워 담는 일에 시간당 1천달러나 되는 사용료를 내고 수퍼컴퓨터를 사용할 바보는 없다. 시간당 10달러 정도만 주면 아주 훌륭하게 일을 하는 가정부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파출부의 시간당 인건비가 만원 안쪽이므로 100만원이 넘어가면 청소용 로봇으로는 별 매력이 없을 것이다. 룸바가 인건비가 비싼 미국에서 주목을 끈 이유는 바로 싼 가격(199달러)과 제법 쓸 만한 능력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상과학영화에서처럼 실제 사람의 능력을 지닌 로봇을 만들려면 어느 정도의 컴퓨터가 필요할까. 컴퓨터의 능력을 초당 수행하는 명령어의 단위인 MIPS로 판단할 때, 1MIPS의 능력으로는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계산을 대치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러나 복잡한 상황에서의 임기응변, 시각과 촉각이 동원되는 종합적인 처리에는 엄청난 양의 계산이 필요하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일반적인 생물체의 두뇌를 구성하는 뉴런들의 연산능력은 지금의 최고급 컴퓨터를 훨씬 능가한다. 1g의 뇌세포는 약 5만MIPS의 계산능력과 동일하다.

300개의 신경세포로 구성된 미생물은 대략 1MIPS의 처리능력을 가진다. 오늘날 고급 컴퓨터의 전체 능력은 겨우 1cm의 열대어 구피(guppy)의 0.01g의 뇌와 맞먹는 셈이다. 사람과 같은 능력의 두뇌를 컴퓨터 소자로 구성하려면 무려 1억MIPS의 계산력이 필요하다. 이 정도의 계산력을 가진 독립된 컴퓨터를 만드는 데는 사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지각능력에는 못 미치더라도 입력되지 않은 임의의 지형을 혼자 돌아다닐 수 있는 정도의 로봇은 대략 1천MIPS 정도의 계산력이면 충분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 “바닥청소는 로봇에게 맡겨라.” 미국 아이로봇사의 ‘룸바’(왼쪽)와 스웨덴 일렉트로룩스사의 ‘트릴로바이트’(오른쪽).

고급 장난감 신세를 면하기 위해…

20세기 시장에 나온 심부름 로봇은 대부분 실패한 고급 장난감의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 사용자가 참고 쓰기에는 6개월 정도가 한계였다. 특히 주위환경을 입력해주지 않으면 범용로봇은 작동 중 구석을 제대로 빠져나오지 못해 낑낑대다 전력을 모두 소비해버리기 일쑤였다. 뿐만 아니라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거나, 주인의 발등으로 올라가서 공격하는 등 여러 가지 오작동이 일어났다. 따라서 병원 복도를 청소하고 간단한 물품을 자동적으로 사람을 피해 배달하는 로봇을 구입하는 데 5만달러나 쓴다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요즘에는 룸바처럼 한정된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학습 능력이 있는 로봇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즉, 넓은 홀을 청소하는 로봇은 일차적으로 주인의 손에 이끌려 청소할 장소의 가장자리를 한번 탐색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로봇의 두뇌에 전체 지형의 정보가 입력된다. 또한 충전용 배터리가 있는 장소를 지정해주면 스스로 배터리를 찾아가 충전하면서 청소한다.

로봇 연구에서 가장 어려운 분야는 시각처리다. 사람 눈에 필적할 수 있으려면 엄청난 계산력이 필요하다. 이전 로봇은 사람 눈과 유사한 두대의 카메라로 얻은 이미지를 분석하는 방식이었다. 이에 비해 지금은 잠자리 눈과 비슷하게 회전하는 여러 개의 카메라로부터 받은 영상을 짜맞추는 방식으로 주위환경을 이해한다. 지금과 같이 지시한 명령을 그대로 수행하는 방식의 1세대 컴퓨터는 1만MIPS의 도마뱀 수준인 2세대 로봇으로 30년 이내에 대치될 것이라고 한다. 2세대 로봇은 주인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를 바탕으로 지시하지 않은 상황에서의 행동을 유추하여 수행하는 학습능력의 소유가 관건이 된다. 즉, 복잡도를 스스로 판단하여 엘리베이터를 이용할지, 아니면 계단을 이용할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3세대인 원숭이 수준의 로봇은 약 1천만MIPS의 계산력이 필요한데, 심리적 요소 처리 여부가 2세대 로봇과의 차이가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출하시에 입력하지는 않았지만 주인의 지난번 생일날 식탁 차림을 기억하여 다음해 생일에도 촛대를 올려놓을 수 있는 정도의 능력을 지닌 로봇이어야 한다. 50년 뒤쯤 나타날 이 3세대 로봇은 주인과 언쟁을 일으킨 앞집 사람 소유의 청소용 로봇이 집안에 얼씬거린다면, 쏜살같이 달려가 상대 로봇을 흠씬 두들겨 패줄 정도의 충성심을 발휘할 것이다.

조환규 | 부산대 교수 · 컴퓨터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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