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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사이언스크로키] 필즈상의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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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11-1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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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중숙의 사이언스 크로키]

올 수학능력 시험은 비극으로 얼룩졌다. 첫 시간이 끝난 뒤 한 학생이 밖으로 나와 인근 아파트에서 투신했는데, 다음날에도 같은 방법으로 또 한 학생이 목숨을 끊었다. 이 사건들은 즉각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시험 당일 저녁에는 추모 집회도 열렸다. 하지만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이처럼 크게 이슈가 된 경우 외에도 연 평균 200명가량의 학생들이 성적 비관과 스트레스로 자살에 이른다. 추모회에 참가한 한 학생은 “언제까지 같은 친구끼리 서로 짓밟고 경쟁해야 하는가?”라고 절규했다. 그러나 실상이 이쯤 되고 보면 참으로 ‘전우의 시체를 넘어’ 진군하는 전쟁과 진배없다고 하겠다.

일러스트레이션 | 유은주
이런 사태를 맞게 된 원인은 우리 모두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유교적 전통에 일제 교육의 잔재까지 겹쳐서 형성된 뿌리깊은 학력 위주 풍토 때문이다. 덕분에 우리 사회의 교육열은 세계 최고 수준이며 덩달아 중고생들의 평균 학력 또한 그렇다. 그러나 이 최고 수준의 교육열과 학력은 대학에만 들어서면 급격히 추락한다. 대학 이후의 학문 수준은 내세울 게 거의 없을 정도로 초라하다. 그래서 정상적으로 보자면 지금쯤 몇 사람 정도 받았을 법한 자연과학 부문의 노벨상을 한번도 수상하지 못했다.

우리 교육의 이런 과정은 주요 선진국의 교육과 정반대다. 그들이라고 중등교육을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니지만 공부의 강도는 위로 올라갈수록 높아진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방심하는 대학 과정에서부터 그들의 진정한 공부가 시작된다. 이런 교육 과정은 대부분의 학문 성격에도 어울린다. 예전에는 여러 분야에 걸쳐 십대 천재들이 큰 업적을 이루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현대의 학문은 어느 한 부문만 놓고 봐도 너무나 방대해서 20대에 들어서지 않는 한 크게 성취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우리 청소년들은 정신적·육체적으로 채 여물기 전에 전력을 기울인다. 그러다가 기본 바탕이 완성되어 정작 최선을 다해야 할 시기에는 탈진하고 만다. 학문 이외의 분야에서도 이런 경향을 볼 수 있다. 우리의 중고교 운동선수들은 미래에 꽃필 싹이 아니라 그 시점에서 만개하도록 훈련된다. 하지만 체조나 수영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운동의 경우에도 대부분 20·30대에 전성기를 맞는다. 이런 냄비 근성 때문에 우리 선수들은 이른바 조로현상을 겪는다. 외국에는 40대 초반의 현역 선수도 많은데, 우리 선수들은 30대만 되면 은퇴 준비를 한다. 겉보기로 판단할 수는 없지만, 학문 분야도 자세히 살펴보면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수학 부문에는 노벨상보다 높은 영예로 평가되기도 하는 필즈상(Fields Medal)이 있다. 4년마다 수여되는 이 상은 수상자의 나이가 수상 당시 40살 이하여야 한다는 제한이 불문율로 내려온다. 이를 두고 인간의 창의성 발현 시기를 너무 이르게 잡은 것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것도 우리 예상과 달리 ‘기다림의 철학’에서 유래했다. 이를 통해 젊은 수학자들의 분발을 촉구하는 한편 그동안 경험적으로 알려진 한계를 최대한 늦춰 잡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우리 사회도 자연의 시계에 순응해야 한다. 수학 이외의 곳에서는 40대가 훨씬 넘어서야 제대로 꽃피는 분야가 많다. 너무 이르지도 늦지도 않은 적절한 시기에 꽃을 피워 가능한 한 오래도록 만발하게끔 이끌어가야 한다.


고중숙 | 순천대학교 교수·이론화학 jsg@sunch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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