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마술] 당신을 홀리는 ‘매직 콘서트’

484
등록 : 2003-11-13 00:00 수정 :

크게 작게

일상에 파고든 마술의 진수 선뵈는 공연들… 환상적 무대에서 펼쳐지는 속임수의 예술

마술사들의 발길이 바빠지고 있다. 여자친구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작업마술’ 등 일상으로 마술이 깊숙이 들어오면서, 최근 폭발하듯 불어난 마술 인구의 저력을 바탕으로 대형 마술쇼가 펼쳐진다. 90년대 초반 데이비드 코퍼필드의 내한공연 때 받았던 깊은 충격과 인상이 이번에도 되풀이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다양한 마술 비디오 교재들에 출연하며 ‘세계마술의 교과서’라고 불리는 미국 출신 마술사 제프 맥브라이드의 공연이 11월19~23일 서울 교육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오른다(02-762-9190). ‘제프 맥브라이드의 매직 콘서트-아브라카다즐!’ ‘아브라카다즐’이란 우리나라의 마술 주문 ‘수리수리 마수리’를 뜻하는 말이다.

10살 때부터 공연한 카드마술의 1인자


로스앤젤레스의 ‘마법의 성’이 수여하는 올해 마술사에 선정된 맥브라이드는 카드마술의 1인자인 동시에 신비롭고 환상적인 연출로 유명하다. 기자와 인터뷰할 때도 손에서 카드를 놓지 않는다는 맥브라이드는 그만큼 이를 악문 훈련으로 자기를 다지는 마술사다.

미국 뉴욕주에서 태어난 그는 8살 때 ‘음악’(music)에 관심 있어 도서관에 책을 찾으러 갔다가 우연히 ‘마술’(magic) 코너를 둘러보고는 <마술교본>이란 책을 빌린 것에서부터 ‘마술사 망토’의 첫단추를 채웠다. 독학으로 마술을 익힌 그는 처음으로 부모에게 쇼를 선보인 뒤 10살 때부터 자신의 집 지하에서 15센트씩 받고 마술쇼를 벌이는 등 일찌감치 자본주의적 영악함도 발휘했다. 16살 일본 투어공연 때 ‘가부키’를 보고 감명 받은 그는 마술 인생에 중요한 전환점을 맞는다. 그는 연구 끝에 가부키에 나오는 가면과 옷차림으로 동양적인 분위기를 곁들인 무대연출을 개발해낸다. “나는 내 마술을 화성에서 온 르네상스 가부키라고 부른다”는 그의 말처럼 마임·댄스·가부끼·무술을 절충시킨 환상적인 무대를 만들어낸 것이다.

사진/ 제프 맥브라이드는 현존하는 카드마술의 1인자로 꼽힌다.
그는 이번 내한공연에서 모두 11가지 마술을 보여준다. 그는 반젤리스 등의 고음이 계속되는 전자음악을 배경으로 나타났다 사라지거나, 색깔이 바뀌는 흰 가면들과 가면을 조종하는 듯한 보이지 않는 힘 사이에서 고군분투한다. 손수건을 사무라이의 갑옷으로 만들고 부드러운 깃털을 딱딱한 마술사의 요술지팡이로, 텁텁한 모래를 신선한 우유로 바꾼다. 손 위에 올려진 얇은 한지가 움직이며 허공에서 춤춘다. 찢어진 종이를 15m의 기다란 리본으로 바꾸기도 하고 실크 리본·종이 나비·부채·거미줄 등 전통적인 동양 마술사들의 도구를 이용하기도 한다. ‘카드의 왕’이라는 이름답게 손끝에서 발아한 카드가 허공을 가르며 관객의 머리 위로 날아다니는 장면을 연출한다. 얇은 날개를 단 가부키 무희를 불러내 ‘마술부채’의 힘으로 공중에 띄우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공연 시작 전 4시간 동안 꼬박 준비한 결과물들이다.

20세기 전반기 ‘전설의 마술사’로 불리던 후디니를 기리며 그는 마지막으로 탈출마술을 시도한다. 불구덩이에서 사슬을 풀고 도망치거나 꽁꽁 묶인 채 수조에 감금된 마술사가 굴레를 벗고 극적으로 탈출하는 마술을 장르화한 후디니는, 제프 맥브라이드의 격정적인 쇼맨십으로 재연된다. 하지만 그가 채택한 ‘동양적인 요소’는 사실 온전한 동양의 것이 아닌, 효과적으로 모방하고 절충한 것이다. 그가 가부키극의 사자용사 복장을 했더라도 시원시원한 몸짓이 특징적인 그의 쇼는 다분히 미국적일 수밖에 없다. 그는 매직 콘서트 외에도 11월15·16·23일 사흘간 ‘마술의 비밀’이라는 매직스쿨을 열어 한국의 예비 마술사들에게 기법을 전한다.

국내 정상급 마술사들도 무대에 올라

기원전 100~300년부터 시작된 마술은 최초에는 그리스·이집트에서 맹수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마술과 불을 먹는 마술로 시작되었다. 14~15세기 카드가 보급되면서 카드마술이 유행했고, 18세기에는 무대에 올릴 만한 정도로 마술쇼가 발전했다. 여기에 20세기 들어 ‘전설의 마술사’ 후디니가 등장하면서 마술은 본격적인 쇼로 발전했다. 우리에겐 다소 이름이 낯선 후디니는 마술쇼가 발전한 미국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탈출마술’이란 장르를 만들어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을 듯한 형무소 독방에서 빠져나오는 등의 재주를 보였다. 이후 서양에서는 연달아 걸작이 발표되었는데 후디니의 탈출마술 외에도 ‘일루전(Illusion) 매직’이 성행해 관객이 보는 앞에서 자동차나 코끼리, 비행기, 산을 없애는 대형 스펙터클 매직이 나왔다.

제프 맥브라이드가 화려한 대형쇼를 지향한다면, 15일까지 열리는 정성모의 마술콘서트(서울 제일화재 세실극장, 02-736-7600)는 소극장형 마술쇼다. 무대 위 연기자의 숨소리까지 전달되는 200석 규모의 소극장에서 재일동포 마술사 유지 야스다를 초청해 정성모와 2인 마술쇼를 펼친다.

현재 마술 붐의 최대 진원지인 ‘신세대 마술사’ 이은결씨도 올 겨울을 노리고 있다. 이은결의 매직콘서트가 12월20일~2004년 1월4일 서울 코엑스 그랜드 컨퍼런스룸에서 열린다(02-516-1501). 우리나라 처음으로 세계마술대회에 참가해 그랑프리를 수상하면서 화려하게 데뷔식을 치른 그는 ‘이야기가 있는 마술’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음악과 연기와 마술이 조화를 이루는 오페라식 무대다.

사진/ 최근 일어난 마술 붐에 힘입어 대형 마술쇼가 잇따라 펼쳐진다. 마술사 오은영씨가 학생들에게 끈을 이용한 마술을 가르치고 있다.(류우종 기자)
제프 맥브라이드 쇼에 게스트로 참가하는 마술사 오은영씨는 잇따른 마술쇼를 가장 맛나게 즐기는 감상법을 이렇게 정리했다. “마술을 눈속임이라고 낮춰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내가 너를 속일테니 눈뜨고 잘 봐라’라는 전제로 시작하는 마술은 참 정직하지 않은가. 마술사의 기법을 알아채려고 힘줄을 세우고 지켜보기보다는 열린 마음으로 즐겁게 보는 게 첫째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