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이 사건을 해결하고 혼곤한 잠에 빠지는 <춤추는 대수사선>의 아오시마
행동파 캐릭터들이 스크린을 접수하는 계절입니다. 적과 배경은 달라도 액션영화에는 하나의 공통된 주제가 있지요. 바로 “책상물림들이 무얼 안다고!”라는 코방귀입니다. 쓸모있는 진리는 사색이나 말잔치에 있지 않다는 이런 입장은 때로 위험한 외곬으로 빠지기도 하지요. 일전에 개봉되어 미국의 오만한 자기 중심주의를 드러냈다고 한바탕 욕을 먹은 <룰스 오브 인게이지먼트>의 주제도 실은 정치 신념이나 국가의 대결이라기보다는 “실전도 안 해 본 애송이들이 뭘 안다고!”라는 군인들의 심리적 시위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다이 하드>시리즈의 브루스 윌리스나 <리쎌웨폰> 시리즈의 멜 깁슨을 비롯한 영화 속의 일당백 영웅들은 하나같이 조직에서 내놓은 말썽꾼들입니다. 말 그대로 형사배지를 압수당하는 징계 정도는 다반사고 심지어 이들은 퇴직 뒤에도 무능한 현직 경찰 대신 척척 테러리스트를 응징하지요. 수사 지침서 보기를 코묻은 휴지같이 하고, 악당 하나 거꾸러뜨릴 수만 있다면 빌딩 한두개 무너뜨리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이들 ‘폼나는’ 말단 영웅들에 비해, 지원은커녕 거치적거리기만 하는 경찰 간부들은 ‘시어머니보다 더 밉살맞은 시누이’쯤으로 그려집니다.
얼마 전 개봉한 일본영화 <춤추는 대수사선> 역시, 발로 뛰는 일선 형사들과 경찰 상부 사이의 갈등을 주요 멜로디로 삼아 코미디의 스텝을 밟습니다. 주인공 아오시마(오다 유지)는 도쿄 완간 서의 말단 수사관입니다. 골프 치러 가는 상관을 아침부터 기다렸다가 “오늘의 운전기사입니다!”라고 나서는 한심한 짓도 하지만, 그는 성실하고 열성적인 경찰입니다. 사표를 비수처럼 품고 빈틈없이 직무를 다하는 스미레(후카쓰 에리)나 옛 방식을 고수하며 묵묵히 일하는 고참 와쿠 형사(조스케 이카리야)가 그가 믿는 동료들이지요.
그러던 어느 날 완간 서 부총감이 납치되는 사건이 터지자 본청에서 특별수사팀이 파견됩니다. 번쩍이는 첨단 장비와 오만한 표정으로 무장하고 들이닥친 이들은 사사건건 위화감을 조성합니다. 한편 SF영화에서나 봄직한 눈이 휘둥그레지는 첨단 화상회의 원탁에 둘러앉은 경찰 고위층이 하는 일이라곤 고작 유괴범에 건넬 몸값을 경시청과 경찰청 중 어느 편이 부담하느냐를 두고 벌이는 승강이뿐이죠. 각종 제복으로 위장하고 물건을 훔쳐온 절도범이 “경찰서가 제일 쉬웠다”고 고백하는 대사는 자리보존에만 연연하는 경찰조직의 관료주의에 대한 은유적 힐책일 겁니다. 산더미 같은 지폐의 일련번호를 일일이 베끼라는 명령이 떨어지는 비능률적인 업무 환경이고 보니, 창의력이라면 범죄자쪽이 경찰보다 한수 위인 것도 놀랄 게 없습니다. 그러나 비밀주의, 파벌주의, 책임 전가 풍토가 뒤섞인 탁류를 거슬러 일선 형사들은 진상을 향해 나아가고, 기어이 육탄으로 사건을 해결한 아오시마는 혼곤한 잠에 빠집니다. 그 포즈는 3일간의 불행과 곤욕을 늪처럼 깊은 오수(午睡)로 마감하던 <개 달리다>의 나카야마 형사와 닮아 있지요.
고단한 아오시마의 버팀목은 특별수사본부의 우두머리가 되어 돌아온 옛 동료 무로이(야나기바 도시로)와 오래 전 맺은 비밀 약속입니다. “나는 현장에서, 너는 상부에서 뛰자. 권력을 가지면 일선 형사들을 잊지 말아줘”라는. <춤추는 대수사선>은 그렇게 곧고 정직한 몇명의 묵계만 있다면 고질(痼疾)을 앓는 조직을 살 만한 일터로 변모시킬 수 있을 거라고 최면을 겁니다. 하지만 아오시마의 속앓이와 과로가 끝날 날은 아득하게만 느껴집니다. 한 세대 전 아오시마와 무로이와 언약과 똑같이 와쿠 형사와 요시다 부총감이 맺었던 묵계가 그리 많은 걸 바꾸어 놓지 못했음을 <춤추는 대수사선>은 두 시간 내내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필름누에vermeer@hani.co.kr

(사진/춤추는 대수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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